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 봤다. 내가 하는 일이야 벼룩시장의 '아르바이트' 섹션에서 찾을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조만간 '끝'이라는 소망이 있었다. 그 소망의 힘(?)으로 조금 힘들어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만약 이런 소망의 힘도 없이 매일매일 이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반복되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시는 분들은,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숭고한 삶을 살아 내고 계시는 것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자녀가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는 어머니가 사연을 의뢰하면, 그 자녀에게 제작진들이 찾아가 다큐를 촬영한다며 협조해 달라고 뻥(?)을 치고 그 사람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관찰해서 영상에 담아 어머니에게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첫 회가 '취준생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취준생'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참 먼 단어다. 왜냐하면 나는 취업을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취업이라고 한다면 사역할 교회를 정하는 건데 이걸 '취준생'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이 있지 않았던 단어였고 전혀 체감하지 못했는데, 방송을 보는 동안 점점 가까워지더니 아주 비수와 같이 내 마음을 찌르고 큰 울림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취준생의 하루가 바로 우리 교회를 다니는 청년 중 누군가의 하루이고, 내 친구의 하루이고, 내 이웃의 하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멀었던 그 단어가 대부분의 청년에게는 아주 가까운 단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힘도 없는 내가 그들에게 어쭙잖은 말 한마디 해 준다고 위로가 될 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나만 살기 힘든 것처럼 생각했던 시간, 그리고 지난 몇 달간 큰 위로와 용기를 주셨던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무언가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면 작은 힘이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몇몇 분을 만나게 되었다.

▲ '취준생'이라는 단어는 나와 거리가 먼 말이었다. 취업이 안 되는 청년이 있으면 "하나님이 저 사람을 연단하시는 시간이구나"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림 제공 이현숙)

신기할 정도로 취업이 안 되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가장 가까운 곳, 내가 섬기는 교회학교 교사 중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자매가 한 분 계셨다. 이 자매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유학하고 온 분이다. 한국에서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중국에서도 꽤 좋은 대학을 다녔다. 이렇게 보면 영어도 잘하지, 중국어야 말할 것도 없지, 외모도 괜찮지, 성격도 성실하지, 신앙도 좋지 하니까 취업 걱정은 안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고 아픔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이 자매님이 취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작년 여름 미얀마 단기 선교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취업이 안 되었다. 안 넣어 본 곳이 없을 만큼 수많은 이력서를 넣었는데 면접은커녕 1차 서류 심사도 통과되지 않아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시간들이 하루이틀일 때는 그럴 수도 있다며 스스로 위로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한 달 두 달 세 달 네 달이 지나며 소위 '멘붕' 상태가 되어 갔다고 한다. 밝고 자신 있던 자매의 얼굴빛이 언제부터인가 달라지고 이전에 보지 못한 부정적인 모습이 슬쩍 보여 집안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취업 문제 때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실 나 같은 전도사는 이러한 고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사는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지금의 청년들에 비하면 고민이라고 할 거리도 못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체감 온도가 없기에 단순히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저 자매를 연단하시는 시간이구나.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연단이 끝나면 하나님이 취업의 문(?)을 열어 주시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놈의 연단인지 뭔지가 언제 끝나는지 그 자매는 지독하게도 취업이 되지 않았다. 부서의 교사였기 때문에 말씀도 전해 주고 나눔도 하긴 했는데 크게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을 하면서 나눔의 시간이 있었는데 믿음 좋고 성실하고 긍정적이었던 그 자매가 이런 고백을 했다.

"저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이 싫어요. 지금 살아 계신지도 잘 모르겠고요. 이렇게 사는 게 지긋지긋하고 현실이 시궁창 같네요.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싫고요."

그 순간 시간과 공간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섣부르게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불신앙적인 말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그 자매의 가장 신앙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 하나님께 한창 쌍욕하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갔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그저 같은 마음으로 울어 줄 뿐이었다.

그저 함께 울어 주는 것밖에는

성악을 전공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10년 만에 귀국한 한 페이스북 친구의 이야기도 이 자매님의 이야기와 함께 내 마음을 울렸다. 누구나 다 아는 명문 대학을 나와 유럽에서 10년간 유명 학교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귀국한 스펙 정도면 어디든 모셔 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그곳도 똑같이 치열한 취업 전쟁터였다. 귀국한 딸을 반기던 어머니는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왔으면 얼른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뭐 하고 있냐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단다.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취업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돈과 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유학 다녀온 고학력 백수가 되었고, 심지어 집안이 넉넉하지 않아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어마무시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너는 원래 노래를 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노래를 해서 지금 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
"차라리 노래를 포기하고 독일어가 필요한 무역 회사에나 취직해라."
"결혼이나 할 생각하지 뭐 한다고 그러고 다니냐?"

물론 자매님은 '내가 많이 부족하고 걱정되어서 하는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에 큰 상처가 남았다고 했다. 지난 시절 죽어라 열심히 노래를 불러 왔는데 귀국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내 인생이 이렇게 평가되는 것에 가슴이 무너져 잠을 못 이룬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단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취업이 어려운 지금은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이고 당사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나 어려움은 어마무시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상황을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가끔 만나 '맛있는 거 먹자'는 말이 가장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마음이 아렸다. 이들이 하는 고민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이제야 정말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저 함께 울어 주는 것….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의
무슨 말보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

그 사람의 표정
따스한 손길
눈물

그 사람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런 모습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너무나
마음이 아픈 일이 생겨서
울고 있을 때

아니,
울어야 하는데
울지도 못할 만치
아무 마음이 아픈 일이 생겼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정말 잘 모르겠다 해도

그냥 안아 주고
엉엉 울어 줄 수 있는
그런 진.심.을 가진 사람
눈.물.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나는 네게 눈물이 되고 싶다

너의 모든 속사정을 담은
눈물이 한 방울 있다면
내가 바로
그 눈물이 되고 싶다

그리고 또 한 명, 잘 알고 지내던 동생의 취업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말 그런 고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 계속)

▲ 김파전의 2030 미생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그림 제공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2030들을 이야기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라는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