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 목사의 연재 '길의 가장자리에서'는 개척 5년 차를 맞은 길섶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연재 제목은 교회명에서 따왔습니다. - 편집자 주
1. 개척교회를 시작한 이유
길섶교회 예배 모습. 사진 제공 김동환
길섶교회 예배 모습. 사진 제공 김동환

안녕하세요. 개척교회 이야기 '길의 가장자리에서'를 연재하게 된 길섶교회 김동환 목사입니다. 길섶교회는 5년 차 되는 20~30명의 작은 교회지만, 저보다 믿음이 깊고 배울 점이 많은 다양한 분이 모여 있습니다. 지난 4~5년간 새로 온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길섶교회를 떠난 사람도 많았는데요. 작은 교회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분들과 함께 고민해 가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가고 있는데요.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서 목회자 훈련을 받았습니다. 신학교 다니던 시절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다녔던 신학교가 있는 서울 광나루 쪽에 가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자신의 삶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모여들었던 곳, 수많은 종교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신념이 새롭게 형성되며, 예비 목회자들이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 가던 곳. 광나루는 제게 그런 공간이었고, 지금도 제2의 고향과 같습니다.

하지만 신학교를 졸업한 지 8년이 되는 현재까지, 저는 제 주변에서 '제도권 목사'로서 행복을 충분히 느끼는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목사에게 행복은 돈이 쌓이고 명예를 날리는 게 아니겠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자신이 의미 있게 쓰임받고 있고, 누군가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체감할 때 목사로서 행복을 느낄 것 같은데요. 제가 주로 만났던 친구들이 제도권 내부의 30~40대 목사들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교회 안에서의 정치 문제와 경제적 불안으로 인한 우울감, 그리고 목회자로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해서 오는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이런 목사들도 교인들을 만날 때, 설교를 할 때는 갑자기 달라집니다. 초월자가 돼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의 대변자가 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면 다시 무력감에 빠지죠.

처음에는 목사는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목사들이 서로 돌볼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겠다고만 생각했는데요. 교회의 문제점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면서 점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문제점이야 제가 속한 작은 길섶교회에도 있고,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어디에나 생기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 문제들을 처리하는 절차와 방식이 문제의 내용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설교를 할 때 약간의 환상 효과가 생기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일의 처리 방식까지 설교 내용과 너무 다르니 마음에 스크래치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한 이유는 '생존'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생존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개척한 지 5년이 됐지만, 수입은 5년 전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 살고 싶고,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도 '직업 종교인'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겁니다. 최소한의 존엄만 보장되면 됩니다.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으면 되고, 신학 공부를 제한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면 되고, 사람들을 속고 속이는 방식으로 종교 모임을 운영하지 않아도 되면 됩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100% 솔직해질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종교 모임이니 사회의 다른 여러 집단보다는 비교적 솔직한 모임이었으면 좋겠고, 문제야 당연히 생기겠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종교의 내용과도 어느 정도 어울릴 수 있는 방식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자신이 목회자로 훈련받은 제도권 공간에서도 조금씩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그 안에 남아 있거나 혹은 제도권 전통의 방식으로 개척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도권 교회는 제가 만들어진, 제가 사랑했던 체제였지만, 저는 그동안 훈련받았던 모든 것에 의구심을 품고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방식으로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데요. 제도권 교회의 눈치를 보느라 할 수 없는 것(N잡, 평신도 설교 등)은 없다는 정도의 의미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들 중에도 제도권 교회 목사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은 아마도(?) 제 평생 친구들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제도권 안에서 개혁을 해야 하고, 교회 구성원이 안전함을 느끼며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니까요(성당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2. 그럼에도 목사를 그만두려 했던 이유

개척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여기저기서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교회를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로, 어떤 계기로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때 한창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이분도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응원했던 분 중에, 지금 교회를 개척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5년이 되도록 아무도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현실입니다.

저도 할 말이 없는 게, 사실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 2년 차에 목회를 그만두려 했습니다. 무언가 큰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도권의 틀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생존'이 가능해져서 정말 좋았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가 닥쳐왔습니다. 지금 당장 1~2년은 괜찮더라도 앞으로 30대 후반, 40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함께하던 분들도 대체로 20~30대 청년이었고, 자신들의 삶 또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분이 많았던지라, 교회 공동체에 더 헌신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시작한 지 2년 차 때는 회의를 통해 '앞으로 1년만 더 모이면서 교회 구성원들이 다닐 수 있는 다른 교회를 찾아보기'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의 개척교회 경험을 끝으로, 목사를 그만두고 초등 교사 임용 고시를 준비하려 했습니다. 이미 교육대학교을 졸업했고, 대학 생활 중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신학교에 진학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임용 고시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서울이 아닌 타 지역으로 생활권으로 옮기게 되면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아마 '가나안 교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혼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도권 신학교에서 훈련받고 목사를 하던 사람조차도 '가나안 교인'을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이미 오랫동안 개척교회를 담임해 오신 선배 목사님 한 분을 제외한 제 주변 30~40대 목사들은 하나같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제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을 다들 부러워했는데요. 그 누구도 교회를 더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물론 '교회 세습'과 '성소수자 인권 탄압' 문제가 불거지던 때이긴 했지만, 제 주변 30~40대 목사들은 그런 이슈들과 상관없이 코로나 이전에 이미 '탈교회'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려던 분들은 대부분 목사를 그만두거나 해외로 떠났습니다.

목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제1의 고향(?) 제주에 내려가서 모교회 목사님·사모님을 만났습니다. 그분들께 군부독재 정권 치하에서 어떻게 목회를 했는지 듣는데, 아쉽게도(?) '목회를 조금 더 해 봐야겠다'고 설득당해 버렸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처음 신앙생활 하던 때 만난 이 목사님은 개척교회를 여러 번 담임하셨고, 저는 그분의 마지막 개척교회 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보다 삶이 주는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코로나19가 터져 어려움에 빠질 뻔했지만, 오히려 이 상황에서 모임에 참석해 주는 분들이 생기면서 아직까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목사로 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2번째 연재 글에서 다뤄 보겠습니다.

3. 이제, 선생님은 없다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을 잘 따랐습니다.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하나의 게임 같아서, 수업 듣고 문제 풀고 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해 보고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제 진로 또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선생님이 되는 쪽으로 정했습니다. 교육대학교에 가서도 입학 장학금을 받고서야 입시 전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봤을 정도로, 그냥 '선생님의 이야기가 최선이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장로교 전통의 신학교에 진학한 것도, 그 학교에 가야 한다는 목사님 말씀에 따라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칼뱅이 좋아서도 아니고, 몇 년 다닌 교회의 장로정치 제도가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장로교 목사가 되기 위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님'이 누구인지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또한 장로교 목사가 된다는 것은, 500년 개혁교회 전통과 장로교 교리라는 범주 안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자격증을 얻는 것이기에, 다른 공부보다도 조직신학(교리) 공부에 열심을 냈습니다.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인지 분별해 줄 수 있는 것이 목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4~5년간의 상황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성소수자를 향한 교회의 배타적인 태도, 세습 문제에 대한 애매모호한 대처, 코로나 기간에 보여 준 이기적인 모습, 무엇보다도 제가 그 긴 시간 '선생님'이라고 쫓아다녔던 사람들의 '침묵'은, 제게 '이제 선생님은 없다'라는 확신을 줬습니다.

'선생님은 없다'라는 말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전에 제가 생각한 '선생님'은 '영적 지도자'와 같은 느낌이어서, '이 분야에서는 저 사람만 따라가면 되겠다'고 판단할 만큼 의미-과잉인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 제게 '선생님'은 그냥 '배울 점이 있는 좋은 사람'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본래는 이렇게 가볍게 생각해야 하는데, 종교의 세계에서는 '선생님' 또는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갖게 만드는 이상한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라는 장 안에서는 리더를 '예수님화'해 버리는 환상 효과가 작동되기 쉬워 보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환상 효과를 일으켜서 자신을 따를 사람을 모으는 방식으로 개척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이런 방식의 개척이 점점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종교성을 탁월하게 다루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저나 제 주변 목사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방식의 개척은 목회자 본인의 정신 상태에 심각한 손상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런 목사는 겉으로는 강력한 파토스(pathos)를 가진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나, 속으로는 가장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제 추측이지만요.

4. 불안의 강을 건너기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교리나 과거의 인물 자체가 절대적 의미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칼 바르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같은 신학자를 좋아했는데요. 이런 위대한 신학자의 글을 공부하면 할수록 교회에서 안전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단 신학의 틀 안에서 삼위일체·이신칭의·성화 등 교리를 가르치고, 설교는 교회력에 맞춰서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도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요. 교회에 처음 온 새 신자분의 말 속에 칼 바르트보다 더 뛰어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는 분의 수다 속에 마르틴 루터보다 대단한 신학적 통찰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삼위일체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요즘 뭐가 힘든지 듣는 시간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칭의나 성화에 대해 강의하는 것보다, 저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거나, 교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조금씩 바꿔 갈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인 전략을 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는 책으로 배운 게 아니라, 교회 분들에게 얻어맞으면서(물리적으로 맞은 것은 아닙니다) 배웠습니다. 뭐든지 책으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저는, 이런 감각을 갖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솔직히 제가 조금 구제불능의 책 중독자였는데(사실 지금도 책을 좋아합니다만), 길섶교회 분들이 아니었으면 그런 책 집착에서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론만으로 안 된다는 걸 알려 주신 교회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교단의 제도와 틀, 교리, 살아 있는 선생님 혹은 과거의 선생님이라는 안전정치를 갖지 않고도, 교회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공동체가 함께 그 불안의 강을 건널 수 있을까'가 앞으로의 제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길섶교회의 숙제입니다.

2023년, 제 해법은 '목사가 더 공부량이 많아야 한다(?)'인데요. 단, 그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자유로운 공부이고, 무엇을 공부하든 교인들의 의견보다 더 뛰어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 공부입니다. 제 스타일의 임시적인 해법이니,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길섶교회 모임을 해 나가면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제 유튜브 채널 '믿는생각'에 구경 오면 아시겠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선생님스러운(?) 스타일로 기독교를 설명하는데요. '선생님은 없다'고 해 놓고 왜 공부 모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의아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설교'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자세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실 교회 분들께 "어렵다", "재미없다"는 피드백도 종종 받고 있습니다만, 그런 피드백을 받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와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는 뜻이고, 공동체와 오래 함께하고 싶어서 건네 주시는 피드백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주시면 조금씩 변해 가겠다고, 일단 말로 때워 놓고 해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이제 첫 번째 연재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개척교회를 왜 시작했냐?"라고 물으신다면, 간단하게는 "(제도권 교회 안에서는 목사로) 못 살겠어서,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갖고 있던 고민과 지금 제가 애써 보려고 하는 점들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교조적인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중립 공간으로서의 교회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라고 답변드릴 수 있겠습니다.

다음 연재 글에서는 '온라인 교회'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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