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가 '5·18과 기장 교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국기독교장로회가 '5·18과 기장 교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총부리를 앞세운 계엄군에 맞서 저항하고 부상당한 시민을 도왔다. 광주 항쟁 이후에는 피해를 겪은 시민의 보상과 명예 회복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5·18이 한국 사회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것처럼, 한국교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5·18 이후 민중 교회가 급증하고 소외당하는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한국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인데, 지난 40년간 '5·18과 한국교회'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육순종 총회장)가 광주 항쟁의 교회적·신학적 고찰을 위한 연구에 임했다. 기장은 5월 심포지엄을 개최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탓에 9월 14일로 일정을 연기했다. 온라인으로 진행한 심포지엄에는 기장 소속 김희헌 목사(평화공동체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최형묵 목사(교회와사회위원장),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가 참여했다.

광주 항쟁 당시 교회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다. 교회들이 뭉쳐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5·18 이전부터 신군부를 반대하는 교회에 대한 감시·견제도 있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다만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개별적으로 항쟁에 적극 참여했다. 도청을 사수하다 숨진 한신대 신학생 류동운 열사, 계엄군 탱크를 막기 위해 도로에 드러누운 고 이성학 장로(양림교회), 미국 공보문화원에 찾아가 항의한 고 조아라 장로(광주한빛교회) 등을 들 수 있다.

김희헌 목사는 "민중 항쟁 전체 과정에서 교회의 조직적 참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항쟁 과정에 목숨을 내걸고 직접 참여한 그리스도인이 많았다. 당시 기장 소속 목회자 신학생 교회 청년 40여 명이 투옥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권 운동에 앞장서 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가 성명 한 줄 못 낼 정도로 엄혹한 시절이었지만, 기장은 적극적이었다. 1980년 5월 30일 기장 전북서노회는 광주시민을 돕기로 결의했다.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는 6월 8일 광주 항쟁 관련 특별 예배를 열었다. 신군부 압박에도 광주한빛교회는 공식 추도 예배를 진행했고, 무진교회는 '5·18부상자회'를 결성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을 통제하며 5·18의 진실을 감추려 했을 때 기장인들은 반발했다. 최형묵 목사는 "청년 노동자 김종태(주민교회)는 6월 9일 서울 신촌에서 광주시민과 학생들 넋을 기리고 계엄령 해제 성명을 발표한 직후 분신자살했다. 한신대 학생들도 10월 8일 류동운 열사 추도식을 진행하고 계엄 철폐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기장 총회는 1983년 '신앙고백 선언서'를 채택했다. "폭력에 의한 정부는 폭력에 의해 망할 것"이라며 신군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또 "고난받는 민중과 함께 사는 '민중의 교회'가 되지 못했으며,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일에 주저한 일이 많았다. 한때 '저항과 직책'의 교회였으나 지금은 '침묵과 죄책'의 교회가 되고 있다"고 자책했다.

광주한빛교회는 1981년부터 매년 5·18 추모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광주한빛교회는 1981년부터 매년 5·18 추모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981년 '제1회 5·18 추모 연합 예배'를 진행한 고 윤기석 목사(광주한빛교회)는 "5·18 광주 민중 항쟁은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잡아 주었고, 일부 호화로운 목회에서 벗어나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민중들의 삶의 자리에 파고들었고, 바로 현장 목회인 민중 목회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적잖은 목회자가 광주 항쟁의 교훈을 따라 민중 선교에 임했다. 최형묵 목사는 "민중 교회는 1970년대부터 있었는데, 광주 항쟁 직후 급증했다. 교계에서 기장의 민중 교회 비율이 가장 높았다. 민중 교회들은 1985년 민중선교협의회를 구성했다. 오늘날 생명선교연대의 전신이다"고 말했다.

"기장도 보수 기독교 신학 프레임 갇혀
교회는 누구를 모욕하기 위한 공동체 아냐
타자·소수자 얼마나 수용하는지 돌아봐야"

광주 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지난 40년간 '가짜 뉴스'에 시달려 왔다. 이와 관련해 김희헌 목사는 "5·18을 조작·왜곡하는 반공주의·지역주의 프레임 탓에 5·18 담론이 답보하거나 퇴행하기도 했다"며 아쉬워했다. 유사한 현상이 기장 안에서도 벌어졌다고 했다. 김 목사는 "5·18을 성찰하려는 기장조차 창조적 신학을 밀고 가기보다 보수 기독교 신학적 프레임에 갇혔다. 그러면서 '기장성', '한신성' 담론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최형묵 목사도 "민주화 이후 기장 교회의 선도성과 주도성은 현저히 약화했다. 1970년대의 끈기도 1980년대의 결기도 느끼기 어렵다. 사회참여를 억제하는 교회 분위기가 강화됐고, 기장 교회는 일반 한국교회에 가까운 성격을 띠게 됐다"고 말했다.

김진호 목사도 "지금 5·18 담론은 교회 안에서 어떤 논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는 혐오·폄훼가 난무한다. 어떤 집단보다 심하다. 각종 조사를 보면, 사람들은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에 관대한데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는 인권을 반대하는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오클로스(민중)를 배제하고 망각한 결과가 교회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회는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한 공동체가 아니다. 목사든 신자든 교회 안에 난무하는 폄훼, 혐오 발언을 제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묵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우리 교단 안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누구도 차별하지 말자는 법에 왜 거부감을 지닐까. 교회는 인권 의식이 (사회와) 현저히 괴리돼 있다. 타자와 소수자를 우리는 얼마만큼 수용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포지엄 발제자들은 5·18 정신에 따라 교회도 정의와 평화, 인권 등의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장 유튜브 갈무리
심포지엄 발제자들은 5·18 정신에 따라 교회도 정의와 평화, 인권 등의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장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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