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의 설교집 <기다리는 아버지>(복있는사람)가 원문인 독일어에서 직접 번역되어 나왔다. 원제는 <예수의 비유들. 하나님의 그림책 Die Gleichnisse Jesu. Das Bilderbuch Gottes>이지만, 영역본에서 <기다리는 아버지>로 제목이 바뀌었고, 1978년 영역본이 한국에 소개될 때 이를 그대로 따랐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영어 번역이 좀 더 감각적이지만, 예수의 비유를 하나님의 '그림책'에 비유한 원저자 틸리케의 의도를 잘 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1978년 <기다리는 아버지>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됐을 때,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는 충격과 감동에 빠져들었다. 틸리케의 설교는 그때까지 듣지 못했던 전혀 다른 말씀의 깊이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이 말씀에 충격을 받았던 많은 이가 목회자 혹은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이 책에 실린 설교들은 틸리케가 제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슈투트가르트 성 마가교회에서 처음 선포했던 것이다. 이후 함부르크의 성 야곱교회와 성 미카엘교회에서 이 설교들은 개작되어 다시 선포되었다. 이 책을 통해 오늘의 우리는 틸리케의 선포를 다시 경험할 수 있다. 

<기다리는 아버지> / 헬무트 틸리케 지음 /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396쪽 / 2만 4000원
<기다리는 아버지> / 헬무트 틸리케 지음 /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396쪽 / 2만 4000원
틸리케 설교가 탁월한 점

설교집의 시작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틸리케는 둘째 아들을 '탕자'라 하지 않고 '잃어버린 아들 der verlorene Sohn'이라고 부른다. 비유를 말한 예수의 의도를 면밀히 보면 '잃어버린 아들'이 적합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비유에 대한 틸리케의 설교에서 독자들이 놀라는 것은 '탕자'인 둘째 아들과 '모범생'인 첫째 아들을 구분해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비유에서 오직 '탕자'에게만 관심을 집중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아버지의 재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이 아들을 품어 주며 기뻐한다는 드라마틱한 반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틸리케는 놀랍게도 첫째 아들에게도 동일한 관심을 보여 주며 설교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청중들은 다시 놀라게 된다.

틸리케 설교의 탁월한 점은 뛰어난 적용이다. 틸리케는 2000년 전에 선포된 예수의 비유에서 현대의 청중이 알아야 할 것과 집중해야 할 것을 제시한다. 이것이 '설교'와 '강의'의 결정적 차이다. 예수의 비유에 '지금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없다면 그것은 그냥 고대의 문서일 것이다. 그러나 틸리케는 학문적 해석과 실천적 적용을 통해 예수의 비유가 '지금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게 만든다. '돌아온 탕자'는 이러한 작업의 전형이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첫째 아들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첫째 아들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아버지의 곁에서 
그의 사랑을 모르는 교회

틸리케는 둘째 아들에게서 서구의 계몽주의와 근대 세계를 발견한다. 둘째 아들은 자신을 키워 주고 보호해 준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떠난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탕진하며 삶을 살아간다. 틸리케는 서구 계몽주의와 근대 세계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서구는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떠났다. 그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둘째 아들의 유산이 아버지의 것이었던 것처럼 서구 계몽주의 근대의 유산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첫째 아들에게서 틸리케는 형식화하고 관습적인 현대 교회의 모습을 발견한다. 첫째 아들은 모범생이다.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또 그 유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곁에 늘 있다. 그리고 빈털터리로 돌아온 자신의 동생을 비난한다. 첫째는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 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기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틸리케는 이것이 지금 현대 서구 교회의 모습이 아니냐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1960년대 틸리케는 함부르크의 미카엘교회에서 월 1회 주기적으로 설교했다. 그가 설교할 때마다 수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이를 보고 언론은 "틸리케는 설교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고 놀라워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안계정 / 독일 보훔대학교 D.theol., <기독교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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