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 기도회'. 유석성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 기도회'. 유석성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우려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 기도회가 7월 9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렸다. 주최 측의 '친목 모임'이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기도회 순서지와 조가弔歌, 추모 영상 등이 준비돼 있었다. 기도회에는 김영주·정지강·유석성 목사와 대한성공회 김근상 전 의장주교 등 에큐메니컬 교계 인사들과, 염태영 수원시장, 문석진 서울시 서대문구청장 등 정계 인사, 박 전 시장 아내 강난희 씨와 딸 등 40명 가까이 참석했다.

박 전 시장 추모 기도회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일부 기독 청년들은 급하게 피켓 시위를 준비했다. 박 전 시장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청년회전국연합회(MYFK),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PROKY),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PCKY), 기독교한국루터회 청년연합회는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해 "친목 모임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2차 가해를 즉각 중단하라", "박원순의 위계의 의한 성폭력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가해자 두둔을 중단하라"고 했다.

청년 10명은 기도회 시작 30분 전부터 한국기독교회관 1층 로비와 2층 조에홀 앞에 섰다.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고발 1년, 피해자와 연대합니다", "추모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은폐하는 에큐메니컬 원로들을 규탄한다", "2차 가해에 동참하는 에큐메니컬은 없다"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추모 기도회 참석자들은 말없이 이들을 통과해 조에홀로 들어갔다.

기독 청년들은 1층 로비와 2층 조에홀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말없이 조에홀로 들어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독 청년들은 1층 로비와 2층 조에홀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말없이 조에홀로 들어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도회 시작 전, 사회를 맡은 정지강 목사는 기자들에게 "취재를 원하지 않으니 퇴장하라. 나중에 필요하면 브리핑을 하겠다"고 말했다. 엄상현 목사도 "이 행사 성격은 부부 동반 모임, 개인적인 모임이다. 순수하게 추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여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취재거리는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기자들이 "추모제 행사 아닌가", "한국기독교회관은 공적인 공간이다"라고 맞서자 주최 측은 그대로 기도회를 진행했다.

김영주 목사는 마가복음 9장 33~37절 말씀으로 설교를 전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큰지 논쟁했고, 이에 예수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남들을 섬겨야 한다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한 내용이다. 김 목사는 "어린아이같이 힘없고 초라한 사람을 껴안은 것이 예수의 길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길도 그와 같았다. 불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껴안고 그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다"고 말했다.

그는 "박 시장이 그 길을 갈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 예수 가까이서 누가 더 크게 될지 논쟁하던 제자들처럼, 혹시 박 시장 가까이 있으면서 그가 권력자가 될 때 누가 더 높아질 것인지 생각하지는 않았나"라며 "그의 죽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리 모두의 실수·잘못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설교를 마친 뒤 김 목사는 박 전 시장 가족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OOO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다.

김영주 목사는 설교에서, 예수의 길과 박원순 전 시장의 길이 닮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영주 목사는 설교에서, 예수의 길과 박원순 전 시장의 길이 닮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근상 주교는 추모사를 전했다. 그는 "추모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1주기 추모 예배를 한다고 하지만 돌아가신 걸 기억하지 말자. 시장님 하신 일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대동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가 성취하려 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만들어 가자"며 "질 낮은 비난과 비웃음으로 맘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라고 하고, 우리는 품격을 갖추자"고 말했다. 노래 '천 개의 바람' 가사를 읽다가 목이 메기도 했다.

염태영 수원시장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도 추모사를 했다. 이들은 위정자로서 박 전 시장과의 추억을 열거하며 그리움을 표했다. 염 시장은 "우리는 지금 서울이 공허한 것을 느낀다. 그가 없는 서울은 공허하다"고 말했다. 문 구청장은 "1년이 지나면서 보니 시장님이 죽음 뒤에 더 큰 고난의 길을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르게 평가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원순 전 시장 추모 영상을 보며 그의 영정 사진 앞에 헌화하는 시간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한 명씩 헌화하고 묵념했다. 강난희 씨를 안아 주며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유족을 대표해 박 전 시장 딸 박 아무개 씨가 울먹이며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앞으로도 힘내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 모임이 '부부 동반 친목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이 박 전 시장 영정 사진ㄴ에 
주최 측은 이 모임이 '부부 동반 친목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이 박 전 시장 영정 사진에 헌화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편,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해 온 여성 단체들의 연합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도 7월 8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박 전 시장 사망 1주기가 아닌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고발 1년'이라고 명명하고, 지난 1년간 많은 방해와 2차 가해 속에서도 사회는 바뀌어 왔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여전히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원했던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정부와 국회, 수사기관과 재판부, 정치권, 언론·기업·학교,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모두가 함께하기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기독 청년 단체들과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성명서 전문.

친목 모임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2차 가해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우리는 다시 한번 교계의 부족한 성 인지 감수성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7일 <뉴스앤조이>를 통해 보도된 '에큐메니컬' 원로들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추모 기도회' 기사는 작금의 교회 현실이 왜 변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교회가 안전한 공간으로 생각되지 않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임을 추진한 이들은 이 행사가 '개인적인 친목 모임'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위와 영향력, 한국기독교회관이라는 모임 장소의 상징성, '기독교 민주화 운동 추모 예배'라는 장소 예약명을 고려할 때, 더는 '개인적인 친목 모임'으로 불리기 어렵습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가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한 노력이 미비한 상황에서, 친목 모임이라는 명분으로 열리는 이 기도회는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기사에 모임을 추진한 한 목사는 "박 전 시장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그 인격이나 됨됨이를 봤을 때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해자의 범죄를 그저 부적절한 행동 정도로 희석시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인정한 사실마저도 부정하는 듯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처럼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진행되는 기도회는 성폭력 피해 경험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이는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에큐메니컬 정신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

이에 기독 청년들은 에큐메니컬 원로들의 '박원순 전 시장 추모 기도회' 추진을 비판하고,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장소 섭외에 협조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문제를 제기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7월 9일 오후 4시로 예정된 '박원순 전 시장 추모 기도회'를 즉각 중단하라
1.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멈추고, 성폭력 피해 경험자에게 사죄하라
1. 박원순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하고, 더 이상의 가해자 두둔을 중단하라
1. 성폭력 없는 안전한 교회를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

작가 '정세랑'님은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에서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를 '고작' 성희롱을 참지 못해 신고한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우며 말입니다.

2021년 7월 9일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기독교대한감리회 청년회전국연합회(MYFK)
한국기독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PROKY)
대한예수교장로회 청년회전국연합회(PCKY)
기독교한국루터회 청년연합회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고발 1년,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딘 1년

오늘은 서울시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접수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가해자의 책임 있는 인정과 사죄, 법의 정의로운 심판을 바라며 진실을 밝히고자 한 피해자의 용기는 피소 사실 유출 및 가해자 사망이라는 초유의 상황에도 지난 1년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가해자가 사망했으니 진실 규명도 필요 없다는 가해자 중심적 사고

고소 접수 다음 날 전해진 가해자의 사망 소식은 사건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수사기관이 '공소권 없음'을 핑계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 단체에 대한 공격은 나날이 심해졌다. '무혐의' 처분을 '무죄'로, '무고'의 증거로 악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본사건을 '수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일로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목격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가 결정·실시되었고, 그 결과 사건의 실체적 진실 일부를 규명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폭력 피해 사실의 인정은 물론, 작동하지 않는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 제도, 인지되었지만 '관행'으로 지속·반복된 성차별적 괴롭힘,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여성에게 요구되는 직무 및 노동환경 등 성폭력을 묵인하고 방조하고 키우는 제도와 조직 문화를 지적하고 관련 기관에 시정을 권고하였다.

가해자의 지위와 권력, 진영 논리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려 한 부정의

잇달아 발생한 지자체장의 성범죄에 대한 반성이나 피해자 인권 보장에 대한 고민은커녕 책임 회피와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던 여당의 사과를 끌어낸 점 또한 되새길 만하다. 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사건 초기의 '피해 호소인' 논쟁, 당헌까지 무리하게 뜯어고치며 임했던 재보궐선거 등을 통해 우리는 '젠더 폭력 근절'을 내세웠던 여당의 민낯을 목격했다. 자당 성폭력 사건에는 뒷짐 지고 있다가 여성 의원들을 앞세워 호통치던 야당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진영 논리에 따라 성폭력 사건을 달리 이해하고 이용하려는 모습은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더 분노스러웠고, 참담했다.

피해자의 용기를 꺾으려는 극심한 2차 가해

가해자의 사망 후 우리는 또다시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을 두둔하며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회의 일면을 목격했다. '추모'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시도, '피해자'인지 '피해 호소인'인지 논해 보라던 언론사 신입 사원 채용 논술 시험, 피해자 개인 정보 유출 및 유포 등 그악한 2차 피해를 겪어야 했던 피해자의 편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여성들이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쏟아졌던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는 기자회견, 성명 및 논평 발표, 의견서 제출 및 1인 시위, 연대 행진, 천만 시민 퍼포먼스, 시민 공동성명, 현수막 액션, 성평등한 민주주의를 위한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온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의 활동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다. 중앙지방검찰청에 묶인 원고소 사건의 수사는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고, 악의적으로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한 자들에 대한 기소도 진척이 더디기만 하다.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며 피해자의 안전을 위협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조처는 즉각적으로 취해져야만 한다.

우리는 함께 더 나아간다

피해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가해자의 성폭력을 묵인·방조한 사람들이 여전히 공직 사회와 정치권에서 건재함을 과시해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성평등 의제가 사라진 선거를 목격하였을 때도 피해자는 여성과 약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년 전 피해자가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권력형 성범죄에 맞선 것처럼, 오늘 우리는 새로운 1년을 시작하며 또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한다. 이 걸음에 정부가, 국회가,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정치권이, 언론·기업·학교가,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모두가 함께하기 바란다.

"이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저벅저벅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 2021. 3. 17.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에서의 피해자 발언

2021. 7. 8.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289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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