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겠다고 맘먹고 두꺼운 신학 책을 샀는데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한 경험,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한 목사가 비슷한 경험을 겪다가 번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잘못된 번역이 한두 권이 아니었습니다. 왜 유독 신학 서적에 오역이 많이 발생하는 걸까요. <뉴스앤조이>가, 기독교 출판사가 해외 서적을 번역해 출판하는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오역 사례 △잘못된 관행을 벗지 못하고 책을 내는 출판사 △오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사 △출판사가 오역을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페이스북에는 '번역이네 집'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 페이지는 기독교 출판·번역가들이 모여 기독교 출판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소통의 장이다. 번역할 때 어려운 점, 기존 번역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이 오가고 있다.

이곳에 이성하 목사(가현침례교회)가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 목사는 1월 21일부터, <마가복음 상 ― WBC 성경 주석 34>의 번역상 오류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이 책의 문제가 한두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온다고 했다. 이 목사로부터 시작된 신학서의 오역 문제는, 많은 번역가들과 출판사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번역이네 집'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곳은 신학 서적을 번역하는 번역가와, 그 책을 내는 출판사들이 모여 번역서에 대한 논의를 하는 곳이다. 지난 1월 말부터 '번역이네 집'에서는 신학 번역서의 오류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 '번역이네 집' 갈무리)

<뉴스앤조이>는 3월 13일, 원주에서 이성하 목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어떻게 오역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었다. 이 목사는 동역하는 전도사들과 신학을 공부할 요량으로 책을 구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뜻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분명 한글로 된 책인데 자신이 읽고 있는 신학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마가복음 상>이 번역서인 것을 확인하고 수소문 끝에 영문 원서를 구입했다. 이 목사는 원서와 번역서를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며 읽어 봤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몇 페이지만 진행했을 뿐인데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읽는 사람의 한글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책 자체에 잘못된 번역이 넘쳐 났던 것이다.

이 목사가 영문 원서와 대조하며 찾아낸 오역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마가복음 상>을 펴낸 출판사는 이 목사가 문제를 제기하자 재번역해서 출판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이번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기독교계가 얼마나 잘못된 출판 관행에 찌들어 있는지 쏟아 냈다. <뉴스앤조이>는 이 목사가 지적한 기독교계의 출판 관행이 무엇인지, 어떻게 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신학서에 왜 이런 오역이 많을 수밖에 없는지 취재했다.

잘못된 단어 선택은 기본...읽어도 이해 안 되는 비문투성이

오역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원서에 나온 단어를 아예 다른 단어로 오인하고 틀린 경우. 주어와 호응하는 서술어가 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 비문의 출현이 잦은 부실한 번역인 경우. 영어 구문을 잘못 번역해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뜻을 만들어 내는 경우.

ⓒ뉴스앤조이 박요셉

먼저 이성하 목사가 샀다는 <마가복음 상>의 한 부분을 보자.

"신약의 최초의 세 권의 책들이"라고 번역된 이 부분을 영어 원서로 보면 "the first four books of the New Testament"라고 되어 있다. 눈치 챘을 것이다. 숫자가 완전히 잘못되어 있다. 원서에는 분명하게 '네(four) 권'이라고 되어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역서에는 '세 권'으로 쓰여 있다.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지의 온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문장은 "as an unknown, gentile Christian"을 해석한 것이다. gentile(이방인)과 gentle(온유한)을 완전히 혼동했기 때문에 이런 번역이 나왔다. 영어로는 알파벳 i 하나가 더 들어갔을 뿐인데, 우리말로는 전혀 다른 단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단어를 혼동하는 것 외에 또 다른 문제는 부실한 번역이다. 한글로 된 문장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몰라 자신의 머리가 나쁜 것을 한탄하는 목사·신학생도 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문장이 조금이라도 길어질 것 같으면 어느새 주어가 바뀌어 있거나, 심지어 주어가 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같은 WBC 시리즈로 판매되고 있는 <히브리서 상>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히브리서는 퍼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히브리서가 기쁨이라는 말인가. 이 문장의 영어 원문은 "Hebrews is a delight for the person who enjoys puzzles(히브리서는 퍼즐을 즐기는 사람에게 기쁨이다)." 분명 한글이지만 주어와 술어가 제대로 호응하지 않아 그 뜻이 애매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이 한 문장만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억울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더 소개하려고 한다. "히브리서는 제자 됨의 특권과 대가를 인식할 것으로 고동친다" 이쯤 되면 좀 심각하다. 히브리서가 고동친다니. 혹시나 해서 인터넷 번역기에 영어 문장을 입력해 봤다. "그것은 특권의 인식과 제자의 비용으로 두근두근"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히브리서 주석 한 페이지에서만 9건의 부실한 번역이 발견되었다.

잘못된 번역으로 원저자의 신학 노선이 의심을 받기도

마지막으로 소개할 잘못된 번역은, 원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책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둔갑하는 경우다. 개혁주의 신학서 출판을 주요 가치로 내건 한 출판사는 약 5년 전,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라는 학자의 <신약신학>을 출간했다. 그런데 출판 이후, 많은 독자가 슈라이너의 신학이 과연 개혁주의가 맞는지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을 지켜보던 한 독자가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직접 원서와 대조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서 많은 이들의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니 영어 원문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 번역자의 오역으로 원작자의 신학 노선이 다르게 보인 것이다. 직접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원서의 "God's choice of believers accounts for their trust in Him and love for Him"라는 부분이다. <신약신학>에서는 이 문장을 "하나님이 신자를 선택한 것은 신자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개혁주의를 배운 신학생들은 이 문장을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믿는 믿음과 사랑의 근거가 된다"고 해석했다. 문제를 제기한 독자는 역자의 번역은 심각한 오역으로, 이것 때문에 저자가 칼뱅이 반대하던 예지예정론을 찬성하는 신학자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안에서 위와 비슷한 문제를 수차례 발견할 수 있다. 2011년, 많은 독자들이 다양한 오역을 지적하고 출판사의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출판사는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오역 문제에 대한 책임을 시인했다. 2년 안에 재번역을 해서 개정판을 내겠다고 했지만, 아직 시중에 내놓지 않고 있다. 기자가 다시 확인하니 2개월 안에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신학서를 읽는 많은 신학생과 목사들은 읽던 글이 이해가 가지 않아 좌절한 경험을 한 번쯤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나쁜 머리를 탓하기 일쑤였는데, 알고 보니 정말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교계만 오역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역 문제는 기독교 출판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1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 창업주가 사망한 후 그의 전기가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국내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민음사를 통해 소개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번역에 오류가 있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계속되는 논란 끝에 출판사와 번역가도 자신들의 잘못을 어느 정도 시인했다.

기자는 비기독교인 지인들에게 책을 읽을 때 오역이나 잘못된 글자가 나오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짐은 물론이고 성의 없게 책을 만든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일반인들은 이렇게 명확한 시각을 가지고 책을 대하는데,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그 기준을 다르게 적용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많은 기독교 출판사들은 같은 논란이 생기면,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이 녹록지 않아 그랬다고 입을 모은다. 기독교 출판사의 현실이 대체 어떻길래, 불량품을 자꾸 찍어 낼 수밖에 없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기사에서는, 기독교 출판사들이 왜 오역과 오자가 잦은 책을 만드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겠다.

기사 중간 <히브리서 상>에 관한 부분 중 "한 페이지에서만 평균 9건의 오역이 발견되었다"를 취재원의 요청으로 "한 페이지에서만 9건의 부실한 번역이 발견되었다"로 고쳤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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