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학교. 솔직히 말하자면 수능 시험을 보고 대학 입학원서를 쓸 때 처음 알게 된 학교였다. 지원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내게 아빠는 한신대학교(한신대)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수능 커트 라인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결국 한신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나는 정말 대학교에서 학문을 넘어서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다. 좀 더 낮은 곳과 소외된 곳에 시선이 갔고, 나 혼자만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인 서울'의 학교는 아니었지만, 난 '민족 한신'이라는 그 이름에 자부심을 제법 가지고 살게 되었고, 결국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인권 단체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껏 대학을 보내 놨더니 졸업해서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딸내미를 보며 아빠는 "네가 대학교를 '잘못' 가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같다"며 푸념을 하시기도 하였지만, '한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늘 가슴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늘 나의 가슴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던 '한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점점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올해 3월 한신대 신학대학원 채플실에서 개최하고자 했던 고 임보라 목사의 추모 문화제가 불허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었나 보다. '개신교 교단 중 가장 진보적이라고는 하지만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장소 대관을 불허할 수밖에 없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나 보다' 하고 꾸역꾸역 나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 미약하게나마 잡고 있었던 나의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결국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진심으로 참담하고 슬펐다.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오랜 사랑의 상대를 이제는 정말 보내야만 하는, 이별할 때가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한 언론사에 따르면, 한신대는 부설 어학당 우즈베키스탄 국적 유학생 22명을 집단 강제 출국시켰다. "외국인등록증 수령을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가야 한다"는 거짓말로 유학생들을 속여 버스에 태운 뒤, "지금 출입국관리소에 가면 여러분은 감옥에 가야 한다"며 학생들을 협박하였고, 학교 근처 병점역에서 사설 경비 업체 직원들이 탑승을 해 유학생들의 핸드폰을 걷어 가 외부와 연락을 차단한 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유학생들 몰래 예약해 놓은 항공권으로 그들을 강제로 출국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신대 측은 '본인 동의로 출국했음'을 인정하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남은 등록금을 환불하겠다고 통보했다. 학생들이 도망가지 않고 비행기에 제대로 탑승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한신대 교직원, 사설 경비 업체 직원들, 통역사 등의 항공권도 예약하여 비행기 문 앞까지 따라가 감시를 한 뒤 본인들의 항공권을 취소하였다고 한다. 22명의 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을 강제 출국시키는 과정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서 '출입국관리소'라는 말은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찾고 또 찾았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A부터 Z까지 한신대가 한 일이었다(출입국관리소의 개입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어 이 글에서 그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학교 측도 나름의 변명이 있다. 12월 12일 한신대학교 국제교류원장은 '어학당 학생 출국 관련 기사에 대한 학교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만 본다면 마치 학교 당국이 어학당 유학생들을 굉장히 위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신대 어학당 출신의 미등록 체류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로 인해 한신대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입장문에는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도 없었다. 

1980년 종합대학이 된 이래, 학문과 경건, 진리, 자유, 사랑, 글로벌 평화 리더를 양성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 평화와 인권을 위해 나눔과 섬김의 자세로 헌신해 오고 있다는 한신대에 나는 정말 묻고 싶다. 2023년 12월 현재, 한신대의 가치는 어디를 향해 뻗어 가고 있는가? 당신들이 말하는 '헌신'에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가 알던 한신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한신대는 이제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한신대'가 아닌 '한심대'로 조롱받아도 반박할 수가 없다. 한신의 역사는 '한심'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고 있고, 한신대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힘든 세상이다. 사람들만 경쟁하며 사는 사회가 아니다. 대학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 안에서 한신대 또한 살아남기 위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밧줄이라도 잡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밧줄이 썩은 동아줄이었으니 그 책임은 온전히 학교 당국이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곳곳에 숨어있던 학교 선배들을 만났다. 누구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누구는 장애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구는 세상에 제대로 된 소식들을 전하기 위해, 누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누구는 북한 이탈 주민을 위해,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밝히기 위해 우직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다. 학연과 지연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런 학연이라면 난 충분히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한신대의 걸음은 어디를 향해 내딛고 있는 것일까. 가난한 나라의 유학생들을 거짓과 협박으로 강제 출국시키는 행태를 보고 나니 한신대가 걷고 있는 방향을 알 것 같다. 사람보다는 이윤을, 인권보다는 이권을 향해 있다.

이번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강제 출국 사건의 본질은 사실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정부 정책이다. 한신대는 추후 정부로부터 받게 될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미리 바짝 엎드려 약자인 우즈베키스탄 유학생들을 쫓아내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이 글에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정부 정책의 비판보다 한신대를 더 비판한 이유는 한신대가 기어코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한신대를 애정하고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던 졸업생으로서 적어도 나 스스로 내 삶을 되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신대는 이윤과 이권을 잠시만 뒤로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부끄럽지 않은가?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번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강제 출국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사과와 강제 출국을 당한 유학생들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썩은 살을 도려내고, 새로운 살이 돋아야 하지 않겠는가. 

배여진 /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01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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