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서연고 서성한…"으로 시작하는 대학 순위 매기기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차지하는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너도나도 이름난 대학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학벌이 곧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면 좋은 대학을 가서 좋은 인맥을 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이는 결국 교육 시장 과열을 야기한다.

올해 7월부터 구직자의 신상을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 채용'이 3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4조의 3은 구직자의 용모·키·체중·출신지·혼인·재산 상태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또 구직자의 직계 존·비속과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상태도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구직자의 학력'은 가리지 않아도 된다.

블라인드 채용의 본목적을 달성하려면 '학력 차별'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등 14명은 7월, '고용상 출신 학교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학력, 출신 학교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차별받은 사람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평등권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업무의 정상적 수행에 인정되는 합리적 기준 이상의 출신 학교를 요구하거나 출신 학교를 이유로 채용 기회를 제한·거부하는 행위 △응시 서류에 출신 학교 기재를 요구하는 행위 △면접 과정에서 출신 학교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 △특정 출신 학교를 우대하거나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행위 △출신 학교를 이유로 임금이나 작업 환경을 다르게 부여하는 행위 △승진·전보 등을 차별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뿐 아니라 같은 이름의 2016년 9월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의안, 2017년 2월 '학력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의 강길부 의원(무소속) 대표 발의안, 2016년 11월 나경원 의원(자유한국당) 대표 발의안, 2016년 9월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의안 등 20대 국회에서도 여러 법안이 나온 상태다.

학력에 따른 채용상 불이익을 막자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교육을바꾸는새힘 등 교육 단체들은 "학력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진 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법안이 발의된 배경에는, 각종 통계와 여론조사가 '학력'이야말로 한국 사회 차별의 제1요소임을 자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013년 실시한 사교육 의식 조사 중 '사교육비 증가 이유'를 묻는 항목에서는 '취업 등에 있어 출신 대학이 중요하기 때문'이 4.1점(5점 만점)으로 '특목고·대학 등 입시에서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기 때문'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3위 '대학 서열화 구조가 심각하기 때문'도 4.0점으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송인수·윤지희 공동대표)이 2017년 11월 리얼미터에 의뢰해 성인 1008명을 상대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의견은 81.5%에 달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8년 12월 31일 발표한 '2018 교육 여론 조사'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유무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89.3%가 그렇다(심각 59.7, 일부 존재 29.6%)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출신학교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사교육과 입시 과열 현상의 해소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이 법 제정을 요구해 왔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공동대표는 9월 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어느 자료를 보더라도 학력은 차별 제1위다. 사교육비를 쓰는 이유 1위가 '출신 대학을 보기 때문'이라는 통계가 여실히 보여 준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출신 학교 차별을 법률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용 시 출신 학교를 기재하지 않으면 기업이 인재를 뽑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있다. 송 대표는 "출신 학교를 기재하지 않아도, 기업들은 충분히 종전의 프로세스와 면접, 시험 등의 절차를 거쳐 인재를 뽑고 있다"며 '기우'라고 일축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법안 발의에 함께한 교육을바꾸는새힘 김형태 대표도 6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간판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억지로 대학을 보내려 한다. 그러니 10대 생활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학원 휴무제 도입 및 국공립대학 공동 학위 제도 도입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 대학은 삼각형 구조다. 최소한 이를 사다리꼴 정도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 나왔다고 그 이상의 대접을 받는 것은 일부 카르텔을 공고히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송인수 대표와 김형태 대표는 8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만나고 법안 통과에 관한 의견을 전달했다. 김형태 대표는 "이 법은 여야 간 첨예한 대립 여지가 별로 없어서, 처리 과정이 잘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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