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북 매체

최근 원로목사가 분쟁을 촉발한 몇몇 교회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1월에 쓴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님 인터뷰가 어떤 분들에게는 감동이 됐나 봐요. 65세에 조기 은퇴하고, 원로목사 추대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은퇴 이후 교회에 부담 주지 않겠다며 멀리 이사를 떠난 목사님을 보면서 '우리 목사님은 교회도 안 떠나고 구질구질하게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원로목사가 은퇴 이후에도 교회에 자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게 못마땅했던 한 교인이 최현범 목사님 인터뷰 기사를 단톡방에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원로목사는 괜히 발끈했는지 "<뉴스앤조이>는 북한을 찬양하고 차별금지법을 옹호하는 매체"라면서 읽지 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전해 준 교인이 제게 진지하게 묻더군요.

"기자님, 정말 친북 매체 맞아요?"

몇 년 전 <크리스천투데이>의 재림주 의혹 설립자 지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된 이 종북 꼬리표. 정말 지겹기도 하고, 잊을 만하면 나오는 얘기에 신물이 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잘 설명하지만, 끝까지 안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니라고 한 번만 공표해 주시면 안 되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본인이야 기자를 믿는데, 원로목사 말만 믿는 교인들은 끝까지 원로 말만 믿을 거라면서 말입니다. 제가 "김일성 초상화 들고 오시면 밟고 지나가겠다"고 농담이라도 던져야 안심(?)하시더라고요.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후미에踏み絵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누구는 '친북'이라고 하고, 누구는 '종북'이라고 하고, 누구는 '공산주의 옹호 매체'라고 하고, 누구는 '주사파'라고 합니다. 저희가 옹호한다는 그 공산주의가 프랑스 공산당을 말하는 건지, 일본 공산당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소련(!)을 말하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단어들을 구분하면서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대개 '일당독재 체제'는 그런 말을 하는 목사님들이 구축하신다는 거죠. 오늘도 그런 목사님과 그 목사님을 '결사 옹위'하는 교인들을 취재해야 하는데요. 마음이 무겁습니다.

편집국 승현

처치독 리포트

신학대학원의 황당한 서약서

· 총회의 신학교 입학 제한 방침: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은 2017년 102회 총회에서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교단 소속) 7개 신학대 입학을 불허한다"고 결의했습니다.

당시 총회에서 이 안건을 주도한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는 교단에 '동성애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으니, 총회가 그 흐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총회가 이 안건을 결의하면서, 서울장신대학교를 포함한 예장통합 직영 신학대학들은 동성애자 및 동성애 지지자의 입학을 제한해 오고 있습니다.

· 실제 입학 포기 사례 발생: 얼마 전 신학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학생이 <뉴스앤조이>에 연락을 해 왔습니다. 이유진 씨(가명)는 여성 목회를 하기 위해 서울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는데요. 등록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서울장신대가 신학대학원 입학생에 한해 다음과 같은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 재학 중 학칙 및 제반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겠습니다.

· 입학 전 또는 재학 시에 이단, 사이비 등 대학이 판단하는 불건전한 종교 집회에 참석했거나, 그 집단에서 활동했을 때,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동성애자로 판명될 시에는 퇴학을 포함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 재학 중 학교가 필요로 할 경우, 개인 정보 사용 및 활용에 동의합니다.

· 보호자는 위 학생의 신분 및 입학에 관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 이상의 규정을 위반할 때에는 학교 당국의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습니다.

· 서약서의 문제점: 서약서에는 보호자의 주소 등 신상 정보도 기재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는데요. 입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까지 이 서약서 내용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더군요. 절차상 문제도 있었고요. 대학원 모집 요강에는 서약서와 관련한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았거든요. 성소수자인 유진 씨는 이 사실을 미리 인지했다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 토로했습니다.

· 학교의 입장은?: 학생 개인의 성적 지향과 대학원 생활이 무슨 상관이기에 이런 서약서를 요구하는 걸까요. 학교에 물어봤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총회 지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입학 전 서약서를 받는 절차가 수정되려면 교단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하더군요. 일반 대학교도 아니고 교단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에서 교단 결의에 따라 성소수자 입학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그럴싸해 보였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거겠지요.

· 문제는 총회 결의 그 '잡채': 결국 예장통합 총회 결의를 뜯어보고, 문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 양성 과정에서부터 성소수자를 원천 봉쇄할 정도로 정말 한국교회에 '동성애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나요? 이러한 폐쇄적·차별적 태도 탓에 신학대학원 진학률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대학이 종교의자유를 넘어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오랜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하고요.

1년간 입시를 위해 준비해 온 유진 씨는 당장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는 학교의 사과는 바라지도 않는다면서도,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입시 요강을 통해 사전에 제대로 공지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혐오·차별로 점철된 교단에 작은 틈 하나라도 내 보겠다는 마음이 한참은 깎여 나간 것처럼 들리더군요. 소명을 받고 목회를 꿈꾸던 한 목회자 후보생을 한국교회가 밀어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합니다.

편집국 수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