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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설교가 비범한 설교로 바뀌는 순간
그림 언어의 중요성
  • 김진규 (profjkkim@gmail.com)
  • 승인 2017.11.10 19:14

몇 해 전 성탄절을 몇 주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어느 설교자가 있었는데, 그는 평소 예화를 잘 사용하지 않아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드는 설교를 해 왔다. 말씀은 나름 잘 연구하여 심도 있게 가르치는 설교였다.

그런데 그날, 이변이 일어났다. 평소에 전혀 사용하지 않던 일을 한 것이다. 그는 영화 한 컷을 설교에 삽입하여 보여 주었다. 영화는 'The Passion of the Christ'(2004)에서 온 것인데, 설교의 초점은 예수님의 고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있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은 순식간에 청중을 사로잡았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설교는 대박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청중의 마음을 그렇게도 사로잡았을까. 물론 보혜사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이 방법이 중요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가장 탁월한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나는 확신한다. 성경도 예수님의 탁월한 설교에 대해 증언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마 7:28). 예수님의 설교에는 당시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 가르쳤기에 사람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을까. 예수님의 가르치심에는 두드러진 스타일이 있다. 예수님의 이 두드러진 설교 스타일이 앞에서 한 설교자가 사용했다는 영화의 한 장면과 겹치는 면이 있다. 그 핵심은 '그림 언어'(image)이다.

'그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내가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학위논문을 쓰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해마다 한국에서 목회학 박사과정 학생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필라델피아까지 왔다. 당시 이들을 위해서 여러 해 강의 통역을 맡았는데, 어느 여름에는 오기로 한 시편 강사가 사정상 오지 못해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나에게 시편을 강의하도록 부탁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시편뿐만 아니라 목회학 박사과정 학생들이니 이들을 위해서 설교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주고 싶어 설교학책들도 함께 읽었다. 그때 시편의 두드러진 문체인 그림 언어와 대구법이 청중들의 마음에 생동감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마음속에 감동 감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문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설교학자들은 그림 언어나 반복법(대구법)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 시인들이 사용한 풍성한 그림 언어에 대한 분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년간 연구한 끝에 집필한 책이 나의 졸저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생명의말씀사, 2015)이다. 시편을 읽을 때 산문체와는 다른 감동과 생명력이 넘쳐난다. 그 이유가 바로 그림 언어 사용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위기 1장과 시편 23편을 함께 읽어 보라. 당장 그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시편 23편을 읽으면 푸른 풀밭에 목자가 양떼 가운데 서서 어린양을 안고 있는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질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는 표현이 나오면 가파른 절벽에서 헤매는 양을 목자가 끌어올리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이미지 생성 능력이 바로 그림 언어에 담겨져 있다.

어느 누구보다 예수님은 그림 언어의 힘을 잘 아신 분이다. 예수님의 설교에는 그림 언어가 넘쳐난다. 산상수훈만 보더라도 예수님은 수많은 그림 언어로 설교하셨다. 형제를 비판하지 않도록 눈 속의 "들보"와 "티"라는 그림 언어를 사용하셨고, 진리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도록 "개", "진주", "돼지"라는 그림 언어를 사용하셨고, 기도 응답에 대해 가르치면서 "아들", "떡", "돌", "생선", "뱀"이라는 그림 언어를 사용하셨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좁은 문"과 "넓은 문"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설명하셨고,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양의 옷", "이리", "열매", "가시나무", "포도", "엉겅퀴", "무화과"라는 그림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셨다.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를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그림 언어로 설명하셨다.

그 외에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가 그림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예수님의 많은 비유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유들인데, '천국'의 심오한 진리를 비유라는 그림 언어로 아주 쉽게 설명하셨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 감추인 보화 비유, 그물 비유, 혼인 잔치 비유,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 이런 하나님나라의 비유들이 모두 그림언어로 구성된 설교들이다.

왜 그림 언어가 호소력이 있는가. 이는 인간의 이해 방식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화랑에 그림을 그리듯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의 머리는 장황한 문장으로 된 설명보다 간단한 도식을 쉽게 이해한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는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말하고 쓰는 일을 하지만, 생각을 할 때는 언제나 영상이나 그림을 통해서 한다"라고 했다(<상상이 담긴 설교>, 32쪽). 맥닐 딕슨은 "인간 정신은 철학자들이 뿌려 놓은 그릇된 인상처럼 토론장이 아니라 차라리 화랑이라고 해야 한다. 이 화랑에는 우리의 모든 비유와 개념들이 그림처럼 걸려 있다. (중략) 비유란 종교와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상상이 담긴 설교>, 32쪽에서 재인용).

위어스비와 딕슨의 말을 들어 보면, 왜 우리가 그림 언어로 표현할 때 호소력이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신학도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고도로 추상화된 신학적 개념으로 중무장하고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는가. 이런 추상화된 언어들이 우리의 설교 시간에 때로는 여과 없이 쏟아지지 않는가. 게다가 히브리어 헬라어까지…. 이런 추상적인 용어들은 설교를 따분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19세기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던 찰스 스펄전 목사는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20대부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스펄전의 탁월한 영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설교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그림 언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제이 아담스(Jay Adams) 교수는 밝히고 있다. 스펄전의 설교를 '감각적 호소'(sense appeal)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스펄전의 감각적 호소가 바로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으로 구성된 그림 언어를 뜻한다. 스펄전이 했던 설교에서 실례를 보자.

"예수님의 피 흘리는 손이 긍휼을 떨어뜨리는 갈보리의 십자가로부터, 구세주의 피 흘리는 땀구멍들이 용서를 흘리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부터, 부르짖음이 들려옵니다. '나를 보라,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중략)' 그곳을 바라보세요. (중략) 그의 손이 당신을 위해서 못 박혔습니다. 그의 발이 당신을 위해 피를 솟구쳐 흘렸습니다. 그의 옆구리가 당신을 위해 넓게 열렸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긍휼을 입는 방법을 알기를 원한다면, '보라' 여기에 있습니다." (Adams, <Sense Appeal>, 9쪽에서 재인용)

스펄전의 묘사는 시각적·청각적 그림 언어로 넘쳐난다. "긍휼을 떨어뜨리는 갈보리의 십자가", "용서를 흘리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 "부르짖음이 들려옵니다", "나를 보라", 못 박힌 손, 피가 솟구쳐 흐르는 발, 넓게 열린 옆구리…. 모두 그림 언어다.

우리의 설교 준비는 단순히 성경의 주석 작업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주석 작업은 본문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고, 설교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림 언어로 보완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러면 그림 언어는 어떻게 만드는가. 이 부분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설명하겠다.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연 속의 그림 언어, 사회 문화 속의 그림 언어, 도시 문화 속의 그림언어, 과학기술 문명 속의 그림 언어, 영화·드라마·스포츠 속의 그림 언어, 현시대의 사상적 흐름 속의 그림 언어, 행동으로 보여 주는 그림 언어 등을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변화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우리 마음속의 그림 언어가 바뀌어야 일어난다. 크래덕의 말을 들어보자.

"그림 언어들은 다른 개념들에 의해서 대치되지 않고, 다른 그림언어들도 대치되는데 아주 천천히 그렇게 된다. 사람의 머리가 설교자의 사상에 동의한 오랜 후에도 옛날의 그림 언어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걸려 있을 수 있다. 그 그림 언어가 바뀌기까지 사람은 정말 변화되지 않는다. (중략) 이 변화는 시간이 걸리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긴 여정이 있다면 아마 머리에서 마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Fred B. Craddock, <As One Without Authority>, 64쪽)

김진규 /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히브리 시인에게 설교를 배우다>(생명의말씀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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