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는 약 5년 전부터 '반동성애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주요 교단 중 하나인 예장통합은 올해 9월 '동성애자를 배척'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장로교를 대표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은 신학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보수지만, 교회 연합 정신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신학과 신앙을 넘어 사회문제에 제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교단이다.

지난 9월 102회 총회에서 동성애자와 옹호자를 상대로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도록 결의한 것은, 이런 스펙트럼을 무시한 것이었다. 예장통합 소속 일하는예수회·예장농민목회자협의회·교회개혁예장목회자연대·건강한교회를위한목회자협의회 등 4개 단체는 9월 27일, 102회 총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재론을 요구했다.

4개 단체는 10월 23일,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일하는예수회 황남덕 목사는 "총회는 결의 과정에 있어서 동성애 찬반 논의 프레임에 갇혔다. 어떻게 한두 사람 말만 듣고 (동성애 안건을) 박수치고 통과시킬 수 있는가. 총회가 이렇게 결정한 것에 가만있으면 안 된다. 심도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목회자와 신학생 30여 명이 참여했다.

동성애자 배척 결의, '부화뇌동·유명무실'
"교인에게 '동성애자냐'고 물어야 하나,
목회적 차원에서 있으나 마나 한 법"

일하는예수회 등 예장통합 내 개혁 그룹은 102회 총회 결의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며 재론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장통합은 동성애자와 옹호자는 신학대에 입학하지 못하고, 교회 항존직을 맡을 수 없다고 결의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동성애 지지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이미 신학교와 교회에 다니는 동성애자와 옹호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 등이 없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택환 목사(그소망교회)는 "당장 연말에 집사를 뽑아야 하는데, '당신 동성애자냐'고 물어야 하나 싶다. 그 사람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누가 판명해 주는가. 기존 직분자 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수 있으니 대대적으로 색출 작업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없다. 이 규정은 유명무실하다. 목회적 차원에서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오히려 교회를 깨뜨릴 수 있을 만큼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 지적처럼, 총회에서는 동성애자와 옹호자를 구별(?)하는 구체적 방법이 따로 제시되지 않았다. 특정인 발언만 듣고, 곧바로 안건을 통과시키는 데 급급했다. "한번 토론해 보자"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이택환 목사는 "총회가 갑자기 결정해서 혼란스럽다. 30~40년간 충분히 연구해서 결정을 내렸다면 무게감이 있었을 것이다. '동성애자는 전부 에이즈 환자다', '목사가 동성애자 비판하면 감옥 간다'는 등 뜬소문만 듣고 부화뇌동했다.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이런 식으로 선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토론회 현장에서는 자유로운 논의가 오갔다.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한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조차도 총회 결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자로 나선 정원범 교수(대전신대)는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 행위에 대해서 확실한 불찬성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창조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다만 모든 법이 완벽할 수 없듯, 총회의 결의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나온다.

정 교수는 "만일 누군가가 이 말씀을 제시하면서, 무수히 많은 죄 항목 가운데 다른 건 제쳐 두고 왜 동성애만 문제 삼느냐고 따지면 대답하기 참 어려워진다. 폭력, 살인, 탐욕스러운 물질주의는 동성애보다 더 중한 죄인데, 왜 총회에서 다루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수의 참석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토론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총회 결의에 대한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잠깐만 들여다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총회 당시에는 왜 별다른 논의가 없었을까. 유재무 목사(<예장뉴스> 편집인)는, 한국교회 안에서 동성애는 정치 문제로 자리매김했으며, 특정 세력이 반동성애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 목사는 "보수 개신교는 탄핵 정국 당시 '태극기 집회'에 동참했다가 가라앉을 뻔했다. 그러다가 반동성애로 치고 올라왔다. 예를 들어 국정원장을 지낸 김승규 장로를 보라. 전국을 돌며 반동성애 강연을 한다. 올해 대선에서 어떻게 했나.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나. 현재 한국교회가 마주한 동성애 문제 기저에는 정치적 요소가 깔려 있다. 이런 내용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 토론회 열기 달아 올라
"의학적 사실 바탕으로 접근해야"
"동성애 때문에 교회 위기? 현장은 달라"
"잘못했다 인정하고, 동성애자에게 사과해야"

102회 총회 당시 동성애 안건과 관련한 토론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10월 23일 토론회는 달랐다. 2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발제가 끝난 이후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했다. 토론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토의 장이 됐다. 참가자들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한 홍인식 목사(순천중앙교회)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홍 목사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를 사례로 들며 설명했다.

"아르헨티나는 2010년, 멕시코는 2015년 동성혼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르헨티나와 멕시코가 가장 보수적이다. 그런데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으로 결정했다. 2016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멕시코 국민 61%가, 아르헨티나 국민 78%가 동성 결혼을 긍정적으로 봤다. 물론 두 나라의 개신교는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에큐메니컬 교회는 동성혼을 옹호하고, 보수 교단은 반대했다. 그런데 딱 의사 표명에서 그친다. 한국교회처럼 공격하거나 정치인을 압박하지 않는다. 동성애나 동성혼을 반대한다는 입장만 밝힐 뿐 정죄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총회 결의를 넘어서 동성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의학적·과학적인 사실 속에서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미 미국 정신과에서는 (동성애를) 질병 리스트에서 뺐다.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환 치료도 금지시켰다. 과학적인 내용을 토대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정작 목회 현장에서는 동성애로 인한 피해나 갈등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안하원 목사(새날교회)는 "목회 현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동성애 때문에 교회가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큰 교회 목사들이 그러는데, 이런 주장은 사회 보수 집단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동성애자를 인권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하면 옹호자라고 낙인찍는 등 횡포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번 결의는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며 잘못을 바로잡고 성소수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희영 목사(고등교회)는 "이번 총회 결의는, 어느 날 교회에서 왼손잡이는 다 나가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교회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는 종교적 문제라며 성경책을 들먹이고 있다. 이번 결의는 인권침해다. 이런 식으로 나가니 교회 밖 시민단체와 타 종교가 기독교를 상대하려 하지 않는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잘못된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 상한 동성애자에게 깊은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가 성소수자를 품어 주지 않으니, 다른 종교를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 여성 목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레즈비언 교인들이 있었다. 아주 훌륭하게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교회에서 받아 주지 않자, 불교로 떠났다. 지금 그들과 가족들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목회적 관점에서 (성소수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장신대생은, 최근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목회하는 목사를 학교 축제에 초청했다가 학교 측의 반대로 행사가 취소됐다고 말했다. 목회 현장, 신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학교와 주최 측에 항의 전화가 많이 왔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한 목사는 "우리 교회에서 (행사를) 하라"며 격려했다. 힘이 들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라는 위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102회 총회에서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2시간 동안 오갔다. 토론회 말미 "소수자를 배제하는 건 교회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는 한 목사의 이야기에 청중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번 토론회 실무를 담당한 유재무 목사는 "총회도 이번 결정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앞으로 헌의안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예장통합 총회의 좋은 점은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찬반을 떠나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서는 동성애 '찬반'이 중요하지 않았다. 동성애에 어떻게 다가갈지 심도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방점을 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는 남미 교회 사례를 들며 동성애를 조명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