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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꿈을 꾸자
복지사회를 향하여
  • 박철수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7.12.23 19:55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회주의'의 뜻이 많이 왜곡돼 마치 '공산주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KBS 고대영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한 바 있고, 신연희 강남구청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법에서 25년형을 구형받은 최순실 씨는 최후진술에서 "사회주의보다 더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본래 언어는 어떤 사실을 전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도 있다. 언어의 중요성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다. 얼마 전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사회주의를 상상하자"라는 표현을 썼을 때, 많은 야당 의원이 그를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공격하고 나섰다. 2013년 EBS에서 '자본주의'를 다룰 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가 소개된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리 사회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지나가는 일이 필요하겠다. 2005년 영국 BBC방송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는데, 1위가 칼 마르크스였다. 20세기의 우리는 칼 마르크스 영향력 아래 살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인류에게 큰 비전을 제시했다. 가난한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잘 살자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는 너무 이상적이어서 옛 소련에서도 구현하지 못했고,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신자유주의에 포획됐다.

공산주의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남북 분단 아래에서의 스탈린식 폭력적 정부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두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라고 이야기한다면, 소도 웃을 것이다. 한국은 '마르크스',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북한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인 것처럼 말한다. 북한이 적대 국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북한은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돌연변이 왕조 국가일 뿐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역사를 통해 잠시 살펴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사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회주의적 전통의 정치사상에서 파생한 이념이다. 19세기에는 공산주의·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 등이 섞여서 쓰였다. 사회적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다는 점에서 두 입장은 함께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옛 이야기일 뿐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이념으로 갈라져 별개 용어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이념 분화는 공산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사이의 조직적 분리를 낳았다. 사적 소유를 철폐해야 한다는 공산주의적 생각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 전 유럽의 사회민주당에서 소수 견해가 됐다. 오늘날 사회주의는, 사회정의와 사회 개혁을 자신의 임무로 삼거나, 경제 운용에 있어서 일정한 국가 개입을 옹호하는 다양한 자유주의적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모두 포괄한다.

특히 북유럽, 즉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에서도 사회민주주의를 좌파 중에서 특정 계획을 민주적 수단으로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을 정의하는 말로 사용해 왔다. 소련과 동유럽, 여타 지역의 공산권 위성국가는 일당독재, 계획 경제, 국가 소유 등에 기초한 정치체제를 세웠으나, 북유럽 국가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입장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사회 전체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전체 이익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불평등을 줄여서 개인의 자유를 조금 더 고르게 누리는 사회인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187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를 비롯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서서히 출현했다.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 분리된 흐름은 갈수록 분명해졌고, 둘 사이의 갈등은 수십 년간 유럽의 정치 논쟁에 깊은 영향을 줬다.

이념 갈등이 심한 국가에서 사는, 같은 역사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잘못 알고 착각해서 말할 수도 있으리라. 공산주의 운동의 결정적 특징은 추상적 정치론이나 유토피아 사상을 회의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임금격차가 적고 잘 발달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춘 복지국가로, 역동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정치 진영과도 기꺼이 함께 일해 왔다.

이 같은 북유럽 모델 사회민주주의는 변화하는 국제경제 환경에 직면했을 때도 괄목할 만한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보편적 복지, 격차가 크지 않은 임금구조, 광범위한 노동조합 조직화, '고용주-노동자-국가'라는 3자 협조의 활용 등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의 <공산당선언>이 1848년 출간됐다.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점진적 민주화로 기존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당시 좌파 사회주의 지식인들을 비난하고 거부한다. 숙련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을 토대로 다양한 노동조합이 생겨났으며, 이것이 덴마크 사회민주주의 기원으로서 북유럽 정치와 사회에서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라났다. 1890년대에는 사회민주주의 노동당과 노동조합이 북유럽 전역에서 정치적 발판을 얻고 제도권에 진입했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당이 노동자의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노동계급이 보통선거권과 제대로 된 생활임금을 쟁취하는 과제가 그저 고귀한 꿈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되려면 급진 정당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깨닫게 된다. 마르크스가 1875년 '고타강령 비판'을 공식화한 이후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배신자라고 비방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도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했고, 점진적 개혁과 의회정치 참여야말로 평등한 민주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유럽 좌파들은 세계사에 대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유럽 좌파, 즉 사회주의자가 자리를 잡았으며, 1930년경부터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이상, 짧게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느 정도 같은 동기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두 진영은 사이가 멀어졌고 적대적 관계로 끝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북 관계가 적대적이다 보니 언어 사용의 혼란으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같은 의미로 다뤄 왔다. 그렇기에 최순실 씨가 쓴 사회주의와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쓴 사회주의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복지국가'를 논해야 하는 이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회주의는 북유럽 국가와 같은 복지국가에 가깝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복지국가를 이야기했고, 그 결과 많은 표를 얻기도 했다. 실제로는 복지주의와 전혀 상관없었다. 재벌을 키웠고 노동자를 적대 관계로 설정했다. 미국인 이상으로 미국화해 가는 한국인의 의식, 중심부 따라잡기에 급급한 주변부, 가난한 자나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혹해지는 제국주의 아류의 흉학한 몰골로 변해 가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이런 주술에서 벗어날 때에야 지금까지와 다른 복지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를 대하는 한국 국민, 특히 보수 기독교인의 태도를 보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복지·평등과 거리가 멀다. 성공주의·물신주의, 극우파 정치 노선을 따르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혼란스럽다.

박근혜를 비롯한 대부분 정치가가 주장하는 공통분모는 복지국가다. 그런데 유럽식 사회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쟁이 필요하다. 반값 등록금이 공약으로만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데마고그(demagogue)에 가깝다.

그러나 요즘 여기저기서 노동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상황과 촛불 광장에서의 시민들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실현되는 모습을 보면 참 다행이다. 아직 보수 정객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고, 한국 보수 교회는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와 태극기 집회를 응원하고 참여했다.

얼마 전, 목사들에게 설교학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자 대부분 목사가 웅성거렸다. 그때 60세쯤 돼 보이는 목사가 나에게 먼저 찾아왔다. 태극기 집회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오늘 강의를 듣고 왜 기독교인이 촛불 광장에 가야 하는지 깊이 공감했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어떤 가능성을 봤다.

성경에 '복지'라는 말이 없는데, 기독교는 복지와 상관없는가. 성경의 맥락에서 복지국가적 이상향을 그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복지국가를 이루려면, 돈 많은 자본가에게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부유세를 만들어야 한다. 복지는 한마디로 재분배다. 재분배를 하려면, 상위 5% 이내에 드는 부자들에게서 돈을 가져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야 한다. 이는 1% 횡포에 질릴 대로 질린 99%에게 정치적으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복지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어디서 돈이 나올 수 있는가. 부자들 손에서만 나올 수 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하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고, 가난한 자들의 세금은 줄인 뒤 이들을 위한 복지에 써야 하지 않겠는가.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북유럽이 경험적으로 잘 증명하고 있다.

국민총생산 중 세수(조세를 징수해서 얻는 정부의 수입) 비중을 보면, 노르웨이 43% 스웨덴 45% 러시아 37%다. 한국은 미국과 비슷한 26% 정도다. 부자들 세금 비율을 대폭 확대해야 무상 의료나 무상교육, 내실 있는 노후 연금 등의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보수 언론은 '세금 폭탄'이라는 말을 만들어 부자들의 납세 저항을 선동한다. 공공 가치에 입각한 재분배에는 무관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다.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의 도움으로 가장 이득을 볼 가난한 사람, 집 없는 사람, 비정규직은 안중에도 없다.

교육이나 의료가 시장의 상품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한국은 의료 영역까지 재벌화했으며, 이윤 추구 의료 행위가 상당히 두드러지고 있다. 민영화 문제도 심각하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정책을 펼치려 했다. 민영화는, 공기업을 사기업에 넘기는 것을 말한다. 재벌에게 공기업이 넘어가면, 철도 요금, 전기 요금, 수도 요금 등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재벌이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근혜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행태가 바로 정경유착의 단면이다. 이전 정부들은 한사코 재벌을 통해 국부를 늘리려고만 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최순실 씨에 대한 1심 결심공판에서 박영수특검팀 정성욱 특검보는 국정 농단 사태를 두고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의 은밀하고 부도덕한 유착과 이를 십분 활용한 비선 실세의 탐욕과 악행이 사건의 실체"라고 말했다. 만약 재벌을 자선사업가처럼 생각한다면,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닌 셈이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죄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기본 소득제와 하나님나라의 꿈

최근 들어 '기본 소득제'를 관심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관련해서 책도 나오고 있다. 기본 소득은 국가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 소득이다. 재산, 건강, 취업 여부, 일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등에 대해 자격 심사를 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일률적으로 일정한 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본 소득제는 20세기 들어서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1980),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 했됐다. 예수님을 기본 소득제의 원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거리가 없어 놀다가 저물녘 맨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먼저 와서 일한 자와 똑같이 품삯을 한 데나리온 주었다는 포도원 주인 비유야말로 기본 소득제의 핵심 논리를 꿰뚫고 있다(마태복음 20장 1-16절). 여기에, 구약에 나오는 '희년' 제도도 함께 생각할 만하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싼 비용에 1.5~2배의 살인적 노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이들은 노동자다. 그런데도 한국 보수 교회와 보수정당은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보수 교회는 노동자, 가난한 자와 공감할 수 있는데도 오히려 수구 정객 편에서 이들을 매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경찰의 막무가내 진압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이것이 예수 정신인가. 언제까지 그들의 눈물을 외면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상황에서 사회주의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은 멀기만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자본가는 사회주의 복지국가에 대한 이해를 대폭 낮춰서 역사의 시계를 복지국가 이전, 1930년 이전, 공산주의 시대로 돌리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 같은 보수 신문에서는 그들 나라에서 우파가 승리하면 기고만장하게 보도하는 듯하다. 그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우파든 좌파든 복지국가 틀이 바뀔 수 없다는 기본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들 우파는 감세, 이민, 성장에 대한 사안에서 어떤 입장에 있느냐 차이일 뿐이다. 유럽 우파는 한국 우파와 다르며, 그들 좌파도 한국 좌파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꿈을 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신앙은 적당히 비현실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분이다. 현실에 빠져 버려도 안 되지만 초현실적이어서도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현실에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항상 현장에 계셨다. 그럼에도 예수와 같은 사람들은 이단 취급을 받고 쫓겨나 감옥에 들어가 죽어 가는 것이 역사 현실이요, 우리 현실이 아닌가.

어느덧 2017년은 가고 2018년 새해가 다가온다.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도 다가온다. 예수는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우리에게 교리를 가르치려고 오셨는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려고 오셨는가. 성경 말씀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리도 중요하지만, 예수의 말씀을 몇 개라도 실천하면서 기독교인이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보여 줄 수 있다면 '빛'과 '소금', 그리고 '산 위의 마을'(마태복음 5장 13-14절)이 되지 않겠는가.

초대교회를 크게 위협했던, 예수께서 육체로 오지 않았다며 가현설(假顯說)을 주장한 이들이 있다. 이는 성육신과 반대되는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요한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는 사랑·정의·평화·평등이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 원하는 사회는 1%가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99%가 더불어 사는 사회다. 아니, 100%가 잘 살고 행복한 나라, 하나님나라가 아닐까.

나는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살기 원하는 우리에게 큰 힌트가 된다고 본다. 한국교회 보수주의자가 들으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를 '나'와 같이 돌보라고 하셨다. 언제까지 제사장처럼, 레위인처럼 알리바이(alibi) 속에 숨으려고 하는가. 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이중 계명을 말씀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 표준새번역)

이 말씀은 하나님나라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보여 준다. 혼자 꾸는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나는 복지사회가 하나님나라의 근사치라고 생각한다. 함께 손잡고, 새해에는 하나님나라의 꿈을 꾸어 보자.

박철수 / 목사,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두 개의 십자가>(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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