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처치(megachurch)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메가처치는 그리스어로 '크다' 혹은 '백만'이라는 뜻의 메가(mega)와 교회(church)의 합성어다. 한마디로 '대단히 큰 교회'라는 뜻이다. 통상 메가처치는 주일예배에 2000명 이상 출석하는 교회를 가리킨다(Scott Thumma, 1996). 하지만 이것은 어떤 사전적인 정의라기보다는 통상적이고 관습적인 정의다. 필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메가처치'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규모가 큰 '대형 교회(big church)'를 뜻하지 않는다.

필자가 메가처치라고 했을 때 이는 첫째로, 대단히 최근에 지구상에 출현한 모종의 강력한 종교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은 어느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메가처치는 역사상 늘 존재해 왔다고 주장했다(지재일, 2010). 이러한 릭 워렌의 주장은 메가처치 현상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에 속한다. 릭 워렌의 주장과는 달리 메가처치 현상은 대단히 최근에 지구상에 출현한 대단히 특수하고 현대적인 형태의 종교 사회적 현상이다.

만일 메가처치가 단순히 2000명 이상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릭 워렌의 말대로 그런 규모의 교회는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교회사 속에서 늘 존재해 왔다. 예컨대, 1900년에 이미 미국에는 약 10개 정도의 메가처치가 존재했었다(Thuma & Travis, 2007 : 7). 또한, 우리는 18세기 1차 대각성운동 때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천막 집회가 이미 3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신광은, 2009 : 54). 한국만 하더라도 평양대부흥운동이 한창일 때 장대현교회에 1500명이 한 번에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 270). 하지만 이런 큰 규모의 교회나 모임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에 메가처치 현상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메가처치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부터다. 스콧 튜마(Scott Thumma)와 데이브 트레비스(Dave Travis)의 연구에 의하면 1970년이 되면 미국의 메가처치는 약 50개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니까 70년 동안 10개에서 50개로 약 5배 정도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2005년 현재 미국의 메가처치는 1210개로 추정된다. 겨우 35년 만에 24배로 증가한 것이다(2007 : 7).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교회가 극적으로 성장한 현상은 기독교 2000년사 중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바로 이 현상이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로, 필자가 메가처치 현상이라고 부를 때, 이는 메가처치가 전체 교회에 미치는 강력하고 보편적인 영향력을 지칭한다. 전체 교회 숫자에 비추어 봤을 때 메가처치의 비율은 1% 내외다. 하지만 메가처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현재 전체 미국 개신교인 중 50% 이상이 상위 10%의 대형 교회에 출석한다고 한다(Thumma & Leppman, 2009).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등록 교인 수는 약 80만 명에 달하는데 만일 우리가 이 수치를 신뢰한다면 전체 한국 개신교인 중 거의 10%가 단 하나의 교회에 출석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1000명 이상 출석하는 대형 교회의 수가 대략 1000개 정도 된다고 하니(이진구, 2000) 이들 대형 교회 교인들이 전체 교인들에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메가처치의 강력한 영향력이 나온다.

나아가 메가처치의 성장은 수평 이동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경우 메가처치 신자 중 72%가 수평 이동한 신자들이다. 물론 28%는 원거리에서 이사한 신자들이지만 44%는 인근 지역 교회에서 메가처치로 수평 이동한 신자들이다(Thumma & Bird, 2008).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인 중 교회를 한 번 이상 옮긴 경험이 있는 신자는 76.5%에 달하며, 이러한 수평 이동은 주로 소형 교회에서 중형 교회와 대형 교회로 이루어지고 있다(교회성장연구소, 2004 : 35~41).

필자는 여기서 수평 이동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수평 이동은 메가처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려는 바는 어느 메가처치가 성장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그 교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메가처치는 그냥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다. 메가처치의 탄생과 성장은 불가불 비메가처치 교인들의 수평 이동을 촉발시키며, 이러한 수평 이동은 비메가처치 교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직 비메가처치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중 상당수는 메가처치의 잠재적 고객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자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메가처치의 영향력은 항구적이 된다.

메가처치 목사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의 설교는 각종 매체를 통해 전달되며, 그들 중 상당수는 밀리언셀러의 작가들이며, 심지어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각종 세미나와 수련회, 부흥회, 특강의 주강사로 초빙을 받고 있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철학과 신념을 손쉽게 전파하고 유통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 논하겠지만 이들은 교단이나 연합 기구 등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종종 정치인들의 예방을 받기도 하고,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들의 주장을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메가처치의 영향력은 그들이 99%에 달하는 절대 다수의 비메가처치 교회들에 대한 역할 모델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메가처치의 진정한 영향력이란 절대다수의 비메가처치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잠재적 메가처치로 포지셔닝(positioning)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필자는 <메가처치 논박>에서 한국교회는 극소수의 메가처치와 대다수의 잠재적 메가처치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2009 : 80).

이처럼 메가처치가 비메가처치들의 모델이 됨으로써 거의 모든 교회가 메가처치 현상 속으로 매몰되어 들어가게 되었다. 메가처치는 메가처치대로, 비메가처치는 비메가처치대로 모두가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몰두함으로써 전체 개신교회는 성장을 향한 무한 경쟁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메가처치화의 강력한 경향성에는 교단이나 신학, 전통이 따로 없다. 조금 과장하면 모든 교회가 다 메가처치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 2000년사 중에서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는 정말로 특이한 현상이다.

셋째로, 이러한 메가처치 현상이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메가처치 현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워렌 버즈(Warren Bird)의 조사에 따르면 메가처치는 나이지리아, 케냐, 우간다 등을 포함하는 아프리카 대륙,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대륙,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오세아니아 대륙,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포함하는 유럽 대륙,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는 북미 대륙, 그리고 브라질,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을 포함하는 남미 대륙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다(Bird). 전 세계에 메가처치 광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째로, 주목할 것은 메가처치 현상이 유독 개신교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 모든 종교는 거대 규모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모스크나 불교 사찰, 힌두교 사원, 가톨릭 성당 등의 대형화 추세가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종교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교육 시설이나 극장, 기업, 대형 쇼핑몰, 테마 공원 등도 아울러서 대형화되고 있다(Thumma & Leppman, 2009).

그럼에도 개신교회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메가처치 현상에 필적할 만한 현상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하트포드연구소가 메가처치를 기본적으로 개신교회에 국한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출석 교인 2000명 이상인 가톨릭 본당은 미국의 경우 거의 3000개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가톨릭 본당의 경우 개신교회의 메가처치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특징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가톨릭교회) 대부분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담임목사가 없으며, 여러 명의 부목사, 다수의 간사, 수백에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에게 사명을 부여하게 만드는 강력한 교인으로서의 자부심, 여러 지역에서 심지어 교구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흡입력, 평신도에 의해 운영되는 수많은 프로그램과 잘 조직된 사역들, 높은 수준의 헌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주중 활동, 현대적 예배 스타일, 고품격 음향 시스템과 빔프로젝터 및 영상 시스템, 이 밖에도 서점, 커피숍과 같은 부대시설, 30~100 에이커이 이르는 넓은 교회 부지, 이 밖의 여러 메가처치의 특성들을 결여하고 있다(Hartford Institution)."

이 인용문은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메가처치 현상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메가처치를 단순히 20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히 필자가 메가처치 현상이 우선적으로 개신교회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섯째, 메가처치 현상은 철저하게 하나의 지역 교회(local church)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교회(individual church)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즉 메가처치 현상은 공교회의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심지어 그것은 교단의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지도 않다. 메가처치는 우선적으로 하나의 개별 교회가 스스로 몸집을 불려 극단적으로 성장한 교회이며, 메가처치 현상은 그러한 지역 교회들의 집합적인 경향성이다.

메가처치의 교단색이 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메가처치의 60% 정도는 기존 교단 내에 속해 있으나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교단색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성장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도리어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메가처치 신자들도 자기 교회의 교단이나 전통에 그렇게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Thumma, 1996). 바로 이 때문에 메가처치를 기능적으로 탈교단적(post-denominational)이거나 무교단적(nondenominational)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공교회성이 강한 가톨릭교회나 정교회, 혹은 성공회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메가처치 현상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것은 소위 멀티사이트 처치(multisite church)다. 1980년대 이후 메가처치는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데서 발생하는 공간적, 시간적 문제를 멀티사이트 처치의 형태로 해결하고 있다. 한번에 한 장소에 모이기 어려운 교인들을 위해서 한곳에서 여러 번 예배를 나누어 드리거나, 아니면 위성 중계 등을 활용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위성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멀티사이트 처치라고 한다.

언뜻 보면 멀티사이트 처치는 전통적인 지역 교회(local church)와는 크게 달리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무슨 대단한 개혁이나 위대한 혁명도 아니고, 교회 개혁의 신호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메가처치 현상의 한 측면일 뿐이다. 여러 곳에서 모인다 뿐이지 그것의 통치 체계(system of governance)는 하나의 지역 교회와 별 차이가 없다. 한마디로 멀티사이트 처치는 개교회가 테크놀로지의 힘을 입어 시공간적으로 자신을 확대한 형태일 뿐이다.

이러한 멀티사이트 처치가 개신교회의 개 교회 주의를 극복하고 마치 공교회성(Catholicity)을 다시 회복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개 교회 스스로가 공교회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개 교회 주의의 극단적 형태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여튼 멀티사이트 처치를 포함하여 개신교회 내의 메가처치 현상은 우선적으로 개 교회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갑작스럽게 하나의 특이한 종교 사회적 현상이 지구상에 출현했다. 그것은 주일예배 출석 인원이 2000명이 넘는 지역 교회들이 예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의 형태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들 거대한 지역 교회들의 영향력은 너무도 강력하여 전체 기독교회가 이들 메가처치의 영향력 아래 포섭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메가처치 현상은 2차대전 이후 종교 및 사회 일반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대형화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으나 개신교회 내에서 현저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 전례나 혹은 이에 필적할 만한 다른 유사한 현상도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주목하고 논의하고자 하는 메가처치 현상이다.

메가처치 현상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메가처치 현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통속적인 오해들 몇 가지를 불식시킬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메가처치 현상은 역사 속에서 늘 존재해 왔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의도는 지금의 메가처치 현상을 특이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 상술한 대로 메가처치 현상이 최근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오류다.

이와 관련해서 살펴볼 것은 초대교회를 메가처치의 전범으로 보려는 시도다. 앞의 릭 워렌은 같은 컨퍼런스에서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같은) 초대교회는 대형 교회였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혹자는 예루살렘 교회는 최소한 8000명 이상이 모이는 메가처치라고 주장한다. 베드로가 단 두 번의 설교로 도합 8000명의 회심자를 얻었으니 예루살렘 교회는 최소 80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였다는 것이다. 릭 워렌은 예루살렘 교회를 멀티사이트 처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교회인데 여러 장소에서 모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성서를 통해 자신들을 합리화하려는 시도일 뿐 역사적 개연성은 희박하다.

우선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8000명이 한꺼번에 모여 대형 집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전 마당의 솔로몬 행각에서 사도들에 의해 치유 및 말씀 집회가 열리긴 했지만(행 5:12) 이러한 집회 역시도 공간적인 제약, 예수의 추종자를 혐오하는 유대인 관료들의 감시, 군중집회를 두려워하는 빌라도 총독의 압력 등을 고려한다면 8000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대형 집회였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리다. 분명 예루살렘 교회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메가처치와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실 8000이라는 숫자를 빼면 예루살렘 교회와 현대의 메가처치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거의 없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전 모임과 병행하여 가정 모임을 가졌다. 사실 가정 모임은 거의 3세기 가량이나 지속되었던 초대교회의 모임 형식이다. 여러 곳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셀 그룹이나 혹은 멀티사이트 처치와 유사한 모습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 교회는 공동 지도 체제였다. 즉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특징인 오늘날의 메가처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 교회는 개교회 주의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최초의, 그리고 단 하나의 그리스도의 공교회였을 뿐이다. 예루살렘 교회를 오늘날의 메가처치나 멀티사이트 처치에 비교하느니 차라리 로마가톨릭교회에 비교하는 것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를 개 교회 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멀티사이트 처치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또 혹자는 메가처치의 거대한 규모, 부, 권력, 타락 등을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일견 타당해 보이나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와 현대의 메가처치는 비슷한 면보다는 비슷하지 않는 모습이 훨씬 더 많다. 예컨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는 교구제를 넘어설 수 없었기에 본당들끼리 성장을 경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이미 유럽은 기독교 세계였기 때문에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론은 오늘날의 메가처치 현상은 역사상의 전례나 타 종교 및 종단에서 필적할 만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히 독특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것을 문제 삼고자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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