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감리교신학대학교는 겸손과 낮은 자세가 희망이라는 교회들로 떠들썩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2013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 교회 박람회",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라고 적힌 펼침막들이 걸렸다. 그 펼침막들 아래로 7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작은 교회 박람회는 각 지역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는 자리였다.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방인성 목사는 환영사에서 "하나님나라 복음의 핵심인 생명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작은 공동체들이 모였다"라고 선언했다. 방 목사는 "그동안 수고했다. 오늘 우리는 위로하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자"라고 말했다.
박람회는 다양한 행사로 채워졌다. 마흔네 교회와 세 단체는 강의실에 부스를 설치했다. 참가자들은 자기 교회의 활동과 특징을 방문객들에게 설명하기도 했고, 다른 부스를 찾아가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박람회에서 만난 사람들
박은자 씨(45)는 성공회 원주교회(국충국 신부)가 운영하는 '나눔의 집'에서 오갈 데 없는 중고등학생들과 6년째 생활하고 있다. 박 씨는 어린아이나 노인보다 청소년에 대한 도움이 적다고 말했다. 거칠고 불안해 보이기 때문에 어른이 청소년을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청소년을 외면하면 할수록 문제는 커진다고 했다. 그럴수록 다가가고 상처를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회 원주교회는 교회 재정의 절반을 빈민 청소년 돕기와 시골 지역 농촌 마을 만들기에 사용하고 있다.
대전에 위치한 마당교회의 김철호 목사는 파산 면책 전문가다. 10년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회생을 돕고 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파산 신청을 하기 위해 법률 사무소를 찾아왔다가 또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 교회와 대전역에서 무료로 상담해 주거나, 파산 면책 절차를 돕고 있다. 그가 법적 절차를 도와준 사람만 1000명이 넘는다. 김 목사는 자신의 활동을 희년정신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빚을 탕감해 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와 목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성수동 공단 지역에 국내 최초로 설립된 여성 노숙자 쉼터인 '내일의 집'은 성수삼일교회(정태효 목사)가 운영하고 있다. 내일의 집에는 살던 집이 철거돼 오갈 데가 없거나, 가정 폭력을 못 이겨 집을 나온 여성들이 머물고 있다. 정태효 목사와 실무자인 윤 아무개 씨(51)는 쉼터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윤 씨는 자신이 근무한 5년 동안 500여 명의 여성이 쉼터를 거쳐 자립했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 이후, 억압받는 사람들과 교회가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촛불교회(박득훈 운영위원장)를 만들었다. 촛불교회에는 건물도 정관도 담임목사도 없다. 그들의 예배당은 서울 한전 본사이기도 하고, 노동자의 파업 현장이기도하다. 촛불교회 운영위원인 김영현 씨(33)는 자신을 감신대 수련 목회자라고 소개했다. 촛불교회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옆을 지킨다고 했다. 김 씨는 억압받는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 누군가가 옆을 지켜주는 것만으로 위로받는다고 했다. 그가 촛불교회로 뛰어든 것은 "이 땅에 예수가 온다면 어딜 찾아갈 것인가"하는 신앙적 과제 때문이었다. 그의 답은 용산이었고, 청계천이었고, 밀양이었다.
강의실에서 부스 활동이 진행될 때, 웨슬리관에서는 대화 마당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교회 운영을 위한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회 학교 운영과 교회 개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부스 활동과 대화 마당을 마친 참가자들은 백주년기념관 앞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가자들이 패널로 나와 교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교회'의 작음은 숫자 아닌, 겸손과 낮음의 자세
신학생 이 아무개 씨(30)도 박람회를 찾았다. 요즘 신학생들에게 교회 개척은 최대 관심사라고 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섣불리 교회를 세웠다가는 교인이 없어 망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교인 수가 적은 작은 교회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작은 교회의 '작음'은 숫자가 아닌, 겸손과 낮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지역 속에 스며 있었다.
생명평화마당은 박람회를 마무리하며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 교회들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방인성 목사는 성장과 크기를 중시했던 한국교회가 앞으로는 이날 모인 교회들처럼 자신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람회에 참가한 작은 교회들은 빈민과 노동자들을 위해 살았다는 요한 웨슬리의 기념관을 지나 각자가 온 지역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교회가 자신들뿐이 아니었음을 알고 위로받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