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그림'은 CCM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2000년대 초반 등장했다. 첫 찬양 '항해자'는 1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와그림 싱어 김정석 목사가 찬양을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시와그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도로에서 '역주행'하면 큰일나지만, 가요계에서 '역주행'하면 대박 난다. 오래전 발표한 곡이 세간의 주목을 끌면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즐겨 듣는 현상을 역주행이라고 한다. 걸그룹 EXID, 한동근이 역주행 주인공들이다.

뜬금없이 가요계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CCM 시장에서도 역주행을 한 가수가 있다. 하나님 말씀, 그 말씀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뜻하는 '시와그림'은 항해자라는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갑내기 조영준 작곡가와 싱어 김정석 목사(당시 전도사)의 합작품이다.

원래 이 노래는 앨범 발표 후 1년 넘게 묻혀(?) 있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한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CCM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2002년 일이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CCM의 인기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단했다. 수많은 가수, 앨범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 연예인들도 CCM 앨범을 내던 때였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출발은 초라했다. 고생 끝에 내놓은 작품이고 애착이 컸다. 내심 잘될 거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획사에 반품된 앨범이 수북이 쌓였다. 못 해도 몇 만 장은 나갈 줄 알았는데, 제작비를 물어 주게 될 처지에 놓였다. 말 그대로 '폭망'. 세월은 흘러 1년이 지났다. 충격은 상당했다. 풀이 죽어 있던 두 사람,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 멈춘 채 기도를 올렸다.

"1집 음반은 주님 손에 맡깁니다. 2집 준비하겠습니다."

통성으로 차 안에서 기도한 다음 날,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항해자'가 음원 1위에 올랐다고.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두 사람도 모르게 항해자는 조금씩 순항했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앨범을 찾는 주문이 늘었다.

9월 11일 서울 화곡중앙교회에서 만난 김정석 목사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항해자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저희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어요. 기도하고 다음 날 딱 음원 1위를 했죠. 하나님께서 저희 눈과 귀를 막으셨다가 기도를 하니까 행하심을 보여 주셨죠. 큰 감격이었죠."

당시 '항해자'는 요즘 유행어로 '히트다 히트'였다. CCM에서 보기 드문 장르를 채택해서인지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직설적이고, 절규하는 듯한 노랫말은 해석이 불필요했다. 기자는 고등학생 때 이 찬양을 처음 들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항해자를 듣고 눈물을 쏟는 사람이 많았다.

주 나를 놓지 마소서 /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 내 삶의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난 의지합니다 /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 내 삶의 항해의 방향을 잡아 주시옵소서

음이 높아서 제대로 따라 부르기 어려웠지만, 듣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졌다.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들었다. 가요 같아서 친근한 반면 '하나님께 너무 대드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김 목사는 당시 절박했던 '시와그림' 상황을 담았다고 말했다.

준비한 1집을 들고 기획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별로'라며 접자는 말이 돌아왔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작곡에 매진했던 조영준 작곡가는 집에서 펑펑 울었다. 괴로웠다. 그 순간 '항해자' 멜로디가 들렸다고 한다. 김 목사는 "시와그림은 몰라도 항해자를 아는 분들이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작곡가와 싱어, 삼고초려의 인연

▲ 시와그림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조영준 작곡가가 곡과 가사를 만들고, 김정석 목사가 노래를 불렀다. 만 장 이상 팔린 앨범만 3장이나 된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조 작곡가. (사진 제공 시와그림)

시와그림의 노래 전곡은 조영준 작곡가가 만들었다. 그런데 조 작곡가는 악보를 그릴 줄 모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악보를 그릴 줄 아는 지인에게 들려준 다음, 곡을 만드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총 7장이다.

조영준 작곡가와 김정석 목사의 인연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제갈량과 비슷하다. 남자 싱어를 찾던 조 작곡가는 성결대학교에서 전체 채플을 인도하던 김 목사를 소개받았다. 마음이 끌려 CCM 사역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는데, 김 목사는 세 번이나 거절했다. 사실 김 목사는 찬양 사역을 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겁이 났다. '과연 내가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세 번의 설득 끝에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시와그림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장르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찬양, 회개를 포함 러브 송, 힐링 송 등이 담겨 있어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중 러브 송은 백미다. 1집 '청혼', 2집 '마음의 이야기', 3집 '이젠 주의 사랑으로', 4집 '사월이어라', 5집 '시나브로'에는 연인을 향한 달달한 애정 표현과 애달는 기다림이 담겨 있다. 러브 송에는 '주님', '예수님',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꾸준히 이런 노래를 앨범에 담는 이유가 궁금했다.

"크리스천을 위한 고백 송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죄다 세상 노래잖아요. 사랑 노래 안에 영성을 담아 보자고 했죠. 5집까지 러브 송을 냈는데, 이후로는 내지 않아요. 조 작곡가가 결혼을 했거든요.(웃음)"

시와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귀에 감기는 멜로디와 짙은 호소력이다. 둘의 앙상블은 힐링 송에서 극대화된다. 청량감 있는 김 목사의 보이스는, 지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믿음을 심어 준다. 2집 '비상'이 특히 그렇다.

지금 걷는 이 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 포기하지 말고 두려워 마
너의 근심과 고통 이미 알고 계시니 / 이제까지 와서 너의 꿈을 포기 마
지쳐 버린 시간들 수많은 실패들 / 고개 숙여야 했던 이제까지 걸어온 시간
이건 너의 비전과 소망에 힘이 될 거야 / 너는 해낼 수가 있어 또 날아오를 수 있어
힘이 들고 어려움 와도 이젠 움크리고 있지는 마 / 너의 비전의 날개짓을 이제 와서 포기하지 마
세상은 널 이길 수 없어 / 넌 그 위로 날아오를 수 있어 

비상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사처럼 힘이 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응원한다. 위로는 계속된다. 5집 '정상을 넘어', 7집 '이젠 역전되리라'에서는, 지금 당신의 삶은 여기가 끝이 아니니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5집을 만들 당시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들 중 다수가 크리스천이었어요. 그분들처럼 고통스러웠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여 줄 끝은 정상 너머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죽을 것 같이 힘들더라도, 참자, 주님을 의지하고 함께 살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 목사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김 목사는 인터뷰 중간중간 시와그림 찬양을 부르며 곡 소개를 해 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정석 목사와 조영준 작곡가는 7집까지 앨범을 내겠다고 서원했다. 정말로 7집까지 나왔지만, 항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역 범위를 넓히고자 한다. 이유가 있다. 사역 현장에서 은혜와 치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7집 '주의 피'라는 보혈 찬양을 부를 때 치유의 은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LA 집회를 갔을 때 다리를 절뚝이던 한 권사가 회복했고, 중국인 불교 신자는 '주의 피'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됐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데, 저희들은 설명할 길이 없어요. 한 선교사님은 저희 앨범을 듣고 아들과 갈등이 해결됐다며 직접 찾아와서 말씀해 주셨어요. 가정이 회복되니 사역지가 회복됐다면서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떤 외국인은 저희 영어 버전 앨범을 듣고 병이 나으셨다며 감사 메일을 보내 주셨고요. 십자가와 보혈을 통해 선포되는 메시지(찬양)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하셨고, 저희에게 사명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사역이라 생각하지 않고, 저희의 하는 일을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교회, CCM도 챙겼으면"

김정석 목사는 인터뷰를 하는 내내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때로는 호탕하게 웃었다. 곡 설명을 할 때는 한 소절씩 불러주기도 했다. 찬양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목회와 강의도 했다.  

현재 김 목사는 아이, 어른 합쳐 30명 정도 다니는 화곡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한다. CTS '교회행전' 프로그램 MC를 맡고, 대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시간이 날 때에는 CCM 사역도 한다. 쉼이 없어 보이는 삶이다. 이게 가능할까?

"처음에는 '다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어휴~(웃음.) 성도들을 케어해야 하는데, 주일날 사역이 잡히면 못 챙겨 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수요 예배 때에도 최선을 다하죠. 저희 교회는 작지만 수요 예배는 70~80% 참석하거든요. 이때 많이 교제하고 서로를 챙겨 주죠. 목회 말고도 외부 사역도 같이 하다 보니, 사역을 통한 새로운 경험들과 간증들을 설교 때 들려줄 수 있어서 좋고, 설교를 통해 나눴던 말씀의 은혜를 사역지에서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15년간 앨범 7장을 냈다. 이 중 앨범 세 장은 만 장 이상 팔렸다. 환경이 어려운 CCM 시장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김 목사는 테이프와 CD 대신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CCM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는 1곡이 500원에 팔리지만, 찬양 사역자에게 돌아오는 돈은 몇 십 원도 안 된다. 김 목사는 교회와 교인들이 정식 절차를 밟아 앨범을 구매하면 많은 찬양 사역자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찬양 사역뿐만 아니라 목회, 강의, 방송 진행도 하고 있다. 쉴 틈이 없지만, 김 목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시와그림은 요즘 K-Worship을 준비 중이다. 김 목사는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CCM이라는 산을 올랐다면, 이제는 영어 앨범을 통해 큰 산을 넘어 보려고 해요. 보혈 찬양을 통해서 치유되는 사역도 있었는데, 이 사역을 쭉 해 보고 싶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수님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회복되고 살아나는 역사를 위해 달려가고 싶어요."

▲ 가장 최근에 나온 7집 앨범-일곱 번째 이야기도 인기가 좋다. 다른 앨범에 비해 메시지가 강하다. 김 목사는 "'심판의 날', '왕이 오신다', '천국으로 부른다' 등 하나님 음성을 대언하는 곡들이 수록돼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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