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갈등'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갈등 지수를 비교·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멕시코·이스라엘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갈등 지수를 기록했다. 반면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은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굳이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은 한겨울 체감온도만큼이나 피부에 와닿는다. 곳곳에서 '초갈등 사회', '혐오 사회', '양극화 사회'라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각종 미디어와 광장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분노·조롱·혐오의 메시지가 공공연하게 울려 퍼진 지 오래다. 정치 성향, 세대, 성별, 종교, 계층을 막론하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은 물론, '너만 없어지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극단적인 말과 행동까지 서슴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남·나눔·배움을 통해 반목하는 개인·문화·신념 사이에 다리를 놓겠다는 작은 비영리단체가 하나 생겼다. 프랑스 수도 공동체 떼제(Taizé)에서 30년 넘게 생활하다 2020년 귀국한 신한열 수사(60)가 만든 '이음새(Footbridge)'다. 이음새는 아래와 같은 비전·사명을 갖고 있다.

비영리단체 이음새(Footbridge) 로고. 이음새 블로그 갈무리
비영리단체 이음새(Footbridge) 로고. 사진 출처 이음새 블로그

"비전(Vision): 양극화와 진영 논리, 집단 이기주의가 커지고 있는 사회에서 고립되고 분절화되는 개인들을 연결하고 만남과 대화, 경청을 통해 우애와 신뢰를 키움으로써 평화롭게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사명(Mission): 세대, 나라, 문화, 신념, 종교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갈등과 분쟁을 예방하고 사회 치유를 이룬다."

작년 12월 2일 창립식을 연 이음새는 개신교·가톨릭 신자가 함께하는 평화 기도회, 우크라이나·미얀마를 위한 기도회 및 성금 전달, 정교회 방문,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와의 만남, 한일 교류, 이음새 걷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지난달 이음새 걷기 '대림동 차이나타운' 모임에는 6개국에서 모인 25명이 함께하기도 했다.

고즈넉한 프랑스 마을 수도 공동체에서 수십 년간 전 세계 순례자들을 맞아 '함께 사는 기적'을 일궈 온 평화·화해·일치의 수사가, '갈등 지옥' 한국에 들어와 비영리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가 한국에서도 이어 가기를 꿈꾸는 '함께 사는 기적'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스도인은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2월 1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5층에 있는 이음새 사무실에서 신한열 수사를 만났다. 

이음새 대표 신한열 수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음새 대표 신한열 수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갈등과 분열의 한국 사회
만남·나눔·배움으로 다리 놓는다

- 떼제 공동체에서 30년 넘게 활동하다 2020년 한국에 돌아오셨는데요. 계기가 있나요?

일단 프랑스에서 3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출발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떼제 있을 때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국제 모임을 진행하는 일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여러 국가를 돌아다녔습니다. 초창기에는 20년 가까이 독일에 가서 모임도 했고, 2006년 이후로는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매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특별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가 갈수록 공존과 협력보다는 대결과 갈등 구도로 나아가더라고요.

관심을 좀 가져야겠다고 공동체에 늘 얘기했습니다. 제가 나이도 있고 해서, 그전부터 혹시라도 한국에 형제(Brother·수사)들을 파견하게 된다면 제가 가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죠. 그런데 원장님(알로이스 수사)은 "이해는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에 있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유럽이나 북미 형제들과는 경험도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국제 공동체인 떼제의 다양화를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찾아온 거죠. 몇 달이 지나도록 봉쇄가 이어지고 자꾸 움츠러들게 되니까, 공동체 내에서도 안으로 움츠러들지 말고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더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다른 형제들은 이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프랑스 파리 근교 생드니 지역에 가서 작은 공동체를 이뤘고요. 저는 2020년 8월 말 한국으로 오게 됐습니다. 1988년 7월에 프랑스로 떠났으니, 32년 만에 돌아온 것이죠.

- 한국에 돌아오셔서 느낀 점이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비영리단체 이음새를 시작한 계기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이 제 모국어를 쓰는 조국이기는 합니다만, 30년 넘게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고향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적응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아, 내가 완전하게 한국 사람으로 살기는 어렵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측면도 있죠.

한국에 와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사회가 분절·단절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영 논리와 양극화로 사람들이 분열하고 서로 쉽게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느꼈죠. 어떤 이슈에 따라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나뉘었고요. 사회 전 영역에서 갈등과 분열이 심해졌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누가 어떻게 손 내밀고 다리를 놓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해답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일차적으로는 사회 통합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와 종교의 잘못이 크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심하게 비판한다든가 평가·판단하는 게 제 본연의 사명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데 혹시라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제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만남을 통해 서로 다른 개인·집단·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 과정에서 비영리단체 이음새를 시작했습니다.

- 이음새 슬로건이 '만남', '나눔', '배움'입니다. 이러한 요소가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겼을 것 같은데요.

이음새의 가장 큰 목표는 분열된 우리 사회에서 만나지 않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일 수도 있고, 보수와 진보일 수도 있고, 가톨릭과 개신교일 수도 있고, 노년과 청년일 수도 있죠. 여러 가지 만남이 있겠습니다만, 특히 우리가 이주민이라고 부르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어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지속 가능하려면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외국인이 1000만 명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돼 있지 않아 보여요. 그들을 값싼 노동력 정도로만 생각하는데 그건 너무 짧은 생각이죠. 길게 보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참 고마운 존재들이에요. 앞으로도 같이 어우러져 살아갈 우리 이웃인 거죠.

저는 이분들이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선주민이 이주민들에게 조금 더 열린 태도를 갖고 이들을 이웃으로 맞아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걸 말로 가르치고 강의로 설명하기보다도, 서로 직접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더라도 자꾸 만남의 장을 모색해 나가는 거죠. 그렇게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는 것이고요.

십자가를 이미지로 보면, 두 팔을 벌려서 만나지 않는 양쪽을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지 않는 두 형제가 만나는 겁니다. 양극화 시대에 양쪽을 붙든다는 건 양쪽 모두에게서 이해받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감당해 보려 합니다. 하나의 가교가 되는 거죠. 할 일은 참 많습니다만, 욕심내기보다는 천천히 넓혀 가려고 합니다. 실속이 중요하니까요.

십자가는 두 팔을 벌려 만나지 않는 양쪽을 함께 붙드는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신한열 수사. 뉴스앤조이 여운송
십자가는 두 팔을 벌려 만나지 않는 양쪽을 함께 붙드는 이미지라고 설명하는 신한열 수사. 뉴스앤조이 여운송
"당위와 논쟁만으로는 한계 있어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만나야"

- 한국 사회를 흔히 '초갈등 사회'라고 합니다. 여러 국가를 돌아다녀 보신 입장에서 한국 사회 갈등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정치·사회를 분석할 역량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 부족한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대화'와 '타협'이겠죠. 흔히 말하는 '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입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영역에서든 제3지대가 설 땅이 많지 않아요. 저는 이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인간은 다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만, 그래도 공동체·공동선을 바라는 마음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너무 당위를 강조해서 그런지, 서로 타협하거나 둘을 얻기 위해 하나를 양보하거나 하는 면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이러한 초갈등에 그리스도인들이 꽤나 일조하는 듯 보입니다. 평화와 화해와 일치보다는 혐오와 차별과 편 가르기에 앞장서는 이미지로 고착화했는데요.

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화해'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서로 나뉘어 적대하는 사람들을 가르는 미움의 장벽을 깨뜨리셨잖아요. 당신의 몸 안에 미움을 죽이신 거예요.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떤 경우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벽을 쌓고 사람들을 배제하는 데 잘못 이용되기도 하죠.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한국 사회 갈등이 첨예화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그것을 극복하는 데 이바지했는가, 아니면 그걸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가 던질 수 있고,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당위를 내세우고 논쟁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서로 만나는 안전한 장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편견을 깨고 경계를 넘는 체험을 많이 하면서 자기 바운더리를 넓혀 가야 해요. 그리고 그것이 재미있고도 아름답다는 사실, 우리 신앙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잘 모르면 두려워하게 돼요. 사실 혐오·배제·차별도 어떤 측면에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고 심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하죠. 그러면 우리가 서로에 대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얘기하면 한국에서는 또 순진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서로 다른 정치 행보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사랑하는 그 마음 혹은 아까 말한 공동선에서 함께 만나는 접점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상대방의 선의조차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방어적이게 될 수밖에 없고, 상대는 그저 타도 대상이 돼 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신한열 수사는 갈등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면, 서로에 대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신한열 수사는 갈등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다 보면, 서로에 대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수사님 저서 <함께 사는 기적>(신앙과지성사)을 보면 '경계선, 한번 넘어 보면 별것 아닌데'라는 파트가 있습니다. 폐쇄적인 한국교회에는 기본적으로 그런 경험이 부재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평등을 선언하고 경계를 허무는 해방의 메시지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교회가 가진 게 많아지다 보니, 그런 것들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바닥에 내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약자들을 향해 심하게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죠. 오히려 스스로 거룩하고 하느님에게 가깝다고 여기는 종교 엘리트들, 오늘날로 말하면 신심 깊은 사람들을 나무라셨거든요. 오늘날 교회가 거꾸로 가고 있는 거죠.

저는 교회가 경계를 짓고 사회에 대항해서 싸운다든가 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죄악이 넘실거리고 교회는 구원의 방주다? 그런 이원론적인 사고는 선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신앙의 본질도 아니죠.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사회 안이고, 교회도 물론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역시 사회 일부인 것이죠.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의 눈길로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로 아픈 곳을 보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리나 전통의 이름으로 과거의 언어나 형태를 반복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박물관이지요. 생명이 있는 교회는 박물관이 아닙니다. 교회의 전통은 끊임없이 적응하고 쇄신하고 바꿔 나갈 때 이어지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경계선을 넘는다고 해서 잃어버릴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음새는 어떤 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이음새는 서로 만나고 나누고 배우는 여러 활동을 합니다. 개신교·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모여 평화 기도회를 열고, 정교회를 방문하기도 했지요. 개신교 목회자들과 가톨릭 사제·수도자들이 편안하게 만나 대화하는 자리도 몇 차례 만들었습니다. '10월 항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를 만나 그분들의 피해 증언을 듣고 '마지막 증언'이라는 영상을 남기기도 했지요.

지난달에는 '이음새 걷기'로 6개국 출신 25명이 모여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방문했고요. 동네를 둘러보며 시장에서 중국 전통 음식을 먹고 '이주민센터 친구'와 '서울국제학원'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달 말에는 자양동 중국 먹자골목부터 성수동을 거쳐 서울숲까지 함께 걷습니다. 이번에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도 초대할 거예요. 그분들이 만나는 한국인은 대개 고용주이거나 직장 사람들에 제한돼 있거든요. 이런 걸 누가 누구에게 가르치거나 앉아서 세미나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섞여 걸으면서 같은 걸 보고 반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죠.

사람들은 세계화라고 하면 한국 음식, 한국 문화, K-POP이 얼마나 유명한가를 생각하는데요. 물론 그런 것도 세계화의 한 부분이겠습니다만, 한국 문화가 세계에서 얼마나 통하느냐보다 멀리서 온 우리 이웃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접점을 갖고 있는지, 우리가 이들을 얼마나 환대하는지 돌아봐야 해요.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우리 복음의 정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환대하기보다는 겁을 낸다고 해야 할까요. 예멘 난민들이 왔을 때 보여 준 모습이라든지, 인터넷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혐오 등을 보게 됩니다. 제일 가까운 이웃이 중국과 일본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이 역시 다리를 놓는 장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일 이음새' 모임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진행하지 못했지만 '한중 이음새' 모임도 계획하고 있고요.

이음새는 참가자들과 함께 정교회를 방문하고(사진 위)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함께 둘러보는 등(사진 아래)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사진 출처 이음새 블로그
이음새는 참가자들과 함께 정교회를 방문하고(사진 위)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는 등(사진 아래) 다양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사진 출처 이음새 블로그

- 참가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하죠. 이를테면, 저희가 무슬림과 함께 만났을 때 많은 분이 무슬림을 직접 처음 만나 봤거든요.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니까 고정관념이 깨지는 거예요. 정교회 방문도 마찬가지였고요. 가톨릭·개신교 신자들끼리 만나서도 '개신교가, 가톨릭이 이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반응이 나와요. 긍정적인 거죠. 이제 곧 일본도 함께 가는데요. 우리가 서로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그런 오해와 분열의 유산들을 후대에는 물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분들이 훨씬 개방적이고 편견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 사회는 희망적이라고 봐요.

- 거스를 수 없어 보이는 거대한 양극화의 물결 앞에서 때로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어쨌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돼야 해요. 물론 없는 희망을 만들어서 전하라는 건 아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겠죠. 비록 양극화·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눔과 평등을 실천해야 합니다. 혐오의 메시지가 많다고 해도, 서로 환대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줘야 하겠고요. 저는 이미 그렇게 삶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나누고 배우면서, 벽을 쌓는 대신 다리를 놓는 일을 함께해 나가야겠죠.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복음을 살려고 했을 때 개별화·개체화한 각개전투로는 번번이 깨지게 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나기도 하고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야 하는 거죠. 우리가 흘끗 보면 경계선만 있는 것 같지만, 경계선 이상으로 다리도 많이 있어요. 그렇게 다리를 놓다 보면 친구·동료·길벗들이 생기는 거고요.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의 시대일수록 적지 않은 사람이 공동체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 시대에도 개인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죠. 연대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연결'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함께 모여 침묵하고 기도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죠.

신한열 수사는 우리 사회에는 경계선 말고도 다리가 많이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신한열 수사는 우리 사회에는 경계선 말고도 다리가 많이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이음새와 함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누구든지 그냥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도 있고요. 이음새 블로그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도 모임이든 걷기 모임이든 여러 만남의 기회가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음새라는 단체가 커지는 게 아니라, 이 단절의 시대에 더 많은 사람이 각자가 사는 곳에서 다리 놓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분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게 더 많은 사람이 화해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이음새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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