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7월 12일부터 국회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고, 14일부터는 15명의 유족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둔 7월 15일,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350만 1266개의 서명을 국회에 제출했다. 종교인과 시민 1000여 명이 유가족들과 함께 여의도광장에서 국회까지 행진하며 힘을 보탰다.

▲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 1500여 명이 7월 15일 350만 명의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국회에 전달했다. 이날 유가족과 시민들은 350만 서명을 박스에 담아 하나씩 들고, 여의도광장에서 국회까지 도보 행진했다. 유가족(사진 위)과 시민들(중간), 박스에 담긴 서명 용지(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는 개신교가 특별법 제정 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가족들이 직접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체감한 내용을 전달했다. 유가족들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불교 정토회가 2주 만에 140만 서명을 받아 주었다는 사실은 개신교를 부끄럽게 한다. 물론 모든 교회가 진상 규명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아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물심양면 돕는 교회도 있지만, 개신교의 교세로 볼 때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교계 지도자들, '진상 규명 최선 다하겠다' 약속했지만

세월호 참사 후 교단이나 연합 기관 안에서는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한 결정들이 있었다. 지난 5월 예장합동·통합·고신·백석·대신, 감리회, 기성, 침례회, 기하성(여의도) 등 9개 교단 수장들이 한국교회교단장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유가족들이 직접 교계 인사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5월 30일 유가족들은 감리회 전용재 감독회장을 만났다. 전 회장은 교단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7월 7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를 찾아가 서명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계 신문들은 한국교회가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하기로 했다며 대서특필했다.

▲ 유가족들은 7월 7일 교회협을 찾아 서명운동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김영주 총무는 유가족에게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교회협은 회원 교단에 공문을 보내고 오는 24일 실행위원회 때 1차로 서명을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기하성(여의도)의 경우, 아직까지 소속 교회에 서명운동에 대한 공지도 하지 않은 상태다. (교회협 홈페이지 갈무리)

어찌 된 영문일까.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이 모두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유가족들은 개신교의 활동이 미온적이라고 한다. 혹시 교단과 연합 기구가 구호만 외치고 구체적인 참여를 독려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예장합동·통합, 감리회, 기하성(여의도), 기장 총회에 현재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운동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물었다.

유가족들이 5월 초부터 서명운동을 시작했는데 한국교회의 반응은 느렸다. 7월 초에야 예장통합(김동엽 총회장)은 산하 노회에, 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는 소속 교회에 서명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제 서명이 총회로 도착하기 시작하는 단계라 현재까지 집계된 서명 수는 많지 않았다. 예장통합은 약 3000명, 감리회는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 않고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기하성(이영훈 총회장)은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기하성은 교단장협의회에도 가입되어 있고, 교회협 회원 교단이다. 기하성 총회 관계자는 "소속 교회에 공문을 보내거나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직 없다. 8월에 회의가 있는데 그때가 돼 봐야 알 수 있다"고 답했다.

▲ 예장합동이 전국 노회에 보낸 서명 용지(위)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서명 용지(아래). 예장합동의 서명 용지에는 유가족들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유병언 특별법'이라는 엉뚱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예장합동은 지난 6월 19일 전국 노회에 공문을 보내 서명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예장합동이 보낸 서명 용지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용지와 달랐다. 예장합동의 서명 용지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유병언 특별법' 및 '이단 사이비 규제법' 제정 1천만 서명"이라는 생소한 제목이 달려 있었다. "국회와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를 적극 수용하여, 구원파 유병언 씨와 그 가족과 측근들이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며, 전 국민 안전 대책 수립을 위해 '유병언 특별법'과 '이단 사이비 규제법'을 시급히 제정하여, 국민에게 법과 정의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설명도 붙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유병언과 그 가족에게 돌리는 듯한 모습이다.

'유병언 특별법' 내용이 담긴 서명 용지를 만든 적이 있느냐고 유경근 세월호 유가족 대변인에게 물었다. 그는 "유가족들은 그런 서명 용지를 만든 적 없다"고 확인해 줬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교세가 큰 예장합동은 유가족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서명 용지를 전국 노회에 보낸 것이다.

기장, 1만 2000여 서명 전달…안산 시내 교회들, 지속적인 서명운동 전개

'개신교가 진상 규명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묵묵히, 꾸준히 서명을 받아 온 곳도 많다. 기장(박동일 총회장)은 교세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소속 교회에 공문을 보내 현재 1만 2385명의 서명을 받았다. 기장 총회는 16일 국회에 있는 유가족들을 지지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받은 서명을 1차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서명은 오는 24일 교회협 실행위원회에 맞춰 취합할 것이라고 했다.

안산에 있는 교회들은 서명운동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서명을 받고 있다. 안산시기독교연합회(유재명 회장)는 안산 시내 950여 개 교회에 모두 서명 용지를 발송했다. 연합회 총무 원영오 목사는 안산제일교회(고훈 목사)·안산빛나교회(유재명 목사)·안산등대교회(원영오 목사)·반월제일교회(남능현 목사) 등이 1만 4000여 명의 서명을 유가족에게 먼저 전달했다고 말했다. 꿈의교회(김학중 목사)·동산교회(김인중 목사)도 각각 1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고 했다. 연합회 차원에서도 1만 서명을 전달했으며, 2차·3차 서명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회 회장 유재명 목사는, 안산에 있는 웬만한 교회가 다 서명에 참여해서 서명 대상을 안산 외부 지역으로 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9월 2학기 개강에 맞춰 전국의 신학교에서 서명을 받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11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벌써 세월호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종교 단체나 시민 단체들도 안산 합동 분향소에 발길을 끊고 있다. 안산도 이런데 다른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 길게 보고 유가족들의 소박한 바람을 지지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국회 본회의가 끝나더라도 서명운동은 1000만 명을 목표로 계속 전개된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이해할 만한 수준의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만들기가 유가족과 국민의 뜻이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4·16 특별법' 

▲ 세월호 유가족들은 오늘도 노숙한다.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