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서회가 '사유화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4년 취임한 서진한 사장이 장기 집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대책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대한기독교서회가 '사유화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4년 취임한 서진한 사장이 장기 집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대책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한국 최고最古 출판사 중 한 곳인 대한기독교서회(서회)가 서진한 사장의 사유화 및 방만 경영 의혹으로 시끄럽다. 서진한 사장의 장기 집권을 막고자 하는 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졌으나, 서회 직원 대다수가 서 사장을 지지하고 있어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서회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개화기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이 1890년 결성한 조선셩교셔회朝鮮聖敎書會를 모체로 한다.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간행물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는 창립 목적을 갖고 태동해, 지난 130년간 한국교회에 찬송가를 보급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찬송가 저작권·출판권 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 서회는 찬송가 보급에서 사실상 절대적인 지위를 누렸을 만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하나였다. 찬송가 매출 규모만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회는 한국 사회 민주화에도 크게 공헌했다. 서회가 발간하는 월간 <기독교사상>은 독재 정권 시절 한국 사회 민주화를 이끄는 중요한 잡지였다. <기독교사상>은 두 차례나 정간당했을 만큼 권력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등 진보적인 신학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출판을 통해 학자들을 길러 내는 역할도 했다.

서회는 각 교단이 대표를 파송하는 연합 기관이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구세군대한본영 등 7개 교단이 이사를 파송 중이다. 또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김종생 총무)에 실행위원 3명을 파송하는 등 에큐메니컬 기관으로서의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교회 성장과 부흥기를 함께하면서, 서회는 서울 종로2가와 강남구 삼성동에 빌딩을 크게 짓고 임대 수익도 거둬들였다. 과거 오프라인 서점이 있었던 종로2가 건물은 현재 롯데리아 등 여러 매장에 세를 주고 있고, 1980년대 신사옥으로 건립한 삼성동 본사에서도 역시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서회의 유형자산 가치는 417억 원에 이른다.

대책위는 7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진한 사장이 상임이사제를 도입해 장기 집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회계자료를 근거로 서 사장의 횡령 및 배임 의혹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대책위는 7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진한 사장이 상임이사제를 도입해 장기 집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회계자료를 근거로 서 사장의 횡령 및 배임 의혹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년 없는 상임이사' 제도 도입 놓고 시끌
이사회, 논란 끝에 안건 철회

거대 기관으로 성장해 온 서회는 최근까지 이렇다 할 외부 감시나 견제를 받지 않고 운영돼 왔다. 내부적으로도 문제없이 운영돼 오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4월부터 잡음이 일었다. 서회 이사회가 상임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관 개정안을 상정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정관 개정안에 따르면, 상임이사 임기는 4년에 연임 가능하고 정년이 없다. 사장의 일부 역할도 상임이사가 맡는다. 본래 사장 업무였던 서회 공동대표 역할과 임역원회도 사장 대신 상임이사가 맡는다. 임역원회는 이사장, 부이사장, 이사회 서기, 이사회 회계, 사장 등 5명으로 구성된 서회의 핵심 의사 결정 기구다.

정관 개정안은 서진한 사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55년생인 서 사장은 2014년 사장에 선출돼 2018년 재선에 성공했고, 2020년 임기 2년을 앞두고 조기에 사장 선거를 실시해 3선 임기를 시작했다. 따라서 서 사장의 임기는 2024년까지인데, 정관 개정안이 통과되면 서 사장은 임기를 마친 이후에도 '상임이사'로 계속해서 서회 경영 전반을 관장하는 게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반발 움직임이 일었다. 이미 서회는 서 사장 재임 중인 2015년 정관을 개정해 사장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연장한 바 있다. 원래 정관대로라면 서 사장은 2020년 이전에 물러났어야 하는데, 정년을 늘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직책을 바꿔 장기 집권을 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서회 이사회는 정관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섰다.

대책위는 서진한 사장이 월 450만 원씩 연간 5400만 원의 판공비를 받고, 연 3~4회씩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불투명하게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대책위
대책위는 서진한 사장이 월 450만 원씩 연간 5400만 원의 판공비를 받고, 연 3~4회씩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불투명하게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대책위
박만규 전무 징계하자 대책위 결성
"서진한 사장, 억대 연봉 받으며
방만 경영도 모자라 장기 집권하려 해"

상임이사 제도 도입이 쉽지 않아지자, 서회는 이사회 전 정관 개정안을 외부에 유포한 이가 누군지 찾아 나섰다. 서회는 박만규 전무를 '내부 정보 유출자'로 지목하고 징계에 착수했다. 조직도상 전무는 사장 다음 '2인자'다. 서진한 사장 퇴임 후 차기 사장 자리가 유력했던 박 전무가, 서 사장의 장기 집권 시도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일로 판단한 것이다. 서회는 박 전무가 의도적으로 언론과 교계 인사들에게 정보를 흘린 것으로 보고, 지난 4월 박 전무에게 출근 금지 및 업무 배제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에큐메니컬 원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한기독교서회공공성회복을위한에큐메니컬대책위원회(대책위·공동대표 박경양·정진우)'가 5월 초 결성돼 서회를 성토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7월 24일 서울 광화문 감리교본부에서 '서회 사유화 음모 및 재정 비리 의혹을 고발한다'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서회가 불투명하고 방만하게 운영돼 왔다며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서회 경영 현황에 따르면, 당기순손실이 2014년 7억 원, 2015년 8억 원, 2020년 8억 원, 2021년 1억 원, 2022년 9억 원으로, 서진한 사장 취임 이후 10년 가운데 5년은 적자를 봤다. 2022년도 손익계산서를 보면, 매출 총이익은 18억 원인데 비해, 판매·관리비는 인건비 13억 원 등 총 34억 원으로 영업 손실만 16억 원이다. 영업 외 수익이 있어 당기순손실은 9억 원대로 집계됐다. 서회는 현재 자금 회전을 위해 70억 원대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고, 종로2가에 입주한 건물 임대 보증금도 적립하지 않아 부채로 잡혀 있다. 현재 서회 부채는 160억 원대에 이른다.

물론 매번 적자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서회는 2016년 6억 원, 2017년 1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이것이 찬송가공회로부터 받은 손해배상금 7억 원, 사장 사택으로 사용해 온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매각 대금 23억 원 등에 따른 착시 현상일 뿐, 경영상으로는 계속해서 적자를 내 왔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서회 상황이 어려운데도 서진한 사장이 매년 총합 1억 7000만 원에 이르는 급여를 받고, 1억 원대 고급 승용차(제네시스 EQ900)를 전용 차량으로,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68평 대형 아파트를 사택으로 제공받아 사용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 왔다고 규탄했다.

또 서진한 사장은 2014년부터 8년간 3600만 원에 달하는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해 사용했고, 업무 추진비 명목으로 월 450만 원씩 연간 5400만 원을 받아 왔다. 대책위는 서 사장이 업무 추진비와 상품권에 대한 사용 기록을 남기지 않고 불투명하게 사용했다며, 배임 및 횡령 의혹도 제기했다. 서 사장 개인이 부담해야 할 한국기독교장로회 생활 보장제 부담금 총액 600만 원가량을 서회 재정에서 이체한 기록도 있는데, 이것 역시 배임 및 횡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방만 경영의 또 다른 이유로, 명예사장 정지강 목사와의 금전 문제도 제기했다. 정지강 목사는 2002년부터 사장으로 3선을 한 뒤, 사장 퇴임 후 명예사장 자리에 올랐다. 정 목사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8500만 원, 총 4억 5000만 원을 '명예사장 급여'로 지급받았다. 2016~2017년에는 판공비 명목으로 매월 250만 원씩 따로 받았다. 대책위는 이것이 모두 이사회 의결 없이 지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회가 오랜 기간 재정난에 시달렸는데, 두 사장이 합쳐 연간 3억 원에 가까운 인건비를 받아 가는 게 맞느냐고 규탄했다.

7월 24일 기자회견에는 서회 직원 10여 명도 나타났다. 이들은 박만규 전무가 정보를 유출하고 서회를 흔드는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며 대책위의 활동에 의문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7월 24일 기자회견에는 서회 직원 10여 명도 나타났다. 이들은 박만규 전무가 정보를 유출하고 서회를 흔드는 세력과 결탁하고 있다며 대책위의 활동에 의문을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서회, 김영주 이사 해임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 요청에도
"박만규는 공익 제보자 아냐"

대책위의 의혹 제기에 서회는 오히려 자리 욕심을 내는 일부 인사가 서진한 사장을 비방한다는 입장이다. 7월 24일 대책위 기자회견에는 서회 직원 10여 명이 피켓을 들고 맞불 시위를 했다. 서회 부장 이상 간부 전원 및 직원협의회 회장 이름으로 배포한 입장문에는 "최근 기독교서회를 음해하여 총체적 위기로 몰아넣는 일련의 시도에 분노한다"며 "이번 사태는 박만규 전무가 아무런 사전 내부 논의 없이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된 이사회 상정 안건을 외부로 유출하면서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직원들은 "서회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라면서, 대책위에 "도대체 무슨 자격과 권리로 서회를 뒤집어엎겠단 말인가. 그동안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마녀사냥하듯 서회를 심판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떤 목적이나 속셈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서회 일부 이사는 반대 측 핵심 인물로 전 교회협 총무 김영주 목사를 지목했다. 그가 서진한 사장을 밀어내고 상임이사 자리를 차지하려고, 목원대학교 후배인 박만규 전무를 앞에 내세워 뒤에서 모든 일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서회 역대 최장수 이사(24년)로 재임했던 김영주 목사는 서진한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서회 이사회는 김 목사도 상임이사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오다가, 돌연 입장을 바꾸고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것은 '자리 욕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회는 8월 4일 이사회를 열고, 현장에서 박만규 전무에 대한 최고 수준의 징계(해고) 및 김영주 이사 해임안을 투표에 붙여 모두 통과시켰다. 반발도 있었다. 교단 대표 이사 중 한 명인 예장통합 부총회장 김의식 목사는 "공익 제보자는 어떤 경우에도 해임 사유가 안 된다. 나도 나를 59번이나 고소한 관리집사나 은퇴 장로를 끌어안고 오늘까지 왔기에 총회장까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동안 정말 화기애애하게 형님 동생으로 잘해 오지 않았는가. 재고해 달라"고 말했다. 다른 이사들도 "이사회 안건에 '이사 처리'라고만 하고 김영주 이사 해임이라고 명확히 공지하지 않은 것은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진한 사장은 박만규 전무는 공익 제보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익 제보자는 법적으로 자료를 공공 기관에 넘긴 사람이다. 그걸 가공해서 언론에 갖다주고 하는 것은 공익 제보자가 아니다"라며 박만규 전무에 대한 징계는 정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주 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격론 끝에 두 사람의 해임 및 징계 안건은 통과됐다.

김영주 목사는 8월 1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자신을 해임한 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내가 상임이사를 하려고 했다면 일단 정관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서진한 사장을 반대했을 것 아닌가. 내가 정관 개정안을 유출해 상임이사제를 무산시켰다고 책임을 물으면서, 상임이사 자리를 노렸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상임이사제 도입에 따른 사유화 우려를 에큐메니컬 동료들과 나눈 것인데 그걸 정보 유출이라고 해서 이사까지 해임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주 목사는 1999년부터 서회 이사를 맡아 왔다. 해임 전까지 이사 20명 가운데 최장수 이사였다. 서진한 사장과도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 사장이 2014년 취임 후 3선에 성공하는 것도 모두 지켜봤다. 지금껏 서 사장과 잘 협력해 오다가 마지막에 갈라선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이에 관해 김 목사는 "상임이사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왜 하필 지금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느냐는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제도를 도입하면 서회 사유화 우려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회를 둘러싼 공방은 결국 법정으로 향할 전망이다. 대책위는 8월 4일 '김영주 이사 해임과 박만규 전무 징계는 무효'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이사회에서 두 사람을 해임하고 징계한 것은 대책위 기자회견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진한 사장 등을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주무관청에 이사 해임 및 감사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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