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설에는 갈망 너머에 있는 구원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기독교 문학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 문학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이야기할 때 문학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을 신의 인형처럼 다루면 안 된다. 신을 위해 인간을 사용하는 문학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소설가 이승우 작가가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이야기했다. 그는 국가와 조직 등의 시스템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주제로 작품을 많이 썼다. 이승우 작가는 시스템적 폭력 앞에 무기력한 인간과 자유롭고 싶은 갈망, 갈망 너머에 있는 구원을 이야기해 왔다.

이승우 작가가 자신의 삶과 문학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유영

이승우 작가는 기독교 세계관과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을 잘 그려 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형이상학적 이야기가 저평가되는 한국 문단에서는 "독자마다 각기 다른 것을 읽게 하는 형이상학적 보편성이야말로 다른 한국 소설이 지니지 못한 이승우 소설만의 득의의 영역"이라고 평했다. 한국보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황석영 작가와 함께 이승우 작가를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았다.

이러한 작품 세계를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그릴 수 있었을까. 이승우 작가는 로고스서원(김기현 대표) 36번째 북 토크에 참여한 독자 30여 명에게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근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복있는사람)를 출간한 이승우 작가는 아버지의 부재, 신학 공부의 계기가 된 체험, 등단과 작품 세계, 글쓰기 방법에 대해 말했다. 북 토크는 7월 4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열렸다.

죽음으로 인식된 아버지
"아버지 부재가
부재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승우 작가는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전남 장흥군 바닷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만조가 되면 그나마 있던 길도 끊겨 바지를 걷고 학교에 가야 했다. 바다라면 질리도록 봐 와서, 동네 아이들이 모두 멱을 감을 때 모래사장에 웅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저게 무어라고 저렇게 재미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외로움이 피부처럼 느껴져 불편함도 없었다고 한다.

"인간 내면에 대한 고민이 어린 시절부터 체질화되었던 것 같다. 외로운 소년이었는데, 외로움이 자기 피부처럼 느껴져서 불편하지 않았다. 전혀 힘들거나 어렵지 않은 외로움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을 키우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움을 벗 삼아 지내는 게 그리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런 말을 해 줄 아버지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실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내게 최초로 인식됐다. 누군가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아버지였던 것이다.

결핍이 크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졌다가 잃어야 결핍에 따른 마음의 상처가 생기는 것 아닌가. 가져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버지가 있었던 기억이 없었기에 아버지의 부재가 상처로는 남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세상을 알아 가면서 이 부분이 결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부재를 경험해서일까. 이승우 작가 소설에는 아버지가 많이 등장한다. 이 작가는 소설 속 아버지라는 존재는 관념화한 권위·법·신·제도로 인간 삶에 간섭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에서 아버지가 억압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인간은 추구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버지를 찾는다'고 쓴 표현을, 하나님과 신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추구하는 것이 모두 성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보다 추구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소설 <한낮의 시선>(이룸)에서는 육신의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넘어 진짜 찾아야 하는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시작된 '종교적 경험'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승우 작가가 기독교인이 된 최초의 종교적 체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작가는 "아버지라는 말이 금기어처럼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 일이다.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터지면서 최초의 종교적 경험을 했다. 나름 이성적 사람인 내가 그날 감정적으로 폭발했다. 밤새 울었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했다. 내 안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이 경험이 없었다면 인격적 신앙 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식적으로 성경을 읽었을 것 같다."

이승우 작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많은 사람이 아버지를 화해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아버지를 찾은 느낌이 들며 새롭게 태어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어머니와의 관계였다. 신앙이 없는 어머니에게 신학대를 간다고 말할 수 없었다.

로고스서원의 36번째 북 토크는 이승우 작가와 함께 진행했다. 북 토크에는 3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유영

고3 시절, 이승우 작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를 나갔다. 신학대 진학을 위해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결국 신학대에서 치르는 시험에 합격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닐 정도로 점수가 잘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신학대에 진학하겠다고 말했다.

"10초 정도 아무 말도 안 하시더니 '네가 하고 싶은 일 해야지'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너무 싱겁게 끝나서, 너무 쉽게 답을 주니 허망한 느낌이었다. 어렵게 답이 와야 고생한 느낌이 있는데, 뭔가 섭섭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신학대에 진학했고, 신학대학원까지 다녔다."

신학 공부는 무척 재미있고 행복했다. 문제는 흔히 '사역'이라고 불리는 교회 일이었다. 그는 전도사가 갖추어야 할 여러 덕목이 없었다. 싹싹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외에도 여러 기술이 부족했다.

이승우 작가가 신학 공부에서 멀어진 결정적 이유는 소설에 있었다. 대학생 시절 등단한 뒤로 문단에서 그를 계속 불렀다. 교회에서는 밀어내는데, 문단에서는 부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회에서 멀어졌다. 결국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이어 가던 신학 공부도 그만두었다. 하지만 신학은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학교에 가서 문학과 연극에도 열심을 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이청준 작가의 소설에 매료됐다. 신학에 앞서 작가를 꿈꾸었는데, 신학 공부를 하면서 다시 자기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쓴 첫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예담)으로 등단했다.

등단했을 때는 신학을 공부한 소설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다. 사유가 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작가의 세계관이 작품에 반영된다.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은 기독교 문학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음미하며 외울 정도의
책 발견하면
작가 될 수 있다

이승우 작가는 "한국 작가 중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라고 격찬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한 평가다. 실제 그는 프랑스에서 더 인정받는 작가로 알려졌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이 작가는 이에 대해 "우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우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 소설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분이 '이승우 소설 문장은 번역할 때 손실되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소설가는 번역할 때, 버려지는 것이 많다고 한다.

번역에서 문장과 어휘가 버려지면, 정서·역사·세태를 전달하는 표현이 많이 손실된다. 그런데 내 문장은 비교적 그런 게 없는 것이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이 덜해서 번역하기 용이하다고 했다. 반대로 보면 한국적인 정서에서 먼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해외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승우 작가는 '이청준 작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계기가 된 소설이 이청준 작가의 <소문의 벽>(문학과지성사)이었다. 이승우 작가는 <소문의 벽>을 읽고 또 읽었다. 습작도 하면서 외울 정도로 보았다.

북 토크는 로고스서원 김기현 목사(왼쪽)가 좌담 형식으로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유영

첫 소설도 이청준 작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등단할 때도 이청준 작가가 이승우 작가 작품을 선정했다고 한다. 이승우 작가는 "이청준 작가가 거부할 수 없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그렇게 등단했기에 이승우 작가는 소설가가 되게 하는 건 '책 한 권'이라고 말한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교수로 지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책 한 권을 강조한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책이 필요 없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한 권이 중요하다. 그 한 권을 계속 읽고, 습작하면서 내 글을 쓰다 보면 작가가 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내가 작가가 되도록 하는 책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권을 음미하면서 외울 정도로 읽어야 한다. 의식적으로 읽어야 한다. 아는 언어니까 술술 읽는다. 의식적으로 읽는 행위가 중요하다.

글쓰기 할 때는 발밑만 보고 가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문장에서 문장이 나와야 한다. 문장 꼬리에서 다음 문장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은 마음이 급하다. 목적지를 알고 있으니 멀리 보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문장을 놓친다. 목적지를 알고 있다면 발밑만 보면서 간다는 기분으로 문장을 보아야 한다.

잘 안 믿는 사람이 있는데, 문장 하나를 잘 쓰는 게 중요하다. 그 문장을 보고 있으면 다음 문장이 나온다. 팁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이다. 다음 문장을 뱉을 때까지 앞 문장을 본다."

이승우 작가는 앞으로도 소설을 쓸 때 인간에 더 관심을 두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쓴 소설에서처럼 구조와 사회시스템의 압도적 힘에 억눌리거나 충돌해 피 흘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조명하기 원한다고 했다.

"인간은 추구하는 존재여야 한다. 만족하고 여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추구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에서 주류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 지금은 독자의 성향, 작가가 다양해지면서 각자의 개성으로 소통하는 문학 세계가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1980년대부터 그런 작업을 한 것 같다. 독자와 그렇게 소통해 왔다. 앞으로도 내 작품 세계로 독자와 소통하도록 성실히 노력해 가겠다."

북 토크 후에는 이승우 작가의 사인회가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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