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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용서에 대한 영적 수상록> 박철수 지음 / 대장간 펴냄 / 448쪽 / 2만 원
<용서 - 용서에 대한 영적 수상록> 박철수 지음 / 대장간 펴냄 / 448쪽 / 2만 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초대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황금의 입'으로 불린 요한 크리소스톰이 목회하던 교회 신자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이 부분에 이르러서 입을 다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엄청난 긍휼을 입었음에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용서'는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동안 <하나님나라>(대장간)을 비롯해 무게 있는 역작으로 한국교회를 섬겨 온 박철수 목사가 신작 <용서 - 용서에 대한 영적 수상록>(대장간)을 통해 용서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저자는 기독교가 배제와 증오가 아닌 포용과 평화의 종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과연 성서에 부합한 종교인지 생각해 보라고 도전한다. 이 책은 아래과 같은 점에서 중요한 저작이다.

첫째,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용서를 다뤘다.

이 책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2부에서는 '용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여기서는 용서와 정의(5장), 용서와 은혜(6장), 용서란 무엇인가(7장), 주기도문과 희년(11장), 용서의 정신의학적 이해(13장) 등을 다루며 폭넓게 접근한다. 3부 '용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서는 아미시 공동체가 보여준 용서를 상술하고(14장), 용서의 방식(15장), 교회 공동체의 용서(16장)를 다루고 있다. 심리학자 이훈구 교수의 저서를 통해 부모를 죽인 한 아들의 경우를 분석하고(17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를 조명하기도 했다(18장). 4부 결론에서는 '용서가 주는 몸과 마음의 변화'(19장)를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수를 '용서의 발견자'라고 표현했다. "유대인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예수를 기독교라는 특정한 종교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정황에서 중요한 용서의 의미를 전하는 존재로 확장한다."(160쪽) 예수는 용서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분노와 복수는 해결책이 아니다. 분노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우리 성장은 멈추고 영혼은 오그라들기 때문이다(288쪽). "복수가 반복되면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그 잘못된 상황에서 자유로워질 기회를 상실한다. 이러한 복수의 연쇄반응은 매우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 복수의 감정을 확산함으로써 관계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다."(167쪽)

예수는 용서의 무한성을 가르쳤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는 표현은 '셀 수 없을 만큼', '몇 번이라고 셀 필요도 없이' 용서하라는 말로 볼 수 있다. "용서의 무한성을 요구하는 예수의 용서의 원리는 예수가 말하는 사랑의 원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예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 이웃의 범주에 원수를 포함시킨다."(170쪽) "무한하게 용서하라는 예수의 용서의 원리는, 나와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급진적 사랑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급진적 사랑에 대한 요구는 이미 급진적 용서와 용서의 무한성을 전제로 한다."(171쪽)

저자는 필립 얀시(Philip Yancey)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인용하면서, 용서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용서의 기술> 저자 루이스 스미즈 말을 빌려 "용서로 치유받는 최초의, 그리고 많은 경우,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다. (중략) 진실된 용서는 포로에게 자유를 준다. 그러고 나면 자기가 풀어 준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용서의 성경적 근거는 내가 철저한 죄인이며,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둘째, 저자는 학문적으로도 심도 있게 용서를 다뤘다.

저자는 아미시가 보여 준 용서를 심도 있게 다룬다. "펜실바니아 니켈 마인스에 있는 아미시 마을에 우유 배달부 칼 로버츠(Charles Carl Roberts)가 난데없이 교실로 들어와 어린 여학생 5명을 죽이고 또 다른 학생 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칼 로버츠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전원적 마을에 미국에 신화를 여지없이 깨 버렸다. (중략) 아미시 사람들은 살인자를 용서했으며 남아 있는 살인자의 가족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었다."

아미시 공동체에 2006년 10월 2일 아침에 일어난 총기 사건은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 나갔다. 기자들은 아미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용서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아미시들은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용서를 거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용서는 우리 삶의 일상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며 용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고 답했다.

저자는 용서를 전방위적으로 심도 있게 다룬다. 용서가 단순히 개인적인 사과의 수준에서 논의되면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성서적 접근을 바탕으로 철학적‧심리학적 통찰에서 조명을 받으며 역사적‧개인적‧공동체적 경험에서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용서를 더 넓은 토론의 광장으로 이끌어 낸다.

셋째, 저자는 적용이 가능하도록 용서의 실천적 측면을 다뤘다.

저자는 의료사고와 관련한 사건을 상술한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병원 종양외과장 다스 굽타(Das Gupta) 박사는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의사다. 그런데 2006년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내야 할 조직을 여덟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 내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317쪽) 굽타 박사는 환자와 남편에게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피해자 부부는 "굽타 박사가 솔직하고 투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얘기해 줬을 때 놀랍게도 분노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말했다(318쪽).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 기업들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위기관리 첫 번째 원칙으로 "숨기면 작은 것도 커지고 밝히면 큰 것도 작아진다"를 꼽는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잘못 인정 심리학'의 원리를 가장 절실히 배워야 할 사람은 정치인과 기업 총수들이다."(321쪽) 저자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감추거나 축소하지 않고 '투명하고 신뢰를 주는 리더십'을 실현한 정치인으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기도 했다(322~324쪽). 핵심은 사과가 결코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이며,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미덕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326쪽) 경영의 구루(guru,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을 뜻하는 말 – 편집자 주)로 불리는 톰 피터스도 사과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진심 어린 사과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327쪽) "최고의 위기관리 언어는 바로 사과다. 더군다나 실수나 잘못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329쪽)

저자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신도의 공동생활>을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에서의 용서를 다룬다. 본회퍼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의 죄를 형제들에게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을 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다는 확신을 누가 우리에게 줄 것인가? 이 확신은 하나님이 우리의 형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형제는 자기기만의 사슬을 끊어 준다. 형제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홀로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의 실재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347~348쪽) 본회퍼는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은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으로 증명된다"고 말한다.

루터도 형제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교리 문답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라고 내가 권면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350쪽)

저자는 용서의 실천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실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에서 본다. 김대중은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전두환‧노태우 씨가 사죄하면 용서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 자서전>(삼인), 615쪽]

"대통령께서는 독실한 신자로 알려 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왜 용서하셨습니까? 그는 대통령께 사형을 선고한 사람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나는 그의 죄를 용서하지는 않았으나 한 인간으로서 그를 용서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대통령께서는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하셨는데, 그는 대통령을 세 번이나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박 대통령 기념관은 그의 좋은 측면뿐만 아니라 잘못된 측면도 보여 줄 수 있는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김대중 자서전>, 368쪽). 저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감동적인 기도문으로 끝나고 있다.

"오! 사랑하는 주여, 주의 성령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우리들이 이 땅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평화를 만드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주의 성령으로 주님의 말씀에 혁명적으로 복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441~442쪽)

용서는 인류 공동체를 '과거의 감옥'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향해 열어 놓는다(158쪽). 이 책은 이론뿐 아니라 적용‧실천 단계까지 인도하는 '영적 수상록'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이며 핵심적인 진리인지 배울 수 있다.

C. S.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용서의 가르침, 화해의 진리, 평화의 복음이 있다.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가능하다. 우리는 용서와 화해가 가져오는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화해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어떤 경우라도 용서의 삶, 화해의 삶을 실천하는 '급진적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송광택 /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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