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걱정을 말라 / 주님 계시니 아쉬움 없네 / 두려워 말라 걱정을 말라 / 주님 안에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떼제(Taizé) 찬양 가락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성당을 가득 메웠다. 8월 15일 열린 '한반도 평화와 화해, 일치를 위한 기도회'에는 가톨릭·개신교 등 그리스도교인 250여 명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회에는 특별히 프랑스 떼제공동체 알로이스 원장수사와 신한열 수사, 한국 떼제공동체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귀화한 안선재 수사(영국명 안토니)가 참석했다. 알로이스 원장수사와 신한열 수사는 8월 8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홍콩 국제 모임이 끝나자마자 한국 기도회 준비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진행하는 기도회 순서를 따랐다. 신한열 수사가 성경 말씀을 낭독하면서 시작을 알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리라." 참석자들은 10여 분간 침묵으로 기도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 일치를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촛불을 들고 기도에 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침묵 기도 후에는 사회 각층, 전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를 이끄는 사람이 "각 나라 민족들의 지도자가 정의와 자유를 위해 헌신하게 해 주소서", "억압당하는 이들, 외국인들, 외로운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에게 기도를 부탁한 사람들,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청중은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으로 화답했다.

기도회 중간, 알로이스 원장수사가 짧게 발언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한국 광복을 기념하는 날에 이런 모임을 하게 돼 감동적이라며,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도 한반도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알로이스 수사는 "우리는 적은 수지만 평화의 씨앗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준비시켜서,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한반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은 전 세계를 위한 희망의 징표다. 남북한 국민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가 있기에 (통일까지)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 일을 계속 추진하고 마침내 성취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떼제공동체 알로이스 원장수사(왼쪽)는 한반도 평화는 전 세계를 향한 희망의 징표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참석자들은 입장하면서 기다란 초 하나씩을 받았다. 평화를 기원하는 초였다. 알로이스 원장수사가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하는 것처럼 아이들 손을 잡고 대성당 안을 돌며 사람들에게 불씨를 나눠 주었다. 예배당 안이 이내 뜨거워졌다. 손에 초를 들고 한마음으로 "주님 나라는 의와 평화 성령 안에 있는 기쁨 / 주님 열어 주소서 그 문, 우리 안에"를 불렀다.

떼제 기도회가 남긴 것
"짧고 반복되는 찬양이 곧 기도
'평화'와 '사랑' 일깨워 준 환대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됨 꿈꾸게 해"

기도회 참석자 중에는 홍콩 떼제 국제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떼제 기도회에서 느낀 점과, 떼제가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물어보았다.

김신동 씨(가명)는 현재 주류 교단 직영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이다. 교수들에게 떼제 찬양을 배웠고 함께 부르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교단 목사들 중 떼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에, 인터뷰는 가명으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홍콩에 가기 전에도 한국에서 열리는 떼제 기도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김신동 씨를 사로잡은 건 찬양이었다. 김 씨는 한국교회에서 일상이 된 CCM을 부르면서 종종 공허함을 느꼈다고 했다. 무대에 선 찬양 인도자가 세련되고 강렬한 비트가 담긴 찬양을 부르면서 말씀을 선포하는데, 그 선포가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와닿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고 했다.

예배 중간에 알로이스 원장수사와 아이들이 촛불을 나누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지만 성경 말씀을 기초로 한 단순한 가사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떼제 찬양은 꼭 말씀을 곱씹는 것 같았다. 김신동 씨는 "삶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운 순간, 상실감과 절망감이 밀려올 때 떼제 찬양을 부르면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찬양이 기도였다"고 말했다.

나수진 씨는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보며 '평화'나 '사랑' 같은 기독교 가치가 실현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주류 개신교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예배 형태에도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신뢰와 화해의 순례'라는 홍콩 모임을 알게 됐고, 참석을 결심했다.

홍콩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환대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나수진 씨는 "모르는 사람이 나누는 따뜻한 눈인사에서, 다른 언어로 부르는 찬양에서, 수천 명에게 식사를 나눠 주면서,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자기 집을 내어 주는 것에서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타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준 사랑은, 책에서만 보고 듣던 것이었다. 이 환대가 서로의 벽을 허물고 우리를 친구가 되게 했다"고 말했다.

떼제 기도회는 목사들에게도 울림을 남겼다. 박병철 목사(서울교회)는 벌써 수차례 떼제 기도회에 함께했다. 박 목사는 그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신앙인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홍콩 모임처럼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박 목사는 이번 모임에서 아시아 각국이 가진 전통문화 안에 뿌리내린 신앙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떼제 찬양을 부르며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는데, 이제는 잠깐 여유를 갖고 멀리서 문제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박 목사는 "시간을 두고 떼제 찬양을 부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는 행위가 일상에서 신앙을 지속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기도회에는 참석한 250여 명은 초를 들고 찬양을 이어 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경기도 오산에서 목회하는 박성진 목사(하모니교회)는 우연한 기회에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떼제 찬양을 듣고, 떼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박 목사는 "짧은 가사임에도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방언 기도하는 곳, 40일 금식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메시지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이번 홍콩 모임에 성가대 멤버로 참석했다. 박성진 목사는 직접 떼제 기도회에 참석해 보니 "서로 다른 사람들, 이웃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무슨 의도지?'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떼제에서 말하는 화해와 평화를 어떻게 교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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