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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난민을 맞으려면
[서평] <교회, 난민을 품다>(토기장이)
  • 크리스찬북뉴스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3.20 16:12

<교회, 난민을 품다 - 두려움, 편견, 무지를 넘어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는 길> / 스티븐 바우만, 매튜 소렌스, 이쌈 스메어 지음 / 김종대 옮김 / 토기장이 펴냄 / 268쪽 / 1만 4000원

'난민', 어색하고 낯선 존재다. 난민들은 외국 TV 채널에서만 볼 수 있는 낯선 존재다. 난민 유입은 우리와 상관이 없고,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일들로 치부됐다. 그런데 난민이 우리 삶 깊이 파고들었다.

굳이 난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은 흔하다. '외국인', 이 단어도 사람에 따라 틀린 단어가 되기도 한다. 외국인으로 지칭되나 엄연한 한국 사람이자 대한민국 사람인 경우도 있다. 어색하지만 한국어를 하고 주민등록증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로 부른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다.

난민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직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난민이 들어왔다는 것은 현실이다. 2018년 6월, 대한민국에서 8000km나 떨어진 예멘이라는 나라에서 난민들이 들어와 제주에 정착했다. 작년 초, 누적 난민 신청자는 4만 명이 넘었지만 체류 허가를 받은 난민은 839명뿐이었다.

한국교회의 보수적 교인이자 목회자인 나에게 난민 혐오 발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현재 가입된 기독교 카톡방에도 이슬람 난민을 향한 비방과 혐오 메시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난민은 정말 나쁜 사람들일까. 그들은 이슬람이 위장해 들여보낸 이슬람을 포교하려는 자들일까. 교회가 그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옳을까. 이제 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난민은 일상과 동떨어진, 부유하는 단어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단어가 아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다. 임시정부를 세운 사람들은 누굴까.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던 대한제국 백성이었다. 즉 그들은 난민이었다. 현대 난민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그들은 난민이었다. 난민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다.

"난민難民
1.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
2. 가난하여 생활이 어려운 사람."

난민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의미한다. 유엔은 1950년 12월 전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한국을 구호하기 위해 유엔한국재건단을 구성한다. 이것이 유엔난민기구 모태가 된 운크라(UN Korea Reconstruction Agency·UNKRA)다. 한국은 1992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 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난민의 나라였고, 지금도 난민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 난민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탈북민 역시 난민이다. 2018년 유엔난민기구가 집계한 세계 난민은 무려 6850만 명이나 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숫자다. 특히 탈북자나 한민족이 아닌 난민이 우리나라에 상주해 있고 더 늘어나는 추세다. 난민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며, 낯선 세계 풍경도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에 출간한 <교회, 난민을 품다 - 두려움, 편견, 무지를 넘어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는 길>(토기장이)는 지금까지 없었던 책이며, 한국교회가 난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것인지 잘 보여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지극히 성경적이면서 실용적이다. 공저자 스티븐 바우만, 매튜 소렌스, 이쌈 스메어는 난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기독교 구호단체 월드릴리프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적 관점에서 난민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야기하며, 실제 난민이 겪은 체험과 삶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공저자 이쌈 스메어도 난민이었다. '예수 또한 난민이었다'는 도발적 제목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밝혀 주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다음의 문장은 난민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강하고, 그들에 대한 교회의 고민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난민과 그들의 국내 정착에 관한 논의는 교회 또한 갈라지게 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본인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의무와 약자를 따뜻하게 섬겨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이 갈등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 세대에 줄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22쪽)

난민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난민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신앙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 역사는 난민 역사이기도 하다. 아브라함도 난민이었고, 야곱의 가족들도 난민으로서 애굽에 내려갔다. 예수님 가족들도 현대적 난민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역시 난민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 난민으로 살아가야 했다. 다윗은 어떤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에 망명해 살아야 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본인이 난민이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난민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40쪽).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예수님은 이웃 개념을 재해석했을 뿐 아니라 "너도 가서 행하라" 말씀하신다. 성경은 "난민을 포함한 모든 인류는 각자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존재"(44쪽)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우리 자신이 난민이 되어 고향과 조국을 떠나게 된다면, 우리가 피난 가는 나라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고, 적응을 도와주고, 상실의 아픔을 공해 주며 함께 울어 주기를 바랄 것"(49쪽)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난민은 어떤가. 우리가 기대한 대로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월드릴리프는 복음주의 단체다. 하지만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지 인간적 도움으로 그쳐야 할까. 아니다. 난민을 환영하고 섬겨야 한다. 그와 더불어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야 한다. 선교학자 티모시 테넌트 말대로 그들은 절대 위협적 존재가 아니며, 그렇게 봐서도 안 된다. 오히려 선교 대상이며, 하나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로 마땅히 대해 주어야 한다.

부탄에서 태어나 난민이 된 핀갈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후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을 환대하고, 핀갈라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경험"(75쪽)을 하게 된다. 그렇다. 환대는 고향을 선물하는 것이다. 난민에서 유엔평화유지군 통역사가 된 콤 응지바레가 이야기는 한 난민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그의 조국 부룬디는 수십 년간 두 민족의 갈등으로 신음했다. 평화유지군에 지원하자, 반군들이 그를 납치해 고문하고 심문했다. 반군은 평화유지군을 공격했고 콤은 풀려났다.

그러나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에티오피아 난민촌에 정착한다. 우연히 난민 캠프 안의 교회를 나가게 됐고, 고통을 통해 신앙이 깊어갔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고, 월드릴리프에 참여해 또 다른 난민들을 돕는 자가 됐다. 그는 새로운 난민들에게 하나님을 증언하며, 난민들을 도와 달라고 호소한다. 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고통받는 세계 각국에 있는 난민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제 사연이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은 스토리를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거든요. 예수님도 이야기를 통해 설교하셨어요. 저는 스토리가 가진 힘이 매우 크다고 믿습니다." (78쪽)

나는 스토리가 가진 힘을 믿는다. 한 난민의 스토리는 그리스도인의 스토리이며,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속사의 대하드라마 한 부분이기도 하다. 교회가 어떻게 난민들을 돕는지에 따라 그들의 스토리가 해피 엔딩이 될 수도 있고, 새드 엔딩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성경에서 말하는 난민 개념을 넘어, 교회가 어떻게 난민을 도울 수 있는지도 알려 준다. 한국 정서와 약간 차이가 있지만 배울 점이 적지 않다. 7장 '지금이 바로 교회가 나설 때'에서는 교회가 난민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소통을 위한 언어교육, 법률적 문제 해결, 직장 소개 등 다양한 필요를 알려 준다. 8장에서는 난민이 가진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소개한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계'이다. 관계 맺기는 난민들 삶의 맥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실하고 신실한 관계는 결국 그들 마음을 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제자 삼는 소명을 감당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난민 가정에게는 그들과 동행하며 새로운 삶의 여정을 이끌어 주는 미국인 가정을 알아 가는 것보다 더 나은 치유 경험은 없다고 본다. 거절과 편협함과 수치와 불명예가 아닌, 사랑과 인내와 존중과 환영으로 난민을 대할 때, 과거의 상처들은 치유받고 스스로 친절과 존엄으로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그들도 배운다." (180쪽)

한국교회 난민 스토리는 이제 시작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난민은 위협적 존재로 보지 말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나라를 확장할 기회로 봐야 한다. 난민 이야기는 이제 첫 장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은 앞으로 쓰일 수많은 난민 관련 서적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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