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의 마지막 '망루' 남일당이 철거된 12월 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작은 용산' 두리반에서는 기독인 연합 예배가 열렸다. 342일째 투쟁을 하느라 지쳐 있는 유채림·안종녀 집사 부부를 위로하고, 두리반 사태의 정당한 해결을 촉구하고자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것이다.

▲ 이날 모인 8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유채림, 안종녀 집사를 축복하고 위로했다. ⓒ뉴스앤조이 이용준
지난 7월 21일부터 전기가 끊겨 난방도 안 되고 불빛도 없었지만 이날 두리반에 모인 80여 명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따듯한 온정으로 서로의 몸을 덥혔고, 뜨거운 기도와 찬양으로 모임의 불을 밝혔다.

투쟁은 개인이 아닌 모두를 위한 권리 싸움

두리반의 '바깥주인'인 유채림 집사(50)는 그간의 사태를 직접 경험한 장본인이다. 유 집사는 "전기가 끊기고 난 뒤 한여름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선풍기 한 대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절박했다. 너무 더워서 자다 깨고를 2시간마다 반복했다. 아침에 지어 먹은 음식은 점심때면 이미 상해 있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비참하고 절박한 상황이 철거민에게는 살아 내야만 했던 일상인 것이다.

그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유 집사는 스스로를 '날라리 집사'라고 했다. "원래 날라리 집사라서 기도를 잘 안 했지만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예수 믿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딱 한마디만 했다"고 말했다.

부당한 철거를 막으려는 투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재개발은 국가를 위한 사업이 아니라 건설 업계만 배를 불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 집사는 "처음엔 개인의 권리와 이익 때문에 농성을 시작했지만, 이 문제가 도덕적으로 바른지 현명한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징적 싸움이 된 것을 안다. 많이 지친 상태지만 두리반이 다시 문을 열어서 재개발 업체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선례가 되기를 바라는 의무감 때문에라도 농성을 할 수밖에 없다"고 심정을 밝혔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는 어수선한 곳에서 한 가정이 정착해서 오순도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두리반에는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구교형 목사(성서한국 사무총장)는 "을씨년스러운 두리반이야말로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참 좋은 곳이다, 예수님이 이런 곳에 계시지 않으면 어느 곳에 계실까 생각했다"며, '내가 선 자리를 바로 인식하라!(단 4:19~27)'는 말씀으로 설교했다.

▲ 구교형 목사는 "유채림·안종녀, 두 분이 외롭지 않도록 두리반을 자주 방문해서 격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이용준
구 목사는 "상식을 무시하는 법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땅의 법을 파괴하는 하늘의 법을 들어야 한다"며, "하나님나라의 법은 이 땅의 법이 무너질 때 시작한다. 그런데 이 땅의 정권이 공고해져 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건 우리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이라고 일침했다.

설교 말미에 구교형 목사는 다음 예배 때는 칼국수를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했다. 얼핏 들으면 밥 내놓으라는 투정이다. 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리반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진한 격려이기 때문이다.

많은 얼굴이 모였지만

두리반에는 침묵하는 공범이 아니라 함께 기도를 작당하고 서로 위로할 공범이 필요하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80여 명. 준비한 의자가 모자라 2시간 내내 서서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유채림 집사는 "150여 개의 홍대 인디 밴드들이 두리반에서 콘서트를 했던 이후로 가장 많은 분들이 오셨다"며 감사해 했다.

유 집사가 전한 감사 인사나 예배에서 기도를 한 이상민 씨(서울신대 06학번)의 고백처럼 이날 두리반에는 많은 얼굴이 모였다. 이곳에 모인 얼굴이 다시 모여 서로 바라볼 때, 마치 우리 '주인'의 얼굴을 본 듯 구원의 역사가 흘러넘칠 수 있을까.

▲ "두리반의 힘겨운 투쟁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소서!" ⓒ뉴스앤조이 이용준
남일당은 결국 철거되었다. 위정자들이 크게 돌이키고 회개하지 않는 한, 두리반도 언젠가는 철거될 것이 분명하다. 어두침침한 두리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게 된 건 세상이 빛을 앗아갔기 때문일까, 점차 세상을 따라 강퍅해지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일까.

▲ 작년 겨울에 '철퇴'를 맞은 두리반, 올겨울도 이렇게 보내야 할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0년 1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건강한 목회자 협의회' 등의 기독 단체가 두리반을 방문해 함께 예배하기 시작하다. 이후 두리반의 소식을 접한 홍대의 인디 밴드와 주변 대학의 학생들, 문학인들이 나서 문화제를 열다.

2010년 7월 21일 한국 전력 공사에서 전력을 끊다. 유채림 집사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철거민을 쫓아내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판단, 도전(盜電) 하지 않기로 하다.

2010년 12월 1일 농성 342일째를 맞아 '두리반과 함께하는 기독인 연합 예배'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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