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희생자 고 이상림 씨가 다녔던 신용산교회의 고민

▲ 60년 넘게 용산 한강로를 지켜 온 신용산교회(김건식 목사). 용산 참사로 희생된 고 이상림 씨는 이 교회를 15년 간 다닌 집사였다. (신용산교회 홈페이지 내 교회 웹진 중 캡처)
서울 용산 한강로 3가 남일당 건물 뒤편에는 60년 넘게 이 지역을 지켜 온 신용산교회(목사 김건식)가 있었다.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로 희생된 고 이상림 씨(71)는 이 교회를 약 15년간 다녔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교인의 부음을 들으면 담임목사나 부목사가 교인들과 함께 유가족을 찾아가 예배하며 위로한다. 하지만 고 이상림 씨 유가족이 다니던 교회는 참사 8개월이 지나도록 찾아오지도, 위로 예배를 해주지도 않고 있다.

담임목사는 시신이 있는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단 한 차례 방문했고, 교구 부목사와 심방 전도사가 몇 차례 이상림 씨의 아내 전재숙 씨를 찾아왔지만, 그마저도 발걸음이 끊긴 지 꽤 됐다. 신용산교회는 1월 25일 교회 주보에 고 이상림 씨의 소천 소식을 알렸지만, 유족을 찾아온 교인은 거의 없었다. 온 교인이 함께 기도할 내용을 기록하는 주보 기도 제목란에는 7월 말까지 용산 참사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신용산교회 측은 "너무 예민한 사안이라 참사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했다.

용산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신용산교회에는 두 부류의 교인이 불편한 관계에 놓였다. 건물이나 토지를 소유한 한 부류는 장차 서울을 대표할 고층 주상 복합 단지에 입주하는 꿈을 꾸거나, 재개발 사업에서 발생할 이익에 기대감이 부풀었다. 소수였지만 다른 한 부류는 수십 년간 닦아 놓은 생활 터전에서 쫓겨날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재개발 공사를 빨리 추진하길 원하는 조합 소속 교인들과, 턱없이 모자란 보상을 받고 내몰리게 된 세입자 교인들은 서로 얼굴도 바라보기 힘들 만큼 악감정이 쌓였다.

세입자들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건 교회의 원로장로가 재개발 사업을 지휘하는 조합장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교회에서 예배하고 동네 이웃으로 지내온 이가 세입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용역 직원들을 고용하고, 그들 뒤에 숨어서 대화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 원망스러웠다.

고 이상림 씨는 주변 세입자들과 힘을 모으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데 앞장섰다. 전국철거민연합과도 손을 잡았다. 세입자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해온 조합장 이춘우 장로는 고 이상림 씨에게 전화해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일에 앞장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나주지는 않았다.

▲ 신용산교회는 참사가 있기 바로 전 한강로 예배당에서 청암동으로 이전했다. 참사 후 사건 소식이 교회 주보에 한 차례 실렸지만, 고 이상림 씨의 영안실에 찾아 온 교인은 없었다. (신용산교회 홈페이지 내 교회 웹진 중 캡처)
고인은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열고 교구 목사에게 예배를 인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 장로가 세입자들을 위해 예배해주는 것에 반대해 부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길 꺼려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국 전 씨가 교회에 찾아가 다시 강하게 요청해 부목사의 인도로 예배를 했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컸다.

"이춘우 장로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예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신용산교회는 장로가 주인인 교회인가, 하나님이 주인인 교회인가." 전재숙 씨는 이런 실망감 때문에 작년 9월 무렵부터 15년 몸담은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참사가 일어난 후부터는 남편의 영정 앞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열리는 촛불 미사나 촛불 예배를 통해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전 씨는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교회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신용산교회의 표어는 '거룩, 부흥 그리고 나눔'이다. '나눔'이란 단어가 눈에 띈다. 신용산교회는 교회나 선교 단체 17곳을 지원하고 해외 선교사도 21명이나 후원한다. 정기적으로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김건식 목사는 신앙 칼럼과 설교에서 교회가 나눔에 앞장설 것을 강조한다. 지난해에는 '나눔은 성령 충만한 자의 삶의 향기'라는 책을 펴냈고, 올해도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목회와신학> 10월 호에 '성경에 나타난 절기 준수와 사회적 섬김'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산 재개발로 피해를 입은 교인 앞에서 교회는 침묵하고 있다. 교인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엇갈린 사안이기에 교회는 어느 한 편에 서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에 눈감는 교회에 실망하고 돌아선 교인 앞에서 목회자와 교회는 무력하다. 실제적인 위로를 할 수 없기에 사태가 빨리 해결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한다.

▲ 용산 재개발로 피해를 입은 교인 앞에서 '나눔'을 강조하는 신용산교회는 무력해 보인다.

고 이상림 씨를 비롯한 철거민들은 용산 4구역 재개발 조합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끌어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 조합장은 수십 년간 한동네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신앙생활을 한 교회 장로였지만 만나주지 않았다. 참사 희생자들, 특히 함께 신앙생활을 한 집사의 죽음과 8개월 넘게 고인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은 어떨까. 9월 25일 이춘우 장로를 만났다. 약 40분간 나눈 이 장로와의 대화 중 그의 발언을 요약했다.

"재개발을 시작하면서 고 이상림 집사가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과 손을 잡는 걸 보고 전화했다. 전철연과 손잡아서 이득 볼 게 없으니 협력하지 말라고 했다. 믿는 사람이 이런 일에 앞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거라고도 했다. 이 집사의 집착이 너무 강했다. 철거반과 싸우기도 하고 수배자가 되기도 했다. 그쪽에서는 영업 보상비 문제로 만나자고 했지만 똑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으니 만날 필요가 없다고 거절했다.

장로와 집사의 관계가 아닌 조합장과 세입자의 관계로 대해야 했다. 철거민 쪽과 직접적인 대화는 조합 이사를 통해 했다. 보상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정 평가 조사를 의뢰해서 나온 감정가대로 줄 뿐이다. 900세대 중 95%는 불평하지 않고 나갔다. 조합을 대표하는 조합장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화에 나설 수는 없다.

믿는 사람으로서 참사가 일어난 점에 대해서는 가슴이 아프다. 마음 같아선 영안실에 찾아가고 싶었지만 조합 이사들이 가면 해코지 당한다고 말려 사흘간 검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 방법은 너무 과격했다. 버스가 지나다니는 도로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니 안전을 우려한 경찰 입장에서는 진압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조합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보상비를 올려주는 것 말고 교회 입장에서 어떻게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직 나가지 않고 있는 교인들 때문에) 조합원들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조합 입장에서도 개발이 지체돼 손해가 크다. 빨리 문제가 정리돼서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의 입방아에 안 올랐으면 좋겠다. 이 집사 가족을 위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다. 모든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 다시 교회에서 만나 화해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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