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캐나다연합교회(UCC)가 2020년 4월 발간한 퀴어 긍정 사역을 위한 자료집 <열린 마음 Open Heart> 한국어판 번역 출간회가 11월 11일 열렸다. 번역 출간회는 이 책을 번역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캐나다 한인 크리스천 모임 KRU(Korean Rainbow United)가 진행했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서 진행된 번역 출간회에는 한국·캐나다·미국 등지에서 퀴어·앨라이 목회자 및 교인 26명이 참여했다. 

<열린 마음>은 UCC와 어펌유나이티드(Affirm United)가 퀴어 긍정 사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교회·단체·목회자를 위해 만들었다. 퀴어 긍정 사역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들과 협력해 앨리슨 C. 헌틀리 목사가 집필했다. 어펌유나이티드는 UCC와 협력 관계에 있는 LGBTQ 지지 단체로,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긍정하고 지원하는 퀴어 긍정 사역 프로그램을 1991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 UCC 내 퀴어 긍정 사역지는 약 225개이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퀴어 긍정 사역은 분별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포용적이 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발견하도록 돕는다. 또 각자의 사역지를 비롯해 보다 광범위한 교계와 지역사회에서 성 다양성과 성적 지향에 관한 이슈에서 정의를 추구하고, 퀴어 긍정 사역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참여하겠다는 지속적인 헌신을 명시하는 신앙고백문과 비전 선언문을 작성한다." (14쪽)

155쪽 분량에 달하는 이 안내서는 면밀하고 구체적이다.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 '퀴어 긍정 사역'에서는 퀴어 긍정 사역의 중요성, 퀴어 긍정 사역에 대한 UCC의 입장과 배경,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기 위한 과정과 절차를 다룬다. 2부 '연구와 성찰'에서는 개교회나 공동체에서 퀴어 긍정 사역이 신앙적·신학적·목회적으로 왜 필요한지, '퀴어 긍정 사역 비전 선언문'을 어떻게 만들고 실천할지 토론하고 학습할 때 필요한 자료·예시·지침이 나와 있다. 3부 '자료'에서는 퀴어 긍정 사역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 다큐멘터리, 책, 웹사이트 등을 광범위하게 소개한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국인 크리스천 5명이 2021년 성소수자를 지지하고자 만든 연대 모임 KRU는, 약 3년 전 고 임보라 목사의 제안으로 <열린 마음> 번역을 시작했다. UCC 소속 김선영·김윤정·박은주 목사와 김수혜·신윤주 씨가 참여했고, 한국예수교회연대 오현선 목사가 감수했다.

UCC의 퀴어 긍정 사역 자료집 <열린 마음> . 

이날 출간회는 한국 독자들에게 <열린 마음>을 소개하고, 번역에 참여한 동기와 느낀 점, 한계와 한국교회에서의 적용점 등을 이야기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번역팀 김윤정 목사는 "퀴어 긍정 사역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들의 삶의 이야기와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포괄적인 사랑과 급진적 환대의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대안적인 목회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김 목사는 퀴어 긍정 사역지는 퀴어를 '환영'하는 교회와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충분히 퀴어를 환영하고 그들을 사랑하는데, 왜 굳이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환영이라는 말은 이미 파워를 쥐고 있는 사람들, 중심부, 인사이더들의 문화로 만들어진 제도와 구조 안에서 아웃사이더들이 공동체로 들어왔을 때 관용을 베푸는 개인 차원의 행동에 머물 때가 많다. 가부장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인 젠더 이해, 비균형 권력 구조, 정상 가족 규범 주의를 지향하는 언어들, 무의식적인 혐오 발언과 시선, 그것에 기반한 관계 쌓기 등을 의도적이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저항하고 해체하려는 노력 없이는 젠더 소수자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해방의 복음을 느낄 수 없고, 교회를 안전한 공간이라고 여길 수 없다"고 말했다.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복음 22:1~14)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진정한 주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일깨워 준다. 이 비유에서 초대받은 이들이 나타나지 않자 주인은 연회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 거리와 마을 뒷골목으로 간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두가 이미 축하 잔치에 초대되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젠더 소수자와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이미 환영받은 초대에 응한다는 뜻이다. 참석함으로써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한 상에 앉는 데 동의한 것이다. 우리 개개인에게 주어진 환영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모든 놀라운 다양성 가운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급진적인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33쪽)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기 위한 과정. '필요성에 직면 → 분별 → 시작 → 참여 → 문서화 → 공동 결의 → 가족이 되다' 순서로 구성돼 있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기 위한 과정. '필요성에 직면 → 분별 → 시작 → 참여 → 문서화 → 공동 결의 → 가족이 되다' 순서로 구성돼 있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토론토에서 한인 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김윤정 목사는 <열린 마음> 번역 출간을 계기로 퀴어 긍정 사역지로 나아가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는 과정은, 퀴어 당사자들만의 평등과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해방과 자유의 길을 여는 여정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규범을 정하고 위계를 가르면서, 통제와 배제를 낳는 권력 구조에 가담하는 우리의 무지와 모순을 깨닫게 해 주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선영 목사는 "나는 한국에서 감리회 목사였지만,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분위기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 UCC에서는 퀴어를 긍정하기 때문에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한국에서 퀴어 긍정 목회를 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까.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번역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서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용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관련 용어와 그 의미를 나열한 '용어에 관하여'(17쪽)에서도 모든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일부 용어는 뉘앙스가 바뀌거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며 "아래의 용어 목록은 결코 완전한 목록이 아님을 일러둔다"고 밝히고 있다. 김 목사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아무리 수정을 하고 개정판을 내더라도, 언어는 빠르게 발전·변화하기 때문에 모든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관련 용어를 포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 문서를 통해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성별 정체성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기준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모든 기독교인이 다 혐오자가 아니라, 세상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선물이자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퀴어 긍정 사역을 하고 있는 캐나다연합교회 소속 교회들. 모두 220여 개에 달한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인스타그램
퀴어 긍정 사역을 하고 있는 캐나다연합교회 소속 교회들. 모두 220여 개에 달한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인스타그램
UCC에서, 공식적으로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면 표식으로 교회 현판에 어펌 유나이티드 로고를 내걸어야 한다. 캐나다 애버츠퍼드 트리니티 기념 연합 교회의 모습. 사진 출처 Affirm United 인스타그램
UCC에서, 공식적으로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면 표식으로 교회 현판에 어펌 유나이티드 로고를 내걸어야 한다. 캐나다 애버츠퍼드 트리니티 기념 연합 교회의 모습. 사진 출처 Affirm United 인스타그램

신윤주 씨는 한국 독자들이 '퀴어 긍정 사역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61쪽)과 '사례 연구'(100쪽)를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퀴어 긍정 사역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에는 누군가 퀴어 긍정 사역에 관해 물을 때 대답으로 참고할 만한 내용이 나와 있다. '사례 연구'는 아픔과 두려움이 담긴 생생한 증언을 통해, 왜 교회가 퀴어 긍정 사역을 공개적으로, 의도적으로, 명시적으로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동기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Q. 예수님께서 동성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있는가?
A. 복음서에는 동성 관계나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죄하지 말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62쪽)

"Q.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면 구성원이나 기부자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A.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기로 결정하면 일부 교우를 잃기도 한다. 보통 그렇게 떠나는 이들은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완고하게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역지는 퀴어 긍정 사역지가 되면서 교우가 늘어나고 활력이 배가 된다. 사람들은 배우고 성장하며, 자신들의 비전과 사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을 환영하는 신앙 공동체에 매력을 느낀다." (64쪽)

신윤주 씨는 <열린 마음>이 포용과 환대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유용한 교육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열린 마음>에는 '우리는 앨라이예요', '우리는 교회에 누가 오든 다 좋아요'가 아니라, 어떻게 차별과 배제에 맞서서 모든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 책과 관계를 맺으며 더 많은 경험을 쌓아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 씨는 이 책이 퀴어 문제 외에 더 나아간 논의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한계라고 했다. 그는 "어퍼밍 미니스트리(Affirming Ministry)를 '퀴어 긍정 사역'으로 번역했는데, 책의 앞부분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어퍼밍 미니스트리는 성소수자에 관한 사역뿐만 아니라 인종, 능력주의, 장애, 경제 상황, 가족 형태, 문화·인종적 배경 문제 등을 포괄한다. 본래 어퍼밍 미니스트리가 퀴어 긍정 사역으로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간 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에 반해 실제로 그것을 다루지 못하는 것이 이 책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말했다.  

2015년 캐나다 에드먼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 Millwoods 연합 교회. 이 교회는 어펌유나이티드에 가입된 퀴어 긍정 사역지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2015년 캐나다 에드먼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 Millwoods 연합 교회. 이 교회는 어펌유나이티드에 가입된 퀴어 긍정 사역지다. 사진 출처 Affirm United 

<열린 마음>은 UCC 현실에 맞춰 만들어진 문서다. 따라서 이 책을 한국 상황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 극도로 보수적이다. 번역에 참여한 이들은 한국 상황과 문화에 맞춰 책을 유연하게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김윤정 목사는 "이 책이 수입산으로 남지 않고 토착화가 되어야 하는데, 인식론적·상황적 한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이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이 책을 보고 여전히 서구적인 사고에 갇혀 있거나, 배제·규범의 틀에 갇힌 부분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 달라. 앞으로 부록도 만들고 개정판도 만들어서 한국에 더 적합한 프로젝트로 이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린 마음> 국문 번역본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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