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록 많은 것이 어긋나 있지만 세상은 본디 이런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렇게 울며 아파해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나니아 연대기>처럼 기독교 세계관이 뚜렷한 판타지

▲ <아나하라트 1> / 김영지 지음 / 마음지기 펴냄 / 384쪽 / 1만 원. (1·2권 동시 출간)

기독교 세계관이 투영된 유명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떠올릴 것이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꼽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고, 혹 원죄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 소설 중에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화제가 된 작품은 기억에 없다.

마음지기에서 출간된 김영지 작가의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를 주목할 만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작품은 현실 세계 묘사를 넘어선 판타지 장르라는 점과 한두 가지 성경 사건을 모티브로 다뤘다기보다 작품 전체에 기독교 세계관이 흐른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소설들 중에서 <나니아 연대기>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김영지 작가는 대학원 수업에서 세계의 빈곤과 전쟁, 불평등, 인권유린 등의 주제를 놓고 토론하다가 '어떻게 세상을 구할 수 있나?'를 깊이 고민하게 되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는 세상을 구할 방법을 치열하게 궁리할수록 '차라리 이 세상이 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좌절감에 여러 번 빠질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거듭되는 혼란 끝에서 김영지 작가는 파멸이 아닌 구원의 결말을 끄집어 희망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타락과 용서, 심판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는 기본적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이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온 예수처럼, 주인공 리브나 키브사 공주도 낙원의 주인 자리를 버리고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이 아본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예수가 그러했듯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연약한 모습 그대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기적의 씨앗을 뿌리고 죽음을 맞는다.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리브나 키브사의 죽음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어느 날 알타쉬헤트는 알 수 없는 빛에 이끌려 아본과 시공간이 다른 한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공주를 발견하고 그를 아본으로 데려온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갑작스레 고통과 혼란의 땅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어 버린 어린 소녀는 서서히 자신이 리브나 키브사 공주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구세주의 면모를 갖춰 간다.

"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전과 달라 보였다. 상냥한 바람이 불어왔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땅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아, 이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웠다. 나는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은 당신의 선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을 선물로 받은 이들은 언제나, 늘 언제나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져야 마땅하다. 그들 하나하나가 이 세상보다 귀하다. 당신이 우리를 그렇게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감사하고도 안타까워서 나는 울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서,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듯 떠올라서. 눈밭에서 죽어 간 어린아이가, 속박된 채 유린당하던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싸우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됐다. 그들은 그렇게 여겨져도 좋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밤, 나는 오래도록 엎드려 울었다. 그렇게 세상을 마음에 품었다." (2권, '폭군의 초대' 중에서, 19쪽)

루이스의 나니아에 하얀 마녀 제이디스가 있고, 톨킨의 중간 세계에 어둠의 군주 사우론이 있다면, 김영지 작가의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 속에는 검은 힘을 지닌 절대악의 존재, '뱀의 입'을 뜻하는 피네하스가 있다. 그는 마치 에덴동산의 뱀처럼 낙원의 땅 비라의 주민들을 꼬드겨 혹한의 땅 아본으로 데려온 장본인이다.

피네하스는 7대 죄악을 상징하는 일곱 영주를 자신의 대리자로 세워 아본을 다스리며, 그들을 통해 살인과 착취, 성매매 등 인간 스스로 죄악에 물들어 살도록 조종한다. 사랑의 속성을 가진 공주이자 구세주 리브나 키브사가 이러한 악으로부터, 또 한편으로는 정의의 심판자로부터 세상을 지켜 내는 이야기가 바로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그렇듯,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현실은 잔혹한 땅 아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 저편에서 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곳곳에서 무고한 생명을 앗아 가는 폭탄 테러가 자행된다. 가까이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도 나날이 '묻지 마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 범죄가 늘고 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실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악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연약한 존재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울며 손을 내미는 리브나 키브사 공주처럼, 세상을 구하는 평범한 진리에 기어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독자들이 극찬하는 네이버 웹 소설 화제의 작품

사실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는 이미 많은 독자에게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화제작이다. 네이버 웹 소설로 2015년 5월에 연재를 시작해 이번 달 말 총 130화로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로맨스 장르가 주를 이루는 웹 소설계에서 흔치 않은 소재와 깊이 있는 주제 의식, 출중한 필력 등으로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독자가 '인생 소설'이라 극찬하는 <아나하라트_공주와 구세주>는 종이책 출간이 결정되면서 Ⅰ부 공주, Ⅱ부 인간, Ⅲ부 구세주 등 전 5권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첫 결과물로 Ⅰ부에 해당하는 1권과 2권이 이번에 동시에 출간되었다. Ⅰ부는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디딘 철부지 공주가 악의 땅 아본에서도 마음을 지키며 살아 내는 조력자들을 만나고, 점차 세상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열망을 느끼며 자신의 본래 존재를 깨달아 가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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