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아이다호데이)입니다. 이날을 맞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그리스도인 독자들의 관심을 재고하기 위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지난 2월, 졸업 여행으로 호주 시드니에 다녀왔다. 마디그라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시드니 게이와 레즈비언 마디그라(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라는 이름의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매년 2월은, 시드니 전역이 무지개 빛깔이 된다. 시드니 시청에는 무지개 깃발이 걸리고, 시립 미술관, 도서관, 예술대학 등에서는 성소수자를 주제로 여러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횡단보도도 무지개, 길거리 우체통도 무지개, 집집마다 무지개 깃발을 내걸었다.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생경한 무지개 풍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더 이상 무지개를 보고 카메라를 드는 일은 없어졌다. 무지개가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마디그라 축제가 열리는 호주 시드니의 2월은 곳곳마다 무지개의 향연이었다. 사진 제공 김유미
마디그라 축제가 열리는 호주 시드니의 2월은 곳곳마다 무지개의 향연이었다. 사진 제공 김유미

처음부터 그랬을까. 마디그라 축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1978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당시 시의원이었던 하비 밀크를 중심으로 '스톤월 항쟁(1969년 뉴욕 주점 '스톤월 인'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성소수자로 의심되는 손님들을 난폭하게 검문·체포한 사건에 반발해 일어난 항쟁 - 편집자 주)'을 기념하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행진이 기획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던 호주 출신의 앨리슨 브리튼은 시드니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호주에서도 행진을 열어 함께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높이자고 제안한다.

이에 6월 24일, 시드니를 중심으로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여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 행진이 마디그라 축제의 시작이었다. 시드니 경찰은 거리 행진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그날 체포된 사람만 53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며 경찰의 부당한 폭력에 항의했다. 시위와 행진은 3개월 동안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178명의 활동가들이 체포됐다.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마디그라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옥스퍼드 거리에 나갔다. 교통경찰들은 차량을 통제하기 위해 노란색 바리케이드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다. 도로가 통제되는 대신 다양한 대중교통이 추가로 배치됐다고 한다.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만 해도 1만여 명, 행진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은 수십만 명.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아침부터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이었다. 행진이 잘 보이는 명당을 찾기 위해 낚시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구경꾼들과, 아침부터 행진 복장을 한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이들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행진이 시작되고, 도로 한가운데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다. 유니콘 머리띠를 한 어린이, 집에서 손수 피켓을 만들어 온 사람, 휠체어를 타고 무지개 손 깃발을 흔드는 할머니, 행진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드는 사람, 집 베란다에 커다란 무지개 깃발을 걸고 행진을 구경하는 사람, 다양한 모습의 다양한 사람이 모여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긍정하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시드니 시민이 거리로 나와 마디그라 축제의 행진을 함께 즐겼다. 사진 제공 김유미
수많은 시드니 시민이 거리로 나와 마디그라 축제의 행진을 함께 즐겼다. 사진 제공 김유미

호주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던 만큼, 한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여행이 끝난 아쉬움도 아쉬움이었지만, 마디그라 축제의 풍경이 너무 '남의 나라'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의 개최를 위해 7월 1일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5월 3일,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광장 사용을 신청한 개신교 단체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를 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서울광장은 적법한 절차와 요건을 갖추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중복 사용 신청의 경우, 사용 신청 단위들 간 조정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런 조정 절차 없이 개신교 단체 측 행사가 열리도록 결정됐다. 서울시의 차별적인 행정과 보수 개신교 단체들의 성실한 혐오가 퀴어 문화 축제의 개최를 방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 퀴어 크리스천 앨라이 단체 'Rainbow Christians Together'도 축제에 함께했다. 사진 제공 김유미
현지 퀴어 크리스천 앨라이 단체 'Rainbow Christians Together'도 축제에 함께했다. 사진 제공 김유미

'우리는 언제쯤 방해를 받지 않고 축제를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언제쯤 방해를 하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언제는 언제일까. 정말 우리도 어느 때가 되면 도시 전체가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교회 역시 그 환대의 길에 함께 서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일까.

시드니 퀴어 문화 축제의 이름인 '마디그라'는 프랑스어로 '기름진 화요일'이라는 뜻이다. 기름진 화요일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의 시작, 즉 '재의 수요일'의 바로 전날이자,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고난에 앞서 축제를 한다는 것이 얼핏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고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축제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고난을 알기 때문에, 우리에겐 고난을 버틸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끝끝내 우리는 고난 속에도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에 축제를 하는 것 아닐까. 고난 중에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나 자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축제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니 혐오 세력이 악의적으로 축제를 방해해도, 우리는 어떻게든 축제를 할 것이다. 혐오가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되도록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축제를 한다. 그러니 미워해도 소용없다. 그래도 우리는 축제를 할 것이니까.

미워해도 소용없다. 그래도 우리는 축제를 할 것이니까.
미워해도 소용없다. 그래도 우리는 축제를 할 것이니까.

김유미 /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Q&A)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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