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ㅎ교회가 신년부터 간담회를 열었다. 불가리아 이승재 선교사 성추행 사건을 주제로 피해 여성, 담임목사, 사안에 관심 있는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피해자는 직접 수집한 피해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승재 선교사 문제를 지적했다. 교회 선교 시스템에 바라는 점도 요구했다. 담임목사도 입장을 밝혔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교인들은 피해자와 담임목사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사회자는 피해자를 타깃으로 하는 질문은 삼가 달라고 했다. 교인들은 사건 처리, 대책 마련 등 이승재 선교사 성추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이야기를 쏟아 냈다. 그러나 피해자와 대립각을 세우는 말도 나왔다. 교회를 분열시키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자는 교인을 제지했다.

상황은 아슬아슬했다. 성추행 사실을 알리는 간담회가 자칫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피해자가 간담회에 직접 나와서 이야기하는 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 피해자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은 교회 내에서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필요한 대처 매뉴얼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1월 6일,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을 만나 교회 내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물었다. 김 국장은 "목사가 사건에 관심을 갖는 건 중요하지만 사건을 교인들과 무조건 공유하는 건 좋은 게 아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교회, 어떻게 하면 성범죄 피해자를 배려하면서 사후 처리를 할 수 있을까. 김애희 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현선
목회하는 가해자
상처받는 피해자

- 개혁연대에도 교회 내 성폭력 관련 상담이 많이 들어오나.

처음에는 많지 않았다. 교회 상담을 하는데 간간이 목회자 가정 폭력이나 성 문제가 들어왔다. 전문 역량이 없으니 한국여성의전화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넘겼다. 그러다 전병욱 목사 성범죄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상담이 확 늘었다. 지난해만 해도 교회 내 성폭력 상담이 다른 사건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 다른 상담 센터도 많은데 개혁연대에 상담을 요청하는 이유가 있을까.

간혹 비기독교 상담 센터에서 개혁연대로 상담이 넘어올 때도 있다. 상담해 보면, 피해자는 가해자인 목회자(목사·전도사)가 사역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목회를 계속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 거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그래서 교회 전문인 개혁연대에 상담을 요청하는 것 같다.

-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징을 꼽는다면.

외부 단체에 상담을 요청하기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알고 지내던 목회자에게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는 절대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는다. 관계가 깨질 것에 대한 두려움부터, 과연 공동체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까 고민한다. 몇 개월은 사건을 객관화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내 잘못은 아닌지, 가해자가 왜 자신에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해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도 간다.

그 과정을 거친 후 부교역자나 담당 교역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한다. 목회자들도 성범죄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없다 보니, 담임목사에게 이야기해 보자고 말한다. 당장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피해자는, 사실을 알리면 교회가 발칵 뒤집힐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더 큰 자괴감에 빠지고 이때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여러 번 문제를 제기해도 교회가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매도하고 가해자를 비호하면, 피해자는 냉소적으로 변한다.

- 교인들이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드는 경우도 많을 거 같다.

그렇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비교해 보면, 주로 가해자 파워가 더 세다. 교회 안에서 가해자가 더 많은 발언권과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해자 말을 더 신뢰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피해자는 일개 집사, 일개 학생일 뿐이다. 교류하는 사람도 가해자보다 많지 않으니, 교인들은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피해자가 이야기해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교회 안에서 피해자 목소리를 대변해 줄 대리인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전면에 나서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 만약 피해자 의견이 교인 다른 의견과 다를 때, 피해자가 교회 안에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리인이 피해자 의견을 모아 전달하면 신변 노출도 줄일 수 있다.

김애희 국장은 한국교회에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상설 기구 필요하다

- 교회 안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는 것 같다.

거의 없다. 교회 내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설 기구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인들이 문제가 생기면, 언제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모든 교회가 이를 당장 실천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성범죄가 드러나면 해야 할 일이 많다. 피해자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들어 봐야 하고 이를 토대로 가해자의 말도 들어 봐야 한다. 한두 번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피해자 진술에 논리 공백이 생기면 다시 물어봐야 한다. 품이 많이 든다. 두 입장을 듣고 사건을 파악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회 내에서 하기 어렵다면 교계에서 성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 교회 안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담임목사와 그 아내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목사가 직접 개입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성범죄와 관련한 일을 목사가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면 안 된다. 교회에 이야기했지만 묵인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목사 역시 가해자 동조 집단으로 보일 수 있다. 목사 마음은 그게 아닐 수 있지만 오히려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

상설 기구를 통하는 방법이 목사에게도 좋다. 목사 역시 인간이다. 만약 피해자가 자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고 치자. 아무런 감정 없이 다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상담가도 슈퍼바이저에게 따로 상담받는다. 목사는 슈퍼바이저도 없지 않은가. 최악의 상황은, 또 다른 성범죄가 반복됐을 때 목사가 아예 침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사보다는 상설 기구 위원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나고, 추가 피해자를 찾아 상담 기관과 연결하고 간담회를 여는 게 좋다. 상설 기구 구성원은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전문인, 다양한 직분자, 남성과 여성이 고루 들어가면 좋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구체적인 사안을 전 교인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간담회에도 불특정 다수가 오는 건 좋지 않다. 사건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되는 말을 할 수 있다. "너는 그때 무슨 옷을 입었어?", "왜 빠져나오지 않았어?" 등 피해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이보다는 교인에게 객관적으로 사건 처리 과정을 말해 주는 게 낫다.

- 기존 교회 입장을 생각해 보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굳이 상설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묻는 것과 같다. 사건이 생겼을 때 기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절대 못 만든다. 상설 기구를 단순히 '사건 처리반'이라고 생각하면 소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범죄를 폭력과 불평등 문제로 확장해 보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진다. 교회 구성원을 상대로 성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수직적 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김애희 국장은 교단이 목회자 성범죄에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목사 성범죄, 개인 일탈 아냐

- 교회에서는 목회자 성범죄가 드러나면 최대한 빨리 수습하려고 한다.

빨리 처리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 안에 거룩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빨리 시인하고 덮으려 한다. 정략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와 단체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언론 보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서둘러 수습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빨리 인정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교회에 왜 성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수직적 문화는 성범죄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해자들은 제2, 제3의 전병욱·이동현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가해자가 더 나오지 않으려면 결국 조직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 교회 문화도 바뀌어야 하지만 교단도 변해야 할 것 같다.

교단으로 들어가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일단 교단에 자문 그룹이 필요하다고 본다. 피해자를 만났을 때 태도, 교회 내 성범죄의 특수성 등에 대해 자문을 받아야 한다. 지금 교단들의 상태를 보면 요원한 일이지만, 꼭 필요하다.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교단이 목회자를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가해자를 치료하는 회복 기구라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단은 목회자 성범죄를 개인 일탈, 성적 비행으로만 여겼다. 성범죄는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다. 교단이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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