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2013년 <복음과상황>에 연재했던 이인엽 박사의 글이 여전히 유효하여 <뉴스앤조이>에도 게재하고 나눕니다. 총 다섯 편의 글을 하나씩 올립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아주 특별한 관계'에서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 서안 아부디스(Abu Dis)에 세워진 분리 장벽 (사진 제공 위키미디어커먼스)

팔레스타인인은 죽어도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회복'·'용서'·'제3성전'을 만든 김종철 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이스라엘 내 기독교인 상황을 다룬 '회복' 개봉에 열광하며 홍보까지 해 주어 흥행에 영향을 준 많은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타인 내 기독교인을 다룬 '용서' 개봉 때에는 상영 반대 운동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회복'에 열광했던 그들이 "이스라엘 편인지 팔레스타인 편인지 색깔을 분명히 하라"며 심지어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 시 아말렉을 다 죽이라고 하셨다. 여리고 성이 무너져 이방인들이 다 죽었듯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는 희생당하는 이들, 피 흘리는 이들이 필요한데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며 극단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팔레스타인인조차 이스라엘 국가를 위해 희생되어 마땅하다는 식의 극단적인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런 관점의 원조는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이다. 예를 들면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과 같은 유명한 근본주의 목사는 하나님이 유대인에게만 준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완전히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팔레스타인과 타협하는 정치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가자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킨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2006년 1월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는 "하나님의 땅을 나눈 데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주장했고,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추진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1995년 극우 청년에게 암살당한 것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이렇듯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 유대인들 못지않게 극단적인 입장을 취한다.

인종주의적 성경 해석의 오류

기본 인권조차 유린당하는 팔레스타인 현실을 무시하는 극단적 기독교 시각의 배경은 구약에 등장하는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스라엘 왕국 수립을 인종주의 관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선민인 유대 민족을 편애하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위해 원주민을 학살하는 분으로 왜곡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대제국이었던 이집트가 약소국 이스라엘을 노예화하여 학대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기에 심판받은 것이지, 단지 이방인이라서 심판받은 것이 아니다. 가나안 정복 때도, 그들이 단순히 혈통적 이방인이라서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수간(獸姦)이나 인신 제사와 같은 가나안 주민들이 저지른 죄가 관영했기(레 18:1-23) 때문이었으며, 이스라엘에 땅이 필요해서 가나안 사람들이 죽어도 괜찮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과거 가나안에 거주한 아브라함은 원주민과 평화롭게 지냈고,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가 심판받을 만큼 관영하지 않았기에 4대가 지난 후에야 그 땅에 돌아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창 15:13-14). 하나님은 불의함과 죄를 심판하는 분이지, 이방인을 죽이라고 한 적이 없다. 동시에 이스라엘에도 언약을 지킬 때에만 가나안 땅이 주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어기고 가나안 주민처럼 죄를 저지르면 심판받고 쫓겨난다는 경고(레 18:24-29)를 받았는데, 이 경고는 국가의 멸망과 포로기로 실현되었다.

성경은 '이스라엘'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 아닌, 언약을 지키고 믿음을 이어받은 백성'이라고 말한다. 혈통적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되며, 이방인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은 받아들여졌다(사 56:3-7). 출애굽 때에도 여러 이방 민족이 유대인을 따라 나섰으며(출 12:38), 예수님 족보에 있는 인물 중 라합과 룻,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 등 다수가 이방 출신이었다(마 1장). 이스라엘은 혈통이 아닌 언약의 공동체였던 것이다.

신약에서 인종주의 관점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눅 3:8)고 했으며, 예수님은 동서에서 많은 이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천국에 앉을 때, 본 자손들을 쫓겨나 이를 갈게 될 것을(마 8:11-12) 말씀하시며 바리새인의 선민사상을 질타했다. 예수님은 민족, 남녀, 빈부귀천 구분을 뛰어넘는(갈 3:28, 29) 복음을 선포하셨다. 결국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의 의를 따르는 자(롬 4:13, 14; 9:6-8)이고, 참 이스라엘은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 아브라함처럼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자였기에, 메시아를 거부한 유대인들이 아닌,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이 됐다. 예수님이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열두 제자를 세웠고, 사도 야고보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로 문안한다(약 1:1)'고 표현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물론, 이방인 수가 찬 후에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이라 말씀(롬 11장)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진 않으셨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대상은 메시아이지, 세속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이나 영토 확장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결 지을 근거가 없다. 성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과 충돌한다. 결국 인종주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을 한 민족의 수호신으로 격하하는 신성모독이다. 이런 왜곡된 시각이 만연할 때, 노아의 세 아들 중에 함이 저주받은 이야기로 흑인 차별이나 노예제를 합리화하거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이용해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한 악행들이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흐름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준식민지 점령 정책, 분리주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기독교 시오니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체 신학과 세대주의의 문제점

기독교 시오니즘의 기반은 근본주의·세대주의 신학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세대주의는 대체 신학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다. 대체 신학은 구약의 이스라엘은 소명에 실패했고 메시아인 예수님을 거부했기에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이고,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고 보는 신학이다. 전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인 이 입장이 극단화될 때 유대인을 아예 버림받고 저주받은 민족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거나 반유대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반발해 나온 세대주의는 성경과 역사를 7개의 세대로 구분하여 해석한다. 신약시대 이후에도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특별한 지위는 지속되어, 교회와 구분되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건국과 더불어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 세력이 치룰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예수님 재림과 천년왕국(전천년설)의 결정적인 징조로 믿는다. 이런 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 시오니즘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과, 구약에 기록된 영토 전체에 걸친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예수님 재림과 통치를 앞당기는 일로 여기고 지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 주장한다.

본래 '시오니즘'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수립할 것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구약의 예언과 시오니즘, 이스라엘 국가 수립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다고 착각하는데, 구약을 해석하는 여러 입장 중 하나인 시오니즘은 극단적 인종주의·영토주의·국가주의 해석일 뿐이다. 전통주의 유대인 중에는 메시아가 오기 전에 인위적으로 유대 국가를 설립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믿고, 세금을 내거나 군 입대를 거부하는 부류도 있다.

기독교 시오니즘은 세대주의식 전천년설과 종말론에 치우쳐, 유대인 시오니즘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시오니즘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바리새인들의 선민의식이나, 폭력을 통해 유대 국가를 수립하자던 열심당원들의 생각에 훨씬 가깝다. 극단화된 대체 신학의 반유대주의가 유대인들을 박멸하려 했다면, 세대주의와 기독교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이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는 일종의 반대 극단을 보여 준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도 유대인은 유대교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기도, 일부 유대인들이 준비하는 제3성전의 건축이 예수님 재림에 필요하다며 지원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을 지닌 국내의 한 단체는 최근 유월절을 재현한다며 살아있는 양을 죽여 피를 받아 제사 지내는 황당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성전과 제사의 기능을 폐기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교회보다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고, 민족을 초월해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해야 할 사명이 아닌, 왜곡된 종말론과 세속 국가 이스라엘 지지를 내세우는 것은 심각한 성경 왜곡이다.

'국가 이스라엘'을 성경의 성취로, 유대교 국가로 보는 이들의 관점과 달리 이스라엘은 하나의 세속 국가이자 다종교 사회다. 구약의 가르침과 하나님을 그대로 믿는 종교적 유대인은 전 인구의 20-30퍼센트에 불과하다. 기독교인이나 선교사에 대한 테러와 위협을 지속하고 있기도 하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만 거주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팔레스타인 역시 다종교 사회로, 그 안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인들도 있다. 서안 지역에 거주하는 230만 명의 19퍼센트인 44만 명 정도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도 있다. 결국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신학적·정치적 입장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여 상상 속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그려 내는 것이다.

'고통'에는 눈감고, '폭압'은 축복하다

이러한 세대주의 신학과 기독교 시오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이스라엘의 준식민지식 군사 점령과 인권 유린까지도 지지한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전체를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주었다는 입장만 반복하면서, 2000년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을 학대하고 추방하는 것을 합리화하며 평화 협상을 반대한다. 기독교인으로서 과거의 반유대주의를 반성하고 유대인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현재 기독교 시오니즘은 도를 넘어 왜곡된 이스라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불법으로 군사 점령하고 있으며 가자를 봉쇄하고 있다. 서안에는 이스라엘 불법 점령촌 건설로 이미 40만 이상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고, 서안과 가자에서의 팔레스타인인 독립 요구는 60년 넘도록 무시당하고 있다. 2008년 가자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 수 1381명(민간인 900명, 어린이 400명), 이스라엘 측 사망자 13명에서 보듯, 피해 규모가 거의 이스라엘 100배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은 현실적인 약자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측 폭력이나 테러도 결코 지지할 수 없다. 그런데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 8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워 팔레스타인 마을을 쪼개고 그들의 땅을 빼앗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지한다.

남아공 인종 분리 정책에 맞섰던 저 유명한 투투 대주교는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보고 있으며, 이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피노체트, 밀로셰비치, 이디 아민과 같은 독재자들이 추진한 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2009년 장벽이 설치된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그는 "이스라엘은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한 보상을 아랍인들에게서 받고 있다"며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철망과 장벽, 총으로는 안보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를 편애하시는 분"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홍미정·서정환, <울지마 팔레스타인>, 78쪽)

역사적·종교적 정체성으로 양보가 어렵고, 영토와 자원이 걸린 문제로 수십 년간 풀리지 않고 있는 이-팔 갈등 앞에서 예수를 믿는 이들이라면 지속되는 폭력과 약자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의 강경파에 힘을 실어 주고 평화 협상을 앞서서 반대한다. 이들은 맹목적 이스라엘 지지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반유대주의로 매도해 마녀사냥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폭압적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에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한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해석하고 귀를 막는다.

황금의 사원을 없애고 그곳에 제3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유대인에 동조하는 기독교 시오니스트들은 이미 신약에서 폐기된 성전 개념을 지지할 뿐 아니라, 중동의 갈등을 촉발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거나,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이 현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에 걸쳐 있다며 이스라엘이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인 중동전쟁이 곧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는 '아마겟돈 전쟁'이라며 전쟁을 부추기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에 빠져 있기도 하다. 이렇게 평화와 화해가 아닌 전쟁을 부추기는 광기를 보이는 그들을 보면, 잘못된 성경 해석이 얼마나 무서운지, 성경을 이용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합리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세대주의와 기독교 시오니즘은 미국의 진보 주류 교단은 물론, 복음주의 계열 학교인 풀러신학교나 휘튼대학에서도 부정하고 있다.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였던 존 스토트도 "유대인들의 귀환과 유대 국가 수립을 성경 예언의 성취로 보는 세대주의 신학에 반대한다"며 "유대인들의 회복은 영토나 국가 회복이 아닌,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The Place of Israel'). 반면 세대주의 신학이나 기독교 시오니즘 영향이 지배적인 남침례 교단이나 오순절 계통은 보수 정치 세력과 유대계 로비와 맞물려서 미국 외교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백투예루살렘(Back to Jerusalem) 운동이나 신사도 운동 등에서 이런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세대주의적인 설교나 성경 해석이 교단과 무관하게 많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된다. 이제 기독교인 중에서도 이-팔 문제에 관심 갖는 이가 많이 생겨나고 있기에, 올바른 성경의 관점을 고민하면서 인종주의가 아닌 예수님이 가르치신 평화와 화해가 실현되도록 기도해야겠다. (끝)

이인엽 / 미국 조지아 주 University of Georgia에서 '미국의 대북 외교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시절 기독인연합운동(서울대기독인연합)에 참여했고,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며 공부 중이다. godnation@gmail.com, www.facebook.com/inye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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