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한국 시각), 대규모 지상군까지 투입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최소 237명, 부상자는 1700명입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민간인이며 어린아이만 39명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1명, 군인 1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약시대 '하나님 백성', '제사장 나라'였던 유대인과 이스라엘, 현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13년 <복음과상황>에 연재했던 이인엽 박사의 글이 여전히 유효하여 <뉴스앤조이>에도 게재하고 나눕니다. 총 다섯 편의 글을 하나씩 올립니다. '이스라엘은 왜 인종주의 군사 국가가 되었나 1'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강철 벽' 정책의 구체화

앞의 글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의 대아랍 무력(武力) 정책을 담은 야보틴스키의 '강철 벽(The Iron Wall)' 사상은 건국 이후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진다. 국방장관이었던 이츠하크 라빈은 1967년 전쟁 작전을 '철의 의지'로 명명했고, 1975~76년에는 서안에 '철의 손' 정책을 추진, 30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고 제도화된 고문에 시달렸다. 그의 후임 라파엘 에이탄은 서안에 '철의 팔' 정책을 시행하며 억압 수단에 암살을 추가했다.

1987~88년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당시 다시 국방장관이 된 라빈은 '철의 주먹' 정책으로 철저한 억압과 집단적 처벌 정책을 추진한다. 1982년 레바논 침공에서 난민촌을 쓸어 버리는 작전은 '철의 뇌'로 명명된다(쇤만, <잔인한 이스라엘>, 36쪽). 1954~55년에는 이스라엘 2대 총리를, 1948~56년에는 유대인 정치국 책임자와 외무장관을 지낸 모세 샤레트는 일기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도발을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세계 구석구석으로 분산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아랍 세계를 분할하고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분쇄하며 이스라엘의 지역적 패권 아래 괴뢰 정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쇤만, 같은 책 48쪽).

1984년 이스라엘 노동당은 일간지에 네 가지 '아니오'에 초점을 맞춘 광고를 실었다. 그 내용은 이와 같다.

1. 팔레스타인 국가는 인정할 수 없다.
2.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는 어떤 협상도 없다.
3. 1967년 국경으로 돌아갈 수 없다.
4. 어떤 정착지도 포기할 수 없다.

노동당 출신인 헤임 헤르조그 대통령은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신성한 영토였던 이 땅을 결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1985년 밝혔다(쇤만, 같은 책, 180쪽).

배제와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박노자 교수는 '유대인, 유대인을 말살하다'라는 글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만 학살과 추방을 시행했을 뿐 아니라,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단일성' 신화를 바탕으로 억압, 배제, 차별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독일에 주로 거주했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 특히 유대인 진보 세력은 독일어를 골간으로 하는 '이디시어'를 썼는데, 그 안에 진보적 국제주의와 반전(反戰)의 전통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시오니스트들은 유대교의 사어(死語)인 히브리어를 인위적으로 현대화해 '민족 언어'로 정한 후, 이디시어는 철저히 금지했다.

또 한편, 중상층을 이룬 아슈케나지들과 달리 하층민이 된 동방 유대인 '세파르디'는 시오니즘에 무관심했으며, 아랍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철저한 억압과 차별을 당했다. 심지어 일부 세파르디에게서 아기들을 빼앗아 유럽 출신의 시오니스트에게 입양시키는 '2세 동화 작전'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박노자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건국한 극우 시오니스트들은 결국, 유럽 아슈케나지들의 진보적이고 국제주의적이며 반전(反戰)적 전통과, 이슬람권 출신 세파르디의 아랍인들과의 평화 공존의 기억을 부정·말살했다. 동시에 인위적 히브리어와 단일 민족 사상을 주입하고 3년간의 군 복무를 거쳐 이스라엘 2세들을 창조해 냈다.

이러한 역사는,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이 어떻게 국내에서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군사 문화와 안보 위협 강조는 내부 비판을 잠재웠으며, 테러와 군사 작전이 늘 수행되는 상황은 우파 강경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75% 이상 유대인, 20%가 아랍인, 그 외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에 공식적 인종차별은 없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차별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 국가 기금이 관리하는 이스라엘 토지의 93%에서 거주와 임대, 농사를 허가받기 위해서는 어머니 쪽이 최소 3대 이상 유대 혈통임을 증명해야 한다(쇤만, 같은 책, 70쪽). 사막을 개간해 옥토로 만들었다는 키부츠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건설되었으나 비유대인은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 정착을 위해, 수백 년간 농사를 지어 온 아랍 농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퇴거'당한 것이다.

▲ 레바논 남 베이루트에 위치한 사브라-샤틸라 난민촌 대학살(1982년) 기념비. (사진 제공 위키미디어커먼스)

근본주의 유대교의 영향

이스라엘의 강경 정책 뒤에는 근본주의 유대교와 그 랍비들이 있다. 레바논 전쟁이 발발한 1982년 9월 16일, 레바논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 사흘 만에 팔레스타인 난민 3000여 명이 학살당했다. 절반이 부녀자와 어린이였다. 이를 두고 일부 랍비가 "전 세계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진정한 정화"라는 취지의 설교를 했다는 충격적인 자료도 있다. 2008년 가자 지구 공격 당시 한 이스라엘 장교는 랍비들이 "이 성스러운 땅의 정복을 방해하는 비유대교도들을 몰아내"고 가르쳤음을 폭로했다.

<LA타임즈>에 따르면 가자 전투에 참전한 한 이스라엘 군인은 "훈련소에서 만난 랍비가 '이번 싸움은 빛의 자식들과 어둠의 자식들 간의 대결이요, 특정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주민 전체와 맞서는 전쟁'이라고 설교했다"고 전했다. 결국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1381명 중에 민간인이 900여 명(어린이 400여 명)에 달했던 무차별 공격의 배후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악마화한 근본주의 랍비들의 설교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임산부 그림과 함께 "1 SHOT 2 KILL(총 한 방에 두 명 사살)"이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주문한 것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이에 사회학자 오르나 사손 레비 교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사람'이 아니라서 어떤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랍비 이스라엘 로센은 "팔레스타인인은 남자, 여자, 아이를 불문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 그들의 가축도 예외가 돼선 안 된다"고 극단적인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유대교 근본주의는 팔레스타인과 평화 공존을 옹호하는 개인이나 단체, 타 종교인을 겨냥한 '백색테러'와도 연결된다. 2008년 이스라엘 경찰이 평화운동 단체 '피스나우(Peace Now)' 회원들을 살해하는 이에게 100만 세켈(한화 3억 4000만 원)을 주겠다는 포스터를 발견한 것이다. 같은 날 그곳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과 평화 공존을 촉구해 온 제브 스턴헬 히브리대 교수가 테러범들이 투척한 사제 파이프 폭탄에 부상당했다.

근본주의 신학의 오류와 위험성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정책을 주도해 온 우파 시오니스트 생각이 유대교나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세속 국가에서 온전히 구현될 수 없듯, 유대교나 구약의 가르침이 이스라엘 국가로 구현되었다는 주장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 국가주의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성경 정신의 왜곡도 낳는다. 언약과 율법의 정의에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을, 유대인들만 편애하고 이방인을 마음대로 짓밟는 신으로 왜곡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비인간적 억압적 정책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일부지만, 디아스포라를 하나님 뜻으로 여기면서 메시아가 오기 전에 인위적으로 국가를 세우거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옳지 않다고 보는 유대교인 그룹이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땅을 돌려주고 점령 정책을 중지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이스라엘 정부의 핍박을 받고 있다. 헤게모니를 잡은 국가주의적 시오니즘을 유대교나 유대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기 힘든 이유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을 하나님의 뜻이자 예언의 성취로 보고, 기독교인은 무조건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고 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입장에도 신학적·정치적 오류가 있다. 결국 시오니즘은 유대교의 국가주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가장 큰 갈등이 일어나는 곳을 이슬람과 그 인접 문명으로 보고 국제분쟁 원인을 간접적으로 이슬람에 돌린 반면, 타리크 알리라는 작가는 <근본주의의 충돌>에서 현재 갈등을 '근본주의 간의 충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 근본주의 세력이 있으며, 이들은 겉으로는 갈등하지만 서로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선악 갈등으로 보고 자신을 선, 타자를 악으로 놓는 점, 경전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며 타 종교에 관용이 없는 점, 타자의 정복과 박멸을 위한 투쟁을 주장하며 정교 분리를 반대하고 정치에 대한 종교의 지배를 주장하는 점 등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파 시오니즘과 유대교 근본주의는 팔레스타인 강경 정책을 낳았고, 앞으로도 평화 협상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평화 협상을 바라지 않는 이스라엘 강경파와, 아랍 강경파가 이익을 같이한다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지양하고 생명과 평화와 화해를 모색해야 할 기독인의 상당수가, 기독교 근본주의의 입장에서 유대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팔레스타인 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평화 협상보다는 강경 탄압 정책을 추진하게 만들어, 갈등과 테러를 영속화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스라엘 안보에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중동의 지역 갈등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다. 신학적·정치적 관점의 오류가, 기독인들을 어떻게 예수님의 평화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자리에 서게 만드는지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계속)

이인엽 / 미국 조지아 주 University of Georgia에서 '미국의 대북 외교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시절 기독인연합운동(서울대기독인연합)에 참여했고,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며 공부 중이다. godnation@gmail.com, www.facebook.com/inyeop

각주) 이 글은 필자가 코스타 블로그(www.ekosta.org)에 올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으로 다름 문헌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잔인한 이스라엘>(랄프 쇤만, 미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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