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지코, 도끼, 산이, 에픽하이. 펀치라인이 뭔지, 플로우가 뭔지, 스웨그가 뭔지 모르는 대중에게도 이들의 이름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영향이 크다.

쇼미더머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소비되던 힙합을 주류 문화로 끌어올렸다. 스윙스, 바스코, 베이식 등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활동하던 래퍼가 쇼미더머니에 나오면서 사람들 관심이 높아졌다. 5월에 시작하는 쇼미더머니5를 앞두고 인터넷에는 누가 나온다더라 형식의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힙합을 시작하려는 신예들은 이제 쇼미더머니를 일종의 등용문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힙합 신 대부분이 '쇼미더머니'에 열광할 때, 프로그램을 거부하며 예술가의 자부심을 지키는 래퍼가 있다. 다른 래퍼들이 돈, 여자 자랑으로 가사를 도배할 때 "돈 얘기 말고는 할 얘기 없다는 래퍼들하고는 정말 할 얘기 없어"라고 랩하는 래퍼가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비판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물으며 가사를 적는다.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뱉는다. <뉴스앤조이>가 만난 5번째 래퍼, 최근 4집 정규 앨범 '감정 노동'을 발매한 제리케이(Jerry. k)이야기다.

▲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힙합 신. <뉴스앤조이>가 주류에서 떨어져서 자신의 이야기를 랩으로 표현하는 돌직구 래퍼를 만났다. (사진 제공 스톤쉽)

누군가는 사회의식 충만한 그를 '좌리케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랩으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시선을 의식해 말해야 할 걸 말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떳떳하지 않은 건 힙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가사를 적는다.

거침없음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뷰 당일에도 제리케이는 스웨그 넘치는 힙합 패션에 세월호 리본 목걸이를 착용하고 나왔다. 매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잊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보고는 삼성 기업 물건을 쓰지 않는다. 혼수로 삼성전자 제품 대신 국내 타 회사와 외국 기업 제품을 구매했다. 타 회사에 횡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는 상징적인 다짐처럼 쓰지 않게 됐다고 고백한다.

인터뷰는 빅퍼즐아카데미 남오성 대표가 진행했다.

"하나의 스피커로서 도움 주고 싶었다"

-이번에 새 앨범을 냈어요. 콜센터라는 곡이 눈에 띄었어요. 어떻게 보면 본인과 크게 관계 없는 일인데,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제가 1집 앨범 '마왕'을 낼 때부터 스스로 '인간주의자'라고 말했어요. 인간성을 깎아내리거나 훼손하는 일에 반대하고 싶었어요. 이후 나꼼수 등의 정치 팟캐스트에 관심이 생기면서 정치·사회 약자에 눈을 돌리게 됐어요.

콜센터 직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저와 비슷한 나이대 청년이잖아요. 이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게 일상적인 감정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걸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직종이 콜센터라고 생각했어요.

노래에 드러나는 건 콜센터 직원의 이야기지만 비단 콜센터만의 이야기는 아닌거죠. 청년이 겪는 고통을 콜센터 직원에 빗대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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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만들고 나서 콜센터 노조도 찾아갔어요.

뮤직비디오를 통해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어요. 영상 막바지에는 콜센터 직원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통계자료가 나와요. '욕설을 경험한 적이 있다' 80%,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 30%라고. 알바노조, 알바연대, 희망노조 등 연대 전화번호도 들어가 있어요.

콜센터 직원들이 피해를 봤을 때 실제로 액션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싶었어요. 곡을 만들 때, 가사를 공유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생각해보다가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번호를 넣게 됐어요. 앨범이 나오고 직접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노래도 들려드렸어요.

제리케이 한 사람의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스피커를 가진 사람 중 하나이기는 하잖아요. 그런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쓰는 것을 생각했고, 그중 찾은 방법이 이거였어요. 콜센터 직원분들을 만났을 때, "전화기 너머에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계가 있는 걸로 생각하는 거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본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거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관련 앨범 작업도 했는데요.

이승환 씨가 '가만히 있으라'는 곡 작업을 하면서 창작 무브먼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저번 앨범에 수록된 'stay strong'에서도 세월호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어요. 힙합 신에서는 세월호를 거의 잊은 것 같아요. 곡 중에 'studio gangstas'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뮤지션들이 좀 눈치를 보는 건지, 멋없게 침묵한 건가 싶어요. 세월호 리본은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달고 다니기도 하고 안 할 때도 있어요. 근데 잊지는 않으려고 노력은 하죠.

-사회 비판 래퍼로 이미지가 고착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제가 '연애담'이라는 앨범을 두 번 냈어요. 사랑 얘기만 한 앨범인데, 오히려 소비자층은 저를 그쪽으로 더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센 노래들이 나오고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제리케이 달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고 이야기해요.

대기업 사원 등지고 랩에 몰입하다

-힙합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또 앨범은 언제 처음 냈나요.

중학교 때, 조피디가 나왔어요. PC통신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 장면을 충격적으로 봤어요. 욕설도 많이 들어가고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게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가사도 연습해 보고 노래방에서 해 보니까 잘하더라고요, 제가 느끼기에. 그래서 재미있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하자센터'라는 대안 교육 공간이 있는데, MC메타 형이 주관하는 힙합 강좌가 있었어요. MC메타를 좋아해서 2002년 무렵 강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 강좌 듣는 학생들과 교류를 쌓기 시작하며 가사도 쓰고 녹음도 하고 결국 우리끼리 레이블을 만들어 보자고 해서 만든 게 소울컴퍼니였어요.

초창기 멤버 중에는 더 콰이엇, 키비, 화나, 저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솔로 정규 첫 앨범은 2008년이고 군대 가기 전, 2004년에 인터넷에 '일갈'을 무료 공개하고 갔어요. 이게 2006년에 솔로 EP(비정규 앨범) 1집으로 나왔어요. 그러니까 첫 앨범은 2004년으로 봐야겠죠.

▲ 광우병 사태, 유성기업 노조, 4대강 사업, 세월호, 콜센터 직원. 그의 랩 곳곳에는 래퍼들이 잘 관심 갖지 않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런 제리케이를 누군가는 '좌리케이'라고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사진 제공 스톤쉽)

-그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 갖는 랩을 썼나요.

그 앨범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썼어요. 2007년에 로퀜스라는 팀으로 활동했는데, 그때도 안 그랬어요. 2008년 '마왕'이라는 솔로 1집을 내면서부터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썼던 것 같아요.

왜 그런 가사를 쓰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사를 쓸 때,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쓰는데 그때 아마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2집에는 마왕 파트2라는 곡이 들어있는데, 유성기업노조, 4대강 공사하다가 죽은 노동자 이야기도 넣었어요.

비민주성과 비인간성, 경제가 무조건 우선시되는 논리들이 응집되어서 터져 나오는 사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에요. 그것들에 대한 불만이 생기게 된 거죠.

-그 사이에 직장 생활도 했다고 들었어요.

2009년부터 2년 반 정도 일했어요. 카드사였어요. 어떤 사람이 조직에 들어가면 부품처럼 쓰여지는 거잖아요, 그걸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그 조직 생리에 맞지 않는 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있구나. 온전히 나로 살려면 회사를 나와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문득 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죠.

나중에는 소셜미디어팀에서 어플 기획하는 일을 했어요. 초기 기획은 회사가 하고, 실질적인 일은 하청 기업이 하는 거에요. 본사와 하청기업 사원들 사이에서 이상한 걸 느꼈어요. 저는 이제 2년 차 말단 사원인데 제가 갑이고 그들이 을인 거에요. 저분들이 저보다 업무도 더 많이 알고 일도 잘하는데, 권한은 제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때 '이거 되게 비인간적이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직장 생활 경험이 이후 음악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음악을 하는 제 나이 또래 뮤지션들은 뚜렷한 소신이 있지 않은 이상 다들 유혹을 겪어요. 음악이 돈이 안 되니까요. 취직을 해야 하나? 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되죠.

저는 음악으로는 돈이 안 되니 회사에서 돈 벌고 음악은 서브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그게 잘 안 된다는 걸 알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을 하게 됐어요. 이제 더 이상 회사가 저에게는 옵션이 안 되는 거죠.

"쇼미더머니, 대기업 중심의 하청 보는 거 같다"

-앨범 제목이 '감정 노동'인데, 곡 '콜센터' 외에 감정 노동과 관련한 곡을 찾지 못했어요.

저는 모든 노동자가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저도 하나의 음악, 문화 노동자로서 분명히 감정 노동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난 1년 반 정도 힙합 신을 지켜보면서 했던 일들이 감정 노동이었구나'라고 여겼어요. 수록곡 중 쇼미더머니를 강하게 비판한 곡도 들어 있어요. 그곳을 나간 후, 생명력을 잃어 갔던 제 마음속 스타를 봤어요. 그 이후에 롤모델이 사라졌어요.

제가 존경하던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도 제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사실을 왜곡해 '저게 맞을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존경하던 모습을 박제해 놓고 그것만 기억하고 이후 모습은 논외로 치고 내 길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말하자면, 혹독한 제 감정 노동의 결과죠. 제 동료들도 많이 나갔고요. 제가 싫어하는 것에 비해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제가 프로그램에 갖고 있는 견해들을 밝힐 때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거에요. 감정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힙합 음악을 노동으로 삼고 있는 저에게는 심각한 감정 노동이었어요.

▲ 쇼미더머니에 대해 다른 래퍼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쇼미더머니의 세가 늘어나면서 언더에서 자생하던 생태계를 모두 빨아들였다고 표현했다. 중소형 공연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힙합 신에서 꼭 쇼미더머니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사진 제공 스톤쉽)

-잘하는 래퍼가 쇼미더머니에 나가면 더 유명해지잖아요. 현재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거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요. 영화배우가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 나가듯이 그런 생각으로 나갈 수도 있지 않나요.

일단은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3명(리코, 슬릭, 던말릭)이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아요. 역겨워해요. 힙합이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텐데, 스스로를 힙합 문화에 들어가 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힙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서가 떳떳함인데,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누구 앞에 가도, 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의 설득력을 잃어요. 그래서 떳떳함을 중요한 정서로 생각해요. 그 프로그램이 굉장히 구리고 멋이 없다는 걸 알고, 힙합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 자체를 굉장히 역겨워하는 입장이니까 나갈 수 없는 거죠. 떳떳하지 않으니까.

그걸 예능으로 생각하고 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는, 다들 예능에 나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출연하는 사람도 예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봐요.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기들이 힙합 대중화를 위해서 한다고 말하니, 예능 요소를 마구 집어 넣은 음악 프로그램이지,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은 아니에요. 나가는 사람들도 즐기러 가는 게 아니고 음악으로 목숨 걸고 나가는 거란 말이에요. 나가서 보여 주는 모습을 보면 다 보여요. 예능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절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논리가 저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거죠.

-나가지 않아서 피해 보는 건 없나요. 중요한 행사에서 쇼미더머니에 나온 사람들 중심으로 라인업이 짜이기도 하는데요.

라인업에서 배제되는 문제뿐 아니라 많은 문제가 있어요. 기존 언더그라운드 인디 힙합 신이 있다고 하면, 그 안에서 돌아가는 생태계가 있었어요. 근데 쇼미더머니가 등장하고 그 세를 점점 불리면서, 자체적으로 돌아가던 생태계를 모두 빨아들였어요.

그래서 저는 쇼미더머니가 재벌 혹은 국가 주도하에 운영되는 재벌 중심 경제처럼 느껴져요. 자생적인 생명력을 전부 빨아간 거에요. 그러면서 거기에 나왔던 래퍼들이 알려지고 몸값도 뛰고, 그건 좋아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는 건 좋은 일이고, 저는 쇼미더머니가 나쁜 일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근데 이 바닥에 있던 중소형 공연이 씨가 말랐어요. 저는 개인에게 오는 직접적인 타격보다 이게 더 큰 타격이라고 생각해요. 대기업 중심의 하청 구조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죠.

지금은 전부가 쇼미더머니라는 대기업의 하청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상태에요. 중소기업으로 살기 어려우니까요. 저희 레이블 친구들이나 저도 이 문제를 겪고 있으니 속상하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거 말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최근 신에서 추천할 만한 뮤지션이나 곡이 있나요.

2015, 2016년에 가장 좋은 앨범은 딥플로우의 '양화', 이센스의 '에넥도트', 화지의 '지수',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이에요. 신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래퍼가 동의할 거에요. 이번에 딥플로우는 앨범 잘되서 미국에도 공연 초청 받아서 가고, 얼마나 멋있어요. 되게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쇼미더머니 바깥에서도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 보여 줄 수 있어요. 그 전에는 빈지노나 '잊지마'로 미국에 간 키스에이프가 아니면 힙합 신에서 '쇼미더머니'밖에 없나 정말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딥플로우가 그 길을 열어 준 측면이 있죠.

-기독교인인가요. 밖에서 보는 기독교인의 느낌은 어떤가요.

어릴 때 교회에 다녔고 초등학교 3~4학년부터는 성당을 다녔어요. 열심히 다녔어요. 대학에 가서는 잘 안 다녔어요. 소위 '냉담'을 하기 시작했죠. 기독교는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해요. 일반적으로 개독이 먼저 나오는데, 저는 기독교인으로 좋은 일 하시는 분들 많이 봤어요. 전부가 그렇다고 생각도 안하고, 전부가 그럴 일도 없고요.

그렇지만 소위 주류의 기득권층은 못 봐주겠어요. 가장 핵심이 되는 기독교 정신, 하느님의 말씀, 예수님의 철학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걸 시스템을 통해서 퍼뜨리고 있는 게 굉장한 해악이라고 느껴요. 그게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 제리케이에게 힙합이란 '멋'의 또 다른 이름이다. 떳떳하고 싶고 멋없어 지지 않기 위해 그는 끊임 없이 자신이 보고 듣는 생각을 음악으로 만든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힙합, 멋, 삶의 자세

-마지막으로 어떤 래퍼가 되고 싶은가요.

글쎄요. 멋있는 사람? 멋이 힙합 문화 안에서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멋있음. 이게 외적으로 드러나는 멋도 있지만, 삶의 자세로서의 멋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멋없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쇼미더머니를 까고 있는 거고, 멋없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최대한 하려고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려고 힙합 하는 거죠. 그래서 최대한 멋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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