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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무엇인지 웬만큼 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서평] 로완 윌리엄스 <복음을 읽다>(비아)
  • 정다운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1.15 18:10

"비밀이란 단순히 무언가에 대해 모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이 우리에게 가장 큰 비밀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가까이할수록 우리가 그것을 잘 알게 될수록 더 비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비밀은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알아 갈수록 그 사람에 대한 비밀이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더 비밀스러워질 뿐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가까워질 때 모든 비밀은 궁극적인 깊이에 이르게 됩니다." - 디트리히 본회퍼

"우리에게 가장 큰 비밀은" 실은 멀리 있는 누군가이기보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알게 될수록 그 사랑은 비밀이 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기쁨과 아픔이 그 사랑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이라는 뜻에서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깊이 사랑할수록 실은 그 사랑의 신비에, 서로의 아름다움에 더욱 놀라워하게 된다는 뜻에서도 그렇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라는 존재를 향한, 사랑을 향한 경이를 잃지 않도록, 그 신비를 더 깊이 인정하도록 해 준다. 그렇게, 깊은 사랑은 언제나 더 깊은 비밀로 우리를 이끈다. 어쩌면, 깊은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복음을 읽다>(비아)는 '침묵의 복음서', '비밀의 복음서', 숱한 오해를 받아 온 '오해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마가복음)에 대한 로완 윌리엄스의 해설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의 다른 책, 이를테면 <신뢰하는 삶>,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에서 발휘되었던 문학·역사·신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온갖 문학 작품을 현란하리만치 인용하던 <심판대에 선 그리스도>와 달리, <복음을 읽다>에서는 문학 작품이 인용되지 않거나 설사 언급되더라도 아주 간략하게 언급된다. 이는 이 책이 기본적으로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마가복음이라는 텍스트에 우리를 온전히 집중시키려는 로완 윌리엄스의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이 마가복음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찬찬히 읽는 곳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주었으면 했다. 때문에 여느 마가복음 해설서처럼 현대 성서학의 문제들을 다루면서도,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분량만을 할애한다.

<복음을 읽다> / 로완 윌리엄스 지음 / 김병준 옮김 / 비아 펴냄 / 156쪽 / 1만 1000원. 사진 제공 비아

로완 윌리엄스에 따르면, 마가복음서가 품고 있는 각종 난제들, 비밀들은 실은 '복음'의 '시작'을 '선포'할 때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오늘날 누군가가 '체제 전환'을 선포했다는, 기쁜 소식이 시작되었다는('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소문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체제 전환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한, 2000년 전 그 소식을 들었던 이들이나 우리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체제 전환' 소식을, 이 세상을 다스리는 힘, 권력을 가진 세력이 바뀌리라는 (정권이 바뀌고, 식민 지배를 벗어나리라는) 선포로 여겼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문제(질병, 빵의 부족 같은 문제)가 해결되는 마법으로 생각했고, 내 이기적 욕망을 충족해 줄 길이 열렸다는 소식으로 이해했다. 복음은 본질상 우리의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오늘 그 소식을 듣는 우리가 그렇듯, 2000년 전 그들도 그들의 상상력과 이해가 닿는 범위 안에서 그 소식을 받아들였다. (여느 근대 이후 학자들은 이를 종종 간과하며 '복음'의 근원적 낯섦을 '친숙함'으로 대체하려 하지만, 실은 로완 윌리엄스의 지적대로 복음은 '그때, 거기'에서나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나 언제나 모두에게 낯선 것이다.) 마가복음 속 예수는 그 모든 오해들 속에서, 우리의 한계 투성이 언어와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섣불리 말해질 수 없는' 그 비밀을, 복음을 드러내 보여 줘야 했다.

그렇기에 마가는 '기쁜 소식'을 진정 기쁜 소식으로 전하기 위해, 체제 전환이 우리의 상상을 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해 고투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본회퍼식으로 풀면) "비밀을 존중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로완 윌리엄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쁜 소식을 대하는 첫 시작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마가복음 속 예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친히 '드러내려' 이 땅에 왔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감추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우리식으로 자신을 해석하고 가두려는 시도에서 자신을 '감추며' 그렇게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낸다'. 참된 변혁이란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강력한 힘으로 단번에 권력 체계가(이편에서 저편으로) 바뀌는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아주 가까운 일상에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어야만 함을 그는 가르치고 보여 준다. 오로지 '자신의' 문제 해결만을 원하는 우리를 향해, 그는 자신을 내어 줬다. 궁극적인 모든 변화의 열쇠는 관계, 즉 그와 우리가 맺는 관계임을 밝히며, 문제 해결 이전에 '신뢰'를 요구한다. 마가복음 속 예수는 그렇게 끝내 그를 길들이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로부터 자신을 '감추다가', 마침내 우리의 그 모든 시도가 끝나는 자리, 그를 우리 식으로 재단하고 오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심판대에 선 자리에서 자신을 '그리스도로 드러낸다'. 로완 윌리엄스는 이 모두를 진정한 기쁜 소식, 우리의 이해와 상상과 욕망을 넘어선 체제 전환이 일어났음을 알리고자 한 마가의 시도로 읽어 낸다.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갑작스럽게 체제 전환을 선포하며, 시종일관 비밀스러운 예수를 묘사하며, 그리고 갑작스럽게 부활 사건을 매듭지으며, 이 소식의 '낯섦'을 일깨웠다. 몇 마디 교리적 설명에, 몇 번의 예배 참석에, 몇 년간의 이른바 '신앙생활'을 통해, 이제 웬만큼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하는 이들을 향해 마가는, 그리고 마가를 읽는 로완 윌리엄스는 경고한다. 2000년 전 예수를 직접 대면했던 그들에게도 복음은 생경하고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고.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언제까지나 신비이며 '비밀'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애써 밝히려 하면 할수록 그 기쁜 소식이 얼마나 큰 신비인지만이 드러날 것이기에, 그 놀라움은 사그라지지 않고 더 커지고 깊어지기만 할 것이라고. 하느님이, 우리가 경외하고 두려워해 마땅한 존재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울고 웃으시고, 자신을 내어 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영원한 체제 전환이 시작되었고, 이미 그 일이 일어났다는 선포의 무게를 헤아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그렇기에 이 복음의 '시작'에 온당한 반응이란, 충격이며 곤혹스러움이고 궁극적으로는 경이 속에 드리는 찬미일 수밖에 없다고.

<복음을 읽다>의 미덕은 어쩌면 마가복음의 미덕과 같다. 로완 윌리엄스는 우리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신비, 이 "길들여지지 않는 사자"를 길들이지 않고 신비로 오롯이 남겨 둔다. 이는 그가 마가복음을 둘러싼 난제들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고 난해하게 내버려 두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누구라도 이 복음서를 다시 찬찬히 다시 읽게 되기를 바라며, 이 복음서의 중요 문제, 문체, 배경들을 차근차근 풀어 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비밀을 파헤치려는 시도(복음을 우리의 이해 수준으로, 우리 욕망이 납득 가능한 차원으로 끌어내리려는 각종 연구와 경향들)를 단호히 경계하고 비판한다. 그렇게 그는 그 비밀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언제까지나 비밀로 남아야 할 그것을 비밀로 지켜 낸다.

그는 독자가 이 책을 읽은 후 마가복음을 읽는 자리로 되돌아가기를 바랐다. 좋은 '해설서'는 늘 그렇듯, 자신이 해설하고 있는 텍스트로 독자가 되돌아가게 해 준다. 그리하여 거듭 독자가 그 텍스트가 드러내는 '비밀' 앞에 겸손히 서도록 한다. 다시 한 번, 본회퍼는 비밀에 관해 말했다.

"비밀을 존중하지 않는 삶이란… 나무가 어두운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빛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것이 어머니 모태의 어둡고 은밀한 장소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즉 생명의 원천이 모태이듯 우리의 정신적 삶의 소산도 은밀하게 숨겨진 어두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 분명하게 드러난 모든 것이 이 비밀에서 기인한 것임을 도무지 이해하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비밀한 일을 들으면 그 비밀을 드러내려 하며 그것을 설명하며 해부하려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삶을 죽일 뿐 비밀 자체를 알아 내지는 못합니다."

"비밀을 존중하지" 않고 "설명하며 해부하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다. 하느님이신 그분이 우리가 있는 이 땅에 오셨다는 그 멀고도 가까운, 다 알 수 없는 비밀을 대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태도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그 신비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문제는 결국, (로완의 말대로) "그분을 알지 못함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함"에 있다. 깊은 사랑은 늘 비밀이어서, 언제나 더욱 깊은 신비로 우리를 이끈다. 겸손한 무릎으로, 우리의 선배 마가와 함께 저 여정을 다시금 시작하도록 우리를 돕는 이 소중한 책과 함께,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이 경이 속에 성서를 마주하는 길에 서게 되기를.

정다운 /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풍요로움을 담은 책들을 정갈한 한국어로 옮기는 데 관심이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비아, 2016), <십자가>(새라 코클리, 비아, 2017), <순례를 떠나다>(마이클 마셜, 비아, 2018), <신학자의 기도>(스탠리 하우어워스, 비아, 2018)를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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