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독자님 안녕하세요, 요셉입니다. 벌써 금요일이네요. 독자님은 어떤 한 주를 보내셨나요? 고생 많으셨죠? 이 편지를 받는 지금은 조금이라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길 바랍니다.

저는 최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라는 책을 읽었어요.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제2차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 의사의 에세이 모음집이에요. 1983년에 출간됐어요.

전쟁이 낳은 몰인간성, 배고픔·추위·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수용소 생활, 허약해서 병들어서 다쳐서 혹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비참한 상황 들이 이 책 곳곳에 등장해요.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럼에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에요.

재밌는(?) 일화가 하나 등장해요. 저자와 동료들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길이었어요. 옆에서는 감시병들이 총의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빨리 걸으라고 위협합니다. 그때 옆 사람이 이런 말을 했대요.

"아내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이윽고 무리 전체가 조용해집니다. 아마 저마다 가족들을 생각했겠죠. 저자 역시 그때 아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빛나는 눈동자와 환한 미소가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고요. 저자는 그 순간이 행복했대요. 그리고 깨닫습니다. 비록 찰나였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요.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중략)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나중에 이런 말도 합니다.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독자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이 인간성을 내려놓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저는 너무나 놀라웠어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상황이나 환경을 탓할 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니요. 어떻게 보면 뻔한 말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고통의 현장에서 어렵게 생존한 저자의 고백이기에, 저는 이 말이 진실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상황과 환경을 탓했던 제 자신의 모습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고요.

독자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사실 저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 시간이 좀 길어요. 이번 주말에는 아이가 잠든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독자님도 평안과 회복을 누리는 주말 보내시길 바랄게요.

사역기획국 요셉

처치독 리포트

'교회협 탈퇴' 카드 들고 나온 반동성애 단체들

지난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목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가 '동성애 지지자'라는 이유로 '셀프 자습'으로 대체된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교단 안에서 반동성애 활동을 펼쳐 온 단체들의 터무니없는 집단 항의 때문이었죠.

교회협에 어떤 일이?: 항의한 단체들을 취재하다 보니 역시나 인권조례·차별금지법 등을 '악법'이라고 지칭하면서 반대·폐지를 외치던 '그 단체'들이더군요. 이들은 최근 감리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를 탈퇴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 교회협은 어떤 곳?: 교회협은 감리회·장로교가 1924년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을 펼치기 위해 설립한 연합 기관인데요. 현재는 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9개 교단이 속해 있습니다.

교회협은 에큐메니컬 운동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민주화 운동, 인권 운동, 통일 운동 등 한국 사회의 굵직한 이슈들에 교계를 대표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 왔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보수 교계로부터 '용공', '빨갱이' 등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협에 맞서 보수 논리를 대변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조직되기도 했고요.

· 근데 왜 갑자기 탈퇴 이야기가?: 지난해 10월, 교회협 소속 교단인 감리회의 행정총회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의 건'이 안건으로 상정됐습니다. 한 시간가량 치열한 찬반 토론이 이어졌고, 결국 이철 감독회장은 이 문제를 1년간 연구하는 '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이듬해 열리는 입법의회에서 다시 다루기로 했어요.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교회협 탈퇴를 주장하는 반동성애 단체들은 'NCCK(교회협)·WCC탈퇴추진범감리교인연합'을 꾸리고 조직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협 탈퇴를 요구하는 이유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때문입니다.

·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협 입장: 교회협은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을 때부터 법 제정을 지지해 왔는데요. 2020년 4월 교회협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예장통합·감리회 내 반동성애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법이라며 문제 삼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예장통합 105회 총회에 교회협 탈퇴 헌의안이 올라왔죠. 지난해 감리회 행정총회에도 같은 안건이 상정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교회협 입장: 교회협이 동성애를 지지한 적은 없습니다. 여러 교단이 소속돼 있는 협의체 구조상, 서로 입장이 다른 사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교회협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친동성애'라고 몰아가며 탈퇴를 압박하는 상황입니다. 심지어는 교회협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한다는 허위 주장도 하고 있어요. 교회협은 사실이 아니라고 꾸준히 해명해 왔는데 말이죠.

· 근본주의가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해 온 감리회 목회자들은 교회협 탈퇴 주장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소수가 한국교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과거에는 교회협을 해체하기 위해 '빨갱이'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친동성애'로 얼굴만 바꾼 것이다." 감리회 에큐메니컬위원회 이광섭 위원장은 이렇게 진단하더라고요. "이게 우리 집인데, 왜 자꾸 집에서 나가자고 하느냐. 집을 고치고 건강하게 세워 나가야 한다"고도 했어요.

어떤 단체라도 공과는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100주년을 맞는 단체라면 그 역할과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을 텐데요. 한국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서 깊은 기관을 무작정 탈퇴하겠다고 주장하는 구성원들, 그런데 그 이유가 '친동성애'인 상황. 현재 벌어지는 교회협 탈퇴 논란을 보며 무수한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교회협에서 발간하기로 한 '성소수자 목회 안내서'가 소모적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외부 단체에서 출판된 일도 떠오릅니다.

교회협은 '대화위원회'를 꾸리고 소속 교단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대안을 내놨습니다. 허위·과장·왜곡 뉴스에 근거해 반복돼 온 논란을 과연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지, 휘몰아치는 반동성애 광풍을 이겨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드네요.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감리회가 교회협을 탈퇴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단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반동성애 세력의 압박을 이겨 내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입니다.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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