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음'을 잘 지르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언제부터인가 고음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3단 고음
7단 고음
10단 고음

철권도 아닌데 고음 콤보들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누가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를 제2롯데월드가 지어져 가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저 높이높이만 올라가는 텅빈 것 같은 고음들이 우리 귀를 자극했다. 고음의 자극이 커질수록 듣는 이의 마음에는 감동의 울림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이런 고음 콤보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다들 하면서도 이미 시작된 경쟁은 끝을 모른 채 높이높이 올라갔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고층 건물 같은 고음 대결의 한복판에 한 청년이 달랑 통기타 하나를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청년의 목소리는 고음과는 한참 먼 중저음이었다. 하지만 그 청년이 부른 '후회'라는 노래에는 고음이 해내지 못하는, 마음을 쪼개는 도끼와 같은 힘이 실려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고음을 지르지 않고 중저음으로 도전 한 그 청년. 심사를 하면서 가수 나르샤는 울었고, 김범수는 "만나고 싶었던 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을 지금 만났다"고 하였고, 윤종신은 "노래가 아닌 '음악'을 잘한다"라는 심오한 칭찬을 했다.

나는 그 심사평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마어마한 실력자들의 화려한 노래 배틀이 벌어지는 '슈퍼스타K'의 우승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실력은 알겠는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화려함이나 스타성이 그에게는 한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눈이 개의 눈임을 입증하듯 이 청년은 급하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사람들이 원하는 템포와 사람들이 원하는 목소리가 아닌 자신만의 발걸음과 자신만의 목소리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나아갔을 뿐이고 그 걸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진 제공 김정주)

중저음의 반란

'후회'하는 것처럼 시작하더니 '호랑나비'를 타고 '매일 그대'와 함께 하고 싶은 듯 '당신만이'를 찾으며 '걱정 말아요 그대' 하며 달래고 '가시나무'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하더니 이제는 자신 있게 '안아 줘요' 외치며 '소격동'에 가서 '옛사랑'을 그리며 '이별의 온도'를 가늠하다가 '내가 만일'로 다시 추스르고 마음을 '단발머리'처럼 짧게 다듬고 마침내 '자랑'을 하겠다고 했다. ('슈퍼스타K'에서 곽진언이 부른 노래들이다.)

자, 그래. 이제 결승전이니 마음껏 '자랑'을 해야 하는 때가 왔다. 과연 그는 무엇을 자랑할까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그가 들고 나온 것은 달랑 통기타 하나와 자작곡이었다. 결승전 무대에서 그것도 '슈퍼스타K' 마지막 무대이고 결승전 상대인 김필에게 점수도 뒤쳐진 상황이었는데 통기타 하나라니! 게다가 자작곡이라고 들고 나온 노래가 예전에 만들어서 대중에게 나름 검증된 노래도 아니고, 오디션 기간 중에 만든 완전 신곡 중의 신곡이었다. 그 청년을 응원하는 마음에 걱정을 하며 냉정한 대중이 과연 이 마음을 알아 줄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즈음에 '팅' 하는 기타 첫 음이 숨을 꼴깍 죽이게 하면서 그의 노래는 시작되었다.

이제 내가 겁이 많아진 것도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나보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기대는 법을 알기 때문이야

또 말이 많아진 것도
그러다 금세 우울해지는 것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나서
나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 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
우 - 우우 우 - 우우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 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예요

제일 먼저
그댈 먼저
안아 줄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꽉 차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통기타 하나와 자작곡 하나였지만 그 어떤 화려한 밴드의 음악보다 가득 차게 들렸다. 고음은 1센티미터도 없는 시종일관 중저음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곽진언이라는 '음악'이 있었다. 그의 존재의 울림이 '노래'를 꽉 차게 해 주었다.

99점
99점
99점
97점

역대 최대 점수를 받으며 곽진언은 상대 김필을 이기고 우승했다. 중저음의 반란이 성공했다. 그를 통해서 흘러 나가는 중저음의 울림이 한국교회… 가 아니라 한국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때, 아마도 신학생 시절부터 얼마 전까지 나의 꿈은 유명한 설교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속은 온통 고음을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설교를 잘한다'라고 생각할 때에 화려한 웅변과 기계같이 잘 다듬어진 기승전결 안에서 클라이맥스의 한방을 잘 치는 설교자를 연상했다.

이러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설교학'이 아닌 '웅변학'에 관심을 갖게 했다. 본문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시대적, 현재적 깊은 고민을 담아낼 생각은 안 하고 목소리 톤과 손짓 발짓만, 3단 고음 7단 고음 10단 고음 하듯이 잘 질러 설교를 듣는 이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만 고민했다.

교회를 생각할 때도 고음과 같은 교회를 생각했다. 제2롯데월드같이 웅장한 건물과 그곳에 2002 월드컵 때처럼 터질 듯이 모여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이라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나로 하여금 '교회론'이 아닌 '기업론', '교회성장론'에 관심을 갖게 했다. 교회에 대한 신학적, 신앙적, 시대적, 현재적 깊은 고민을 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막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3단 고음 5단 고음 10단 고음을 지르듯이 잘 경영해서 교회는 크게, 성도는 많이 만들면 그게 부흥한 교회, 성공한 목회, 능력의 종이라 생각했다.

신앙이라는 것을 고음 속에 가두어 놓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의 설교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울림 없어 곪아 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더 곪아 가고 있었다. 곤고하기 짝이 없이 비어 가고 메말라 가는 마음에서 고름이 나올 즈음에 내가 주인 삼은 고음들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을 때에 하나님은 깊이 나를 만나 주셨고 이전과는 아주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전처럼 고음을 잘 지르는 설교자가 아닌 그 속에 풍성한 깊이를 담고 있는 '신앙'과 '신학 함'을 아는 중저음의 설교자가 되고 싶어졌다. 목소리를 배철수처럼 솔에 맞추지 않아도, 손짓 발짓이 팝핀 현준처럼 절도가 있지 않아도, 전래동화처럼 기승전결의 클라이맥스에서 내뿜는 사자후 같은 한방이 없어도,

▲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하여서 일부가 되어 버린 통기타 하나와 같은 말씀 본문, 그것을 부둥켜안고 지내다 보니까 저절로 나오게 되는 자작곡과 같은 예화, 그리고 화려한 세션 코러스 조명 고음이 없어도 그 존재가 중저음인 설교자가 되고 싶다. (사진 제공 김정주)

겹겹이 껴입은
성경 본문의 옷을
신학으로
발가벗기고

겹겹이 껴입은
자아의 옷을
신앙으로
발가벗겨서
껴안고

뜨거운 밀애 가운데
설교자의 자궁에
착상된 말씀이

임신 10개월 동안
기도의 탯줄을 통해
시간의 세례를 견디며

마침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해산되었을 때에

그 말씀을
침착하게 품에 안고
우렁찬 살아 있음을
떨림으로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중저음 설교자 말이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예화,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좌우에 날선 유머, 성경 본문에 충실하지 않고 사변적인 코러스와 세션 조명으로 무장한 20분 내의 설교가 아니면 사람들은 잘 듣지 않는다"라고 왜 정의했던 걸까?

오랜 시간 동안
자신과 함께하여서
일부가 되어 버린
통기타 하나와 같은 말씀 본문

그것을 부둥켜안고
지내다 보니까
저절로 나오게 되는
자작곡과 같은
예화

그리고
화려한 세션 코러스 조명
고음이 없어도
그 존재가 중저음인 설교자는
시간과 공간을 꽉 차게 한다

그 중저음 속에
담긴 본문의 깊이 속에
시간조차
숨을 죽이고
찌그러져 있는다

윤종신은 말했다. "김필은 자신의 경험, 자신의 고민을 노래에 실었지만 곽진언은 그냥 자기를 노래한다"고 말이다.

저 사람이 지금 설교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씀과 일체화가 되어서 그냥 말하듯이 자연스레 따스함으로 진리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설교는 자연스럽게 '에반겔리온'의 AT 필드가 해제되듯 마음의 벽을 해제시킨다.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심령의 귓구멍에 때려 박히는 도끼와 같은 힘이 있다. 지울 수 없는 거룩한 화상을 남긴다.

노래인지 존재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하나가 된 곽진언처럼, 설교인지 존재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하나가 되어서 중저음으로 설교하는 그런 존재가 몹시 되고 싶다. 아니, 좋은 설교자가 아닌 매일의 삶을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가다 설교 시간에 삶의 전선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성도들과 함께 "우리 함께 애쓰며 하나님 따라가 봅시다"라는 말을 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고 싶다.

고음 자랑은 이제 그만

나보다 따뜻한 주님을 만나서
기대는 법을 알기에
겁이 많아지고
의기소침해지고

나보다 행복한 주님을 만나서
나의 슬픔을 깨닫고
말이 많아지다가도
금세 우울해할 줄 아는

더 크게
더 많이
를 주님 앞에 자랑하는 것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랑을 나눠 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주님에게 제일 먼저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주님을 제일 먼저
안아드리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의 울림으로 노래하는
중저음 설교자가
되고 싶다

아니
그보다
다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다
제일 먼저
안아드리고 싶다

[부탁 드립니다]
김파전이 독자분들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파트타임 전도사 생활을 하고 있는 김파전이 한 가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취업 준비생'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김파전이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아 뭐라고 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 '취업 준비생' 시절을 경험했거나 지금 그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의 김파전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 주셔도 되고, 메일로 보내 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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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의 가장 아픈 이야기 중 하나 '취업 준비생'. 결혼, 학자금 대출, 재정, 직장 등의 이야기는 했는데 '취업 준비생' 이야기도 꼭 한번 여러분을 대신해 김파전의 입으로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나누고 아파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힘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힘들었던 순간. 아팠던 말. 오해 받아 억울했던 순간.
힘이 되었던 말. 희망이 되었던 말.
교회 생활은 어떤지. 교회는 어떻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는지.
사람들이 꼭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것들.
꼭 하고 싶었던 말.
등등...

이외에도 꼭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써 주시면 김파전이 읽고 잘 정리해 파전행전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참, 당연히 익명으로 소개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가능한 자세하고 실제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김파전을 응원하는 여러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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