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홍민정·정지현)이 11월 10일 헌법재판소에 '상대평가'는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현재 한국은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상대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것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실제로 상대평가가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것을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무엇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처럼, 한국 교육계에서 숨 쉬듯 자연스러운 상대평가의 흐름을 과연 바꿀 수 있을지 아득한 느낌이 든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헌법 소원을 제기한 날 연 기자회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유튜브 채널 갈무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헌법 소원을 제기한 날 연 기자회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유튜브 채널 갈무리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2월 6일 이 사건을 심판에 회부한다고 결정했다. 지난 10년간 심리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심사에 회부되지 않고 각하된 사건의 비율이 74.8%인 것에 비하면 일단 첫 단계를 넘어선 셈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매년 교실에서 150여 명의 학생들이 경쟁 교육의 무게에 짓눌려 생을 마감하는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지목된 '대입 상대평가'에 대해 헌재가 살펴보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상대평가 헌법 소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구본창 소장을 12월 16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 소장은 상대평가가 지금 학생들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설명하며, 이제 대한민국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헌법 소원의 배경이 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구본창 소장은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여러 통계를 인용할 때도 자료 한번 보지 않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구본창 소장은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여러 통계를 인용할 때도 자료 한번 보지 않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매년 150여 명 사망하는 '잔인한 제도'
후원자 어머니 유산으로 시작된 소송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여러 정책과 법안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헌법 소원을 한다는 소식은 좀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었는데요.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교육의 본질은 '배움을 통한 성장'이에요. 그렇다면 평가의 본질은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되겠죠. 그런데 상대평가는 학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전체 학생 중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는 거예요. 배움을 통해 성장한다는 목적과 다른 축에 있는 제도예요. 그런데 이게 오랫동안 관성으로 대한민국을 지배해 왔고, 그 결과 학생들이 굉장히 많은 권리침해를 받게 된 거죠.

상대평가가 헌법에서 규정한 국민으로서의 여러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판단은 오래전부터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 소원을 청구하는 일은 좀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교육 문제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도 있고, 만약 헌재가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하게 되면 그걸 번복하기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는 소신은 있었는데 그간 헌법 소원을 시도하지는 못했던 거죠.

그러다 올해 여름에…. 아, 이게 좀 감정이 올라오는 이야기인데요…. 한 여성분이 저희를 찾아오셨어요. 어머님의 유산을 받았다면서. 부유한 가정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그 유산을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대요. 그분이 최근 딸과 이야기를 하다가, 대학 입시를 치르면서 가위에 눌릴 정도로 굉장히 큰 공포와 중압감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딸은 그간 엄마한테 말을 못 했던 거죠, 걱정할까 봐.

또 특목고에 다녔던 그분 조카의 친구가 성적 비관, 학업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일도 있었다고 하셨어요. 사건 자체도 비극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주변 친구들도 굉장한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해요. 친구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시간이 필요한데 학교라는 공간, 특히 고등학교는 그렇게 되지 않아요. 당장 입시를 치러야 하니까. 내가 학업에 조금 주춤하면 나의 상대적 성적은 바닥으로 쭉 밀려 버리는 상황이 되니까요. 친구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입시에 매몰돼 있다가, 끝나고 정신 차렸을 때 트라우마를 겪는 거죠.

이분이 이런 상황을 보면서, 결국 원인은 친구와의 경쟁, 전국적 경쟁을 시키는 대학 입시 상대평가 제도가 아닌가 결론 내리게 되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머니의 유산을 상대평가 위헌 소송을 하는 데 쓰기로 하고, 이 일을 가장 잘하고 가치 있게 실현해 줄 단체를 찾다가 저희 단체 문턱을 넘었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저희가 3000만 원을 기탁받게 됐어요.

(이 이야기를 전하는 홍민정 공동대표의 편지에는 어머니의 유산을 후원하게 된 사람의 말이 인용돼 있다.

"저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큰돈을 후원하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돈 3000만 원을 유산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차마 이 돈을 쓸 수가 없었어요. 처음 입금된 대로 지금까지 고스란히 계좌에 들어 있습니다. 학생들이 겪는 경쟁 교육 고통은 늘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문제였어요.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줄과 멍에를 메고 가라'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결단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날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님이 남기신 유산 전부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후원합니다.")

저희 내부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죠. 위와 같은 고민이 있었으니까요. 이것은 옳고 가치 있는 일이니 우리가 더 이상 주저할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마침 저희 홍민정 공동대표님이 변호사셔서 주변 변호사들과 이야기를 해 봤는데, 몇몇 분이 헌법 소원을 한다면 대리인으로 참여하겠다고 지지해 주셨어요. 그래서 헌법 소원에 이르게 됐죠.

개인적으로도 최근 5년과 앞으로 5년, 이 10년 동안 제 아이와 조카가 입시를 치렀고 치르게 되거든요. 상대평가 경쟁이라는 게 정말 잔혹한 일이에요. 특히 대한민국은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9명으로 초저출생 국가예요. 이런 시대에 아이들을 줄 세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이번에 헌법 소원 대상이 된 '상대평가'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지금 초등학교는 사립을 제외하고는 등수 매기는 시험이 없다고 봐도 되고요. 중학교도 표면적으로는 '성취 평가제'라고 해서 학생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절대평가를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는 진로 선택과목을 제외하고는 내신 9등급 상대평가제를 하고 있어요. 전체 학생을 백분위로 환산했을 때 상위 몇 퍼센트가 되느냐에 따라서 등급이 결정되는 거죠.

수능 시험은 좀 더 촘촘하게 상대평가를 하고 있어요. 수능 성적표를 보면 한국사와 영어, 제2외국어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어, 수학, 탐구 과목들이 상대평가로 돼 있어요. 내신과 같이 전체 수험생 중 자신이 몇 분위를 차지하는지, 그 분위에 따른 등급이 어떤지, 그리고 '표준 점수'는 몇 점인지 나옵니다. 표준 점수는 좀 더 큰 상대평가라고 볼 수 있는데, 득점 분포에 따라서 난이도가 어려운 시험이라고 판단되면 표준 점수 만점이 높아지고 쉬운 시험이면 표준 점수 만점이 낮아져요. 그러니까 상대화하는 지표를 세 가지 적용하는 시험이 수능이에요.

여기다 대학에서 반영 비율, 과목별 환산 점수 이런 것들을 보죠. 이러면 거의 나노 단위로 쪼개는 줄 세우기가 되는 거예요.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표면적으로는 절대평가제지만, 대학이 서열화해 있고 대학 서열에 따라 자신의 직장과 임금이 결정된다고 믿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입시의 부하가 중학교, 초등학교, 유아 단계까지 계속 내려가게 되는 거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육은 배움을 통해서, 특히 학교에서의 배움을 통해서 학생이 얼마나 성장하느냐를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상대평가는 지속적으로 '너의 위치는 어디냐'고 물어보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꾸 극한을 달리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인데, 소위 '잘난 놈'이 한 명 나오면 모두가 그 수준까지 올라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루저가 돼 버리는 상황인 거죠. 이건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체계와도 맞지 않는, '잔인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헌법 소원 내용은 상대평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일 텐데, 정확히 어떤 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일단 헌법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상대평가는 사실상 교육받을 기회를 제한해요. 입시라는 현실을 고려해서 유불리를 따지게 하거든요. 고등학교는 선택과목이 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는데요. 상대평가를 하다 보니까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이 아니라,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듣는 과목인가 아닌가, 점수 내기 쉬운 과목인가 아닌가를 따지게 되는 거죠. 이건 교육과정의 정신이라든지 교육받을 기회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분명히 맞지 않는 시스템이에요.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예전에는 '삼당사락', '사당오락'이라는 얘기들이 대학 입시를 앞둔 친구들한테 있었어요. '3시간 자면 대학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에요. 이런 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게, 저희가 올해 7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 유기홍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관악구갑)과 함께 '경쟁 교육 고통 지표'라는 걸 발표했어요. 조사 결과를 보면 5시간 미만 수면한다는 학생 비율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어요. 어른들은 주 40시간이니 주 52시간이니 노동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주 80시간 학습 노동을 하는 상황인 거예요. 이렇게 보면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 그 안에 있는 건강권, 수면권, 여가권 이런 것들을 상대평가 시스템이 제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경쟁 교육, 상대평가가 학생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매년 학생 150여 명이 성적 비관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경쟁 교육, 상대평가가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본안 심사에 회부하겠다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헌법 소원을 준비할 때, 요건 기각이 될 수 있다는 법조인들의 조언 내지 우려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결정은 헌재도 상대평가를 따져 볼 만한 이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봐요. 11월 10일 헌법 소원을 청구했을 때부터 심사 회부 결정이 나기까지 헌재 쪽에서 굉장히 많은 자료를 요청했거든요. 저희는 이제 링 위에서 싸워 볼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준비해 최대한 좋은 결과를 얻어 내야겠다는 용기가 생긴 상황이에요.

저희가 헌법 소원 기자회견을 할 때 <서울대 10개 만들기 - 한국 교육의 근본을 바꾸다>(살림터) 저자 김종영 교수님(경희대 사회학과)이 상대평가 문제를 이태원 참사와 비교하셨어요. 이태원 참사는 좁은 골목에 다수의 청년이 몰리면서 압사 사고로 159명이 사망한 사건이잖아요. 청소년 자살 집계가 해마다 조금 다르지만 대략 매년 350~400명이에요. 그중 60%가 성적 비관 때문이에요. 그러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수와 비슷한 수가 매년 학업 스트레스, 성적 비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거예요. 결국 대학 서열이라는, 고용 문제라는 이런 병목에 모두가 진입하려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죠.

김종영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일들이 매년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태원 참사의 경우 112에 신고라도 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에게는 112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상대평가 헌법 소원을 비롯해 상대평가 시스템을 바꾸려는 움직임들은, 우리 학생들이 112에 신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만드는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향후 심사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그 시간까지 무엇을 계획하시고 있나요?

본안 심사에 회부한다는 결정은 됐지만, 사실 헌법 소원이라는 게 장기간 싸움입니다. 앞으로 몇 년간 이 싸움이 계속될지 예측이 어렵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 학생·학부모·국민들이 경쟁적 고통을 계속 호소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저희도 여기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안 명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상대평가 금지 법안'을 발의한다든지, 교육부에 정책·제도 개선을 요구한다든지, 여러 가지를 병행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소멸의 위기
내 아이 유불리만 따지면 미래 없어

- 상대평가는 어찌 보면 현재 대한민국 교육체계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쉽게 말해서 '이길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이겨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이제 우리 사회가 경쟁 교육과 헤어질 결심을 할 때가 왔다'는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이 있어요.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시스템을 전복하는 일인데, 만약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면 이후 과연 교육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도 많이 하세요. 한국이 상대평가 체제를 장시간 유지해 왔고 그 관성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바뀌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기관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특히 의대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입시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얘기가 많은데, 이런 건 여러 제도를 통해 보완하면서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꾸 과거에 이렇게 해 왔는데 이게 앞으로 되겠냐고, 미래 일을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재단하면 답을 찾기 어렵죠. 학령인구 감소, 변화하는 시대 상황, 이런 것에 맞게 우리가 영점을 다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봐요. 여러 방법을 통해서 연착륙하고, 사회가 교육의 정신과 가치에 대해 합의할 만큼 수준이 높아지면 좀 더 경쟁을 완화하는 방식, 그리고 종국에는 경쟁이 해소되는 방식으로 충분히 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경쟁 교육 고통 지표'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 25.9%가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과 자살을 떠올린 적이 있다고 했고, 50% 정도가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있고, 고3 학생의 경우 70% 가까이 대학 입시와 학업 스트레스로 경쟁 교육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어요.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 10명 중 8명이 이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개인 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어요. 사실 경쟁 교육은 사회적 문제이니 꼭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객관적인 데이터들은 이미 상당히 마련돼 있어요.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내리는 단계를 거치고, 국가가 이 일을 정책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얼마나 갖게 만드느냐의 싸움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본창 소장은 절대평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비판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정책과 제도를 통해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이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구본창 소장은 절대평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예상되는 비판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정책과 제도를 통해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이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그렇다면 한국 교육은 근본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국민이라면, "우리 아이들이 경쟁 교육으로 고통이 너무 심하다", "숨 쉴 구석이 너무 없다"는 데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절대평가로 제도를 바꾸자고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이상주의자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여러 이해관계가 갈리게 되고 결국 '우리 아이가 손해 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우려들을 상쇄할 수 있도록 앞서 말씀드린 여러 현실적인 연착륙 방안을 모색해 정책 대안과 데이터를 내놓을 것이고요.

'강남의 학교에서 A를 받는 것과 농산어촌 학교에서 A를 받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우려도 있죠. 이런 교육의 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시스템이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한국은 국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교과의 교육과정에서 성취 기준과 수준을 정하고 있거든요. 그 성취 기준과 수준에 맞는 평가는 어떤 것인지 국가가 샘플을 만들어 제시하고 계속 보완하면서 신뢰를 줄 때, 국민들이 교육에 얽혀 있는 여러 문제가 앞으로 잘 풀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사실 상대평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종착역은 아니죠. 그 윗단에 있는 우리 사회의 대학 학벌 문제, 노동시장 문제 등을 다각적으로 고민할 때 교육 현실을 총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단체가 입시만 바라보고 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희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최근에 국회에서 대학 체제 개선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어요. 지금 여러 교육 정책이 분절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국가가 좀 더 통합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이 방향과 철학을 정하고 거기에 따라 교육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의 위기에 처할 상황이라는 데 사회가 합의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감사원이 2019년 발표한 지역 소멸 위기를 산포도로 나타낸 자료를 보니까, 2047년이 되면 대한민국 279개 시·군·구 중 거의 모든 곳이 소멸 위기에 진입합니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성장을 논할 때가 아니라, 소멸되느냐 마느냐가 인구학적으로 예측되는 나라라는 거예요. 더 이상 한 명의 아이도 경쟁 교육 고통 때문에 생을 마감해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거죠. 우리 아이의 유불리 문제, 여러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 같은 걸 따져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번 헌법 소원과 관련해서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도 크리스천으로서, 크리스천의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에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면서, 사회적으로는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이야기한다면, 크리스천 부모로서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어제의 나와 경쟁하는 모습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이들끼리 경쟁시키는 이런 제도는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이미지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 이 땅에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는 것이 우리 목적이라면, 하나님나라의 이미지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학교의 이미지가 옆 친구 시험 못 보게 노트를 훔쳐서 소각해 버리는 모습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인 거죠. 구조적인 경쟁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이 땅에는 소망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상대평가 헌법 소원을 위한 후원(클릭)과 상대평가 위헌을 선언할 학생 100인(클릭), 학부모 1000인(클릭), 교사 1000인(클릭), 교수 100인(클릭) 서명을 받고 있다.

이제는 절대평가제를 통해 고교 다양화(서열화)가 아닌 교육과정 다양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국·독일·영국·캐나다·프랑스·핀란드 등 교육 선진국 어디에도 내신 상대평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시대착오적으로 시행되어 왔던 대한민국의 상대평가제도 마침내 교육부장관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지난 9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고교 1~3학년 전체 내신 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교육부에 지시했습니다. 현재의 고교 학점제 추진 계획은 2·3학년에 한하여 절대평가 도입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를 모든 학년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입니다.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은 분명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은 이를 수차례 강조해 왔습니다. 상대평가제가 유발하는 교육 병폐는 너무나 심각해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이에 대한 절박한 문제의식으로 지난 11월 10일 '대입 상대평가 위헌 헌법 소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변호사·교사·학부모·학생들이 '상대평가 위헌 선언문'을 잇따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상대평가제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을 오랜 기간 왜곡시켜 왔습니다. 평가란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돕고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임에도 상대평가제는 철저히 경쟁을 유발하는 도구로, 자극적 서열화의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척도로 작동해 왔습니다. 학생들의 배움을 촉진하고 성장을 도와 '교육과정-수업-평가'로 교육의 완성을 이뤄야 할 '평가'가 오히려 교육과정과 수업 전반을 변질시키는 대한민국 교육의 병폐로 자리 잡았습니다. 마치 우물에 떨어진 독 한 방울이 그 우물 전체를 마실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처럼, 상대평가제 하나가 대한민국 교육 전반을 왜곡하며 독극물처럼 퍼져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우리 학생들을 키워 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취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철저한 비교 속에서 성적이 산출되는 상대평가제는 이미 교실을 사활을 건 전장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포용성'을 가르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창의성 교육을 위해서는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중요함을 강조했는데, 대한민국 상대평가 구조는 문제 하나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여, 사실상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평가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창의성' 교육을 논하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로 인한 수업 역시도 요약·정리·암기와 문제 풀이의 연속입니다.

문제 상황을 하루빨리 탈피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절대평가제 전환을 통해 교육 시스템 회복의 첫걸음을 떼어야만 합니다. 학생들 간의 비교로 성취를 평하는 기형적 평가 제도에서 벗어나,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여 그 기준에 따라 성취를 평하는 온전한 평가 제도로 전환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절대평가제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석차나 등급에만 천착하는 지금과 달리, 과정과 결과를 모두 중시하는 교육 환경이 조성될 것이며 교육목표를 향해 뜻한 과정을 밟아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또한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멀리 볼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학생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살피고 체계적으로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을 이뤄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교육부장관의 발언은 그 출발점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절대평가제가 그 취지와 목적에 맞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책적 노력이 뒤따라야만 합니다.

첫째, 채점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1995년 5·31 교육개혁의 실수를 우리 사회는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비교육적인 경쟁 풍토를 해결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절대평가가 도입되었지만, 각 학교의 '내신 부풀리기' 성행으로 인해 학교 내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고 결과적으로 고교 내신에 대한 불신 현상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채점 시스템'에 대한 정책안을 정밀하게 수립해 나가야만 합니다. 채점의 신뢰성을 담보해야 하는 책임을 개개인의 교사에게 짐 지우기보다는 '지역별 평가관리센터(가칭)'와 같은 채점의 시스템화로 평가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세심한 정책적 설계가 필요합니다.

둘째, 절대평가제를 내신을 넘어 대학 입학시험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만 합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영국 A-레벨, 독일 아비투어, 핀란드 일리오필라스툿킨토 등 교육 선진국 대부분은 내신만이 아니라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도 절대평가제를 일관성 있게 시행해 가고 있습니다. 앞서 교육부장관은 2~3학년 단계에서는 절대평가, 1학년 단계에서만 상대평가를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마찬가지로 대학 입학시험 역시 고교 교육 단계의 마지막 평가인 만큼 일관된 정책 논리 아래 절대평가제를 적용해 가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때문에 2028 대입 제도 개편에서는 이를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셋째,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통해 고교 절대평가제 시행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은 고교 다양화(서열화)를 탈피한 교육과정 다양화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중등학교 학사 관리 선진화 방안'을 통해 서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 개선, 고교 성취 평가제(절대평가제) 등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고교 내신 성취 평가제는 결국 도입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교 체제 서열화 때문이었습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논란과 함께 우수 학생을 선점한 특목고·자사고의 내신 불리함을 해결하기 위해, 고교 성취 평가제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쟁점은 2022년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절대평가가 도입될 경우 대학이 특목고·자사고를 우대할 것이며 이로 인해 고등학교 입시에서 특권 학교들로 쏠림이 가중될 것이라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온전한 절대평가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고교 서열화를 탈피해야만 합니다.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2011년에는 없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습니다. 바로 '고교 학점제'입니다. 2021년 2월에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 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에 따르면 이제는 '학교 유형의 다양화가 학교 서열화로 이어지는 한계를 넘어서서, 학생 개개인의 교육 수요에 부응하는 수평적 다양화 구현'하는 것이라고 그 방향을 명시합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중요시한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라는 가치가 그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다양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특목고·자사고라는 계급적 고교 체제를 유지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고등학교에 다양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이제는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주호 장관은 자사고·특목고를 존속시켜 고교 서열 체제를 유지할 생각을 버리고, 고교 성취 평가제의 온전한 시행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일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부는 위에서 언급한 정책적 노력과 함께 고교 내신 절대평가를 실시해 살인적인 경쟁 교육을 종식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배움을 통한 성장이라는 교육의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 구현될 수 있는 초중고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은 교육부가 절대평가의 교육적 가치를 실천적 의지를 가지고 정책으로 구현하려고 할 때 협력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2022. 12. 14.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좋은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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