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오면 아직 모든 것들은 가려져 있고
마음은 어찌 그리 두근대던지
작은 방들엔 온통 신기한 것들뿐
한쪽에 깔린 담요에서 대화를 듣네
돈은 없지만 찾아가 볼 스케줄은 많았고
어렵기만 한 대화들도 밤새 귀 기울였네
나도 그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모든 것의 뒷면은 아직 보이질 않고
- '지망생', 김목인 2집 <한 다발의 시선>(2013)

팍팍한 현생에 지쳐 옛날이 그리워질 때마다 부러 찾아 듣는 김목인의 노래입니다.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던, 풋풋하고 활력 넘쳤지만 이면의 어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지망생' 시절이 떠올라 애잔해지거든요.

10년 전 두근대는 마음과 청운의 꿈을 품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게 그곳은 마치 하나님나라 같았고, 저는 언젠가 (당연히) 예장합동 교단의 목사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마음만은 이미 목사였죠. 미래에 관한 한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했습니다.

설렘과 열정으로 가득 찬 지망생의 시간도 잠시, 이내 가려져 있던 교회의 어두운 뒷면을 보게 됩니다.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만큼 숱한 고민과 방황, 오해와 절연의 시간을 지나왔죠. 그렇게 신학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끝내 자퇴하고 <뉴스앤조이>에서 일한 지도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뒷면을 마주하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자주, 깊이, 실망하게 되고요. 솔직히 실망을 넘어 냉소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어느 형님은 제가 푸념을 늘어놓자 "꼭 40~50대 부장님처럼 말한다"고 애정 어린 타박을 주시더군요. 뼈아픈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요즘의 저는 동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뉴스앤조이> 입사 전 썼던 서평에서 "시니컬함과 교회 개혁은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던 게 이제 와서는 부끄러울 정도니까요.

목회자 지망생이었던 10년 전의 제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공교롭게 김목인의 저 노래가 나온 지도 내년이면 꼭 10년째가 되네요. 순진했던 옛날을 이만큼 그리워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도 같습니다. 올해 나온 김목인의 또 다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언제까지고 지망생 시절을 그리워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딜 파 봐도 깨끗한 곳이 없다고
너는 망연자실하지만
나는 좀 더 둘러보고 올 테니
여기서 좀 기다릴래
혹시 뭐 새로운 게 있는지
어차피 다른 곳은 없다면
낡은 도시를 떠다니는
탐험선의 눈처럼
아직 어딘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 '디깅', 김목인 4집 <저장된 풍경>(2022)

편집국 운송

처치독 리포트

'성품'과 '정직'으로 포장된
반동성애 진영의 속내

어린 시절, 학교에서 종종 성교육을 들었습니다. 주로 보건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업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교육 시간에는 매번 낡은 화질의 영상을 틀어 주곤 했는데, 꼬물거리는 난자 세포와 정자 세포가 만나 수정란이 되는 영상의 레퍼토리는 해를 거듭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레 품는 성적 호기심과 성교육 내용의 거리는 멀어도 너무 멀었습니다.

때론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부끄럽거나 좋지 않은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소중하고 남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정작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몸을 스스로 잘(순결하게) 간수해야 하고, 그러지 못했을 경우 겪는 수치심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포괄적 성교육이 사탄의 전략이라니...

다행히 제가 성인이 된 지금은 인권과 성평등 관점에서 '포괄적 성교육'을 진행하는 교육 현장이 늘고 있습니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단순히 성폭력을 문제시하는 교육을 넘어서, 자세하고 구체적인 성 지식을 전달해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성교육을 하기 위해 수많은 활동가가 노력해 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전광역시(이장우 시장)가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려 합니다. 2023년부터 1년간 대전시인권센터와 청소년성문화센터를 운영하게 될 법인으로 각각 한국정직운동본부(박경배 대표)와 넥스트클럽사회적협동조합(넥스트클럽·남승제 대표)이 선정됐습니다. 이 단체들의 대표들은 보수 성향의 개신교 목사이고, 인권과 성평등 가치에 반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특히 넥스트클럽은 현재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포괄적 성교육이 청소년의 조기 성애화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면서, 대안으로 '성품 성교육'을 해 온 단체입니다. '성품 성교육'은 "기능과 행위, 생식기 중심의 성교육에서 벗어나, 성품과 관계를 중시"하는 성교육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품과 관계를 중시"한다는 게 무엇인지 대단히 추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취재해 보니, 성품 성교육 강사 양성 과정에는 반동성애 진영 활동가들이 등장했고, 성교육과는 거리가 멀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성관계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포괄적 성교육은 가정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전략이다."
"여성가족부는 페미니스트들의 집합소다. 굉장히 좌경화돼 있고 어떤 사람은 북한과도 연결돼 있다."

인권센터 수탁 기관으로 선정된 한국정직운동본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정직' 운동을 한다면서, 동성애 반대,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활동 등을 해 왔습니다. 대표 박경배 목사는 코로나19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언급해 물의를 빚었던 인물입니다. 그에게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하면서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는 인권과 상관없다. 특정 동성애자를 지칭했다면 인권침해지만, 법 조항을 반대하는 게 왜 인권침해인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역으로 인권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반대 운동을) 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사람이 있나. 있으면 말해 봐라.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더 조심스럽게 대한다. 누구도 그들의 인권을 침해한 적이 없다."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반동성애 진영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오래전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인권·성평등 관련 사업을 공격해 왔습니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침소봉대하면서 반동성애 프레임에 끼워 맞춰 왔어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대전시 사례처럼, 보수 성향의 지자체장이나 교육감과 결합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2020년에는 넥스트클럽이 대전시 교육청의 성폭력 예방 교육 지원 민간 전문 기관으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 단체가 정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면, 대표가 목사든 개신교 성향을 기반으로 하든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 대전시인권센터를 5년간 운영해 온 기존 법인도 개신교 기반의 단체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선정된 두 단체는 모두 인권과 성평등 업무를 맡기에는 연관성도, 전문성도 결여돼 있습니다. 이들은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인권 증진에 반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지역사회와 청소년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기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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