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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지 꼭 1년이 지났습니다. 은퇴하고 가장 체감되는 일은 전화가 안 오고,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상이 갑자기 조용합니다. 은퇴와 동시에 모든 직무를 내려놓았으니 전화 올 데가 없지요.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곧 평온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된 목회 후에 주어지는 안식과 평온함입니다.

이 평온함은 어디서 온 걸까요? 은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5년 목회가 보람이 있었고 행복했습니다. 지난한 목회의 길을 완주했으니 감사할 뿐이지요. 더러 존경한다고, 보고 싶다고들 합니다. 무엇보다 은퇴 과정에서 마음 상하거나 갈등이 없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지금은 은퇴한 목사님들이 모이는 '은목교회'에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은퇴를 준비하고 마쳤습니다.

1. 아름답고 명예로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뭐든지 끝이 좋아야 다 좋고, 끝이 안 좋으면 다 안 좋은 것입니다. 목회 과정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더 중요합니다. 누구보다 평생을 전도자로, 성직자로 살아온 사람의 은퇴는 더욱 아름답고 명예로워야 할 것입니다.

평생을 목회자로 산 목사의 명예는 무엇일까요?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성공한 목사인가요? '큰 교회 목사', '유명한 목사', '돈 많은 목사'일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자는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대형 교회를 목회하더라도, 교단의 무슨 장을 하더라도,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실패한 목사가 아닌지.

저는 아름답고 명예로운 은퇴를 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아름다운 은퇴를 위해 이런 은퇴관을 정립했습니다. '은퇴란 삶으로 보여 주는 마지막 설교다.' 평생을 강단에서 입으로 설교한 목사로서, 마지막 설교는 삶으로 보여 주는 '은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퇴'라는 마지막 설교를 잘하면 두고두고 은혜가 되고 감화를 줍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아름다운 빈손으로 은퇴하시고 남한산성 자락 작은 거처에서 청빈하게 살았습니다. 삶으로 보여 준 마지막 설교는 두고두고 큰 감동을 줍니다.

2.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신중하게 진행했습니다

'은퇴'와 '청빙'이라는 리더십 교체가 준비 기간 없이 급하게 진행되는 예를 봅니다. 거룩한 교회가 리더십 교체 문제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진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저는 2017년 연말 당회에서, 법적 정년 은퇴에서 2년을 앞당겨, 2019년에 은퇴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제가 조기 은퇴를 결심한 이유가 있습니다. 개척한 교회에서 오래 목회하다 보니 지루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식을 줄 모르던 목회 열정도 예전만 못했습니다. 이제 바통을 넘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에 젊은 바람, 새 바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척자가 은퇴하고 리더십을 교체하는 데는 적어도 2년 정도 기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2년 후 은퇴하겠다고 하니까, 한 장로님은 "목사님의 계획대로 하시되, 발표는 지금 하지 말고, 1년 후에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 주일에 곧바로 은퇴 계획을 공지했습니다. 쉬쉬할 일도 아니고,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리더십 교체에 대한 교회의 준비를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이런 당부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새 목사님이 왔을 때 결코 해서는 안 될 금지어가 있습니다. '전에 목사님은 안 그랬는데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당회에는 이런 당부도 했습니다. "새 목사님이 부임하고 1~2년은 허니문 기간으로, 소신껏 목회하도록 '예'만 하며, 힘껏 밀어주십시오."

은퇴 전에 할 일들을 차근차근하게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임직을 세우는 일을 준비했고, 고난주간에는 눈물의 세족식도 거행했습니다. 고향 분들을 섬기기 위해 '후포리 농활'을 개최했으며, '교회 표지판'도 3개 제작해 세웠습니다. 고마운 분들과 감사의 식탁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2년이 금방 지나가 '준비된 은퇴', '아름답고 명예로운 은퇴'를 할 수 있었습니다.

3. 후임자 청빙은 백지에서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해 37년을 목회하고 은퇴하면서, 좋은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마땅하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후임자는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는 내 생각이나 내 뜻을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백지상태에서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좋은 후임자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19년 10월로 은퇴식 일정을 잡고, 후임 목사 청빙을 위해 1년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해 우리 교회 표어는 '새로운 리더십, 희망찬 교회'였고, 실천 사항은 '성령이 인도하는 2대 담임목사 청빙'이었습니다. 연초에 청년 대표를 비롯해, 신뢰받을 수 있는 청빙위원 15명을 세웠습니다. 청빙위원들에게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물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청빙 공고는 하지 않았고, 신실한 동역자들의 천거를 통해 13명의 이력서를 받았으며, 그중 한 분을 청빙했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았습니다.

청빙 과정에서 단 한마디의 잡음도 없었고, 리더십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가 안정적으로 세워져 가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4.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은퇴할 때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습니다. 명령받은 일을 다 수행하고 난 '종'이 무엇을 요구하리오. 저는 씨를 뿌린 자요, 믿게 한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servant', '하인', '머슴'에 불과합니다. 교회를 개척했거나 부흥시켰다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 결코 나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근본정신은 비움이요, 내려놓음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리까지 내려놓으셨고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될까 봐, 당연한 권리조차 쓰지 않았고,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고전 9:12). 저도 가능하면 후임자에게나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은퇴 과정에서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소탐대실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은퇴 과정이 은혜롭지 못해 교회와 불편한 관계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손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회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은금보다 명예를 택하기로 했습니다(잠 22:1).

중소형 교회들은 목회자 은퇴 시 대개 주택 문제가 큰 짐이 됩니다. 저는 주택의 짐을 교회에 지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찍부터 청약 적금을 붓다가 공공 임대주택이 당첨돼 은퇴 1년 전에 사택을 비우고 이사를 했습니다. 은퇴비에 있어서 퇴직금 정산이 저의 소신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다소간 원로 예우를 하고, 총회 연금을 보태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5.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은퇴隱退'라는 말이 영어로 'Re-tire'라고 합니다. 은퇴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자동차의 타이어를 바꿔 끼우는 것입니다.

은퇴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위해, 석양처럼 제 인생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하게 하소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은 인생을 그럭저럭 보내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농익은 인생의 노른자위 같은 삶을 시작하십시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께 어느 날 신문 기자가 찾아와 "선생님, 만약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느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교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때는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뭔지 몰랐어요. 60세로 돌아가고 싶어요."

또한, "인생에서 노른자의 시기가 언제였는가요?"라고 묻자 "65세에서 75세까지였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때에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할 일이 없을 것이라거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늦은 나이에 오히려 큰 일을 이루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을 보더라도 나이와 상관없이 소명을 받아 쓰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갈렙이 그랬습니다.

6. 은퇴 후 이런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공동체(ONE COMMUNITY)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공동체는 3대 중점 사역을 펼칠 것입니다. 순례자 영성 훈련, 코이노니아 공동체 운동, 고향 마을 공동체 운동입니다.

'순례자 영성 훈련'은 소그룹으로 모여 하루 내지는 1박으로 3개의 강좌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1강 코이노니아 공동체 영성(Spirituality of Koinonia Community), 제2강 은퇴의 영성(Spirituality of Retirement), 제3강 죽음의 영성(Spirituality of Death)입니다.

이를 위해 '순례자 영성' 훈련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영성 훈련 중에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작성하기', '유산 안 남기기', '유언서 작성하기', '묘비명 쓰기'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같은 훈련 사역을 위해 고향 여주에 세미나 하우스를 지었습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 운동'을 통해 사랑으로 하나 되는 운동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중보 기도 제목입니다. "아버지, 우리와 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저는 교회 일치와 연합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여러 모임과 기관에서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며, 코이노니아를 이루었습니다. 누구와도 불목하지 않고,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화평케 하는 자로 살고자 합니다. 매일 코이노니아 공동체 세상을 꿈꾸며, 축하와 위로와 격려의 대상을 찾아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다이얼을 돌립니다.

'고향마을 공동체 운동'을 하며, 여생을 고향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저의 고향은 여주 대신大神 후포리입니다. 그곳에 모교회 후포성결교회가 있고, 모교 대신중고교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나의 첫 개척지 한강성결교회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코이노니아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다가 순례자의 길을 마치고 영원한 본향으로 귀향하려고 합니다.

신만교 / 의정부 화평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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