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한 지 40년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걸쳐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2년 10월 18일 자 <경향신문> 갈무리>

올해로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한 지 40년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17일 전국에 걸쳐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해 12월 27일 유신 헌법이 공포되었고,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1월부터는 긴급조치를 발동해 교수·학생·언론인·종교인·문인 등 민주 인사들을 탄압했다.

이에 저항하던 사람들은 민청학련 사건과 긴급조치 위반 등에 휘말려 대거 잡혀가고 고문을 받고, 몇몇은 억울한 사법 살인을 당하기도 했다. 기독교계에는 투옥된 민주화 운동가들의 석방을 위해 매주 목요일 기도 모임을 진행했다. 허병섭·이해동·문동환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독재 정권의 탄압에 맞서 기도했다.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목요 기도회가 있었던 반면, 정권에 빌붙어 유신을 옹호하던 자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국가조찬기도회다. 1966년 시작한 대통령조찬기도회(1976년 국가조찬기도회로 변경)는 김준곤·조용기·김장환 목사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국가조찬기도회, 박정희 독재 정권과 결탁 비판

세월이 흐르면서 목요 기도회를 이끌었던 인사들뿐 아니라,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한 목사들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로 추앙받고 있다. 지난 9월 말 열린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전 총재 김준곤 목사 3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김 목사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며 기도해 왔는지를 앞다퉈 소개했다. 설교자로 나선 이만신 목사(중앙성결교회 원로, 전 한기총 대표회장)는 "김 목사가 국가조찬기도회를 도입해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큰 감동을 받고 복음을 듣는 계기가 됐다"며 "그같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분은 없다"고 했다.

이만신 목사 외에도 단상에 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 목사를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목회자로 기억했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김 목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묵인하고 유신까지 칭송했다며 비판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이들은 김 목사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국가조찬기도회가 정권과 결탁한 대표적인 행사였다고 지목한다.

▲ 1966년부터 시작된 대통령조찬기도회(1976년 국가조찬기도회로 변경)를 이끈 교계 목회자들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하여 정권과 결탁한 문제로 논란이 되어 왔다. 사진은 1973년 5월 1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6회 대통령조찬기도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3년 5월 1일 자 <경향신문> 갈무리)

10월 유신 축복, 언론·논문에는 있고 설교집에는 없고

장규식 교수(중앙대 사학과)는 논문 '군사정권기 한국교회와 국가권력'에서 "국가조찬기도회는 유신 체제와 신군부독재의 정당성을 내외에 과시하는 선전 도구로 전락하면서 정교 유착의 온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김 목사의 유신 축복 설교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부정과 불의를 외면한 채 유신의 앞날을 축복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과거 국가조찬기도회에 대해 "정교분리와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비춰볼 때 청산해야 할 과거"라고 했다.

장 교수가 제시한 김 목사의 설교 중 유신을 축복했다는 부분이다.

"외람되지만 각하의 치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 자랑이 되고 있다. 그것이 만일 전민족신자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내용은 김 목사가 1973년 5월 1일 6회 대통령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한 내용이다. 김 목사의 유신 옹호 발언은 1973년 5월 1일과 6일 각각 <경향신문>과 <교회연합신보>가 보도하며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조찬기도회를 보도한 <경향신문>을 살펴보면, 김 목사는 유신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등 더 직접적으로 유신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엔 예측 못했던 경제계의 호황이 찾아오고 있다고 들었다. 축복의 서곡일 것이다. 민족의 운명을 걸고 세계의 주시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 하겠다."(<경향신문> 1973년 5월 1일)

▲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였던 고 김준곤 목사가 1973년 5월 1일 6회 대통령조찬기도회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을 옹호하는 설교를 했다. 1973년 5월 1일과 6일 각각 <경향신문>과 <교회연합신보>가 보도한 설교문에는 '10월 유신'이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CCC의 순출판사가 1998년 펴낸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에는 10월 유신 칭송 부분이 빠졌다. (사진 위 : <교회연합신보, 1966~1986> 갈무리, 아래 : <하나님을 주로 믿는 민족> 갈무리)

하지만 김 목사의 유신 찬양 발언은 나중에 나온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CCC의 순출판사가 펴낸 <하나님을 주로 삼은 민족>(주서택 엮음, 1998년)과 <국가조찬기도회 메시지>(김준곤, 2006년)에는 '10월 유신'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 하겠다"는 주장도 '10월 유신'이 아니라 '새마을운동'으로 바뀌어 있다.

당시 언론과 논문에는 나오지만, 나중에 펴낸 책에는 누락되어 있는 사실은, 강 아무개 씨(성균관대 역사학 석사과정)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 왜곡을 봤다"며 올린 글을 통해 퍼지고 있다. 강 씨는 "<교회연합신보>에 실린 김 목사의 설교문에는 유신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에는 유신이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강 씨는 이것을 '기록 날조'로 봤다.

▲ 강 아무개 씨(성균관대 역사학 석사과정)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역사 왜곡을 봤다"며 "<교회연합신보>에 실린 김 목사의 설교문에는 유신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에는 유신이 빠져 있다"고 했다. (강 아무개 씨 페이스북 갈무리)

국가조찬기도회가 정교 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제시대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도 "김준곤 목사의 설교 내용은 명백히 10월 유신을 유념한 것이다"며 "(유신이) 한 번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최 목사는 "편집하는 과정에 기술적으로 뺐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며 '고의 누락' 의문을 제기했다. 최 목사는 2009년 4월 <뉴스앤조이>에 게재한 글에서도 김 목사 등의 유신 옹호 설교를 비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교회와 권력의 유착 고리, 국가조찬기도회)

CCC 박성민 대표, "돌아가신 분이 한 것은 놔두자"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에 '10월 유신'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에 대해 당시 편집에 참여한 김철영 목사(CCC 전 총재 김준곤 목사 특보, CCC LLM 대표)는 "(유신을) 의도적으로 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당시 언론사에 실린 설교문과 책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김준곤 목사가 직접 쓴 원고는 없었다. 직접 육성 테이프 녹음을 듣고 쓴 것이 아니고 녹취된 유인물을 참고해서 엮었다"고 했다. CCC 총무였고 책을 엮은 주서택 목사(주님의 교회)도 "책을 낼 당시 있었던 문안을 참고했고 문장을 손대지 않았다"고 말했다.

CCC 대표 박성민 목사는 <뉴스앤조이>와 통화에서 "(책에 유신이 빠진 것은) 잘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것은 없다"며 "돌아가신 분이 한 것은 놔두는 게 낫지 그것을 역사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이 건강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 1973년 5월 1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준곤 목사의 설교문에의 '10월 유신'이라는 말이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과 <국가조찬기도회 메시지>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바뀌어 있다. (사진 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73년 5월 1일 자 <경향신문> 갈무리, 아래 : <하나님을 주로 믿는 민족> 갈무리)

최근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5.16 군사 쿠데타,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사과하면서도 평가에 대해서는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하지만 정치인이 아닌 박 대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돌아가신 분이 한 것은 놔두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형묵 목사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로 넘기자는 것이 아니냐"며 "비록 사후라 하더라도 김준곤 목사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정권과 유착한 점을 냉혹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가조찬기도회는 군사독재 시절처럼 국가 권력과 야합하는 방식으로 열린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과거 정교 유착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이만열 명예교수(숙명여대 한국사학과·전 국사편찬위원장)는 "(국가조찬기도회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그 뒤에는 정교 유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005년 10월 6일 열린 교회개혁 심포지엄에서 "교회는 정교분리라는 명분으로 예언자적인 외침을 포기하고, 대신 불의한 정권을 위한 조찬기도회 등에 참여했다"고 비판하며 죄책 고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하나님을 주로 삼는 민족>과 같은 내용으로 2006년 새로 펴낸 책 <국가조찬기도회 메시지>에는 '위정자들 앞에서 조국의 미래상을 제시한 책'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다. 그렇지만 교회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독재 권력을 칭송하는 설교로는 조국의 미래는 물론 한국교회의 내일도 밝힐 수 없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