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2011년 6월 온누리교회 강연 내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온누리교회 장로인 그의 발언을 두고 왜곡된 역사관과 잘못된 신앙관이라고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보수 인사와 단체들은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역사 인식"을 가졌다며 옹호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교계 원로와 신학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통일부총리·교육부총리 등 여러 공직을 역임한 한완상 박사는 문 씨의 발언이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완상 박사의 의견을 자세히 듣기 위해 6월 14일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자택을 찾았다. 인터뷰 전 문 씨의 강연 전문을 검토한 한 박사는, 올해 79세로 적지 않은 고령이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 한완상 박사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신앙·역사관에 일침을 놨다. 친일 반공 이념과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이 혼합된 결과물이라고 탄식했다. 6월 14일 자택에서 만난 한 박사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구약에 나타난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한 박사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 인식은 일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한 역사관"이라고 꼬집으며, 하나님의 뜻은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동고(同苦)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씨가 국민을 '게으르고 미개하다'고 잠재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공공적인 국가 행정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문창극 씨가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나님의 뜻'은 성경이 쓰였을 때 당시의 상황을 세심하게 주석해서 2014년 우리의 상황에 적절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 해석의 기본이다. 그런데 문창극 씨는 성경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삶의 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성경의 텍스트를 자의적으로 적용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뒤집어서 반대로 적용한 꼴이 됐다.

여러 신학적인 해석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다. 이 사랑은 자기나 자기와 동질적인 이웃 사랑의 수준을 넘어선 최고 수준의 사랑인 원수 사랑을 의미한다.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원수와 우리 속에 형성된 증오와 대결의 관계, 죽음과 죽임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관계, 이른바 샬롬의 관계가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원수 사랑이라는 놀라운 메시지이다.

- 문창극 씨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빗대 "게으른 조선 민족의 계몽을 위한 일제 식민 지배와 한반도 공산화를 막기 위한 남북 분단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고 주장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문 씨의 역사 인식은 일본이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제국주의 이념을 그대로 수용한 역사관이다. 문 씨를 포함한 일부 극우 기독교인은 억울하게 고통받는 피해자를 '게으르다', '더럽다', '원시적이다', '단합을 못 한다'고 무자비하게 비하해서 잔인한 가해자의 폭력적 지배를 합리화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신앙 양심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주기철, 손양원 목사 같은 인물들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 자들이 된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다.

분단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정말 억울하게 고통을 당한 것은 식민 지배보다 분단 때문이다. 일제가 패전하면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은 마땅히 해방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분단으로 악화됐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주의 강대국 간의 영토 확장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이 두 나라가 자의적으로 그은 선이 고려 이후 1000년 동안 한 국가 한 민족으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삶을 두 쪽을 냈다. 그럼 여기에 분노가 생겨야지, 미국을 어디 칭찬할 구석이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 한반도 반쪽이라도 공산화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기도가 나올 수 있나.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뜻이었다. 문 씨는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한 정치학 박사인데, 왜 이런 역사적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

-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종살이'와 '포로기'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성경이 쓰인 컨텍스트, 즉 전후 사정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특히 식민지와 식민 종주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식민지는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희생자들의 땅이다. 식민 종주국은 폭력적 지배 집단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항상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동고(同苦)하신다는 진리를 말한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은 바로의 지배하에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직접 모세를 보내서 자기 백성들을 구출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항상 고아와 과부, 나그네, 억울하게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함께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포로기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부터 로마에 이르는 여러 강대국의 압제와 핍박으로부터 해방된 날이 거의 없었다. 민족의 해방을 바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이 이런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생겨났다. 이 종말론적인 신앙이 후에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 대한민국의 끔찍한 역사적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한완상 박사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약자와 동고하는 것'이라며, 이집트의 억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깨우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킨 것이다"라고 한 김삼환 목사의 설교 중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하나님은 세월호의 젊은 아이들을 희생 제물로 삼는 잔인한 하나님이 아니다. 희생된 학생 중에 기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예수님이 오히려 기도하고 죽었던 어린 여학생과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죽으시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을 희생 제물로 삼아서 뭔가를 이룩하겠다?'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악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의 각도에서 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대청소하고 만물을 새롭게 하려고 다시 오실 때, 그때 비로소 악의 문제는 해결된다. 그때까지 온갖 종류의 폭력적 지배를 일삼는 온갖 악의 세력은 존재하고, 그들은 그들의 논리대로 패악을 부리고, 그들의 탐욕대로 영향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다. 악은 지금도 번창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는 것이다.

- 문창극 후보의 신학과 신앙, 역사관에 반공과 친일적인 정신이 엿보인다. 여러 목사와 교인은 문 후보의 역사 인식에 동의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왜 벌어진다고 생각하나.

반공 이데올로기와 친일 정신이 합쳐져서,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망언하는 것이다. 지난 분단 역사를 보면, 반공과 친일은 쌍둥이 이념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상당히 엄격하게 했다. 지주의 농토를 빼앗아서 소작농들에게 나눠줬다. 토지와 재산이 있는 유산자 계급인 북한 주민들에게는 공산당이 아주 고약한 집단이었다. 그중 기독교인은 공산주의를 마귀라고 생각했다. 반공 냉전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은 결탁하게 된다. 신앙이 강할수록 절대 공산주의자를 용서할 수 없게 됐다. 또 북한 공산당 정권은 일제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했다.

남쪽에서는 그것을 못 했다. 북한에서 생존하기 어려웠던 이들은 남하했다. 북쪽에서 온 피난민 중에 재산이 있거나,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미워하는 만큼 일본에 대해서는 우호감을 가졌다. 그런데 대개 이런 기독교인들은 신앙적으로는 율법주의가 강했다.

친일적이고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가진 기독교인들은 자본의 갑이 권력의 갑과 결탁해서 저지르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부정과 비리에는 둔감했다. 그런 것을 지적하면 '친북이다', '종북이다'라고 비난한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자동적으로 색깔론으로 정죄한 것이다. 이것은 '원수 사랑'이라는 예수의 뜻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예수는 절대로 반공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냉전 반공주의 증오심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 중에 적지 않다는 사실은 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 최근 세월호 참사 등 비극적인 사건과 신앙인이 늘 구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 이 둘 사이는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불편한 이야기인데, 소위 역사에 간섭하는 하나님, 이것을 기독교인들이 너무 자의적으로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멋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님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침묵'하는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 같다. '침묵하는 하나님', '무력한 하나님'. 이런 하나님이라는 현실 앞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지막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쳤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했다. 이 절규는 앞으로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할 많은 의로운 사람의 아픔과 동일시하는 행위다. 이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적인 모습을 예수가 감동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은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과 함께 하신다.

억울하게 죽는 약자와 동일시(Identify)하는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정체성(Identity)이다. 자기를 비워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 우아한 '패배'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실천해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우리에게 증거했다.

- 일전에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기독교 복음이 뭐냐는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역사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했다. 최근 논란과 연결해서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한국교회는 복음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해야 한다. 복음은, 가장 공공적인 가치를 증거하는 것이다. 수조 원을 가진 재벌이 자기 아들에게 수천억을 줬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감동이 없다. 그러나 별로 잘 살지 않는 사람이 기부에 1억, 2억을 내는 것은 감동을 준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공공적인 가치의 실천은 감동적인 울림이 있고, 그 결과 개인과 구조가 함께 변화된다. 그래서 새 역사가 동터 오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속에 세워진다. 계시록에서 신랑을 위해서 예쁘게 단장한 신부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는 것처럼, 역사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내려온다. 이게 복음이다. 공공적인 가치 지향, 그리고 총체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예수는 치열하게 살았다. 그 실천의 삶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고난과 죽음. 십자가의 그 길이다. 그런 예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면 문 씨 같은 망언을 할 수가 없다. 최근 기독교인들의 망언 논란에서 복음의 공공적인 가치와 감동적인 울림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교회는 개인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변혁시키는 이 힘을 다시 찾아야 한다. 예수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 등 여러 공직을 지낸 한 박사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게 낙제점을 줬다.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고 염려했다. 한 박사는 국무총리직은 공공적인 국가 행정의 우두머리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문 씨가 국민을 '게으르고 미개하다'고 잠재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 당연히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문창극 씨를 한국 사회의 상징적인 신앙인, 언론인, 지식인으로 놓고 본다면 어떻게 판단하는지, 총리로서는 또 어떤지 궁금하다.

문창극 씨는 어떻게 말하면 주류 보수 기독교인의 대표 상징이라고는 볼 수 있다. 또 수구 언론인, 뉴라이트적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자기를 비우는 성육신 신앙(Kenosis)을 실천하는 존재라고 본다면, 그는 절대로 상징적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호전적 인물, 증오를 부추기는 인물,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총리는 공공적인 국가 행정의 수반이다. 행정부 수반이 가져야 할 자격은 철저하게 공익적이어야 한다. 공무원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대표자가 총리라고 할 때, "민주국가의 권위는 국민에게서 온다"는 가치를 몸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돈과 권력보다 앞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은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 문 씨가 국민을 '게으르다', '미개하다'고 잠재적으로 보고 있다면 국가기관의 대표가 될 수 없다.

- 박근혜 정부와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헌법이 대통령에게 명령하는 정신이 있다. 헌법 정신 중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뽑는다면, 첫 번째 3·1운동 정신, 두 번째 4·19 정신, 세 번째 평화통일 정신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주고 있는 인물들을 보면, 이 세 가지 정신을 조직적으로 훼손하려는 극우 뉴라이트 인사들이 많다. 그런 세력들이 계속 대통령 주위에 포진해 있는데, 앞으로 남은 3년 반의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해 나갈지 심히 염려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철저히 반성하겠구나 기대했는데, 오히려 6·4 지방선거 이후의 첫 카드가 바로 문창극 총리 지명이다. 굉장한 패착이다.

한국교회에는 문창극 씨를 축복하고 싶어 안달 난 교회 지도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 빠질 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십계명의 제3항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고 경고한다. 주기도문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라고 한다.

친일·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같은 큰 죄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안다면, '왜 내 이름을 망령되게 하느냐'고 탄식하실 것이다. 이제는 교회 지도자들이 구약의 이사야, 아모스, 미가, 나단과 같은 예언자의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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