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미생'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등장인물 중 신입 사원 장그래, 장백기, 한석율, 안영이에게는 농구에서 일대일로 공격과 수비가 맞서는 것처럼 절묘하게 상사가 매치업되어 있다.

스펙이 심히 딸리는 계약직 장그래.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다. 그에게는 스펙을 중요시하지 않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 차장, 천 과장, 김 대리가 매치업된다. 만약 장그래가 그들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부서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는 아마 잠재되어 있는 '포텐'(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날개가 다 뜯긴 '갑'의 세계에 들어간 이방인 '을'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장그래는 오 차장, 천 과장, 김 대리를 만났기에 더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장백기. 그러나 매사에 튀고 싶어하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함이 있다. 그에게는 그보다 더 실력이 완벽하고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FM 강 대리가 매치업된다. 그런 강 대리 때문에 장백기는 비로소 겸손을 배우게 된다. 장백기에게 그런 강 대리가 없었다면 장백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신입 때부터 승승장구하는 회사 생활을 하다가 고속 승진 끝에 높은 자리에 올라갔지만 신입들의 마음을 전혀 모르고 오직 실적만 요구하는 차가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백기는 강 대리를 만났기에 더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이거 신입 맞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탁월한 안영이.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그에게는 버럭의 제왕 이글아이 하 대리가 매치업된다. 게다가 지랄맞기 짝이 없는 마 부장까지. 그런 하 대리와 마 부장 때문에 안영이 역시 겸손을 배우게 된다. 안영이가 그들이 아닌 잘 대우해 주는 상사들을 만났다면, 신입 여사원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자기보다 실력이 좀 떨어지는 상사들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영이는 하 대리와 마 부장을 만났기에 더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사교성과 말발이 탁월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한석율. 조금 약삭빠른 면이 있지만 밉지는 않다. (미생 등장인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야곱 같은 그에게는 자신보다 더 약삭빠르고 치사한 라반 같은 성 대리가 매치업된다. 그런 성 대리 때문에 한석율은 꺾이는 것이 무엇인지, 약함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아마 그가 성 대리를 만나지 않고 상사가 되었다면 그 역시 성 대리처럼 결국 라반 같은 상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 대리를 만났기에 '아, 저런 쉑 같은 상사가 되면 안 되겠구나'라고 더 많은 다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석율은 성 대리를 만났기에 더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작가가 한 명 한 명의 주인공들을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려고 정말 적.절.한 사람을 매치업했구나….' 미생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 교회 미생 김파전. 하나님은 미생인 나에게 누구를 매치업시키셨을까? (사진 제공 김정주)

사람은 사람에게 부딪혀야 다듬어진다

잠언 27장 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조금 아리송한 이 말씀은 '쉬운성경'으로 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쇠는 쇠에 갈아야 날카롭게 되듯이 사람은 사람에게 부딪혀야 다듬어진다."

무슨 뜻인가?

쇠는 두부로 갈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쇠를 날카롭게 가는 데 가장 좋은 도구는
같은 쇠로 가는 것이다

그와 같이
사람을 가는 데에
가장 좋은 도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서 갈려야지
다듬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훈련이 하나 있다면
인격이 다듬어지는 훈련이다

신앙은 어느 순간인가
큰 은혜를 받고
확 하고 변화될 때가 있지만
인격이라는 것은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확 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그 사람의 살아온 걸음걸이가
차곡차곡 쌓여서 형성된
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가장 좋은 사람을 섭리 가운데 붙여 주신다

좋은 사람이란 누구일까?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오 차장처럼 좋은 사람이 있다

우리를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사랑을 주는 사람
확실히 그런 사람은
우리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니
좋은 사람이다
요나단 같은 친구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성 대리나 마 부장같이 나쁜 사람이 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

그런데
이 사람들도 역시 좋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 또한 우리가 신앙으로 반응할 때에
우리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울 같은 놈 말이다

만약에
우리에게 요나단 같은
좋은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는 내면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잘 발견하지 못한다

맨날 칭찬과 격려와 인정만 해 주는데
안에 있는 혈기나 쓴 뿌리 독기들이
왜 튀어 나오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사울 같은 나쁜 놈을 만났을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안에도 저 사울 같은
똑같은 놈이 하나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청난 유익이다

종은 무엇으로 치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다 다르게 난다
하나님도 우리를 더 좋은 소리 나게 하시려고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두들기셔서
우리 안에 어떤 소리들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1사로의 기도

군대를 스물네 살이라는 엄청난 나이에 갔기에 입대하기 전에 엄청나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자대 배치받으면
그 안에서 독실한 크리스천 선임을
만나게 해 주셔서
제가 이등병 때부터 교회를 가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쓰레기 선임이 아닌 보석 선임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중심에는 결국 그래서 군 생활을 편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할 때마다, 매운 닭발을 야식으로 먹고 다음 날 아침에 화장실에 갔을 때의 그 뜨거움이 있었다. 그래서 자대인 경기도 광주경찰서(나는 전경 출신)로 배치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우리 내무반에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군대에서 소위 말하는 쒸레기 고참이 무려 3명이나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정말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는데 키는 나와 비슷한데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거구였고, 소위 말하는 오타쿠같이 생긴 놈이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괴롭혔다. 정말 황당했던 건 복도에 세워고 한 30분을 갈궜다.

"야, 띠껍냐? 내가 그지 같지?"

내가 계속 '아닙니다'를 반복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X발, 아닙니다 하지 마! 한 번만 더 아닙니다 하면 죽는다"라고 했다. "너 나 죽이고 싶지?" 해서 내가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멱살을 잡고 벽에다가 밀쳤다. 아무튼 그런 고참을 만났으나 도망갈 수도 없고 계속 같은 공간에 있으니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들었다.

그 고참이 소변을 볼 때면 몰래 뒤로 가서 엉덩이를 뻥 차서 변기에 머리를 처박아 버리고 싶은 생각, 머리를 감을 때면 머리끄덩이를 잡고 세면대에다가 꽝 하고 찍어 버리고 싶은 생각,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내부반으로 돌아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불꽃 싸대기'(귀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나는 '혈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내 안에 엄청난 혈기들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쌍욕들이 그 고참을 보면 권사님 방언 터지듯 속에서 샘솟았다. 그런데 그 고참이 유일하게 나를 갈굴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 1사로에 앉아 거사를 치를 때였다. 그 차가운 변기에 앉아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 XX를
죽여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말씀만 하시면
제가 죽이겠습니다.'

정말 전심으로 그렇게 기도했는데 화장실에 홀리 스피릿이 임했다. 그때 깨닫게 해 주신 것은 교회에서 맨날 인정과 격려를 받았을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내 안에 있는 혈기, 교만함, 폭력적인 성향, 복수하고 싶은 마음 등등, 그리고 그런 것들을 형성되게 하였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아, 하나님이 이러한 것들을 제거해 주시기 위해 저 고참을 붙여 주신 거였구나'라는 깊은 깨달음이 왔다. 저런 쉑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인이었던 나를 사랑하신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화장실 1사로에 앉아 많이 울었다.

하나님께서 그 고참을 내게 매치업시키신 것이다.

결국 그 고참을 죽여 달라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그 고참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자아가 죽는 기도가 응답되었다. 그리고 화장실 1사로에서 폭풍 사격(?)을 마치고 나올 때면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갔고 그 고참은 전역하는 날까지 전혀 변하지 않고 모든 후임에게 욕을 먹고 무시를 당하다 제대했다. 그렇지만 그 고참 때문에 나는 더 예수님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고 심지어 나가는 길에 유일하게 배웅을 해 주고 안아 주기까지 한 아름답기 짝이 없는 1인이 되었다.

▲ '아, 하나님이 이러한 것들을 제거해 주시기 위해 저 고참을 붙여 주신 거였구나’라는 깊은 깨달음이 왔다. 또 저런 쉑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인이었던 나를 사랑하신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면서 화장실 1사로에 앉아 많이 울었다. (사진 제공 김정주)

나에게 붙여 주신 가장 적절한 사람

나에게 잘해 주는 착한 사람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막 하는 나쁜 사람 역시 좋은 사람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보다 나에게 막 하는 사람이 신앙으로 반응할 때에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나에게 붙여 주신 사람을 통해서 과연 내 안에 무엇을 드러내고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거지?'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사람을 붙여 주셨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 이 훈련을 완수할 수 있다.

"예수님을 닮고 싶어요"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 길은 쉽지 않다. 가고 싶은 곳만 가서는 예수님을 닮을 수 없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서는 예수님을 닮을 수 없다.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예수님을 닮을 수 없다. 오히려 가기 싫은 곳을 갈 때 예수님을 닮게 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 예수님을 닮게 된다. 힘들지만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을 할 때에 예수님을 닮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울이 없었다면
다윗은 다윗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울이 없었다면
다윗은
압살롬이
되었을 것이다

다윗을
다윗으로
만든 것은
사울이었다

'미생' 막바지로 갈수록
등장인물들이
사람 훈련을 잘 받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훈훈해서 미소가 나온다

하나님도
우리가
그렇게
사람 훈련을 잘 받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 갈 때에
얼마나 흐뭇해하시고
미소 지으실까

오늘도
각자의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사람 훈련받으며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우리 모든 미생 그리스도인들

힘을 모아 으라차차!!!!

▲ 김파전의 2030 미생들의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됩니다. (그림 제공 이현숙)

글쓴이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송파구의 한 교회에서 '파전'(파트타임 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직장인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84년생 서른두 살의 김파전. 비록 전도사님이라 불리지만 세상살이는 '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김파전이 자신의 세대인 2030들이 위로받아야 할 교회에서조차 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신학과 이론으로 내린 정답과 같은 '제자도'가 아니라, 2015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 크리스천들이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삶의 제자도'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제자도'란 말은 멋지지만 사실 실제 삶은 김파전의 '파전행전'일 수밖에 없지만요. 

김파전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리얼한 삶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생의 삶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행복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파트타임 전도사(파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행전)라는 뜻으로, '파전행전'이라 지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한 편씩 업데이트됩니다. - 편집자 주  

*김파전의 페이스북 www.facebook.com/mukhyan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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