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식당 두리반. ⓒ뉴스앤조이 유연석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칼국수·보쌈 전문점 '두리반'은 홍대 근처의 '맛있는 식당'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칼국수와 보쌈을 맛볼 수 없다. '두리반'을 찾아가면 식탁과 의자 대신 바닥에 스티로폼과 침낭이 있다. 벽에는 메뉴판 대신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마라', '철거를 반대한다' 등의 글귀가 적힌 벽보가 있다.

식당 주인은 장사하지 않고 20일째 농성하고 있다. '제2의 용산' 또는 '홍대 앞 작은 용산'이라 불리는 '두리반'. 전기가 끊겨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철거 직전의 식당에서 "우리는 살고 싶다"고 외치는 주인 유채림(소설가·50), 안종려(52)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여자 두 명이 영업을 준비하는 식당에 갑자기 30여 명의 사내가 들이닥쳤다. 주인인 안 씨가 저항하자, 사내들은 안 씨를 계산대로 몰아넣고는 못 나오게 막았다고 한다. 다른 사내들은 식탁, 의자, 그릇, 주방 도구 등 온갖 집기들을 인정사정없이 들어냈다. 유 씨 부부가 청약 예금을 해약하고 대출까지 받아 인수한 식당, 5년간을 자식 키우듯이 애지중지 공들인 식당은 용역들의 손에 두 시간도 안 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변했다.

▲ 12월 24일 철거 이전의 두리반 실내 사진(좌)과 현재의 실내 사진(우). ⓒ뉴스앤조이 유연석
▲ 지금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은 주방이었다. ⓒ뉴스앤조이 유연석
'두리반'이 있는 동교동 삼거리 일대는 2007년부터 경전철역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인천공항과 이어지는 경전철인데다 2호선 홍대입구역과 환승이 되기 때문에 수많은 인구의 이동이 예상되는 지역이었다. 유 씨가 말한 바로는, "투기꾼들은 평당 800만 원짜리 땅을 10배 가까이 주며 사들였다"고 한다. '두리반'이 있는 건물의 세입자들은 2007년 12월경 '건물이 팔렸으니 가게를 비우라'는 새 건물주의 명도 소송을 받고서야 건물이 팔린 사실을 알았다.

 
새 건물주는 세입자들에게 이사 비용 300만 원을 줄 테니 나가라고 했지만, 세입자들은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두리반의 경우 권리금 약 1억 원에 보증금 약 1,200만 원, 다달이 150만 원의 세를 냈다. 권리금을 마련하려고 대출까지 받았는데, 이사 비용 300만 원으로는 어디를 가도 다시 장사할 수가 없었다. 같은 건물에 있던 열 세대 세입자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하지만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끝까지 버티자던 세입자들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 질려 한 세대씩 포기하고 떠났다. 이제 '두리반'만 남았다. 용역이 들이닥쳐 집기를 들어낸 날, 유 씨 부부도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 씨의 주변 사람들은 "'두리반'은 '두리반'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저앉지 마라. 영세한 세입자들 모두의 문제다. 네가 세입자 보호법안 마련의 한 가닥 역할이라도 하라"고 했다. 유 씨 부부는 12월 26일 밤 2시에 절단기로 식당 입구를 막은 철판을 뜯어내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식당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런 '두리반'의 상황을 알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유 씨가 속한 한국작가회의와 인천작가회의는 '유채림 소설가의 삶터,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마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위원장 전병생 목사)는 '강제 폭력 재개발 중단하고 서민 생존권 보장하라'는 성명을 마포구청장과 마포경찰서장, 시공사인 GS 건설에 전달했다. 유 씨의 모교 '한신대 민주동문회'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두리반에서 농성 생활을 하고 있다.

▲ 두리반 식당 안팎으로는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마라', '철거를 반대한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뉴스앤조이 유연석
유 씨 부부가 출석하는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서울삼일교회(목사 하태영) 교인들은 성탄절 예배와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두리반'을 찾아와 또 예배를 드렸다. 하태영 목사도 '두리반'을 매일 두 번씩 방문한다. 하 목사는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하며 두리반에 온다"고 했다. 그는 두리반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세입자들이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데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 대한민국의 수준이라며, "이번 기회에 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생존권의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 씨 부부는 '충분한 보상' 따위를 바란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살 수 있게만, 장사할 수 있게만 해 달라고 했다. 유 씨는 "철거 때문에 건물을 비워야 한다면 비우겠다. 대신 함바집(현장 식당)이라도 지어서 공사 인부를 대상으로 장사하게 해 달라. 공사가 끝나면 지금의 반 평수여도 좋고, 외진 구석이어도 좋으니, 다시 장사만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D&C) 관계자는 "우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을 진행했다. 보증금(1,200만 원)의 두세 배 정도까지 보상한다는 게 현재 우리의 입장이다"고 했다. 또 "현장 식당은 시공사에서 선정하는 것이고, 우리 권한 밖의 일이다. 건물 완공 후 다시 장사를 할 수 있는 가게를 달라는 요구도 답하기 어렵다. 윗선에서 결정할 문제다"고 했다.

한편, 고난의 현장에서 매주 예배를 열었던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들'은 '두리반'의 소식을 듣고, 용산에 이어 '두리반'에서 예배한다. 예배는 1월 14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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