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사랑의교회의 개혁을 열망하는 마당 기도회 예배에 초청받았다. 마당 기도회는 오정현 목사의 여러 행태에 반기를 들고 사랑의교회를 다시 고 옥한흠 목사 정신으로 개혁하자는 교인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구 사랑의교회 예배당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개혁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문제가 터진 지 벌써 4년이 지난 모양이다. 교인 4,000여 명이 모여도 끄덕 않던 오정현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다수 교인들로 인해 어떤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어려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1,000여 명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갱신위) 관계자에게 처음 설교 부탁을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은 건 아니다. 첫째, '내가 만일 작은 영향력이라도 있다면 화해자의 입장에 서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오정현 목사와 안면 몰수 할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오 목사를 반대하는 분들 앞에서 설교한다는 게 약간은 부담이 되었다.

▲ 5월 22일 강경민 목사는 사랑의교회 마당 기도회 예배에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는 설교를 했다. 강 목사는 설교 중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유튜브 갈무리)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분명해졌다. 양쪽의 화해가 물 건너간 것이 명백해졌고, 그렇다면 옳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편을 드는 게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가겠다고 약속했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분들에게 무슨 설교를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오정현 목사의 잘못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해도 그분들에게 유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싸움을 접고 새 길을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도 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았다. 그래서 특정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하기로 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중간중간 그들이 한 선택을 격려했다. 그렇지만 처음 잘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건 아니니 하나님 존전에서 자기를 성찰하는 일을 엄중히 하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설교의 요지는 세 가지였다. 시험은 자신의 욕정, 세상이 만든 잘못된 가치관, 공중 권세 잡은 사탄으로부터 온다는 것. 그러니 시험의 근원을 알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기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사건은 두 번째 시험을 설명하던 중 발생했다.

나는 세상이 만든 반성경적 풍조인 지역감정(지역 패권 주의 사상, 강남 문화)이 신앙적 가치보다 우선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속화라고 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 중 민간 교류까지 중단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분유도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 예방 주사약도 보낼 수 없게 하는 것,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에 투자한 기업인들에게 실제적 보상을 해 주지 않는 것은 반역사적 행태를 넘어 반인륜적인 패륜이라고 언급했다. 교회가 이런 문제를 '정치적 영역'으로 분류하고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는 건 반공이라는 이념의 우상화 혹은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지역감정의 결과이고 전형적인 세속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설교 도중 4~5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간 사람들이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설교자로서 이런 상황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마음도 아주 아주 상했다. 다행히 사전에 설교를 토씨 하나까지 원고화한 습관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설교할 수 있었다.

당신들이 존경했던 옥한흠 목사님도 은퇴 후 2007년 '어게인 1907 기념 집회'에서 "내가 교인들 무서워 성경대로 설교하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고 피를 토하듯 고백했다고 말했다. 바로 당신들이 옥 목사님을 두렵게 만든 당사자 아닌가라는 아픈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아프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자신을 장로요, 교수 출신이요, 목사님보다는 인생 연배가 위라고 말씀하신 분이 내 앞으로 오셨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서로가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런 문제를 강단에서 말하면 안 된다"고 충고하셨다. 거기까진 참았다. 내가 사과를 하지 않아서인지 그 장로님은 화를 참지 못하셨다. "그런 이야기하면 다시는 우리 교회 못 오십니다"라고 말하셨다. 그 말에 나도 매우 화가 났다. 물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장로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실 수는 있지만 예배 끝나자마자, 설교한 목사에게 쫓아와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은 기본적인 교양의 문제 아닌가요?"라고 쏘아붙였다.

나를 초청하신 분과 점심 식사를 했다. 초청된 강사이니 그래도 장로님 몇 분, 혹은 관계자 몇 분이 점심시간에 동석하리라는 상상은 맥없이 무너졌다. 단둘이서 조촐한 식사를 했다. 나도 초청하신 분에게 미안했고 그분도 나에게 미안해했다.

내가 갱신위에 대해 오해했던 것은 그분들이 참으로 '신학적 회심'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는 점이다. 선입견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분들의 대다수를 반오정현 그룹이라고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오정현 목사의 행태가 너무나 실망스럽기 때문에 반오정현의 편에 서기만 해도 일정하게 개혁 그룹이 된다는 것은 슬픈 진실임에 틀림없다. 그런 정신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여전히 응원하고 싶다. 

▲ 강경민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몇 사람이 자리를 떴다. 사건이 있고 개혁장로회는 '개인적 이념을 표한 것은 유감이다. 설교자 선정에 유의해 공동체 영성 회복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위 개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태도는 놀라웠다. 예배 중 설교자가 자기와 다른 생각을 말한다고 해서 자리를 떠나다니? 이것이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태도이겠는가? 설교한 그 다음 주 주보에 나를 초청한 위원회가 다시는 그런 강사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사과문을 발표한 걸 보고 실망했다.

내가 이단 사설을 강론했다는 말인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도 인도적 지원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유엔 헌장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반인륜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을 정치적 행위로 판단하고 강단에서 정치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분들께 묻고 싶다. 일제 때 총독부 입장에서 보면 독립운동하는 것보다 '정치적 행위'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래서 총독부의 종교 정책은 정치적 행위 즉 독립운동에만 관여하지 않는다면 전도하고 구령사업하는 자유는 마음껏 허락하겠다는 것 아니었는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정치적 행위라 규정하고 독립운동을 일체 못하게 한 선교사들이나 교단의 정책이 옳았단 말인가? 영국이나 미국에서 노예해방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교회 안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었다. 성경의 정신 때문에 노예해방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이들도 그리스도인들이었고, 신앙의 명분을 내세워 노예해방 운동을 격렬하게 훼방했던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교회)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을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된다고 할 때 '정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는 일찍이 손봉호 장로님이 가장 탁월하고 분명하게 신학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정의를 내렸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그때 정치란 정권 쟁취를 위해 정당을 만들고 그걸 위해 기획하고 행동하는 모든 정당 활동이다. 이처럼 좁은 의미에서 교회가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모든 행동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행위다. 사실 기독교 운동은 모두가 넓은 의미의 정치 행위다. 교회가 이런 의미의 정치 활동을 금해야 한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다."

이것은 내가 70년대 초 대학 시절에 손봉호 교수님께 배운 논리다. 나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명쾌한 논리를 배우지 못했다.

사랑의교회 갱신위에 속한 교인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리고 싶다. 당신들은 반오정현 정신 때문에 그 고통스럽고 지난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옥한흠 목사님이 가르친 제자 훈련의 정신을 살려 보자는 신앙적 몸부림 아닌가! 옥 목사님의 제자 훈련은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회복하자는 거다. 문제는 삶이다. 예수의 삶을 위해 제자 훈련이 필요한 것이지 제자 훈련을 위해 예수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옥 목사님이 개발해 놓은 제자 훈련 지침서가 성경 위에 놓여서는 안된다. 제자 훈련 지침서가 끊임없이 개혁되야 한다.

따라서 옥 목사님의 목회 철학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옥 목사님도 이를 원한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오 목사가 옥 목사님과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오 목사가 옥 목사님보다 뒷걸음질하는 게 문제다. 당신들이 오정현을 반대했던 것은 백번 옳았고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 개혁의 목표를 오직 옥한흠 목사의 목회 철학에서 찾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확신컨대 그것은 옥 목사님의 바람이 아니다.

설교 도중 분을 참지 못해 자리를 떠난 사람들, 설교 후 목사를 찾아와 자신의 주관으로 성경 해석을 재단한 장로, 그는 아마도 자신이 교수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성경 해석도 자신의 견해가 당연히 옳다는 선입견에서 자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처럼 되서는 안 된다. 개혁을 열망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은 겸비해야 한다.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여러분은 오직, 새 교회를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죽을 테니 새롭고 참신한 지도자를 모시고 새 시대를 담당할 사람들이 교회를 새롭게 해 주소서. 한국교회가 이 시대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거듭나게 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님들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서초동에 우뚝 서 있는 바벨탑 같은 예배당을 부러워 말고 주님께 충성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드리길 간절히 바란다. 제발 또 나뉘지 말고, 새 시대를 위해 옛사람들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젊은이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대사를 이루길 염원한다. 새 시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지 않으면 님들도 광야에서 죽어야 했던 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