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걷기 마니아다. 매일 1만 보를 걷기 위해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 걷기 좋아하는 벗들과 함께 걷기도 하고, 걷기 여행을 위해 해외로 나갈 때도 있다.

이 책은 건강을 위한 걷기 치침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걷기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소중한 실천이라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다.

<걷기 속 인문학 - 길 위의 묵상, 걷기에 관한 성찰> / 황용필 지음 / 샘솟는기쁨 펴냄 / 218쪽 / 1만 3800원

저자에 의하면 "일정한 시간에 목표를 정해 작심하고 걷는 목표지향적, 전투적 걷기는 길 위의 묵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구름에 달 가듯이, 노래한 시인의 독백처럼 길 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걷기는 영혼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자연을 향해 충만히 개방을 자극하는 몸짓 언어다." 또한 저자는 "가장 원시적인 몸짓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 속에서 우리들의 사고는 춤을 추고, 생각은 구름처럼 왔다가 흩어진다. 느리게 걷고 깊이 사유하는 발끝은 때로 위대한 문장과 선율 그리고 성찰의 시작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신학자이자 철학자 키르케고르도 일찍이 걷기를 예찬했다. 1847년 조카 헨리에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걷기가 "날마다 나를 행복으로 바래다주고 아픔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 나를 최고의 생각으로 데려다준다"(13쪽)라고 걷기의 유익을 언급했다.

영국 시인이자 평론가 사무엘 존슨은 "하루에 3시간을 걸으면 7년 후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천천히 걷기를 권한다. "속도는 인체의 감각이다. 어떤 규모든지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대부분 시속 3마일, 즉 5km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주변을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52쪽). 스치는 풍경을 제대로 보고 감상하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걷기는 우리의 생각에 활력을 불어 넣고 상상력에도 유연성을 준다. <월든> 작가 소로(Henry D. Thoreau)는 이렇게 말했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 공감이 가는 명언이다. 소로의 체험적 독백처럼 저마다의 걷기는 작은 통찰을 넘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즉 걷기는 성찰과 묵상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루 1만 보를 걷는 비결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적어도 아침 출근 시간에 1000보를 걷고, 퇴근 후에 2000보를 걷는다면 의외로 1만 보 걷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거의 100%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루 1만 보 걷기를 위해 저자는 아래와 같이 실천한다(149쪽).

아침 식사 전(새벽 기도, 산책 등)에 걷기(1000보)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2000보)
자가용 이용할 때 최소한의 거리를 걷도록 주차하기(500보)
결재나 보고, 회의 때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이용하기(1000보)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주변 걷기(3000보)
걷기에 자유로운 퇴근 시간 이후 귀갓길을 이용하기(2000보)
저녁 식사 후 아내와 동네 한 바퀴 걷기(3000보)

19세기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은 "달팽이는 인내 하나로 방주에 도달했다!"라고 설교한 적이 있다. 미국의 자연주의자 수필가 존 버로스(John Burroughs)는 걷기 대신 차를 타고 가는 기독교인에게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차 타고 교회에 가는 행위가 우리 종교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산책용 신발과 옷을 벗어버린 채 차를 타고 교회에 가는 일은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까지 내려놓고 차에 끌려가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교회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크나큰 신앙심의 회복과 같은 일을 상상해보라. 길가의 돌들에서 복음을 느끼고 자갈 틈에서 무뎌진 마음을 바로잡으며, 걸음걸음마다 허영심과 어리석음, 실망감 같은 악마에 포위된 여러 생각들이 맑은 공기를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나갈 것이다. 악마들은 언제나 차를 타려고 하고, 걸어 다닐 때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걸을 때에야 비로소 권태감과 세속적인 걱정, 무자비함, 차려입은 옷차림에서 오는 자만심 같은 악한 마음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발 걸어서 교회에 가자 혹 굳이 무언가를 타야 한다면 차라리 당나귀를 타고 가자." (177~178쪽)

이러한 제안이 현대인의 분주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충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걷기라는 작은 실천은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될 수 있다. 필자의 경우도 아내와 걷는 시간(산책)이 일상의 행복 가운데 하나다.

저자에 따르면, 걷기만 한 건강 운동법이 없다. "편안한 옷차림에 적당한 신발 그리고 가벼운 휴대품을 한곳에 담을 수 있는 작은 배낭 정도면 충분하다. 하루에 30분 정도 꾸준히 걷기만 해도 체지방이 원활히 분해가 되어 심혈관 질환 예방과 뇌졸중 예방과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 감소 및 혈압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20주 동안 주 3회 이상 규칙적인 걷기 운동을 하면 체중은 1.5%, 체지방률은 13.4%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11쪽)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걷기의 안내서가 아니라 길 자체가 열어 주는 사색의 단서들을 확장하는 일종의 '걷기 속 인문학'이다. 문명의 이기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저자는 우직스럽게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제 지혜와 사유로의 걷기를 배우고 실천해 보지 않겠는가.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송광택 /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고문,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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