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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듯한 복음 전도의 길, 어떻게 열 것인가
[탐독의 시간] <하나님나라의 도전> 저자 김형국 목사, 김선일 교수 대담
  • 김은석 (warmer99@newsnjoy.or.kr)
  • 승인 2019.05.17 19:38

'탐독의 시간'은 <뉴스앤조이>가 새롭게 시작하는 독서 캠페인 '탐구생활'(탐독하고 구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독서 생활) 콘텐츠입니다. 한국교회 성숙을 돕는 도서를 선정해 서평 혹은 인터뷰로 책이 다루는 주제를 깊이 있게 살핍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한국교회가 끊임없이 각종 전도 전략을 만들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전도의 길이 막혔다'는 탄식이 넘쳐 난다. 한쪽에서는 교회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전도가 가능한 시대인가'라는 회의 섞인 질문마저 튀어나온다.

이 와중에 '복음 전도'를 위한 책을 쓴 목회자가 있다. 다섯 개 교회로 분립을 앞둔 나들목교회네트워크 대표 김형국 목사다. 김 목사는 이미 6년 전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비아토르)라는 전도용 책을 쓴 바 있다. 앞서 쓴 책이 무신론자들을 전도하기 위한 친절한 전도서라면, 이번에 쓴 <하나님나라의 도전>(비아토르)은 유신론자들, "적어도 신의 존재는 막연하게나마 믿는데, 그 신이 혼란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들", "그 신이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삶에 어떤 실제적인 의미가 있는지를 질문하는 사람들"(13쪽)이 대상이다.

서문에서 "'하나님나라 복음'을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고 밝힌 김 목사는 △깨어진 세상 △자기중심성 △회복의 길 △메시아 △하나님나라 △온전한 복음 △진정한 회심 △새로운 공동체라는 주제어로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설명한다.

독자들을 향해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해 살고 싶은가'(부제)라고 도전하는 그를 전도학 전공자인 김선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와 함께 만났다. 김 교수는 몇 해 전 <전도의 유산>(SFC출판부)을 통해 결신 위주 일방적 복음 전도 방식을 지적하며, 한국교회의 전도 사역이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회심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두 시간 정도 이어진 대담에서 두 사람은 <하나님나라의 도전>이 다루는 내용과 나들목교회가 18년간 지속해 온 '찾는이 사역'을 토대로, 한국교회 복음 전도 사역의 성찰 지점을 짚어 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대담은 지난달 말,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나들목교회네트워크지원센터에서 진행했다.

김형국 목사(왼쪽)와 김선일 교수가 이 시대의 전도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선일 / 서문에서 이 책을 무신론자나 교회 밖 사람들이 아니라 유신론자, 교회 언저리에서 기독교를 탐색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교회에 실망하고 떠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밝히셨다. 평소 그런 사람들을 많이 접하시는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런 사람들의 층이 두터워졌다고 생각하시나.

김형국 / 그렇다. 일단 통계로 보듯 교인들의 교회 이탈률이 높다. 메이저 종교 중 가장 높을 것이다. 우리 교회로 수평 이동한 사람들 중 70~80%가 이전 교회를 떠나서 헤매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찾아온 경우다. 가끔 설교 중에 그런 분들을 향해 "여러분이 다녔던 교회의 아픔을 잊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그때 청중에서 확 전달되는 가슴 먹먹한 느낌이 있다. 기존에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기독교가 뭔지 모르다가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독교의 본질을 깨닫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일례로 전에 안수집사였던 분조차 우리 교회에서 다시 세례를 받았다. 과거에 세례의 의미도 모른 채 세례받은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다. 기독교가 요즘처럼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시대인데도, 선량한 크리스천들을 보고 '저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사나?' 하며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삶의 의미를 물으며 사는 사람들 중에는 막연하게나마 '기독교에 뭔가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도 꽤 있다.

'넌불비' 아닌 '찾는이',
세상과 인생, 신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

김선일 / 그런 사람들을 '찾는이'(맞춤법상 띄어 써야 하지만, 보통명사처럼 쓰이길 바라는 작명자의 바람을 수용해 붙여 쓴다 - 기자 주)라고 부르시는 것 같다. 미국에는 '구도자'로 번역되는 'Seeker'라는 용어가 있는데, 찾는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게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국 사회에서 찾는이는 누구인가 혹은 우리의 전도 대상이 누구인가를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용어라고 본다.

김형국 / 찾는이는 Seeker를 번역하려고 만든 말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에 무신론자인 작은아버지와 여행한 적이 있는데, 내게 그러셨다. "너희는 나를 넌불비라고 부르지? 넌크리스천(Non-Christian), 불신자, 비기독교인. 넌불비. 너희는 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야"라고 해서 "아니, 왜요?" 물었더니 "장애인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장애인/비장애인'이라고 호칭하는데, 너희는 너희를 가운데 놓고 나머지는 다 '넌불비'라고 부르잖아"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이름을 지어 줘야겠다고 고민하다 '찾는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세상살이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과 인생,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 정직한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세상살이에 함몰된 사람들은 신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함몰돼 있지 않으면 허무감 때문에 신을 찾는다. 공부 많이 한, 확신에 찬 무신론자들도 있다. 온갖 사상이 머릿속에 다 정리된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은 찾는이가 아니다. 자신과 인생,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하게 질문하며 답을 찾는 사람들, 그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선일 / '찾는이'라는 말의 의미를 오늘 처음 듣는다. Seeker를 좀 더 한국적으로 번역하신 걸로 생각했다. 미국에서 구도자라는 말은 상당히 기독교 배경에서 나온 말인데, 찾는이는 그걸 떠나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지닌 삶에 대한 태도, 신앙에 대한 탐구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김형국 / 구도자에는 다소 불교적 뉘앙스가 있다. 어떤 해탈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찾는이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내가 왜 사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는 사람들에게 구도자라는 호칭은 다소 맞지 않다. 헛헛함·허무함·불안감 같은 걸 갖고 사는 사람들, '다 이렇게 살아'라고 애써 자기를 위로하며 살면서도 여전히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찾는이다. 우리 주변에 굉장히 많다.

김선일 / 찾는이를 정의하고 조금 더 개념화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겠다. 그 작업을 통해 전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형국 / 2000년부터 사용한 말이다. 유학 마치고 돌아와서 사랑의교회에서 한 일이 '찾는이 사역'이었다. '찾는이와 함께하는 예배'도 그때부터 시작했다.

김선일 /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불신자·비신자, 혹은 미신자라는 말도 쓴다. 이런 용어는 요즘 유행하는 'Political Correctness'(PC,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볼 때도 문제가 있다.

김형국 / 차별적인 용어다. 호칭 자체로 "너희들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다. 나는 이분들한테 긍정적이고 격려할 수 있는 용어를 만들고 싶었다.

김선일 / 그런데 한 편에서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존 맥아더 목사 같은 경우다. 미국에서 seeker 외에도 많이 쓰는 말이 'unchurched'이다. 서구 기독교 체제가 약해지면서 교회 배경이 없는 사람들,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그들을 가리켜 unchurched라는 표현을 쓴다. 존 맥아더 목사는 그들은 'unbeliever'(믿지 않는 사람)인데 왜 unchurched라는 말을 쓰느냐며 "교회가 타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 타협이라는 거다.

김형국 / 나는 존 맥아더 목사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만나서 "너희들은 죄인이야. 너희들은 불신자야"라며 차별한 적이 있는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친구가 되셨다. 그들과 먹고 마시고 격려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스스로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 복음은 죄인들을 향한 좋은 소식인데, 그렇게 모멸감을 주고 정죄하면서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돌아오게 한다? 예수님도 쓰지 않으신 방법인데, 그렇게 하면 전도가 될까? 현대에는 안 될 거라고 본다.

김선일 / 미국에서 믿지 않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과정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죄 문제 때문에 교회를 나오거나 신앙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삶의 의미나 목적을 추구하면서 교회를 찾게 됐고, 기독교를 배우고 믿어 가는 중에 죄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답이 많이 나왔다.

김형국 /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당시 사회 상황과 현대사회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시는 시민사회로 막 나아가던 시기였다. 아직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덕적인 죄가 곳곳에 만연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면, 도덕적·사회규범적으로 걸리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시민사회가 되어서 법이 강제한다. 사람들이 죄를 많이 못 짓는다. 예전처럼 잡혀 가고 벌금 내고 구금될 만한 나쁜 짓을 많이 할 수 없다.

나는 '자기중심성'으로 죄를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죄의 양상보다 죄의 본질을 말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기중심성이 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인정하지 못해도 점차 그 말을 이해하면서 '아, 내가 진짜 죄인이구나. 그러니까 예수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구나'까지 연결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죄의식은 사라져 간다. 죄의식 갖는 것을 병리적이라고까지 여기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죄의 증상이 아니라 죄의 본질을 현대인에게 알려 줘야 한다.

김형국 목사는 '자기중심성'을 죄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죄의식 아닌 죄 이해가 필요한 시대
죽음 이후 아닌 삶의 문제로 접근해야

김선일 / 나도 죄가 무엇인지를 다시 풀어 주는 작업이 전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말을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면 반감이 생길 수 있다. 남에게 폐 안 끼치며 큰 범죄에 연루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와 무관한 말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중심성을 다룬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우리에게 임했다. 우리에게 선물이자 도전인 그 복음에 나아갈 때 가장 큰 걸림돌이 자기중심성이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김형국 /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인생과 우주의 중심이신데, 그 중심 자리에서 하나님을 제거해 버리고 자기가 딱 들어가 앉는 것이 죄다. 그렇다면 아무리 고상한 삶을 살아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내 방이지 않나? 그런데 김 교수님이 들어와서 나를 몰아내고 이 방을 마음대로 쓰면, 여기서 아무리 고상한 논문을 써 낸다고 해도 내 방을 도둑질한 것 아닌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이다. 무아無我나 자기 학대가 아니다. 자기 위치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김선일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 회복되고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조금 적극적인 차원으로도 볼 수 있겠다.

김형국 / 그렇다. 그걸 전통적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죄 사함 받고 심판을 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좀 더 신학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셔서 미래에 당할 심판을 면할 뿐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아서 당하고 있는 현재적 심판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것이 구원의 과정이다. 그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전통 신학 안에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죄 사함 받아서 심판을 면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정체성이 생기고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고,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전혀 다른 삶을 시도하게 된다"고 말이다.

"죽으면 지옥 가지 않는다"를 강조하는 것은 죽음과 고통이 일상이어서 늘 그 두려움 속에 살던 현대사회 이전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무통 주사를 맞으며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고, 죽음을 연기시키까지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오히려 현대인에게는 살면서 느끼는 고통이 더 큰 이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라고 한 것처럼, 현재적 심판을 강조하는 게 오늘날 복음 전도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죽음 이후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현대인은 삶의 문제를 더 크게 느낀다는 거다.

김선일 / 그래서 찾는이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신앙으로 양육하는 데 '풍성한 삶'이라는 키워드를 잡은 것인가.

김형국 / 그렇다. 처음부터 하나님나라를 부각하면 사람들이 하나님나라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용은 하나님나라 신학을 붙잡지만, 하나님나라를 빼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대신 '풍성한 삶'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그 용어를 썼을 때는 되게 풍성한 느낌이었는데(웃음) 요즘은 너무 많은 곳에서 '풍성한'이라는 말을 쓴다. 별로 풍성한 느낌이 안 든다. 물질적으로도 너무 풍성한 세상이 되었고….

김선일 / 미로슬라브 볼프가 'Human Flourishing'이라는 말을 했는데, 번역하기 참 어려운 말이다. 사전적으로 번역하면 '번영'·'번성'인데, 번영신학이나 물질적 번성 같은 것들과 혼동하기 쉽다. 그런데 이 말을 예수님도 하셨다(요 10:20).

김형국 / 오늘날 전도가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온갖 좋은 개념들이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데 있다. 비즈니스와 광고 영역에서 많은 언어를 천박하게 바꿔 버렸다. 기독교인들이 적절하게 사용할 언어를 찾기가 참 어렵다.

김선일 / 그런 언어들을 어떻게 기독교가 재정의하고 재해석해 줄 수 있을까. 책 후반부에 공동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김형국 / 나는 그것밖에 답이 없다고 본다. 포스트모던은 결국 '이게 진짜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합리적으로는 진짜임을 보여 줄 방법이 없다. 합리적으로 토론해 이겨도 동의 안 하면 그만이니까. 기독교가 합리적 변증을 많이 해 왔다. 그런데 지금 필요한 것은 여기 진짜가 있다고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 삶을 통해서밖에 보여 줄 방법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동체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게 하셨다. 성경에 명약관화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고 살아 내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오늘날 전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내가 <하나님나라의 도전>을 써서 복음을 전하지만, 이 복음의 내용을 살아 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나들목에서는 전도가 계속 일어난다. 공동체가 없으면 착한 행동만으로는 안 된다.

김선일 / 변증만으로는 전도가 안 된다?

김형국 / 안 된다. 사람들이 "그래, 맞는 말 같아. 그런데 예수가 부활했다는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묻게 된다. "그게 너랑 상관 있어"라고 답하려면, "내 인생에는 이렇게 의미가 있거든!" 하면서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다음부터 복음에 빨려드는 길이 열린다.

김선일 교수는 여러 전도학자들의 말을 빌려 김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변증보다 좋은 전도,
공동체와 삶으로 보여 주는 복음

김선일 / 레슬리 뉴비긴이 "The Congregation as Hermeneutic of the Gospel"(복음의 해석자로서의 회중)이라는 말을 했다. 보스턴대학교의 브라이언 스톤이라는 전도학자가 <Evangelism After Christendom(기독교 국가 시대 이후의 전도)>(2007)이라는 책을 썼다. 전도에 대해 목사님과 같은 논지로 주장을 펼친다. 그러니까 복음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하나의 공동체로서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알려 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교회론적 전도를 강조한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의 표지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에 왔을 때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들목교회는 예배도 중요시하지만 가정 교회 사역도 중요하게 다루는 것으로 안다. 이런 것들이 공동체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기능을 하는가.

김형국 / 만약 일요일에 한 번 같이 예배하는 것이 공동체라면, 웬만한 건 다 공동체가 된다. 영화 같이 보면 영화관 공동체, 지하철을 같이 타면 지하철 공동체다. 함께 영적으로 예배하지만, 몰입도는 영화 보는 것보다 떨어진다? 지하철 타고 한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방향성이 떨어진다?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사람들 간의 인격적 관계다. 공동체 속에서 정말 사랑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며, 'Be myself'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동체인가. 진리이신 예수를 함께 따라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다음에 나타나는 건 성장과 변화다. 단지 편하게 신세타령하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누구도 이런 공동체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함께 성장해 가면서 세상에 선한 일들을 시도하기 시작한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할 거다.

김선일 /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든다. 한국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갖는 것 같다. 아까 'Be myself'라고 하셨는데, 한국 사회에 집단주의가 강하다 보니 그것을 탈피하거나 개별성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경향도 강하다. 남에게 강요받거나 어떤 대의에 종속되지 않는 인생, 자기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현대인에게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자기중심성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과정을 대면할 수밖에 없다. 진실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에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이가 많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김형국 / 공동체의 성숙도가 중요한 요소다.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고독감, 외로움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혼밥, 혼술을 즐긴다고 하지 않나. 우리 사회에 외로움을 경험하지 않게 하는 기제가 많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그 기제들은 표면적 외로움을 달래 줄 뿐이다. 속으로는 외로움이 더 깊어진다. 자신이 진짜 외롭다는 걸 깨달았을 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 친구도 부모도 누구도 없다.

극단적 외로움을 느낄 때 나를 지배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성숙한 공동체를 만나면,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특히 자기중심성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공동체에 자기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 결국 자기중심성 때문이고, 그게 인간의 근본 문제임을 알게 된다.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이걸 해결하려 하셨고,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럴 때 사람의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공동체가 단단해지면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까지 연결되고 더 큰 가능성이 열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회현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현대인들은 양가적 감정을 지니고 있다. 혼자서 독립성을 누리려는 것과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감정이 공존한다. 그 두 가지 감정을 다 만져 줄 수 있는 게 기독교 공동체이다.

김선일 / 현대인들이 왈츠를 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다가가지만, 만나면 상처를 받고 다시 멀어진다는 것이다. 나들목교회 가정 교회에서도, 리더나 주 멤버들이 사람들의 그런 양가적 감정을 이해하며 기다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먼저 다가가기도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김형국 / 교회 초기에는 어려웠다. 가정 교회 목자들이 그런 경험 없이 리더가 됐으니까. 이제 교회 역사가 20년쯤 되고 보니 그런 과정을 다 통과한 이들이 목자가 된다. 기대를 가지고 들어왔다 부딪치고 '인간관계는 믿을 수 없어', '공동체 같은 건 없어' 하며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자기를 돌볼 줄 알고, 다른 사람도 돌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가정 교회 목자까지 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과거에 비해 목자들의 성숙도가 훨씬 높아진 걸 느낀다.

김선일 / 의도적으로 그런 과정을 염두해 둔 건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런 과정을 거친 건가.

김형국 / 사람이 성장하는 데는 시간, 프로그램, 좋은 토양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본보기다. 초기 7년까지는 자료도 만들고 토양도 만들었지만 좋은 본이 없었다. 그러다 본이 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더 좋은 목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리더를 기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편차야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들목 공동체가 지속될수록 심화될 것이다.

지금 15~20년 된 목자들은 목자의 삶을 내려놓을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모두 육체적 한계가 올 때까지는 목자로 섬기겠다고 한다. 가정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게 그들 인생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50대인 사람들도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할 거다.

김선일 / 가정 교회를 하는 많은 교회를 보니, 리더들의 헌신 위에 소정의 열매를 맺기도 하지만, 탈진 현상이 많이 일어나더라. 탈진한 리더들이 더는 못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데 나들목교회는 다른 양상인 것 같다.

김형국 / 우리도 지친다.(웃음) 사람을 돌보는 데 안 지칠 수 있나. 가정 교회를 하는 다른 교회들과 나들목교회 가정 교회의 60% 정도는 공통된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다. 나들목교회 가족들은 하나님나라를 상당히 깊이 이해했다. 하나님나라를 현재적으로 살아 내는 공동체가 가정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정 교회 목자들이 스스로를 목사의 보조자가 아니라 제사장으로 여기는 의식이 상당히 높다. 심한 분들은 자기 가정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믿는다. 자기 가정 교회를 살리는 게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돌보는 면에서 어지간한 목회자보다 나은 사람이 많다.

그들은 가정 교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이들도 지친다. 그럼에도 그게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이고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나라를 정말 내면화하면 교회론이 바뀐다. 목사의 보조자가 아니라 사역의 동역자라는 자의식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기 인생이 되는 거다. 자기 인생이니 피곤하게 일해서 좋은 열매 맺는 게 당연해진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많은 교회가 가정 교회를 관리 모드나 기계론적 구조 아래 운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획일적이고 주도성과 창의성이 떨어진다. 피로도가 자꾸 높아진다. 주도할 수 없으면 창의성이 드러나기 어렵다. 중앙에서 전부 관리하면 개인이 별로 성장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목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김형국 목사는 교회 리더들이 목사의 보조자가 아니라 동역자로 사역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선일 / 중요한 지적이다. 가정 교회 같은 교회 안 작은 공동체가 하나님나라의 에이전트라는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신학적 비전을 갖고 스스로 그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겨야 한다. 목회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헌신하는 리더를 잘 돌보고 길러 내야 한다고 본다.

나들목교회는 삶의 모범과 감동을 통해 사람들을 공동체나 예배로 데려오도록 하는 게 다인가. 아니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복음을 제시하도록 훈련도 하는가.

김형국 / 오랫동안 사용해 온 <풍성한 삶의 기초>(비아토르)라는 제자 훈련용 책이 있다. 이 책으로 최소 13주간 일대일 제자 훈련을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들목교회가 분교하기 전인 현재 450명이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도전>에 앞서 초기 10년 동안 복음을 전했던 가장 보편적 내용으로 전도 책자인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를 썼는데, 지난해만 350명이 이걸 가지고 나들목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일대일로 복음을 제시하는 제자 훈련을 진행했다.

김선일 / 이 내용을 다 숙지하고 진행하는 건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복음 전도'라고 하면 떠올리는 방식은 사영리나 다리 예화, 전도 폭발 같이 기독교의 교리를 간략화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김형국 / 제자 훈련을 인도하는 사람이 공부를 해서 가르쳐야 하면 사랑하기는 힘들다. 설득해야 하고, 지배하려 들기도 한다. 전도도 그렇고 양육도 그렇고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복음의 내용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 다른 것은 사랑하는 관계다. 나는 복음 제시를 선명하게 잘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다 만날 수는 없다. 일반 교인들은 전자를 잘 못한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외워서 하게 되고 전달력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텍스트와 영상으로 자료를 만들었다. 일대일로 만나 가르치지 말고 기초 자료와 함께 영상을 보면서 "이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하며 나눔을 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회심이 일어나고 양육도 잘되더라.

'복음 전도'와 '사회변혁'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김선일 / 책과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 혹은 하나님나라 신학을 이야기하는 그룹에서는 공공신학이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 등이 많이 강조되는 것과 달리 전도는 거의 강조되지 않는다. 물론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기존 전도 방식에 대해 비판적 진단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목사님은 내가 알기로 두 가지를 같이 강조하는 유일한 분이다. 한국교회 공적 책임이나 하나님나라 신학 운동에 있어서 전도가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김형국 / 한때 한국교회는 사회적 책임은 무시한 채 전도만 강조했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약간 시계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도를 하지 않는 거라고 본다. 전도가 왜 중요한지 논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전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음주의가 지닌 여러 요소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 전도다. 복음주의자가 근본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과 다른 것은 복음으로 전도만 하는 게 아니라 복음의 총체성을 인식하고 역사와 사회, 문화에도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보는 점이다. 그런데 복음 전도를 빼놓고 후자만 강조한다? 나는 그런 분들은 복음주의자가 아니라 시민운동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 하는 일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박수를 쳐 드린다. 다만 그걸 하나님나라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나님나라는 복음 전도가 논리적으로 더 중요하다. 복음주의자가 전도를 안 한다? 자기 삶을 통해 누군가를 회심하도록 하는 일에 의도적으로 마음과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있다면 복음주의자가 아니다. 그건 은사의 문제가 아니라 명령의 문제다. 주님에 대한 충성의 문제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 하려고 하신 일은 공공성 확대가 아니다. 그건 여건이 되어야 할 수 있다. 공공성 같은 게 논의조차 될 수 없는 독재국가 같은 데에서도 목숨 걸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복음 전도다. 하나님나라에서 복음 전도를 빼면 기둥 하나가 빠지는 것이다.

김선일 / 총체적 선교를 강조하는 저명한 신학자 故 데이비드 보쉬가 사석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회가 세상에서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몸이라면, 전도는 심장과 같다.' 몸의 지체들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듯, 교회가 인권 운동, 환경 운동, 정의 사역 다 할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은 심장으로부터 생명이 공급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는 심장과 같다고.

김형국 / 하나님나라와 복음의 관계를 설명할 때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복음은 심장이고 하나님나라는 척추다. 심장이 없으면 척추가 똑바로 서 있어도 죽은 것이다. 복음만 있으면 심장은 뛰지만 척추가 무너져서 누워 있는 것이다. 살아는 있으나 아무런 영향을 못 끼치고 혼자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과 하나님나라는 둘 다 놓칠 수 없다. 로잔언약에서 '사회참여'와 '복음 전도' 중에 논리적 우선성은 복음에 있다고 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김선일 / 윌리엄 에이브러햄이라고 하는 학자는 <전도의 논리>(한국전도학연구소)에서 사회적 변화, 사회변혁이 더 본질이라고 쓰기도 했다. 우리가 전도가 되어 하나님나라의 사람으로 바뀌면 반드시 삶에서 사회적 변화가 일아나고 하나님의 선한 통치를 구현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복음 전도가 오히려 우리의 사회적 역할, 사회적 삶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김형국 /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강조하면 도리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복음 전도 없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행동은 하나님의 뜻인가'라는.

김선일 /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복음 전도만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강조하려고 한 말인 것 같다.

김형국 / 하나님나라 신학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복음은 복음 전도로 끝날 수가 없다. 하나님나라 신학 자체가 하나님나라의 현재성, "하나님나라가 시작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시작된 하나님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나라 신학이 없으면, "복음을 받아들였어? 죽으면 구원받아"에서 그친다. 그런데 하나님나라 신학을 제대로 배우면, "복음을 받아들였어? 그러면 하나님나라를 살아 내야지"로 이어진다. 사회변혁적인 것은 당연히 삶의 결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도 신학의 문제라고 본다.

대담 내내 이어진 김 목사의 말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선일 / 그렇다면 하나님나라 복음에 기반한 전도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말씀하신 걸 종합해 보면 내세적 천국만 강조하는 전도는 하나님나라 복음 전도가 아닐 것이고,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회심하지 않은 채 사회적·제도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역도 하나님나라 복음 전도가 아니겠다.

김형국 /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복 받고 잘산다고 하는 것도 하나님나라 복음 전도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도 잘살고 죽은 다음에도 천당까지 가겠다? 진짜 욕심이 많은 거다.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전도는 진정한 전도라고 부르기 힘들다.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하나님나라 복음에서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이 주로 하나님나라 통치를 강조하는데, 하나님나라의 통치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있었다.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나라 복음에서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악하고 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를 강조할수록 깨어진 세상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새로 쓴 <하나님나라의 도전>에서도 나는 "깨어진 세상에 계속 살 건가, 여기 하나님나라로 넘어올 건가" 계속 묻는다. 하나님나라가 빠진 복음 전도는 끊임없이 개인의 죄에서 회복되는 것, 개인이 구원받는 것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전도하면 "당신도 깨어진 세상의 한 부분이였기 때문에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이면 자격 없는 당신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 그러니 이제 깨어진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백성답게 살자. 그런데 고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인내해야 한다. 혼자는 못한다.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 같이 가자"는 식으로 세상 전체를 놓고 이야기하게 된다.

하나님나라 없는 복음 전도와 하나님나라의 복음 전도는 정말 다르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제대로 설명해 주면 사람들 눈빛이 달라진다. 진지해진다. '깨어진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와 같은 생각으로 발전된다.

깨어진 세상을 직면하라

김선일 / 깨어진 세상은 앞서 이야기 나눈 죄에 대한 다른 표현일 수도 있겠다.

김형국 / 그렇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일어나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총체적으로 깨어진 세상이라는 말이다.

김선일 /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게 깨어진 세상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겠다.

김형국 / 그렇다. 개인이 아무리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해도 깨어진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이미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 세상을 망가뜨리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지 않나.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도 공정 무역 제품 일부를 빼고는 다 착취 구조 안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거다.

사회과학 인식을 조금만 높이면 우리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악의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를 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내가 좀 덜 망쳐야지' 하며 살고 있다.

김선일 / 오늘날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간 사회에 얼마나 많은 차별이 일어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권력 관계가 작동되는지 정교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 기득권들의 저항도 있다. 기독교가 그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사회운동이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대치 전선을 세우기까지 한다. 오히려 우리가 인간의 실존을 더 드러내고 거기서 복음을 가지고 만나서 대화할 여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김형국 / 이 깨어진 세상을 고발하고 분석해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원래 기독교에서 했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기독교는 피안의 세계만 추구한 채 깨어진 세상이 얼마나 인간성을 망가뜨리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원래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일을 인문학자, 사회과학자가 다 했다. 너무 앞질러 갔기 때문에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

그들의 분석과 주장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기대고 도움을 받아 깨어진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몇 주 전 설교에서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득권 세력이 되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게 하나님이 복 주시는 거라고 외치는 교회에서는 당연히 불온하다고 여기며 거절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교회에 사장·교수·총리·국회의원 다 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되는 거다"고 말할 것이다.

김선일 교수는 교회가 사회운동에 대해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움직임으로 규정하거나 적대시하지 말고, 이들과 대화할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선일 / 굉장히 보수적인 교회들은 피안적 세계관을 가지고 내세에 머물 자리 하나 보장받는 방식으로 복음 전도를 해 왔다. 그런데 오늘 대담에서 복음 전도란, 깨어진 세상에 대한 '하나님나라의 도전'이고,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공동체로서 보여 주는 것이 전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많은 복음주의자가 공공성이나 사회적 양심을 자각하고 실천하려 하고 있는데, 복음 전도가 함께 갈 수 있는 지점이 보이는 것 같다.

김형국 / 분리하지 말고 함께 가면 좋겠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는 과정은 정말 다양하고 신비하다. 마치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머무신 것처럼 섬세하게 만지시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국은 깨어진 세상에 공공의 선을 만드는 데까지 연결된다. 개인의 영혼에서 미시적으로 일어난 일들이 사회 속에서 거시적으로 연결되는 것까지 다 이야기하는 게 복음 전도다. 초기에는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해야겠지만 하나님나라를 살아 내자면 당연히 거시적인 부분까지 가게 된다.

김선일 /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자기 경험과 이야기를 계속 축적하면서, 사실 자신이 더 큰 그림 속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다?

김형국 / 그렇다. 그럴 때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의미도 찾더라.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내가 한 조각이구나' 깨달을 때 삶의 의미도 발견하는 것이다.

김선일 / 지금은 내세를 중심에 놓고 영혼 구원만 강조하는 전도로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못 미치게 됐다. 삶의 번영,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복음 전도도 더 이상 되지 않는다. 그런데 과거의 복음 전도 방식이 문제인 것이지, 복음 전도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이제 복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본다. 아직 한국교회가 그 작업을 못 하고 있다.

복음을 새롭고 깊이 발견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님나라 복음'이라는, 우리 인생을 둘러싼 더 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가지고 나를 다시 보고,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변화된 삶을 경험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종종 언급하는 조사 결과인데, OECD 36개국 중에서 한국이 '공동체 지수', '사회 유대감 지수'가 꼴찌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 시민 3명 중 1명이 극도의 고립감을 느낀다고 한다. 기존 교회 모습으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이웃이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여유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못 가진다.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것들이 기독교인의 중요한 삶의 습관이 된다면, 복음 전도의 길이 다양한 영역에서 열려 있다고 본다.

김형국 / 그렇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오늘 다루지는 않았지만 복음 전도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예배다. 찾는이들이 와서 함께할 수 있는 예배. 이게 앞서 다룬 선명한 하나님나라 복음 제시와 공동체와 함께 삼각 구도를 형성하면 아주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하나님나라복음DNA네트워크에서 '찾는이를 위한 전도 예배 세미나'를 연다. 현대 도시 사회 속에서 전도 예배를 어떻게 기획할 것인지 나들목교회가 지난 18년간 발전시켜 온 '찾는이와 함께하는 예배'를 기반으로 함께 공부할 예정이다.

이번 대담은 <하나님나라의 도전> 출간을 계기로 성사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선일 / 앞서 복음 전도에 관해 쓰신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와 <하나님나라의 도전>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김형국 /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에는 나들목교회가 세워진 다음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온 가장 보편적 복음 전도 방법이 담겼다. 책으로 나오기 전에 그 방법으로 300~400명이 회심했다. 복음 전도에 관한 책 중에 복음 전도 전 단계(Pre-evangelism)를 다룬 책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세 장에서 복음 전 단계, 즉 사람들이 보편적인 복음을 듣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으로 예수님을 다시 영접했다. 지금은 육해공군에서 자대 배치를 받은 군인들을 위해 쓰이고 있다. 몇몇 부대에서 군인들 스스로 이 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 회심하는 일이 생겼다. 군목들이 놀라워했다. 실제로 군대 안에서 회심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군인용 워크북을 만들었다. 일반인용도 있다.

하지만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를 써 놓고서 늘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복음 전도는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했다. 직설적인 복음 전도 책을 쓰고 싶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굉장히 거칠고 담대했다. 예수님이 전한 방식처럼 대놓고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는 무신론자도 읽을 수 있게 썼지만, <하나님나라의 도전>은 유신론자들이 읽어야 한다.

신이 지금 뭐하고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가열차게 일하고 있다고 답하는 책이 <하나님나라의 도전>이다. 하나님 편에 설 건지, 하나님 반대편에서 살다 망할 건지 결정하라고 도전하는 책이다. 결정하고 나면, 그다음 연결되는 곳이 하나님나라 공동체다. 전도하고 공동체로 연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 두 가지 작업이 이루어진 후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풍성한 삶의 첫걸음>(비아토르)도 썼다.

김선일 / 사실 'Nominal Christian'이라고 하는, 명목상 신자도 교회 안에 굉장히 많다. 기독교 문화에 익숙하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누구인지, 뭐하고 계신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그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미국에는 교회 출석자 중 40% 이상이 명목상 신자라고 한다. 한국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 신자들에게도 도전이 되는 내용이다.

김형국 /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 자신이 유신론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신론자에 가까운 사람이 많다. 그런 명목적 신자들은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부터 읽는 게 낫다. 그다음에 좀 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하나님나라의 도전>을 읽는 게 좋겠다. 어떤 면에서 이 두 책은 한 쌍이다.

김선일 / 이렇게 전도에 대해 각각 다르게 접근한 책을 쓰면서 한국교회에 대해 어떤 기대감을 품었는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달라.

김형국 /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복음 전도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말이 증언이었다. 오늘날도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사회는 초대교회 때보다 인격적인 접촉과 함께 살아가는 맥락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 인격적이고 자연스러운 복음 전도가 어려워졌다. 거기에 기독교가 제도화하고, 성과 속을 나누는 이원론에 빠지고, 많은 교회는 전도를 프로그램화하고 교인 숫자 늘리는 방편으로 삼아 버렸다.

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일터와 삶터에서 만나는 '찾는이'들과 진실한 질문‧답변을 주고받으면서 메시아이신 예수를 전하고, 그들을 자신의 공동체에 초대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래서 깨어진 세상을 함께 회복해 나가는 삶에 많은 이들이 초대되면 좋겠다. 이러한 소중한 일을 위해 내가 쓴 책과 그 내용을 담은 영상 강의가 잘 사용되면 좋겠다.

이 자료들을 디딤돌 삼아, 설득하려 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찾는이' 친구의 안내자가 되어서, 그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면 좋겠다. 이런 진정성 있는 나눔이 참된 전도이고, 오늘날 한국교회를 본질적으로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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