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정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먼저 정치 역사적 배경으로 BC 330년 알렉산더 왕 때부터 예수님 탄생까지를 살펴본다. 알렉산더는 당시 최대 국가인 페르시아제국를 무찌르고 이집트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그렇게 거대한 제국을 정복했지만 미처 정비하기도 전에 33세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프톨레미, 안티오쿠스, 셀루커스 같은 부하 장군들 간의 권력투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강원도 만한 유대 땅은 프톨레미 왕조와 셀루커스 왕조 사이를 오가며 처참하게 유린당한다. 알렉산더 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다. 알렉산더 왕은 자기가 정복한 국가에 헬레니즘 문화를 퍼뜨려 세계화시켰다. 정치적 문제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화적 성공을 이루었다.

오늘날까지 헬레니즘 문화는 역사, 철학, 예술 등 각종 문화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 철학자 칼 마르크스, 알베르트 카뮈, 장 폴 사르트르, 프리드리히 니체 등은 헬레니스트들이라 볼 수 있다. 베드로성당 옆 가톨릭 교황을 뽑는 시스티나성당의 벽화 '천지창조'에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그려져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로마제국은 정복한 국가들을 식민화하고 각 국가에 총독을 보내 고통스럽고 가혹한 정책을 시행했다(우리나라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을 생각해 보라). 이 분열된 제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1, 2차 삼두정치의 권력투쟁이 이어져 갔다. 1차 삼두정치는 주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두 사람 간의 권력투쟁이었다. 카이사르는 오늘의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서유럽을 정복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함께 카이사르를 죽이려 했다.

나는 한국교회 역사 부재 문제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 성경 번역에 일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라틴어 카이사르를 우리말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를 아구스도로, 페르시아를 바사 등과 같이 쓴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와 전혀 다른 단어로 변형시킴으로 성경의 역사와 일반 역사를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한국교회 역사 부재 원인 중 하나라 본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알게 된 이 사실은 충격으로 와 닿았고, 나중 표준새번역 성경이 만들어질 때 결정적 기여를 한 바 있고, 그 후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폐간되어 버렸다.

카이사르는 BC 49년 목숨을 건 결단을 내리고, 그 유명한 이탈리아 북부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 카이사르는 이후 폼페이우스를 이기고 로마의 실권자가 됐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우발성은 카이사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신의 수하 장군 부루투스 일당에 의해 BC 44년에 암살된 것이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로마가 통일되는가 싶었으나 다시 싸움이 벌어졌다. 2차 삼두정치 즉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를 중심으로 벌어진 싸움이었다.

안토니우스 측 군대가 훨씬 우세했음에도 결국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는 BC 29년 로마로 향하며 개선식을 가졌다. 이어 원로원은 BC 28년 로마제국을 평정한 옥타비아누스에게 '존귀한 자'라는 뜻을 가진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주었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평정된 이후 로마는 대규모 전쟁이 없었기에 '팍스로마나(Pax Romana)' 시대라 불렸다. 그러나 이는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것이었다.

BC 169년 헬라화된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바닥난 국고를 채우려 했다. 유대 땅은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강탈했고, 특히 성전을 모독하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안식일에 할례를 금지했고 유대인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그것도 모자라 제사를 폐하고 제우스 신상을 세웠으니 유대인의 저항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크게 반발한 이스라엘의 하스몬 왕가는 전쟁을 일으켰다. 하스몬 왕가는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BC 142~63년 80여 년간 짧게나마 독립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아버지 헤롯이 등장했다. 헤롯은 세계 정치 동향을 살피면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을 서약해 총애를 받았다. 결국 이스라엘 땅 일부를 다스리게 된다. 이두메 사람 이방인 헤롯은 유대 땅을 다스리면서 유대인과 로마를 함께 만족시키려 했다.

거기다 헤롯은 매우 잔인한 왕이다. 왕권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왕비, 장모, 두 아들을 살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에게서 말할 것 없는 정치적, 문화적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러한 헤롯의 정통성과 도덕성 시비에 유대인은 계속 저항했다. 그 예 중 하나가 세례 요한의 죽음이다.

헤롯은 유대인을 달래기 위해 대규모 건축 토목공사를 했다. 주둔군 기지촌, 수로, 극장 등이 갖춰진 로마식 도시 건설과 감세 정책으로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도시화는 우리나라 현대사가 보여 주듯 극심한 빈부 격차를 가져온다. 하지만 한편으로 호황을 누리는 새로운 졸부들이 등장하게 돼 헤롯 왕의 든든한 권력 기반이 된다.

솔로몬 왕 때 지어졌던 성전, 느헤미야 시대 때의 조촐한 성전과 함께 법궤와 속죄소는 바벨론 제국 시대에 일어난 성전 파괴로 모래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이방인 헤롯 왕은 유대인 신앙의 중심인 성전을 솔로몬 시대 때보다 훨씬 크게 지어서 유대의 많은 종교 지도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BC 31년 성전 봉헌을 통해 대제사장 출신 등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헤롯 왕의 정치권력과 결탁했다. 이때 헤롯 왕은 어느 정도 평화로운 시대를 누리게 되었다.

메시아의 탄생

그런데 어느 날 변방 땅에서 심상찮은 소문이 들려왔다. 그것은 어떤 아이의 소문이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이다. 예수 탄생이 기록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살펴보면, 오늘날 크리스마스 성극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 천사의 계시, 말구유, 동방박사, 밤새 양을 치던 목동들, 긴장한 정치·종교 지도자들, 무참한 학살 등과 거룩한 이미지가 뒤범벅된 이상한 모습이 나타난다.

동심을 깨려는 의도는 없지만 그 배경을 살펴본다면, 예수 탄생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마태와 누가가 쓴 버전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유념하며 성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어느 날 헤롯 왕에게 동방박사(magi)가 등장한다. 마기(magi)는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제사장을 말한다. 마기는 점성술사, 마법사들이다. 당시 세계에서 마기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마기는 왕과 면대하여 조언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마기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에 계시느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직접 헤롯 왕과 대면하여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헤롯 왕에게는 새로 태어난 아들, 왕자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헤롯과 신하들은 크게 당황하며 성경을 잘 아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종교 지도자를 불러 긴급하게 국가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한다. 그 당시 유대의 정치사회는 너무 어렵고 가난해 많은 유대인이 메시아가 오기를 갈망하고 또 갈망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내가 메시아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15명이 넘을 정도였다.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헤롯 왕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무시무시한 뜻을 가진다. 메시아란 말은 헤롯과 대제사장들을 흔드는, 권력에 대한 충격적 도전이었다. 헤롯 왕은 즉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메시아라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조사하라고 명령한다.

메시아가 태어나는 곳은 베들레헴이었다. 헤롯 왕은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태어난 것을 알고 마기들을 이용하려 한다.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 2:8) 그날 밤 마기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한 후 꿈에서 헤롯 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속았다 생각한 헤롯 왕은 길길이 날뛰었다. 헤롯은 자기 왕권에 도전하는 아기 예수를 찾지 못하자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 2년 안에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끔찍한 대학살이 일어난 것이다.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당시 예루살렘 인구 2,000여 명 중 20명(약 1%)가 죽었다고 말한다. 얼마나 끔찍한 대학살인가!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 헤롯 왕은 죽는다. 그때가 기원전 BC 4년이다. 로마 역사가 클라우스너는 헤롯을 평하여 "여우같이 왕좌를 훔치고, 호랑이처럼 다스리고, 개처럼 죽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아버지 헤롯이 죽기 얼마 전에 태어나신다.

다시 옥타비아누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옥타비아누스(BC 63~AD 14년)가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 칭호를 받으면서(BC 28년) 붙은 또 다른 이름이 '구원자', '복음', '왕', '은혜', '평화'라는 말이다. 이것은 BC 28년 개선식 이후부터 옥타비아누스가 신화화되면서 받은 칭호들이다. 헬라어는 특히나 옥타비아누스가 장악한 로마제국 당시의 세계 전용 언어였다. 예수님보다 25여 년 전에 먼저 붙은 칭호들이다.

옥타비아누스가 받은 칭호가 대체 예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옥타비아누스가 받은 칭호들은 하나의 신화이며 선전, 선동(propaganda)으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야말로 진짜 구원자요, 복음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명백할지 몰라도 오늘 우리들에게는 그 내용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에 둘러싸여 잘 짜인 구원이니 복음 같은 개념은 예수님 당시에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우구스투스가 구원자라는 데는 세계를 정복하고 해방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그가 전 세계를 장악한 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나라는 '거꾸로 선 나라'

헬라어 '유앙겔리온'은 우리말로 '복음', 영어로는 '기쁜 소식'(good news)이라고 번역됐다. 복음이라는 말보다 '기쁜 소식'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옳다고 본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기쁜 소식'이었다. '유앙겔리온'에는 그런 의미가 있다. '복음'이라는 번역과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또 그가 정복한 나라에 평화가 왔다는 것은 전쟁이 없는 복지국가를 건설했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평화(구약 '샬롬', 신약 '에이레네'), 팍스로마나는 로마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로마제국)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아우구스투스에게 붙은 복음, 구원, 왕, 평화 등 낱말은 정치사회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또한 정치사회적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전유(專有, appropriation)라 부른다. 전유란 '훔친다'는 뜻이다. 어디서 사용했던 용어를 훔쳐 와서 사용한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1장 46-55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후 부른 찬양, 이른바 '마그니피카트(Magnificat)'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예수님을 통해 권세 있는 자를 끌어내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일 것이며,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며, 부자를 빈손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고백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하나님나라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도널드 크레이빌(Donald B. Kraybill)이 쓴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나라>(복있는사람)에서는 이 '마그니피카트'를 설명하면서 하나님나라를 '거꾸로 선 나라'라고 말했다.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미사여구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자요, 복음이요, 평화의 왕이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 탄생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 복음, 평화의 의미가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신구약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나라(Kingdom)다. 하나님나라를 '하나님의 왕국(王國)'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나라, 왕국은 정치적 언어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세계적, 우주적 의미를 갖는다.

헤롯이나 옥타비아누스, 히틀러, 박정희, 박근혜 등은 우리가 충성할 대상이 아니다. 해체하고 저항해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 히틀러 시대에 대부분 신학자와 교인이 히틀러를 왕이라 외쳤지만, 칼 바르트와 본회퍼를 비롯하여 일부 중요한 신학자는 히틀러를 향해 Nein(아니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저항은 비폭력 저항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광화문에서 일어나는 촛불 시위는 전형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원의 개념이 개인적, 실존적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세계, 모든 피조물까지 이르는 광범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앙이 개인적, 실존적인 것에 머물고 개인적으로 죄를 버리고 교리를 믿는 것이라면 헤롯과 옥타비아누스가 유대 땅을 난자질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히틀러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짐 월리스(Jim Wallis)가 <하나님 편에 서라>(IVP)에서 "모든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대단히 신학적이고 영적인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사령관 맥아더도 그의 자서전에서 "전쟁은 신학적 문제다"라고 말했다.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둘째, 예수님 탄생의 또 다른 의미는 성육신(incarnation)이다.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거(居)한다는 말은 'tabernacle with us' 또는 'dwell with us'로 번역한다. 그런데 여기서 'tabernacle'은 구약에서 말하는 성막이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성막, 성전에서 함께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장막 치셨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다!

그러나 이 말을 그때 당시 당장에 부정하고 나선 자가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철학(헬레니즘)의 이원론자였다. 그들은 영만이 신성하다고 봤다. 육은 영혼의 감옥이라 말했으며, 몸은 더러운 것이라고 했다. 가현설(假顯說)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가짜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시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영지주의자(靈知主義)는 영적으로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요, 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톰 라이트는 <시대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IVP)에서 오늘날에도 '신영지주의자'가 많이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교회 보수주의자는 신영지주의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구원하고, 사랑과 정의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셨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세금 문제는 정치가 아니다", "노동자(근로자) 문제는 정치가 아니다", "광화문 촛불 집회는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국 보수주의 교회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바로 영지주의, 곧 이단이라고 본다. 나는 그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의심스럽다. 한국 보수주의 교회는 이미 사이비(似而非)임에 틀림없다. 사(似)는 '비슷하다'는 말이요, 이(而)는 '같다'라는 말이고 비(非)는 '아니다'는 말이다. 한국 보수주의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과 비슷하지만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공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공동선을 이루는 데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예수 탄생을 기념하며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로운 사회,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분투하기를 바란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름답고, 위대하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박철수 / 목사,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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