[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나는 명성교회 세습을 찬성했던 목사들이 조금이라도 창피해할 줄 알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 노회장 손왕재 목사의 글을 보며 그 정도 기대마저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목사라는 분들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르니, 이것이 한국교회 현실이자 앞으로 더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명성교회 세습의 불법성을 지적해 온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살인자도 변호가 필요하지만 살인 자체가 정당한 것처럼 변호하면 안 된다"고. 불법으로 세습한 김삼환-김하나 목사 부자에게도 변호가 필요하겠지만 세습 자체가 옳은 일인 것처럼 변호하면 안 된다. 누군가 살인을 정당하다고 변호하면 그는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런데 노회장이라는 자가 세습이 정당하다고 변호하고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배운 점은 사건마다 복잡한 결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명성교회 세습은 참으로 단순하다. 명성교회가 교단에서 정한 세습금지법을 어기고 담임목사의 아들을 후임으로 세운 것이다. 법 자체가 문제라느니 서울동남노회가 어쨌느니 해도 '명성교회가 불법으로 세습했다'는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예장통합 목사·장로들 스스로도 명성교회 세습이 불법이라는 걸 아니까 수습안을 만들 때 "법을 잠재하고"라는 표현을 쓴 것 아닌가. 여담이지만 이 '잠재하다'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는 애를 많이 먹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저렇게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법에 맞지도 않는 이 표현을 알아듣기 쉽게 바꾸면 이렇다. "불법은 맞지만 명성교회만 봐주자."

손왕재 목사는 총회 수습안이 출석 총대 1204명 중 920명(76.41%)의 지지로 통과됐다며, 이를 불법이라 주장하면 80%에 가까운 총대를 모욕하는 것이라 했다. 2013년 예장통합 98회 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은 총대 1033명 중 870명(84.22%) 찬성으로 통과됐다. 손 목사 논리대로라면 그는 80%가 넘는 선배(?) 총대들을 모욕하고 있는 셈이다.

세습금지법은 총회 결의뿐 아니라 그 후 각 노회 수의를 거쳐 헌법을 개정한 결과다. 총회 결의보다 교단 헌법이 더 위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수습안은 '명성교회만 봐주자'는 내용으로 세습금지법 위반이다. 총회 결의가 교단 헌법을 위반했으니 수습안의 효력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다퉈 볼 만하다. 결국 사회 법정에서 판단하게 됐으니 지켜볼 일이다.

명성교회 불법 세습을 비호하는 한편 김수원 목사(태봉교회)를 공격하는 일은 비겁하기 짝이 없다. 백번 양보해 손왕재 목사 말대로 김 목사가 부도덕하다 치자. 그러면 명성교회 세습이 정당해지나? 김수원 목사의 신앙 양심을 걱정할 게 아니라, 대형 교회 하나가 교단 헌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도 이를 옹호하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본인이나 돌아볼 일이다.

꼴을 보아 하니 어떻게 해도 명성교회 세습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건 아니다. 본질적으로 목사가 교회를 사유화할 수 있는, 그렇게 해도 교인들이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구조를 성찰해야 한다. 교단 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돈과 권력을 세습한 메가처치를 정치적·법적·신학적으로 정당화해 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목사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도 손왕재 목사처럼 기도 부탁이나 하고 마쳐야겠다. 아무래도 이뤄질 것 같진 않지만.

명성교회 세습 지지자들의 신앙 양심과 도덕성 및 윤리성이 회복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와 사회가 목사들의 뻔뻔함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서울동남노회와 총회가 지금처럼 계속 멸망의 길을 가지 않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