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겠다고 맘먹고 두꺼운 신학 책을 샀는데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한 경험,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한 목사가 비슷한 경험을 겪다가 번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잘못된 번역이 한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왜 유독 신학 서적에 오역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요.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출판사가 해외 서적을 번역해 출판하는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오역 사례 △잘못된 관행을 벗지 못하고 책을 내는 출판사 △오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 △출판사가 오역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목회자·신학생·성도들을 통해 이 땅에 부흥과 개혁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문서 사역을 통해 세상 속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겠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들 앞에서 성실하게 복음 문서를 전달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겠습니다."

이 문구들은 여러 기독교 출판사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자신들의 비전문 또는 인사말의 일부다.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듯이 기독교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일을 '문서 사역'으로 소개한다. 심지어 출판사 이름에 '선교'가 들어가는 곳도 있다. 그처럼 출판사를 운영하는 목적이 단순히 영리를 좇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 한 출판사 실내 모습. 번역 문제를 취재하러 갔다가 그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번역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 대표, 편집장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출판사 운영 목적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해외 전문 서적을 주로 번역해 출간하고 있는 이들은, 한국교회 신학이 미국·영국·독일 등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외에는 신학이 한국보다 역사가 깊고, 명망 있는 신학자들도 많다고 했다. 출판사들은 이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낸 책을 번역해 한국교회와 신학교에 보급하는 게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했다. 어떤 곳은 번역서 출판 비중이 70~80%를 차지하기도 했다.

출판사가 책을 기획하는 과정도 소개했다. 한국교회 신학 분야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려한다고 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우리는 세계 신학 분야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먼저 인지하고 한국교회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이러한 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핍니다. 그 다음에 한국교회에 필요한 주제를 판단하고, 필요한 책을 냅니다"고 했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과거 기독교 출판사들이 한국교회 신학에 영향을 준 사례를 소개했다. "90년대 중·후반 출판 분야 키워드는 '세계관', '내면세계', '평신도'였습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이와 관련한 책을 내자,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명을 갖고 전문 신학 서적을 출판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고 한다. 40년 동안 전문 신학 서적을 발간해 온 ㄱ출판사는 평균 120종을 출간하는 중견 출판사다. 그런데 작년 판매 실적을 보니 3억 5,000만 원 가까이 적자가 났다. ㄱ출판사 대표는 해마다 매출 실적이 점점 안 좋다고 말했다. 기획과 편집을 다른 출판사보다 꼼꼼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진 ㅅ출판사도 책을 한 해 약 30권 낸다. 일반 독자에게 후원도 받고 있지만, 매년 적자가 나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 통계청에 따르면, 한 가구가(2인 이상) 한 달에 책을 구입하는 비용이 2004년부터 계속 감소해 왔다. 소득과 오락·문화 지출이 증가한 것과는 대비된다. (뉴스앤조이 시각화 자료)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책을 잘 보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전체 출판 매출이 감소한 탓도 있다. 실제로 한 가구(2인 이상)가 한 달에 책을 구입하는 데 쓰는 돈이 책 한 권 값 수준이다. 2014년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 동향'을 보면 한 가구당 도서 구입비가 16,878원이다. 2008년(24,240원)부터 연마다 꾸준히 감소했다.

출판 분야 전체 매출액도 2010년부터 계속 줄었다.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5년 콘텐츠 산업 전망 ― 2014년 결산 및 2015년 이슈 분석'을 보면, 출판 분야 매출액이 2010년(21조 2,000억 원)부터 계속 줄어 작년에는 20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에도 작년보다 1.6%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 서적 출간은 대부분 번역서라 일반 도서보다 비용이 더 들어 출판사에게는 부담이 크다. 사전에 선인세로 해외 출판사에 1,500~2,000불을 내야 하고(경쟁이 심한 경우에는 이보다 더 내기도 한다), 번역가에게도 인건비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선인세는 어차피 낼 인세를 미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당장 쓸 자금이 급한 중소형 출판사에게는 이마저도 부담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전문 서적을 내는 기독교 출판사들은 한국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사역하는 마음으로 책을 내고 있지만, 소득이 불확실하거나 적자로 힘든 상황이다. 심혈을 기울여 해외에서 잘 알려진 신학자의 책을 국내에 발간해도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해외에 있는 양서를 한국에 들여온 게 어디냐며 제작비를 줄이는 곳도 있다. 다소 오역이 발생할 수 있더라도 편집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또 가급적 책을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출판해 한 권이라도 대박을 터뜨리기를 바라는 소위 '로또식 출판'을 하는 곳도 있다. 이번에 출판 분야에 논란을 일으킨 오역 문제가 단순히 출판사 운영 문제, 편집자 실력이나 양심 문제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관련 기사: [기획2] 오역 많은 신학 책, 이유가 있었네)

출판사 10여 곳을 취재하며,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물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출판사가 더 고민해 좋은 서적을 발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시장 논리에 따라 대중들이 읽을 만한 교양서를 더 발간하고, 전문 서적은 줄이는 식으로 전략적으로 출판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기독교출판협회에 등록한 출판사가 총 140여 개다. 그중 백 몇 십 곳은 없어져 20~30개로 줄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결국, 뚜렷한 대안은 없어 보였다. 

▲ 지난 5년간 출판 산업 매출액은 계속 감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도 1.6%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표 위). 인터넷 서점 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가 공개한 개신교 분야 누적 판매량이다(표 아래). 잘 팔리는 책은 대부분 국내 유명 저자가 쓴 설교집 또는 간증집이다. (뉴스앤조이 시각화 자료)

그중 한 출판사 대표가 한 제안은 남달랐다. 교회가 책 제작에 후원하는 것이다. 사역이라는 측면에서, 출판사와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바는 같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건강한 신앙과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출판사가 양분이 되는 책을 찾아 번역해 보급할 테니, 교회가 지원하라는 것이다.

"800페이지짜리 전문 서적을 내면 대개 5,000만 원이 필요합니다. 2,000만 원이 번역료이고 2,000만 원이 편집자 인건비입니다. 나머지는 인쇄, 종이 등의 실제 제작비입니다. 출판사가 이런 책을 출판해 회수하는 건 한 2,000~2,100만 원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적자입니다. 그리고 2,000만 원을 회수한다고 해도 기간이 1년 걸릴지, 2년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제작할 때는 목돈이 필요하고, 회수할 때는 푼돈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교회가 같이 나누는 건은 어떨까요. 번역료를 교회가 지원하고 나머지는 출판사가 부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석 교인이 1,000명 이상인 교회가 약 100개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들이 1년에 1억씩 출판 분야를 지원하면 해외에 있는 전문 서적이 500권 이상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독교 출판사들은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능력 있는 번역가와 편집자를 양성해 역량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계도 양질의 신학 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출판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사상과문화연구원과 협력해 책을 낸 바 있다. 번역료는 이 연구원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금으로 충당했고, 제작과 편집에 들어가는 비용은 출판사가 맡았다.

후원을 통해 책을 내는 곳이 또 있다. 이곳은 비영리단체라 영리를 내야 하는 출판사와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무리지만,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된다. 한국기독교연구소는 후원 회원을 두어 운영비와 출판 비용을 지원받는다. 400여 명의 회원들이 달마다 1만 원, 5만 원, 1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 10년 이상 된 장기 후원자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찾아와 책값에 보태라고 수십만 원씩 목돈을 건네는 회원도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년 동안 발간한 책이 99권이다. 지금은 한 해 6권씩 신간을 내고 있다. 새 책을 발간할 때마다 후원 회원에게 무료로 보내 주고 있다. 

▲ 한국기독교연구소 사무실 책장 모습이다. 김준우 소장은 지난 20년 동안 교회, 개인 후원을 받아 꾸준히 신학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소장은 20년 동안 주로 환경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 역사적 예수 등과 관련한 책을 출간했다. 이러한 지식과 학문을 한국교회에 전해, 교회가 스스로를 개혁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환경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연구소의 비전과 목표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회원들은 달마다 책값을 지원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한국기독교연구소의 비전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기독교 출판사가 문서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하나님나라는 한국교회가 꿈꾸는 하나님나라와 다르지 않다. 기독교 출판사가 해외에 있는 명망 있는 학자의 책을 보급해 교계에 일정 부분을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출판사 재정 문제나 이로 인해 생긴 오역 문제 등은 출판사가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교회가 번역료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던 출판사 대표의 말을 다시 옮긴다. "교회들이 각성하고 자각하면 좋겠습니다. 출판사도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쁜 관행들이 안 좋은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현재 기독교 출판 분야 안에 있는 문제는 인내와 투자를 각오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한 세대를 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각자도생하지 않고 함께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번 출판사 번역 문제를 다룬 기사가 처음 나가고 나자,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중·대형 교회들이 헌금으로 교회당을 신축하고 주차장을 확장하고, 수양관과 묘지를 마련하는 기사는 읽었어도, 신학 서적을 번역하는 일에 재정 지원을 했다는 기사를 읽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런 일이 있기는 한 건가? 한국교회의 어둠이 무지에서 시작됐다면 지나친 말일까?" 양질의 신학 서적을 출판하는 데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출판사 관계자만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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