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2016년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인권 보장과 관련해 디딤돌·걸림돌 사례를 발표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04년부터 매해 성폭력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 생존자 인권 보장에 기여한 '디딤돌' 사례와 피해 생존자 권리침해 및 2차 피해를 야기한 '걸림돌' 사례를 선정하고 시상해 왔다.

2016년 디딤돌로 선정한 사례는 6건. 경찰·검사·판사 등 다양하다. 익산경찰서 백우현 수사관, 여주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 안병위 팀장, 청주청원경찰서 최영식 수사관 등은 모두 피해자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피해자 진술을 듣는 즉시, 추가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수사관들이 모은 다양한 진술과 증거 앞에 가해자의 거짓 진술은 무력해졌다.

18년 전 강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한 끝에 검거한 사례도 디딤돌로 뽑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응휘 경위는 18년 전 노원구에서 일어난 강간 살인 사건에 투입된 막내 경찰이었다. 그는 당시 가해자의 DNA, 얼굴 사진, 혈액형을 확보했음에도 범인 검거에 실패한 것을 계속 마음에 걸려 했다. 김 경위는 작년 6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자리를 옮긴 뒤, 18년 전의 그 사건을 꺼냈고 끈질긴 추적 끝에 피의자를 검거했다.

그 외 디딤돌 선정자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강현욱 검사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김주호 재판장, 이혁, 권순향 판사)다.

걸림돌로 선정한 사례는 5건. 대상자는 7명이다. 부산지방검찰청, 부산지방법원에서만 4명이 선정됐다. 부산지방검찰청 성기범 검사는, 데이트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 후 택시비를 요구했으며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무고로 기소했다. 부산지방법원 제6형사부 유창훈 판사는 피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데이트 폭력을) 신고한 피해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상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의 태도는 문제며, 이러한 판결은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도록 위축시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외 걸림돌 선정자는 △부산지방법원 엄성환 판사 △부산고등법원 제3형사부(박석근 재판장, 이환기, 김유성 판사)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이성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1형사부(김병철 재판장 장현석, 구준모 판사)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제1형사부(엄상섭 재판장 류봉근, 이호연 판사)다.

디딤돌·걸림돌 외에 '특별 걸림돌'도 선정했다. 2016년 10월 보도한 '8년간의 생지옥…악마를 보았다' 기사를 작성한 <노컷뉴스> 박기묵 기자다. 형부가 처제를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성폭력과 가정 폭력 사건을 "에로틱 소설로 재탄생"시켜 관음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그뿐 아니라 "이번에는 시집도 안 간 처제가 임신을 했다" 등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기사를 작성한 점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사건의 자세한 내용보다 함의나 어떻게 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는지 사회적 인식 개선 위주로 성폭력 관련 사건을 보도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1월 17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서울여성프라자에서 디딤돌 선정자에 대한 시상식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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