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겠다고 맘먹고 두꺼운 신학 책을 샀는데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한 경험,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한 목사가 비슷한 경험을 겪다가 번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잘못된 번역이 한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왜 유독 신학 서적에 오역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요.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출판사가 해외 서적을 번역해 출판하는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오역 사례 △잘못된 관행을 벗지 못하고 책을 내는 출판사 △오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 △출판사가 오역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올해 초, 기독교 번역가들이 모인 페이스북 '번역이네 집' 그룹에서 시작된 신학서 오역 논란. 첫 기사에서는 오역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했고, 두 번째 기사에서는 출판사가 오역이 담긴 신학서를 출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봤다.

세 번째 기사에서는, <뉴스앤조이>가 취재한 여러 출판사 중에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역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곳들을 소개한다. 이들의 어떤 면이 그나마 오역을 줄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인지, 그 차이점을 소개한다.

'원서 대조',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

앞선 기사에서 일부 기독교 출판사 대표들은, 번역서에서 오역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편집 과정에서 오역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일일이 원서를 대조하지 않고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원서 대조'를 교정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출판사도 있다. ㅇ출판사와 ㅎ출판사, ㅅ출판사(앞 연재와 다른 곳) 등이다.

ㅇ출판사는 편집자들이 번역 원고를 원서와 대조하며 교정하는 것을 필수로 생각한다. 출판사가 세워진 80년대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편집자 세 명이 원문과 대조하는 작업을 세 차례 거치면 편집장이 최종 교본을 보는 방식이다. 이때 편집자는 문장 하나하나를 대조하며 검토하고, 편집장은 글의 주제나 맥락이 원본과 다르게 번역되지 않았는지, 치명적인 오류는 없는지 확인한다.

▲ 이번 논란의 발단이 된 WBC 주석 <마가복음 상>의 원서. 한국어 번역서에서 수많은 오역이 발견되었다. 

번역가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역은 꼭 나오게 되어 있다고 이 출판사 편집장은 말한다. 다만 출판사에서 그 오역을 잡으려는 노력과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WBC 주석 문제(관련 기사: [기획1] 오역 빈번한 신학 서적들)는 작은 출판사가 갖는 한계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 오류가 많은 책을 시중에 판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두 곳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곳인 ㅅ출판사의 이야기도 들어 봤다. 출판사 대표는 번역서에서 오역이 나올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오역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지도 않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신학은 토씨 하나의 싸움입니다. 히브리어 글자 하나에 점이 어디에 찍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는 것이 신학이죠. 그러니 오역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번역서에서 오역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하는 출판사 대표는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해설한 주석이 오역과 비문투성이인데, 어떻게 그런 책을 바탕으로 좋은 설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결국 한국교회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일입니다."

대표는 오역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혹여 있을 수는 있지만, 책이 출간되기 전에 알아차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출판사가 선택한 방법도 '철저한 원서 대조'다.

ㅅ출판사 신학서의 번역부터 교정까지의 과정을 보자. 번역가로부터 건네받은 원고는 편집 팀의 손에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컴퓨터 화면으로 원서와 번역 원고를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길 수차례. 1차로 교정 과정을 거치면 조판 작업을 한 후 출력해서 지면으로 교정한다. 이것도 최소 3차례다. 이 출판사는 한 편집 팀이 3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팀원들의 손을 단계적으로 거치며 교정한다. 한글로 된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면서 틀리거나 이상한 부분을 계속 고쳐 나간다. 물론 이때도 문장이 조금 이상하거나 확인이 필요하면 원서와 대조한다. 이 출판사에서 원서 대조는 기피 사항이 아니라 강권 사항이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가운데는 ㅅ출판사의 방침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쉬운 문장이나, 해석이 당연한 문장까지 일일이 대조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는 말이다. 그러나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 한글로 읽었을 때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만 골라서 대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ㅅ출판사 대표의 입장이다.

<뉴스앤조이>가 만난 25년 경력의 베테랑 번역가도 같은 생각이었다. 전문 번역가로 오래 활동한 사람들의 원고일수록 더 철저하게 원서와 대조해야 한다고 했다. 번역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한글 문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이해되도록 번역한 원고가, 원서 그대로 잘 번역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

ㅎ출판사는 이름만 대면 일반 독자들도 알만한 중견 기독교 출판사다. 이곳도 번역서를 출판할 때 원서 대조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 위 두 곳과는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하다. 번역가가 저자의 문체까지도 충분히 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친다. 뛰어난 번역가일수록 자신만의 글체가 있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말투 등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내도록 원서를 보며 한 문장 한 문장 비교한다.

번역가들이 생각하는 좋은 출판사란

독자들은 오역을 발견하면 번역가에게 책임을 묻는다. 번역가도 자기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니 책임을 통감한다. 그러나 편집자도 오역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양측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번역가들이 생각하는 좋은 출판사는 원고료를 많이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편집부가 번역가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곳이다.

현재까지 약 80권의 기독교 서적을 번역한 한 번역가는 황당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자신이 번역한 책이 출간되어 받아 봤는데, 자신이 쓰지 않은 내용이 들어가거나 표현이 완전히 바뀐 것도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해서 쓴 표현이었는데, 편집자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임의로 고쳐서 감정이 상한 경우라고 했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취재하는 동안 만난 10여 곳의 출판사는 이 부분에 있어 크게 두 가지의 견해를 보였다.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그 후에는 편집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출판사와 책이 출판되는 날까지 편집부와 번역가는 한 팀이라고 생각하는 곳이다.

전자와 같은 경우는 심하면 번역가를 단순한 기능인이나 하청 업자처럼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번역의 내용이 부실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원고료라도 아껴야 한다며 전문 번역가보다는 신학대학원 강사들이나 외국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들에게 번역을 맡기는 곳도 있었다. 어떤 출판사는 원고료를 절감한다며 원고의 모든 문단과 행 사이의 간격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 출판사마다 번역 원고를 교정하는 과정은 다 다르다. 그러나 번역가와 일부 출판사 대표들은 전문성을 띄는 신학서일수록 원서와 한 문장 한 문장 대조를 해야 오역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에 나온 책과 출판사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이은혜

오역이 그나마 적게 발견되는 출판사들은 번역가를 대하는 태도부터 다른 출판사와 차이가 있었다. 번역가와 편집부는 한 팀이라고 생각하는 곳 중에는 출판사 소속 번역가에게 매수와 상관없이 매달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하는 곳이 있다. 금전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번역의 질을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번역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능력이 검증된 번역가도 경쟁 구도에 있는 다른 출판사에게 한 번 뺏기면, 그만한 번역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정된 제작비를 가지고 일반 출판계에서 활동하는 번역가들을 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검증이 안 된 사람들에게 번역을 맡기게 되고 오역이 많은 신학서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ㅇ출판사는 새로운 번역가를 발굴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곳은 2014년에만 총 25권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그중 5권은 새로운 번역가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매년 맡겨 오던 사람에게 번역을 의뢰했다. 수시로 번역가를 뽑는 공고를 내는데 매달 2~3명이 지원한다. 지원 후에는 내부 검증 시스템을 거쳐 해마다 1~2명의 번역가를 발굴한다.

새로운 번역가를 발굴하는 작업은 출판사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ㅇ출판사는 번역해야 할 책은 많은데 믿고 맡길 사람이 부족한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을 언급했다.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출판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신학책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출판사 대표들이 문제

좋은 신학서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출판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역이 담긴 번역서를 완제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위에 소개한 출판사들은, 돈을 벌 목적으로만 신학서를 출판한다면 그 누구도 오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ㅅ출판사도 일부 출판사 대표들이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겉으로는 문서 선교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영리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려고 신학서를 출판하려다 보니, 지적되어 왔던 나쁜 관행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기획2] 오역 많은 신학책, 이유가 있었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관행입니다. 외부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지속되다 보니, 출판계의 '전통'이라는 이름이 되어 버렸어요.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고 생각하는데, 도덕적인 판단 능력이 아예 마비된 것이죠. 문제가 있다고 지적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억울한 것이에요. '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생각을 먼저 할 수밖에 없습니다."

80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고, 지금은 작은 출판사의 대표로 있는 한 번역가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신학서를 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 WBC 주석의 오역 문제는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독자들은 돈을 주고 책을 사는데, 업체가 어렵다고 해서 불량품을 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출판사는 사역과 비즈니스 두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허투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책을 낼 자격이 부족한 것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신학서와 같은 전문 서적을 출간할 때 시도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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