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 시장 통닭
1. 튀김 가루에 카레 가루, 후추를 섞는다.
2. 1을 물과 1:1 비율로 섞어 닭과 버무린다.
3. 식용유를 냄비에 넉넉히 붓고 튀김 가루를 넣었을 때 바로 떠오를 정도로 가열한다.
4. 닭을 튀기고, 한 김 식힌 뒤 다시 한번 튀겨 낸다.

- 겨자 소스
1. 연겨자와 물을 1:1로 섞는다.
2. 간장, 설탕, 식초를 취향껏 넣어 섞는다.

닭은 맛있다. 물만 넣고 끓여도 감칠맛이 난다. 손질도 어찌나 편한지! 돈 조금 아껴 보겠다고 마트 대신 시장 정육점을 가면 으레 한 마리를 통으로 준다. 바쁘지 않을 때는 썰어 주기도 한다는데, 항상 문전성시니 눈치만 보다가 그대로 가져오길 여러 번. 그걸로 닭튀김을 해 먹겠다고 순살로 만드는데, 꼼지락꼼지락하다 살이 뭉개지기는 해도 제법 꼴은 갖춰 발골을 했다. 온전한 한 마리 식재료 중 어설픈 자취생의 도마에 올라 손질될 만한 것은 아마 닭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발라낸 살에 간장과 생강가루를 넣고 조물조물해 튀김 가루를 입혀 튀겨 먹었다.

먹을 것 없다 하면 발골도 필요 없다. 그저 고춧가루 풀어 간장 넣고 닭볶음탕을 해 먹어도 되고, 심심한 육수로 팔팔 끓여 백숙을 해 먹어도 된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친숙한 재료가 바로 닭이다. 요즘같이 추울 때면 종로 골목 어딘가에 퍼질러 앉아 뜨끈한 '닭 한 마리' 먹고 싶고, 여름이 오면 초계탕에 국수, 가슴살 쭉쭉 찢어 갖은 양념에 버무린 닭 무침도 생각날 것이다. 감칠맛 나는 닭 국물은 온갖 육수에 섞여 어쩐지 비어 있는 한구석 맛을 단단히 채워 주니, 사시사철 식탁에 오르지 않을 일이 없다.

미국 남부에는 '소울 푸드'라는 게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음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백인들의 노예로 살며 형편이랄 것도 없는 처지에 그나마 있는 재료로 해 먹었던 기억을 품은 영혼의 음식. 오크라라는 흔한 풀떼기, 버려지는 재료였던 갑각류 등을 푹 끓여 먹는 '검보'를 비롯해 옥수수빵, 메기 튀김, 족발 등 어쩐지 만들어진 맥락과 맛이 상상되는 음식들이다. 소울 푸드의 대표 주자는 닭으로 만든 가장 흔한 음식이었다.

농장에서 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의 식탁에 오를 닭을 키워야 했다. 서양은 지금까지도 닭 부위 중 가슴살을 최고로 친다. 닭을 작게 키워 야들야들한 맛에 먹는 한국과 달리 육향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모가지, 다리, 날개 따위는 비선호 부위로 백인들 식탁에 오르지 못했다. 버려진 부위들을 버터밀크에 재워 잡내를 없앤 뒤, 밀가루 입혀 기름에 튀긴다. 익숙하고도 설레는 이름, '프라이드치킨'의 탄생이다. 날개와 다리, 모가지를 두고 누가 맛이 없다고 했는가. 프라이드치킨은 이내 백인의 식탁 위를 당당히 차지하며 계급과 동서남북을 막론한 '치킨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가장 보편화한 이 조리 방법이 미국 문화가 으레 그렇듯 전쟁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고.

생닭을 기름 끓는 가마솥에 그대로 넣어 튀겨 낸 '옛날 통닭', 밀가루에 카레 가루 따위를 섞고 질게 반죽해 튀겨 낸 '시장 통닭', 염지 숙성해 두꺼운 튀김옷 입혀 기름에 두 번 튀기는 가장 흔한 방식의 '프라이드치킨', 완성된 치킨에 고추장 양념 골고루 입혀 식어도 맛있는 '양념 치킨'까지. 한국에 건너온 소울 푸드는 무한대로 변주한다. 한때는 고급 음식, 또 한때는 추억의 음식이었다가 이제는 '한식'이라 말해도 좋을 만큼 우리 삶 깊숙한 곳에 치킨의 기름내가 짙게 배어 있다.

일러스트 gom lee
일러스트 gom lee

농성장에서 밤을 지새우다 보면 기별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혹여 외로울까, 배고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발걸음이 고맙기는 하지만, 겨울 추위 여름 더위에 적응하고 이제 막 잠이 들 때 쯤 누군가 천막을 열고 들어오면 그것도 영 고역이다. 잠자기는 틀렸다. 밤새 수다 떨다 해가 기웃거리면 피켓 들고 1인 시위 나가겠지. 고마움 반, 궁시렁 반 일어나는데 고소한 기름 냄새가 침낭 사이를 파고든다. 반가운 손님은 혼자 찾아오지 않았다. 통닭 한 마리에 이 밤이 기꺼워진다.

오래된 동네에는 꼭 촌스러운 닭 캐릭터가 새겨진 시뻘건 간판에, 누렇게 익은 벽을 자랑하는 옛날 통닭집이 있다. 노포 사장의 주름진 손은 정확한 영업시간도 없이 식은 맥주와 한 마리 4000원, 두 마리 7000원짜리 통닭을 판다. 농성장에서 얻어먹는 닭은 대부분 그런 통닭이었다. 철거 앞둔 동네, 밥이라도 먹으라며 봉투를 받은 후배가 10만 원어치 통닭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기도 했다. 늦은 밤 모두가 잠자리에 들어 냉장고에 넣어 둔 그 많은 통닭을 먹어 보지도 못한 채 강제집행을 당해 그대로 두고 나왔던 해프닝도 있었더랬다. 

강제집행을 앞둔 가게의 철문이 끼익하고 열린다. 농성장 지키는 당번은 모두 잠든 깊은 밤이다. 두꺼운 철문 열리는 소리는 칠판 긁는 듯 소름 돋지만, 어느새 익숙해져서는 다들 일어나지 않게 됐다. 문을 연 것은 가게 사장님이다. 고마운 사람 만나러 먼 수원까지 다녀오는 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대인들이 생각나 그 유명한 '수원 통닭' 몇 마리를 사 왔다고 한다. 미지근하게 식은 통닭에서 은근히 기름내가 퍼지며 자고 있는 사람들 코를 살살 간지럽힌다. 시장 통닭 식으로 튀겨 과하지 않은 튀김옷과 함께 간이 덜 돼 있는 퍽퍽한 살코기를 깨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올라올 것이다.

푸짐하게 쌓여 있는 통닭 위에는 생으로 기름에 튀긴 닭똥집 몇 개가 무심히 올라와 있다. 투박한 튀김옷, 살살 벗겨지는 다리 살을 후루룩 넘긴다. 퍽퍽한 듯 고소한 가슴살은 깨소금에 찍어 먹고, 심심하면 딸려 온 겨자 소스를 찍어 찡하게 먹자. 그러다 물리기라도 하면? 절인 무 두어 개 집어넣고 아작아작 씹어 넘기면 되지. 몇 조각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앞사람 얼굴 보고 수다를 떨면 되겠다. 통닭은 음식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하나의 '공동 경험'이다. 그 당연함에서 오는 단단함이 좋다. 모두가 아는 그 맛이, 그 냄새가 캄캄한 가게 속 잠든 연대인들을 깨운다. 요란한 소리에도 깨질 않던 이들이 하나둘 깨더니 통닭 놓여 있는 자리에 앉아 밤참을 함께한다.

별난 것도 없는 맛이 매일 밤 여러분을 괴롭힌다. 소, 돼지 안 먹는 나라는 있어도 닭 안 먹는 나라는 없다더라. 가깝고 쉬운 것이 주는 위로가 필요한 요즘, 일상이든 투쟁이든 닭이 그 옆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없고 배달로도 만나기 어려운 빨간 간판 집의 통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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